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패] '아버지'와 '따님'
거짓말과 거짓말과 거짓말, 스물넷의 아냐와 정보국의 동료
09/21 냈던 동인지에서 이어지는 설정의 단문.
딱히 후일담까진 아니고 그냥 날조의 날조의 날조 같은 것.
아냐 포저와 그 사람의 관계는 모호하다.
이름은 모른다. 아냐는 그를 그저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사이좋은 부녀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이다. 그 사람의 아내에 대한 호칭도 ‘어머니’다. 사정을 좀 더 아는—그러니까 상사라거나— 사람은 아냐에 대해서도 ‘따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저 사람이 부친이냐고 물어보면 “아니.”하고 대답한다. 별명같은 거야 하고.
친 아버지는 그녀가 열여덜 살 쯤 되었을 무렵에 돌아가셨다는 것 같다. 하는 이야기에 딱히 비장미는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본디 오스타니아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열넷 쯤 되었을 때 웨스탈리스에서 재혼했고, 이미 사춘기였던 소녀는 그들과 함께 사는 대신 기숙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새어머니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내 어머니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서.” 정작 아버지도 아니라는 아는 남자의 아내를 태연히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거리감이었다.
그때 생긴 새어머니와는 본인 말로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도 독립할 때까지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지금도 연락은 한다는 것 같다. 둘 사이의 별명같은 것인지, 그녀는 전화 너머의 새어머니를 종종 레이디라고 부르곤 했다. 친부의 사진은 같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언젠가 한번 정도 본 일이 있다. 조금 고풍스러운 복장 탓에 어딘가 들은 나이에 비해서도 노숙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레이디라. 그런 사람의 아내라면 어울릴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그녀의 친부와도 어딘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키가 큰 금발의 남자. 물론 아냐는 올해 스물둘이고 그는 사십초반 정도로 보였기에 부친이라기보다는 숙부 정도라면 맞을 것 같은 나이긴 하다. 물론 아냐는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보여 대학을 졸업한지 1년쯤 된 지금도 화장을 하지않으면 종종 대학 신입생 정도로 착각되는 편인지라 보이기만이라면 그럴듯하게 부녀다.
그런 이야길 했더니 그녀는 어째서인지 웃었다. 그렇구나, 둘 다 속이면 그렇게 되는구나 하고 영문 모를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 현장요원이겠지. 정보국 건물 안에 있어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일로 언급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코드네임으로 부르고, 현장에서 직접 함께 하는 경우엔 콜싸인이 이름의 대신이 된다. 그렇게 한번 아는 상대가 되었더라도 일이 아닌 순간에 마주하게 되거든 그 이름들조차도 부르지 않는다. 혹은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 있다 해도 그조차도 실은 가짜인 것을 저쪽도 이쪽도 알고있거나.
그런 직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아냐의 그 이상한 말버릇은 사실 신경쓸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써야한다면 그녀를 ‘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쪽이겠지. 그것도 마치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다는 듯이 친근하게.
“처음부터 정보국 지망이었지?”
고어가 능숙하고 다른 몇 개 국어에도 뛰어나다. 외국어를 여럿 할 줄 안다는 것은 채용의 가산점이다. 거기에 본디는 오스타니아 출신이라 외국문화에도 익숙. 준비된 듯한 정보국의 인재였다.
아니, 준비했을 것이다.
자신은 같은 과의 친구였던 그녀를 따라 별 생각없이 장래의 직장 후보 중 하나 정도로 여기며 이곳에 입사를 신청했지만. 그녀의 쪽은 전공을 정할 때부터,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할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줄곧 이곳에 닿는 미래만을 그리고 있었을것이다.
“응. 줄곧 꿈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여기서 일해서?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름도 신원도 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물어선 안된다는 것은 모두의 불문율이다. 그렇더라도 코드네임과 콜싸인과 별명들의 사이에서 뒷이야기는 어슴프레하게 흘러다니지만. 그것을 캐묻지 않는 것은 최저한의 매너인지라.
그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고 승진을 거쳐, 특정 등급 이상의 기밀서류에의 접근권한을 얻었을 때… 나는 마침내 사정을 ‘아는 사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 아냐는 “봤구나?”하고 등뒤에서 나타나 호러무비에서나 나올 것 같은 얼굴로 히죽 웃었다.
내가 숨어서 서류를 훔쳐보고 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정보국의 내근 요원으로서 상위등급의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담당하게 된 작전에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을 뿐인데.
아냐는 나보다 먼저 이 등급에 도달해 있었다. 나로서는 손을 댈 수 없는 종류의 작전 입안이나 분석에도 이미 몇 번 참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그녀가 오스타니아 출신이며, 이든 재학 경험이라는 그녀 개인의 백스토리로 인하여 우리 쪽에서 요관찰 대상으로 지정한 요인 중 몇 명과도 이미 유년기의 ‘안면’이 있다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특수성 때문이긴 했다. 좀 다른 특수성이었지만.
기밀로 분류된 과거 오스타니아 서류철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두꺼운, 오스타니아 전반에 대한 관찰과 정보수집 작전 ‘오퍼레이션 올빼미’의 서류함의 맨 위에 있던 파일 철에 적힌 이름은 ‘포저’였다.
그래, 포저. 아냐 포저의 포저.
1. 그 사람은 아버지가 맞았다.
2. ‘친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3. 레이디는 풀메탈 레이디—강철의 숙녀—를 말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실비아 셔우드 작전부 부장.
4. 아냐 포저의 진짜 나이는 신분증 보다 두 살이 더 적다. 그러니까 나보다 세 살 연하다!
(나머지 한 살의 차이는 오스타니아는 13학년제고 웨스탈리스는 총 12학년제여서 온 차이다)
5. 그리고 그 사람이 그 <황혼>이다.
“아냐 포저 있습니까?”
남자는 평소처럼 슬쩍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안 쪽을 향해 말을 걸어온다. 누군가가 안에 있을 아냐에게 말을 전해주거나, 아니면 적당히 자신을 아는 이가 나와서 용건을 전달해주기를 바라며.
나는 문을 열고 나와 그의 앞에 서서 그리 크지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황혼 씨, ‘따님’은 출장 중이라 내일 귀환합니다.”
평소라면 목례 정도나 하고 애매하게 모르는 사이끼리의 거리감으로 스쳐지나갔을 그에 대한, 그리고 그녀에 대한 완전히 달라진 호칭에 그도 깨달았는가 “딸이 언제나 신세지고 있어요.” 하고 새삼스럽고도 정중하게 인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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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하다 손풀기로 썼던 단문. 고쳐서 포타 올릴지는 좀 고민해보고…
‘둘다 속였다‘는 나이 이야기입니다. 아냐도 그렇지만, 황혼 쪽도 ’로이드‘보다 연하란 설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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