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함

[스파패] 꿈 그림자

스파이패밀리 / AU미만의 애매한 무언가

to be continued... b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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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꿨던 적 있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이상하죠. 꿈에선 모르는 사람인데도 전혀 위화감을 못느껴요. 친근하게 이야기하고, 잘 아는 것 같이 대화하고. 그런데도 깰 때가 되면 생각하는 거죠. 어라? 계속 같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겠는 거지? 하고.

모르는 죽은 사람의 꿈을 꿨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딘가 흐리고 희미한 미소였다.

죽인 사람의 꿈을 꿨어요 라고 말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미소였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덩치가 큰 남자였다. 그는 제법 신장이 있는 편이었는지라 평소 자신보다 큰 사람을 만날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보기에도 단단해보이는 근육질의 체형도 그 당황에 무게를 더했다.

거기서 이전 지나가다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그렇군, 선배의 남편은 군인이라고 했었지.’

군인인 남편과 어린 딸을 두고 단신부임 했었다고, 대체 내가 이따위 뒤치닥거리나 하자고 그런 선택을 한 줄 아냐면서 대사나 본국에서 온 다른 높으신 분들이 사고칠 때마다 선배는 종종 푸념했…던가?

“처음 뵙겠습니다. 실비아 셔우드 서기관님에겐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셔우드 씨.”

“아내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스타니아 대사관에서도 유능한 후배였다고. 종종 칭찬했어요. 들어오세요.”

남자는 미소짓고 가볍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는 그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단련되어있는 체구와는 달리 움직임은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그를 대하는 태도 역시 어디까지나 정중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 조심스러움은 그도 기시감이 있는 태도였다. 어린아이가 근처에 있는 사람이 가지는 모습. 그도 어느새 익숙해진 모습.

단신부임이면, 어린 딸을 이 사람이 몇 년이고 혼자 손으로 키웠겠구나. 앞으로 그 자신에게도 돌아올 책임을 떠올리며, 어쩐지 존경스러운 기분으로 그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여보, 손님 왔어. 우리 공주님은?”

“겨우 잠들었어. 동화책을 절반쯤 읽을 때까지도 안 자겠다고 버티다가. 어, 애송이 왔나?”

“저도 이제 몇년 찬데, 언제까지고 애송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건강하셨죠?”

“웨스탈리스에서 별 일이 있을게 있나. 그나저나 너도 상담할 일이 있다면서 심각하게 국제전화 씩이나 걸어온 것치곤 멀끔한 얼굴인데.”

실비아 셔우드가 거실 쇼파에 앉아있다 고개만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은 평소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녀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한 이래일테니까… 일년 만인 건가?

상담, 그래 상담할 것이 있었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무척 낯선 기분으로 그는 옛 선배를 보았다. 분명 일년 전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모습일텐데 화장과 선글라스와 정장이 없다는 것 만으로 낯설었다. 어라, 이전에도 별로 진한 화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역시 가정으로 돌아온 것과 단신 부임의 차이인 걸까.

실비아는 느긋해보였다. 그가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모습으로.

“고아원 봉사활동 하다가 만난 사이? 네가?”

실비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가 알고있던 ‘후배’의 여자관계는 꽤나 드라이한 주제에 난잡했던 것이었기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딱히 대단한 악의도 없으면서 그 와중에 원망은 원망대로 사고. 그따위로 살면 언제 여자한테 찔려죽을 거라고 충고한 적도 있었던가.

그런데 봉사활동 중에, 같이 봉사활동을 나왔던 시청의 공무원과의 만남.

지나치게 건전해서 지금 무얼 들었나 귀를 의심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 건전하고 말끔한 만남이 결국 적당히 직장동료들과 돌아가며 드라이하고 불모한 사내연애를 한 것 이상으로 피곤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 이 녀석이 이 녀석인 이유겠지만.

참고로 그때는 중재하느라고 고생했었지. 그 중 하나는 자신이 저딴 녀석은 관두라고 기껏 신경써 잔소리해주었더니 불륜을 의심했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과거였다. 이후 이 녀석에게 사내연애는 관두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가.

……그렇다고 국제결혼을 하라던건 아니었는데.

“여보, 너무 그러지 마. 일부러 찾아와주신 손님한테.”

“손님? 반가워야 손님이지. 골치거리 물고 들어온 녀석이 무슨 손님은 손님.”

남편이 난처하게 웃으며 주방에서 요리를 들고 나왔다. 실비아는 그런 남편을 향해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정하게 웃었다.

“웰링턴 만든거야? 손 많이 가잖아. 이런 녀석을 위해 거기까지 안해도 되는데.”

“모처럼이니까 실비아가 좋아하는 걸 만들고 싶었어.”

선배의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유하게 웃었다. 평온한 가정의 풍경을, 그는 이상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정도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들여다본다면 이런 느낌이 되는 것일까.

일에는 유능하지만 사생활을 돌보는 능력은 변변찮은 선배가 용케도 결혼했구나 하고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집에서는 가사는 남편이 한다는 말에 납득아닌 납득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고도 주부입니까 하고 빈정거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했다.

무슨 인과인가, 그의 새 가정의 요리 담당도 아무래도 그가 될 것 같았으므로.

과거의 말 실수가 혹시라도 요르 씨 귀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시무룩해하겠지. 괴멸적인 수준의 요리 실력을 떠올리며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무언가 떠올린 듯한, 살짝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애틋함이 묻어있는 미소에 실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참으로 못볼 꼴을 보고 말았다는 얼굴로.

“그래서 오스타니아 여자하고 결혼할 거란 말이지. 음, 너 임기가 아직 좀 남지 않았던가.”

“그렇죠.”

“눈가리고 아웅인 건 알지만, 본국 복귀할 쯤에 결혼하면 안되는 거였나? 지금 양국 사이에 회담도 준비 중이라 꽤 정신없을텐데, 그 타이밍에 국제결혼 같은 걸 하면 꽤… 뒷말이 나올 텐데.”

“미룰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입양할 예정이라서요.”

“……그건 또 무슨 사정이야?”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란 이야기에 실비아는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다니던 고아원에…… 아냐란 아이가 있는데, 네 번이나 파양됐어요. 고아원 안에서도 겉돌기도 하고. 이래저래 사정도 있는 아이라.”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냐를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를 만났을 때부터 어째서인지 알았다. 그는 저 애의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은게 아니었다. ……저 애가 딸이 되어주길 바랐다.

“아니 그냥, 제가 가족이 되고 싶어요. 저한테는 아이도 그녀도 필요해서.”

아냐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게 자신이 살아온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한번도 아이 따윈 가져본 적 없는, 결혼한 적도 없는 남자의 그 이상한 소망에…… 저도 알아요 하고 웃어준 것은 그녀였다. 그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두번 째 조각은 이것이었구나 하고, 그는 깨달았다.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사직해야할지도 몰라.”

실비아는 차가운 눈으로 한때의 후배를 바라보았다. 유능한 녀석이었다. 일 솜씨도 일 솜씨였지만 처신이 참으로 능숙했다. 정치와 외교의 영역에서 그것은 무척 큰 재능이다. 나중에 크게 될 녀석이라고 기대도 걸었다.

필요 이상으로 평가가 가혹했던 것은, 아마 기대가 높아서였던 거겠지.

그러나 그 녀석은 이제 쓸모없어졌다. 스스로 제 앞길을 걷어차버렸다.

“신뢰도가 깍이는 일이란 건 너도 알고있지? 오스타니아 여자와 결혼도 모자라 입양? 본국에서 어떤 눈으로 볼 것 같나.”

“일단 오스타니아에선 확실히 물러나야겠죠.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귀국해서 옛 지인들을 좀 만나보는 참입니다. 일반 기업 취직한 녀석들도 있으니까. 무역회사라거나.”

“퇴직?”

“어쩔 수 없다면요.”

그는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평생도 걸 것이라 생각했던 미래를 버리는 것에 참으로 망설임이 없어 스스로도 이상했다. 이것이 천직이라 여긴 적이 분명 있었을 텐데,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일에 감사하고 있다. 자신이 외교관이 아니었다면 여자도 아이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파견된 것이 오스타니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직업은 제 운명이었노라고 남자는 감사할 수 있었다.

“뭐, 네가 어디든 할 일이 없어 굶어죽을 녀석은 아니니 그 걱정은 안한다만.”

“하하.”

“미련도 없어 보이는군. 허탈하게시리.”

“…돌봐주신 건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해요.”

“일단 웨스탈리스로 돌아올 생각은 있는거지?”

“예 제가 오스타니아에 무슨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다시 오스타니아 쪽으로 파견되더라도 일단은 웨스탈리스에서 출발해야죠. 뭐… 오스타니아에서 같이 사업하잔 녀석도 있긴 한데 역시 그건 아니다 싶지만.”

프랭키 프랭클린을 떠올리며 그는 웃었다.

대학 시절 웨스탈리스에 배낭여행을 왔다 그대로 길거리에서 소매치기에 당해 무일푼이 되었던 그와 맺은 잠깐의 인연은 어째서인지 국경을 넘어, 몇 차례 끊어지면서도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동업은 절대 하고싶지 않은 상대지만.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 선배님.”

그는 그렇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실비아 셔우드는 앉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건 또다시 선배의 남편이었다.

“이제 베를린트로 돌아가는 거죠. 먼길 조심해요.”

실내의 불빛을 등지고, 덩치가 큰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친절하고 상냥한 말이었으나 어딘가 스산했다.

“실비아가 아끼는 후배를 만나서 반가웠지만, 역시 또 볼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

쓴웃음이 섞인 말투였다.

이상하게, 귓가라기보다는 머리속에 대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아까부터 이 사람과 계속 같이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보고있는데도 왜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

— 이상하죠. 꿈에선 모르는 사람인데도 전혀 위화감을 못느껴요 라고.

그의 아내인 여자가 언젠가 그런 말을… 아내라니?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그럼 ‘황혼 군’. 앞으로도 실비아를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현관문을 닫았다.

어라? 내 이름은…

눈을 떴다.

기억을 점검한다. 현 위치와 상태를 확인한다. 시간도.

폭발테러 사고. 미연에 막지 못했다. WISE의 멤버 중 직접적으로 말려든 것은 장관의 경호를 위해 현장에 잠입해있었던 황혼과, 그리고 대사관의 직원 사이에 섞여있던 실비아 셔우드 관리관.

안전가옥이다. 현장에서 변장했던 낯선 남자가 발견되어도 곤란했으므로, 일단 회수를 우선시 했을 것이다.

팔에는 링겔, 그외엔 붕대와 습포 정도. 부러진 곳은… 다행히 없다. 나머지는 화상과 베인 상처일까. 그 정도는 커버 가능하다. 임무로 복귀할 수 있나. 반반일까. 상태만이라면 할 수는 있지만, 아마 이제 와 무리해서라도 복귀해야 할 타이밍은 지나갔다.

체감적으로, 하루는 지나지 않았다. 창은 없는 지하지만 사람의 기척에서 낮과 밤 정도는 구분이 간다. 늦은 오후인가. 의료지원을 겸하는 동료가 침대 근처에 서있다 그가 깬 것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급한 걸음을 옮겨왔다.

“황혼, 정신이 드십니까? 두통이나 구토 증세는? 기억은 어디까지 있나요.”

“관리관은?”

괜찮다는 말 대신 돌아온 질문에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측의 안내로는 아직도 의식불명입니다. 현장 지위는 비상 절차 대로 인계되어있습니다. 황혼에 대한 명령은 일단 대기입니다. 위장했던 대상은 사고 수습 전에 현장에 되돌려놨으니 사람이 바뀐 사실은 밖으로는 새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동료는 걱정 반 잔소리 반인 말투로 덧붙였다.

“운이 좋아 치명상도 부러진 곳도 없다 뿐이지, 황혼 쪽도 전치 4주는 돼요. 화상하고 타박상 통증 제법 길게 갈겁니다. 지금도 진통제 들어가고 있으니까 버티는 거지.

관리관은 외상은 심하지 않다고 하는데, 부딪친 곳이 안좋은 모양이에요. 의식이 돌아올 때가 됐는데 계속 의식불명이라. 그쪽은 일단 커버 상태일 때 난 사고라서 대사관에서 대처할 겁니다. 베를린트 종합병원 입원 중이니, 상황 확인하고 싶으신거면 빨리 로이드 포저로 복귀나 하시든지요.”

죽은 사람의 꿈을 꾸었다. 부탁한다고 들었다. 관리관은 돌아올 것이라 근거도 없이 알았다. 그 그림같이 아름답던 가정을, 꿈곁같은 행복을 어쩔 수 없이 떠나.

“그래, 벌써 오후네. 출장 핑계도 슬슬 끝날 때가 됐고. 적당히 빙판에서 넘어지기라도 한 걸로 해둬야겠어. 한시간 정도 경과 더 보고 별 문제 없을 것 같으면 돌아가겠어.”

“몸 좀 아끼세요. 올빼미도 있잖습니까.”

확실히… 동거인은 예민한 여자다. 이정도 부상이다. 다친 것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도 이상한데서 날카로운데가 있으니, 아마 알 것이다.

“다쳐 돌아가면 식구가 걱정하죠.”

동료는 별 의미없이 한 이야기였으나 식구란 단어가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다가왔다.

안전가옥을 벗어나 문을 열고 나오자 때마침 황혼시였다.

산 자의 얼굴조차 구분할 수 없는 어스름 속에서, 흐릿했던 어느 가정의 꿈도 나누었던 헛된 이야기도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어떤 소망들도 이제 완전히 각성한 의식의 저편에서 어느새 전부 녹아 사라졌다.

애매하게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 채로.

요르가 꾼 죽은 사람의 꿈…이야기로 이어져야하는데 그건 더 미묘해서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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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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