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Sugar-high
에스마일>프러드
트리거/소재 주의: 죽음, 전쟁 등의 소재. 우울, 자기파괴적 사고 등을 가진 화자 시점의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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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노을에 마음을 주었죠
금방이면 사라질 것을
새파란 눈물을 흘려보내요
바다에 휩쓸려 갔네요
-<영원은 그렇듯>, 리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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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에 우리는 끝을 말했다. 정확히는, 그는 우리의 끝이 언제일지 알려달라 애걸했고 당신은 졸업쯤인 것이 가장 좋겠다고 했다. 그는 동의했다. 그렇게 대화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지? 몸이 떨릴 정도로 펑펑 울면서도 그는 생각했다. 평생 무언가를 믿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의 곁에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그 사람이 바라고 필요하는 다른 것-크게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나, 다른, 더 멋지고 유능한 친구나, 심지어는 단순한 개인적 흥미까지도-보다 우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를 신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향한 신뢰의 부재로. 피부에 햇살처럼 와닿는 애정을 느끼므로 그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현실”에서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원래 결국에는 본인이 선택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 타협으로 살 수 있었다. 그를 비겁자, 배신자, 변절자라고 말하는 동급생 두 명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아무것도 놓을 수 없어서, 그는 밤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불사조 기사단이었고 낮에 학교에서는 걱정이 조금 많은 얌전하고 덜렁대는 학생이었다. 두 가지 일면은, 모범생 타이틀은 절대 얻을 수 없다는 사소한 불편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서로 침범하지 않아야 했다. 달의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같아 지구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이에게 한평생 달의 뒷면은 드러나지 않듯이.
그러니. 당신과의 관계는 완벽했다. 당신은 세상의 부조리를 선명히 느끼며,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는 그것에 관해 마음껏 대화하며 웃고 떠들 수 있지만, 그것으로 당신의 잠깐의 안온이 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가 짓궃은 농담거리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그것에 영향받아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나는 당신을 힘겨운 길로 이끌었다고 죄책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한다. 자기기만 같은 것을 하기에는 너무 단정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이것이 오히려 당신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꼭, 당신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해주는 것을, 혹은 당신이 위험해지더라도 괜찮다고 하는 것을… 그러니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을. 그런 달콤한 거짓말을 감히 바라고 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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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애에 어떠한 특별한 운명도, 거창한 이유도 없단 것을 이해한다. 출신이나 사상 같은 것에 편견을 조금은 가져도, 그것이 우선 다가오는 손을 내칠 이유가 되기에는 어려워서, 결국에는 그저 옆에 있던 사람에게 끌리고 만다.
4학년의 그날 이후 당신은 더 이상 에스마일에 대해,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 세상과 그의 불화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반대로 그 또한 당신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당신이 어머니와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모두가 짝을 맞춰 춤을 추던 찬란한 기억을 알고, 실제로 당신의 집에 가 기억 속의 가족을 만나며 당신이 말하는 평화를 조금이나마 짐작했고. 지금 당신이 동생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더라도, “사람의 기억을 의사에 반해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념을 말하기가 오히려 어렵다.
혈통과 성격 탓에 마법사들의 가정에 초대된 적이 없다시피 하니(쥘의 집에서, 에스마일은 약 15분 만에 메이블의 손을 잡고 안뜰로 나갔다 그것은 추방이자 또다른 환대였으나 이건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당신의 집이 가장 가까워서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당신이 그를 통해 머글 세계를 짐작했듯이. 당신으로 인해 에스마일의 클럽은 다른 이들의 비웃음거리이자 사람을 피할 수단이 아니라 실존하는 모임이 되었고, 이상한 농담을 전파했고, 당신의 찻잔을 탐내다가 쓰디쓴 차를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으며, 당신과 함께 연습했기 때문에 기사단에서 오클루먼시 강습을 받을 때 성과가 눈에 띄게 좋다는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았다.
합리와 우연만이 우리를 가까이 있게 했으며, 지금 인과가 그것을 요구하니. 우리는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잠시 아프더라도 결국에는 이 편이 나을 것이다. 만일 혹시라도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리면, 의도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둘 다 더욱 상처받을 테니까. 그것이 그의 뇌가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픈데,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심장이 말했다. 그는 그 순간에 이미 죽어버린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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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크가 한 번 더 그에게 실망한다 해도, 그는 토론 클럽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뜯어보듯 읽었다. 그중에서도 당신이 제출한 익명의 의견서를 오래 서서 보고 있었다.
전쟁은 마법부의 항복으로 종료하는 걸로 하자는 거 어차피 더 싸워도 별로 가망 없을 거 같은데
의견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디짧고 성의없는 글을. …혹시나 여기에 무언가 암호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익명이니 그 정도의 용기를 몰래 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다른 사람 눈에는 띄지 않게 이어지는 은밀한 협력처럼. 그런 지극히 비합리적인 감정으로.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진심이면 어떡하나. 정돈되지도 정제되지도 않은, 삶에 대한 피로함만을 드러내는 이 글이….)
상처받는 것은 상처받는 것뿐. 기대했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이중사고를 오래 안고 살았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당신에게 기대하고 있었구나. 결국 누군가 나를 침범했구나. 세상으로 끌어내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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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울듯이 활짝 웃었다. 비참하면서 행복했다. 무릎에 놓인 당신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고.
“…가지 말라고 해 줘서, 고마워요. 제가 당신을 붙잡지 않게 해 줘서…. 오래 살게요, 프러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고 그가 약속했듯이.) 멀리 가더라도 돌아올게요.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 계산된 거니까. 최선을 다한 거니까. 다음 우연이 다시, 우리를 가까이 있게 할 때까지. 머글 태생과 스큅과 이종족들이, 우리가 권리 같은 단어를 말하면서,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당신이 후회하시지 않도록… ….
하지만 가야 해요. 여기는 이제 제 방이 아니잖아요.”
우리의 가슴 속에 불이 있다. 그는 그것을 한계까지 태우고자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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