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데] 소문 - 上

- (놀랍게도) 윤힐데로, 연애하는 '힐데'로 소문이 난 에피소드.

- 공식 사건, 설정 사실에 크게 기반하지 않습니다(적폐날조주의)


ㅡ 힐데베르트가 연애를 하는 것 같아.

블랙배저 가운데 소문이 퍼졌다. 누가, 누구랑 연애한대. 이런 소문 정도는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집단에선 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매우 평범하고 무가치했다. 염문을 일상처럼 뿌리는 블랙배저의 누구누구의 연애 소식이었다면 다들 질리는 기색을 표했어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겠지만, 이번 소문의 주체는 다들 한 번쯤 반문을 던지지 않고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힐데. 힐데베르트 탈레브. 그래, '그' 신입이 연애를 한다고?

소문을 들은 이들은 당연히 그 다음 질문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누구랑?"

연애를 혼자 하겠냐. 당연히 힐데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있을 거 아닌가. 사람들은 당연히 상대에게 힐데의 '누구'를 물었다. 그렇게 묻는 그들의 뇌리에선 수 많은 후보들이 스쳐지나갔다. 힐데 그는 굳이 사람을 내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 그와 얽혔던 이들을 곱씹게 되었다.

"몰라."

"지금 장난해?"

그러다가 이런 맥 없는 답변을 듣고 어이가 없어져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받은 상대방은 전혀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들어봐. 괜히 그가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졌겠어? 사시사철 폰을 부여잡고 사는 중독자도 아니면서 요 근래에 폰을 부여잡고선 꿀 떨어지게 웃으면서 낯 부끄러울 정도로 달콤한 밀어를 속삭인다잖아. 그 통화 상대한테! 나도 처음에 듣고선 반신반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그를 지나쳤는데 또 폰을 붙잡고 있는 거야.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보지도 않던데? 이건 분명해. 그 신입이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그렇게 남의 연애에 대해 열연을 토하던 이는 어느새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대를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큼. 목을 가다듬은 뒤 이 소문에 줄줄이 달려있는 그의 애인 후보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


"힐데, 연애해?"

소문이란 아무리 몰래 몰래 흘려도 당사자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 소문의 당사자가 아침부터 달려와 본론부터 말해버린 이웃으로 인해서 알게된다는 점은 흔치 않았지만, 반드시 캐내고야 말겠다는 기자의 눈초리로 힐데에게 폭탄을 떨어트린 이웃 최아미는 꿋꿋했다. 이미 힐데의 연애는 블랙배저 사이에는 공공연한 진실로 여겨졌다. 본인에게 확인 받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럴때마다 힐데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소문은 진실의 유무따위 상관치 않고 퍼지고 퍼져선, 종내에는 그 소문만이 진실이 될 때도 있었다. 소문의 원형은 당최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라도 말이다.

그렇게 괴이하게(?) 퍼진 소문의 당사자가 힐데라니. 아미는 처음 이 소문을 듣고 충격에 빠졌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힐데에게 직접 물어보자! 그러면 답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찾아온 게 막 해가 뜨는 아침인 지금이었다. 아침 7시. 힐데는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깨어나 마주한 아미를 발견하고 당황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지? 아무튼,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집에 온 손님을 앉히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건넸다. 아직 해가 짧아 싸늘하기 짝이 없는 겨울 아침이었기에 힐데는 손님인 아미에게 또 어떤 걸 내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느라 본인의 뒤통수를 향해 맹렬하게 빛나는 아미의 눈빛을 발견하지 못 했다.

따뜻한 우유 한 모금을 마신 아미가 그렇게 바로 터트린 폭탄은 어마무시했지만, 사실 힐데에겐 다소 뜬금 없는 소리였다.

"…누가요?"

"힐데가 연애한다고 소문이 자자해. 막, 막."

"막?"

"길거리에서 폰 키스를 할 정도로 죽고 못 사는 사이라던데."

네? 힐데는 그제서야 아미가 냅다 던진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 감지하고 말았다. 저게 무슨 소리야. 내가 길거리에서 폰을 붙잡고 키스를 했다고? 대체 언제? 누구한테요?

"제가요?"

"응. 힐데가."

이 대화의 흐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니 사실 힐데는 처음부터 길을 잡지 못 했다. 아미의 얘기에 의하면 자신이 지금 연애중이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애인과 열렬히 애정행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연애를 아미가 물어온 것도 황당했지만, 아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의 내용은 너무나도 경악스러워 힐데는 벌어졌던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폰키스를 넘어, 연애 상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공공장소에서 추잡스러운 행태를 벌이는 거다라는 소문부터 블랙배저 본부 연구팀이 수뇌부 모르게 개발한 AI에 사랑에 빠져 미쳐버린 거다, 사실 화장실에서 힐데가 폰을 붙잡고 … 등 말도 안되는 소문들이 아침부터 힐데의 귓가를 통과했다. 그것도 그 추잡한 소문들을 아미에게 듣는다는 것은 더 강렬하고 파괴력 높은 충격이라, 힐데는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리다 옆의 의자를 붙잡으며 가까스로 생존본능을 발휘해 소문에 반박했다.

"우선, 전 연애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요?"

"힐데의 유력한 애인 후보가 주였는 걸.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어."

힐데는 아파오는 머리에 머리를 짚었다. 인사팀장 주는 도대체 살면서 어떤 연애 이력을 남기며 살았길래 저 모든 끔찍한 소문의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단순한 소문이라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렇게 치부할 수 없다는 현실을 힐데는 깊게 통감했다. 우선 아미에게 소문을 정정해줄 필요성을 느낀 힐데는 입을 떼려다가 머리를 스치는 소문의 '무언가'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먼저 다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연애를 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맞아. 힐데가 통화를 했대."

"좋습니다. 그럼 제가 근래에 누구랑 통화했는지가 요점이군요."

"그렇넹? 그 사람이 힐데의 연인일테니까!"

…그건 아닌 것 같지만요. 힐데는 침구 근처에 놔둔 폰이 생각이 나 폰을 가지러 걸음을 옮겼다. 통화를 한 상대. 힐데는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게 소문처럼 달게 웃으며 통화했던 상대가 있나 뇌를 짜내보았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냥 예의상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걸까? 아니면 장난을 치던 상황도 있었으니 그때 누군가가 봤던 웃음이었을까. 아무래도 소문은 정도를 모르고 곡해되기 쉬웠으며, 동시에 어느 정도만 소문을 진실로써 정정만 해준다면 자극성을 잃어 급하게 사그라들기도 했다. 그래서 힐데는 소문이 퍼질만한 자신의 행적을 곱씹으며 지척에 있는 폰을 집어들었다.

"아."

지이잉. 지이잉.

집어들기 무섭게 폰에 화면이 빛났고 진동이 울리며 전화 수신이 왔음을 알렸다. 힐데는 잠시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하더니 자연스럽게 통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

잠시간 상대와 통화를 이어가던 힐데는 뒤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미의 시선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 지금 아미랑 얘기할 게 있어서 당장은 힘들고, 오전 중으로는 본부로 들어가겠습니다."

힐데는 바로 폰을 가리키면서 입모양으로 '윤입니다.'라고 아미에게 통화 상대를 알렸다. 거기에 아미가 '오빠?'하고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반응했다. 물론, 지금 통화하고 있는 윤에게는 알리지 않은 사실이라 몇 마디 더 말을 붙이던 힐데는 네? 네. 대답을 하다가 뭔가 미심쩍은 표정이 되어선 알겠다며 폰을 아미에게 건넸다.

"응. 왜?"

[최아미. 네가 왜 이 시각에 힐데 집에 있어?]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그냥 오해였던 것 같아서 금방 돌아갈 거야!"

[무슨 오해?]

아미는 딱히 대화를 숨겨야할 필요성을 못 느낀 건지 폰을 받자마자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아미에게 할 말이 있다고 건네줬는데, 아무래도 이 꼭두새벽부터 동생이 남의 집에 있다고 하면 신경쓰일 수밖에 없지. 힐데는 윤이 더 걱정하기 전에 따뜻한 빵이라도 아미에게 내어드리고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윤의 질문이 들렸다.

설마.

"힐데가 연애를 한다는 오해? 그런데 아니랭."

그 설마가 맞았다. 소문을 정정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조금 있다 윤을 만나러 갈 입장인 힐데로서는 영 좋은 대화 주제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윤은 저런 소문 정도는 가볍게 뇌 한 켠에서 쓸모없는 정보로 분류돼 삭제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미의 말을 끝으로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오호. 누구랑 연애를 하고 있는데?]

힐데의 기대와는 다르게 윤의 통화음에선 답지 않은 흥미로움이 엿보였다. 세상에. 힐데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는 걸 자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윤은 이런 소문에 흥미를 보이지 않을 거라는 아주 소소한 기대가 무너졌다. 힐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달싹거리다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오해입니다. 윤은 제가 누구랑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셨습니까?"

[글쎄. 난 모르지. 그 바쁜 틈틈이 무슨 짓을 했길래 염문설을 퍼트린 건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힐데의 폰을 보면 증명할 수 있어!"

왜인지 모르게 사수의 음성이 한 층 낮아진 것을 느낀 힐데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윤에게 반박하고 싶었다. 그래, 이 폰으로 당장 아미에게 증명을 하고 윤에게도 보여주면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더 심화되진 않을 것이다. 윤이 '폰?' 하고 반문하니, 아미가 아까 자신에게 읊었던 소문 레파토리를 그대로 읊어주었고 자신도 거기에 중간중간 끼어들어 '다 헛소립니다.'하고 무고함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그래, 그럼 지금 최아미 네가 통화목록을 확인하면 되겠네. 더 지체할 것 없이 통화목록을 확인해 소문을 일으킨 상대가 누구냐 밝혀보자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아미가 폰을 만져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좋아. 하나씩 읽어볼겡. 하고 아미는 맑은 목소리로 힐데의 통화 상대를 읽어 내려갔다. 처음 읽을 때는 아미의 명료했던 목소리가 화면을 내려서 읽을 수록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듯 흐려졌다. 힐데가 왜 그러냐는 듯 시선을 보내자 폰을 한 번 보고 힐데의 의아한 얼굴을 한 번 본 아미가 툭, 하고 믿을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

"힐데. 우리 오빠랑 사귀는 거야?!"

정말이지,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올 수가 있는 걸까. 힐데는 사고를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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