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함

[스파패] 10년 후

스파이패밀리 / 암살자도 비밀경찰도 초능력자도 아닌

to be continued... b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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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아니 왜 글감 또 이상한 방향으로 질주해 하고 일단 멈춤…

다미아냐 전제지만 딱히 나오지 않습니다.

옛날, 아냐가 아직 어린아이일 적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파이와 암살자였다.

그리고 아냐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자였다.

이제 와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린아이의 망상 이야기야? 하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틀림없이 차남은 비웃는다. 그래놓고는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요새 별일 없는 거지? 같은 이야길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놓을 것이다. 아무튼.

열여섯의 아냐는 이제는 딱히 이클립스가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원래 나이를 먹으면 초능력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고, 굳이 사람의 마음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정된 환경이 초능력을 점점 사용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 언제부터인가 아냐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자신을 깨달았으므로. 열살 정도 무렵엔 이미 자신에게 독심술의 능력이 있다는 걸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미래를 읽을 줄 알았던 본드 역시 그랬다. 본드가 미래를 읽은 것은 그들이 함께 살았던 초반의 2년 정도로, 그 뒤로는 딱히 앞일을 예지하는 일 없이 평범한 나날을 보내며 천천히 늙어가다가 마침내 천국으로 떠났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 힘을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냐는 어쩐지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더는 요동치지 않게 되어, 예지해 대비할 필요가 없어지자 더는 예지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아냐가 그랬듯이.

많은 변화가 그렇게, 언제 바뀌었는지도 모르게 바뀌었다.

예를 들자면 삼촌.

비밀경찰이었을 삼촌은 어느 틈엔가 진짜로 외무성에서 일하는 외교관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3년째 해외근무다. 애초 국가보안국 자체가 5년도 더 전에 해체되어서 지금은 존재도 하지않는 기관이다.

변화라고 하면 그것도 있다. 이제는 삼촌은 마음가득 누나를 외치지 않는다. 이제 마음을 읽지도 못한다면서 어떻게 그걸 단언할 수 있냐고? 아냐가 아직 삼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무렵에 이미 그랬으니까 라고 밖에는. 삼촌과 마주했을 때 언제부터 속이 더부룩한 기분이 되지 않았더라? 숙모를 소개받았을 때일 수도 있고 사촌이 태어났을 때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보다 더 앞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가 암살자를 그만두었던 무렵일지도.

수많은 변화 중에서, 그 시점 만은 아냐도 분명히 알고 있다. 어머니가 아주 크게 다치고, 어머니의 상사가 그것을 전하고, 어머니가 이혼하자고 편지를 보냈고, 아버지가 새파래진 얼굴로 어머니를 쫓아가서.

그때 아냐는 아직 마음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아직 너무 아이여서 자신이 읽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정도는 못되었기 때문에. 그저 어머니 이제 안 돌아올거라고 아버지를 붙들고 엉엉 우는 것 밖에는 자신이 알게된 사실을 전달할 방도를 몰라서.

아무튼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아냐의 어머니여야한다고 울며 매달리자, 어머니는 네 하고 웃었다. 그 뒤로는 어머니는 계속 그냥 아냐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가 스파이를 그만둔 게 언제인지는 불분명했다.

그냥 어느 순간엔가 아냐는 아버지의 상사를 한참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냐와 개를 산책시키러 외출하거나 할때 변장하고 스쳐지나가던 상냥한 여자분이. 그 다음으로 안보이게 된건 은발의 언니였다. 이쪽은 병원을 퇴직한다고 인사를 왔었다. 마음속으로만 혼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무척 분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향해, 선배를 부탁한다고 속으로 인사했었지.

그러고나서 아버지는 더는 한밤의 호출에 불려나가지도 스파이일로 얻게된 부상을 이상하게 변명하지도 않게 되었다.

TV뉴스에서 테러의 이야기도 더는 나오지 않았고, 국가보안국은 축소되었으며, 본드맨이 끝났다. 나중에 현대사 수업시간에 ‘여기 시험에 나옵니다. 동서 7차 회담.’ 이렇게 말해지는 시기다.

아냐가 임페리얼 스칼라가 된지 1년 쯤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임페리얼 스칼라가 되는 것이 세계평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아냐, 세계평화에 공헌했던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냐가 어리던 어느 시절에 이 집에는 스파이와 암살자와 초능력자와 미래예지견에 비밀경찰이 함께있던 나날이 있었다.

지금의 포저가는 평범하다.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와, 시청에서 일하는 어머니, 이든에서도 우등생인 딸과, 해외근무중인 외숙부. 기르는 개의 이름은 본드 2세-희고 포근포근하게 생긴 것은 본드1세와 비슷하지만 이쪽은 포메라니안이다.

그 평범한 저녁의 식탁에서 아냐는 흘끗 부모를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그런 과거를 떠올린 것은 아마도 지금부터 할 말이 이전이라면 플랜B의 진전으로 취급되었을 테니 적어도 아버지의 반응은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텐데란 뻘한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플랜B, 친구친구 작전. 아니, 이건 친구가 아니지만.

새빨개진 차남을 떠올리고, 아냐는 어째서인지 이쪽까지 새삼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부모를 상대로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어서 긴장한게 대체 얼마 만일까.

하지만 이제 그 어떤 마음도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아니까.

심호흡을 하고, 아냐는 입을 열었다.

“아냐, 차남한테 고백받았어.”

“…어머.”

어린애 같은 말투를 쓰지 않은지는 좀 되었지만, 아무래도 부모의 눈치를 보는 기분이 되면 그때의 말투가 나와버려서.

어머니는 어머나 하고 말했지만, 어쩐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닌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글방글 웃으면서. 멜린다 아주머니한테 뭐라도 들었던 걸까. 차남 대체 정작 나한테 고백도 하기 전에 어디까지 소문낸 거지……. 베키가 당연한 듯이 알고 있던데. 차남 바보.

아버지 쪽은… 예상대로랄까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할까 뭔가 애매하게 못마땅한, 하지만 입밖에 낼 수도 없는, 착잡한. 남들이 말하기를 ‘딸바보’라고 불리는 항상과 같은…….

- 데스몬드는 주목이 과한데.

“아버지 지금 뭐라고…?”

마치 다른 사람 같이 서늘한 목소리였다. 아냐나 어머니를 향하는 평소의, 어딘가 한숨과 따스함이 섞인 둥글둥글한 말투와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찬물을 엎지르기라도 한 것같은 오한에 아냐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응?”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하고 오히려 지금 말을 꺼낸 아냐 쪽을 처다보았다. 여전히 딸이 고백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친이 지을만한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아,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다. 가족을 향한 적은 없어서, 오랫동안 듣지 않아서 잊고있었지만. 처음 만난 날 아버지는 저런 목소리로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을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찬 목소리가 한번 더 생각한다. 이런, 탐탁지 않은게 티가 났나? 저 앤 이전부터 부정적인 감정에 예민하단 말이지. 어디보자 다미안 데스몬드가… 쓸 곳이 있을까. 빠르게 뇌리를 스치는, ‘그’에 대한 객관적인, 지극히 객관적인, 딸의 남자친구 후보라기보다는 쓸수 있는 말을 대하는 듯한 마치 품평하는 듯한 평가가 흘러가고.

손익의 계산과, 스치듯 지나간 웨스탈리스의 이름과. 그리고.

“다미안 군은, 좋은 아이이긴 한데. 솔직히 아버지로서는 좀… 권하기가 힘들구나. 그 집안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살짝 시선을 내려깔면서, 아버지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 어딘가 시무룩한 얼굴의 뒤로 아버지가 아닌 남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데스몬드는 이미 정계은퇴한 상태지만 그 집안은 여전히 유력가문이야. 결혼까지라도 이어지면 틀림없이 그 상대에 대해선 조사가 들어가겠지. 포저도 10년 째라 이력은 상당히 쌓였지만 깊이 들어가면 리스크가 커. 요르나 유리 문제도 있고.

“하지만 아냐가 좋다면 나는 반대할… 생각은 없으니까. 다만 둘다 아직 어리니, 경솔한 교제는 아니었으면 하는구나.”

뭐, 십대의 연애가 꼭 거기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견적내는 것은 이쯤 해둘까.

아냐는 멍청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마치, 아직도.

아냐는 그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아버지는 아직 스파이라는 것을.

웨스탈리스의 스파이는 한번도 은퇴한 적이 없었다. 그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그 업무의 내용이, 직책이 바뀌었을 뿐이다.

포저가에는 이제, 부활한 초능력자와 스파이가 있다.

“아냐, 마음을 읽을 줄 알아.”

다미안에게 그렇게 말해보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비웃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반문했다. 진지하게.

“언제부터.”

“왜 언제부터야?”

“이전에도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면 어제 그러고 놀랐을리가 없으니까!”

새빨개진 얼굴로, 다미안은 투덜거렸다. 다들 알고 있는데 왜 너만 모르는거야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미안 데스몬드의 긴긴 짝사랑이 어제 성취로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했음을, 이든의 11학년 친구들은 모두 알고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보는 모든 사람이, 마음을 읽을 것까지도 없이 명백하게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평소는 항상 식사를 같이하는 에밀도 유인도 오늘은 저쯤에서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자기들끼리 홀랑 가버렸다. 실은 아냐만 빼고 그 짝사랑을 모두 알고있는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아버지한테 말했는데.”

“포저 선생님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미안의 어머니인 멜린다 데스몬드가 병원을 다니고 있고 치료의 일환으로 가족상담도 몇번 있었기 때문인지, 다미안은 아버지를 포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냐의 아버지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주치의 적인 감각인 듯 했다.

“근데 아버지는 별로 안좋아하셨어.”

이상할 정도로 다미안의 얼굴이 어두워져서, 아냐는 빠르게 덧붙였다.

“다미안 군은 좋은 아이지만…… 이라고.”

안좋아함에 덧붙는 것이 데스몬드란 이름임을 깨닫고 다미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냥 로이드 포저였다면, 아마 그것조차도 문제는 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원래 다미안에게 제법 호의적이었다. 스파이여서가 아니고, 아직 어린데도 어머니를 혼자 지탱하는게 기특하다고 종종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애초 로이드 포저가 아닌 것이다. 단 한순간도.

다미안에 대한 그 말은 정말로 대견함이었을까.

멜린다에 대한 걱정들은 모두 그저 걱정이었을까.

그가 말한 그 모든 말의 어디까지가 계산이고 어디까지가 본심인지, 아냐는 이제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마음을 당연하게 읽던 무렵의 감각은 이미 희미하고, 생각하는 것을 안다는 게 사람의 의도와 목적, 무엇보다 다음 순간 어떤 선택을 할지를 안다는 의미는 아니란 것을 16살의 아냐는 이제 알고 있었으므로.

평소 열여섯까지 오스타니아에 있는 아냐를 상상하는게 항상 거의 불가능했던 터라, 쓰기 힘든 소재는 일단 직접 써보면 뭔가 결판이 나겠지 적인 감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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