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로스

마왕 노모로스

2. 잠깐만 히스

스토리 by 가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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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연말 결산을 진행하기 위해 중요직을 맡은 마계 간부들과 부하 몇몇이 모두 모여있는 회의실은, 유일하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간부, 마왕 솔만 기다리고 있었다.

“ 마왕님.. 대체 어디 계세요.. ”

그녀, 히스는 초조한 듯 작게 중얼거린다. 대체 마왕은 어디로 갔을까, 솔은 바쁜지 혹은 일부러 받지 않는건지 히스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히스는 평소에 솔이 자주 갈만한 곳을 전부 가보았으나 솔 특유의 잔향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단 한군데 가지 않은 곳이 있는데 바로 인간계이다. 하지만 가고 싶다고 해도 함부로 인간계에 갔다간 인간들에게 죽을 수도 있으며 설령 그들을 피한다 해도 얼마 가지 못해 마기 고갈로 죽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히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른 간부들의 불평불만과 잔소리를 대신 받아주면서 마왕님이 올해 제일 중요한 연말 결산 회의를 잊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간부 몇몇이 마왕의 더딘 행보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마왕이 앉아야 할 의자 쪽의 창문이 시끄럽고 화려하게 깨지며 그 사이로 날아 들어오는 이 자리의 주인공, 솔이었다.

“ 어? 다들 일찍 와 계셨네? ”

늦게 와놓고선 한다는 말이 다들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냐는 게, 어이가 없을 법도 한데 자리를 떠나려던 간부들은 한숨을 쉬곤 다시 착석하거나 그 외 간부들은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는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며 바로 회의를 시작한다.

지루하고도 긴 회의가 끝나고 모든 간부들이 퇴장했을 때, 오늘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히스에게 반갑다며 능청스럽게 손을 흔드는 솔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곤 울컥한 눈빛으로 따지듯이 한탄한다.

“ 마왕님, 대체 어디 계셨던거예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냐구요. ”

솔도 자신이 저지른 상황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히스의 눈을 피하며 허공을 멀리 응시한다. 오늘같이 모든 간부가 모이는 날은 흔한 날이 아니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에서 한낱 마왕의 직속 부하에다가 대변인 정도, 되는 히스가 솔의 공석으로부터 오는 부담감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미안해,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

평소엔 웃거나 장난을 치며 넘어갔던 그가 이번엔 진짜로 미안한 듯 난감해하며 사과하는 솔을 보고는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히스였다.

이런 악덕 사장 밑에서 굳이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히스와 솔의 관계는 고작 그런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다. 솔은 히스가 어릴 적 꼼짝없이 죽을 뻔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으며, 히스는 그 은혜를 갚고 싶어 자신이 죽을때까지 솔을 따르는 맹세를 했기에, 마왕의 직속 부하라는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 중요한 회의가 있는지 몰랐다는 건 당연히 아니실거고, 회의에 늦을 만큼 인간계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셨나요? 차라리 지금 다 설명해주세요. ”

“ 아, 아니? 그냥 평소처럼 그 파란 아이, 랑 대화하면서 장난치고.. 아, 맞다! 도시도 갔었고, 밤 늦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뒤늦게 기억나서 온건데 늦었.. ”

“ 아니요. 마왕님. 아니, 솔. 저에게 숨기시는 게 있으시죠? 저번부터 엄청 수상하신 거 아세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속이실 수 없는 거 아시죠? ”

“ 자, 잠깐만 히스.. ”

“ 다른 누구도 아닌 저한테는 솔직하게 말해주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맞죠, 솔? ”

곤란한 듯 계속 횡설수설하며 눈을 피하는 솔의 그 얼굴을 히스는 양 손으로 잡고는 시선을 따라가 제대로 마주한다.

사실 히스는 솔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솔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남들에게는 천진난만하게, 마왕이라는 품위는 저 멀리 내다 버린 것처럼 보여지는 괴짜 마왕이지만, 정작 내면은 중요한 문제를 혼자 짊어지며 그걸 또 뭐든 혼자 해결하려 하고 움직이는 그런 마왕인 것을 히스는 잘 알고 있었다.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솔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적막이 꽤나 오래 유지된다 싶을 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진다.

“ 솔, 아직도 여기 있.. 음. 하던 거 해. 방해해서 미안해. ”

솔을 찾으러 온 *가브는 이 상황을 제대로 오해했는지 곧바로 문을 얌전히 닫고 ‘파이팅!’ 이라는 누구를 향한건지 모를 작은 응원과 함께 빠르게 문을 닫고 사라졌다. (*1화 마지막에 나온 간부)

“ 가브님?? 그게 아니라 전 마왕님과 잠깐 대화를.. ”

히스는 제대로 오해한 것 같은 그에게 뒤늦게 설명하려 했지만, 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었고 그 사이에 솔은 깨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히스를 피해 도망쳤다.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답도 해주지 않고 이때다 싶어 도망간 솔부터, 뭔가 제대로 오해하고 가버린 가브를 생각하니 히스는 대체 어디부터 정리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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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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