[스파패] 제목없음
스파이패밀리, 요르와 첫사랑 날조
연습 250113
적당히 전후와 가든과 기타등등 생각해보면서 날조 아무말.
결혼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직장동료들에게 있어 요르의 이미지는 속세의 일에 초연하고 이성과는 인연없는 인상인 듯 했지만, 요르에게도 첫 사랑 정도는 있다.
처음 좋아했던 사람은 가든에서 만난 몇 살 정도 위의 선배였다.
그때 그녀는 아직 견습이었고 좀더 어려운 일을 맡아도 될지를 가늠하던 시기가 되어 단독임무를 맡던 선배의 보조로 현장에 파견되고는 했다.
상냥한 사람이었다.
저격수였고, 군에서 퇴역하고 나왔을 때는 집도 가족도 모두 잃었다고 했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요르가 더듬더듬 유리의 이야기를 하면 매번 눈이라도 부신듯이 슬쩍 눈매를 찡그리고는 웃으며 들어주었다.
그의 여동생이 살아있다면 그녀보다도 어렸을 나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들었다. 당시의 유리 정도의 나이에 헤어져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요르는 그때 이미 거의 성인인 나이였음에도 종종 어린 소녀처럼 대하던 것은 아마 그녀에게 자신의 동생을 겹쳐보아서였던 거겠지.
그때는 퇴역병이란 신분이 상사들이나 다를 바 없어서 굉장히 어른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작 로이드 씨 또래거나 한 두 살 많은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다. 요르가 십대 후반이었으니 그 사람은 그때 기껏 이십대 초반정도 아니었을까. 지금의 유리보다 몇 살 많은 정도의.
팔락하는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수건이 팽팽하게 펴졌다.
멍하니 흐르던 사고를 멈추고 요르는 빨래를 널고있는 로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안이라 가벼운 티셔츠 한장에 청바지 차림으로 머리는 내리고 있다. 이미 삼십대일텐데 저런 복장을 하고있으면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리게 보였다.
팡.
다시한번 수건을 공중에 털어 주름을 펴고, 그렇게 편 젖은 수건이 빨래 건조대에 차곡차곡 걸린다. 며칠째 비가 이어지는 날씨에 결국 세탁물은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야 말았다.
루틴 워크를 기계처럼 매끄럽게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움직임은 어딘가 리드미컬하게 경쾌하다. 로이드의 움직임은 항상 보고있는 사람 쪽이 기분이 좋을 정도로 낭비가 없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아는 걸까. 아니면 그저 집안일 전반에 익숙해서? 어느쪽도 맞는 것 같고 어느쪽도 역시 좀 다른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로이드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확신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를 알고 과정을 이해하며 그리하여 이것이, 이것만이 최선임을 아는 이의 움직임.
며칠째 이어지는 빗소리가 창을 때렸다. 겨울이 한 걸음 더 다가오는 비다. 맞으면 몸의 심지에서부터 차갑게 식어서 나중에는 빗물 쪽이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비.
단 한순간을 위해 길게는 몇달도 주변을 조사하고 때가 올때까지 며칠이고 꼼짝도 하지않던 그에게서도 종종 그런 확신을 느꼈다. 이제는 요르도 아는 감각이다. 이 스틸레토가 저것을 꿰뚫을 것임을 날붙이를 향하기도 전에 알게되는 감각.
하지만 그때의 자신은 아직 가시공주는 아니었고, 선배의 확신은 무척 낯설어서.
힘들지 않냐고 묻거든 선배는 대답했다. 기다리는게 군인의 일이니까.
그는 군을 떠났으면서도, 결국 어딘가 끝까지 군인이었던 것 같다. 거기 자부심을 가졌을까? 모르겠다. 그는 가든으로 왔다. 적어도 군대는, 그가 나라를 지키는 곳이란 확신은 주지 못했던 것이다.
가든에는 많은 퇴역군이 있다. 이번의 전쟁과, 더 윗대까지 올라가거든 저번의 전쟁을 겪은 이들이.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몇십년이 지나도 본질 어딘가가 여전히 군인이기도 하고, 어떤이는 그저 전쟁이 사라진 시대에 여전히 전쟁만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 그곳으로 흘러왔기도 했다. 요르는 굳이 말하자면 후자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든에 있다. 사실 요르는 가든이 내세우는 정의는 잘 모르겠다. 요르만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군인들 역시 자신이 무얼하는지 알아서 전선에 섰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곳 가지않는 편이 나아. 조금 시니컬하게, 그렇게 말한 건 프랭키였던가.
조금 반정부적이고, 반사회적이고, 그렇지만 소시민인. 로이드 씨의 친구.
로이드 씨도 군대에서 비슷한 것을 생각했을까. 총을 앞에 두고 전장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곁에 두고 조금씩 닳아떨어져가면서. 끝난 다음에도 결국 자신이 해왔던 일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멍하니 요르는 중얼거렸다.
“전에 프랭키씨는 형이 징집되었단 이야길 하셨었는데요…… 로이드 씨 경우는 어떠셨나요.”
“……전 의대생이었으니까요.”
요르의 앞뒤없이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어보이고, 로이드는 어딘가 쓰게 웃었다.
“의대생이니까 군의관으로 입대할 거였어서, 전쟁 막바지 무렵의 학생징병은 피했어요. 순번이 돌아오기 전에 전쟁이 끝났죠. 운이 좋았던 거겠지만…….”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 얼굴은 조금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라서, 자신이 최악을 피한 일을 선선히 기뻐하기 보다는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을 그만 떠올리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어쩐지 막연하게, 그는 당연히 군경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번도 로이드는 그런 이야길 꺼낸 적도 없었는데도. 당연히 로이드 씨도 아마 그와 같은 걸 겪었을거라고 생각해서. 그 선배와 같은 시기에 청년이었던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하고 궁금해져서.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두서없이 던져진 요르의 말에 로이드는 의아한 듯이 돌아보더니 하던 집안일도 그대로 내려놓고 조용히 요르의 곁에 앉았다. 청회색 눈동자가 들여다보듯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향했다.
그저 지나가는 잡담일 생각이었던 요르는, 그의 성실한 태도에 조금 당황했지만… 또한 그리움도 같이 느꼈다. 그녀가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는 나쁜 머리로 서툴게 무슨 이야기라도 꺼내보려고 할 때 그 사람도 그렇게 조용히 경청해주곤 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그런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퇴역병이었어요. 전선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끔찍한 최후는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온통 덮어버리기 마련이다. 선배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결국 그의 죽음이다. 저격수는 근접전에서는 그리 쓸 수 있는 재원이 아니고, 그녀는 뛰어났지만 아직 견습이었을 뿐이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제 아무리 천재적이라 상찬받더라도, 그것이 지키는데는 별 쓸모없음을 그녀는 그날 배웠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의 몰살. 적어도 그의 최후가 외롭지 않도록.
그날 그녀는 가시공주가 되었다. 차가운 비와, 식어가는 핏물과 지키고싶었지만 지키지 못했던, 좋아했던 사람의 시체 옆에서.
그 처참한 현장을 바라보며 너무 과해서 뒤처리가 힘들어질 것 같다며 한숨 쉬면서도, 담당자는 수고했다고만 말하고 그녀를 조용히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마도 그녀의 어린 첫사랑을 그 역시 슬쩍 짐작하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어른이 되어 이제는 사랑도 연애도 제대로 알게된 이십대 후반의 요르는 생각한다.
오래지않아 베를린트로 불려왔기 때문에 그 이후는 모른다.
새로운 생활에의 적응과, 이전보다 한결 어려워진 접객과, 하루하루 달라지는 동생의 모습에 나날은 정신없이 흘러가 자신이 어느 한때 정도는 사람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기억 저편으로 흐려져.
“이상하죠. 별로 닮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생각이 났어요. 왜였을까.”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이런 날은 상처가 쑤셔서 싫어 하고 그는 말했다.
아 그랬다. 로이드 씨가, 마치 묵은 상처를 감싸는 듯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 스쳐지나간 머뭇거림이었지만 그러한 것을 요르가 착각할리가 없어.
로이드 씨는 종종 자신은 적당히 운이 좋아서 고생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을 뿐인 사람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요르는 언제나 그에게서, 그가 말하는 자신과는 조금도 같지않은 것을 읽어서.
오늘도 또다시 아무 것도 알 수 없어졌다.
필시 양지 아래에 있어야할 사람인데도, 같은 곳의 비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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