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장면 반고정틀 커미션

아픈 고정틀 샘플 07

몸살, 실 작업물, 4000자 내외

치과 특유의 향내가 아직까지도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아프면 오른손 들라는 말은 대체 왜 한 거야. 식사 후 집까지 짧은 거리를 비척비척 걸어가며 머리를 헤집었다. 각종 기구로 건드려 놓은 어금니가 얼얼했지만 마취 효과가 이어지느라고 아프지는 않았다. 새벽 내내 관자놀이에까지 번졌던 통증이 조금은 가시니 그나마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좀 살겠다는 얼굴이다?”

“어…….”

놀리는 투였으나 반박할 말도 힘도 없던 N은 맥없이 긍정해버렸다. 두 사람 얼굴에 긴장 풀린 웃음이 떠오른다.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하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대상이 생판 이방인도 아닌 오랜 친구라면. 심장 내려앉을 듯 기겁했던 아침이 자꾸 떠올라서 친구를 째려본다. 요절하기 전에 좀 말을 하라고 몇 번씩이나 말해도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 N을 쥐어박고 싶어진다마는, 피곤이 완연한 얼굴이라 뒤로 미뤄놓는 M이었다.

M은 N이 침대에 쓰러질 때까지 그를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집에 눌러앉아 마취 풀리면 밥이며 약까지 챙겨먹였을 테지만 그녀의 일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침에 B가 그랬듯 M도 아슬아슬하게 늦기 직전까지 머무르다 급한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N은 이제 됐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누차 말했으나 M이 그다지 못 미더워함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야, 나 진짜 간다.”

“진짜 간다는 말만 몇 번째야. 늦겠다.”

“아오. 간다! 약 제때 먹어!”

“알았다니까. 조심히 가.”

피곤하고 제법 몽롱한 정신에도 M이 요란하게 떠난 뒤 남겨진 집안이 꽤 적막하다고 느꼈다. 새벽은 유난히도 외로웠지만 아침부터 하도 복작거리고 복잡하여 그 대비가 참 컸다. M은 종종 두 명분의 몫까지도 해냈고, 오늘 같은 날 더 그렇다. N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본 채로 반듯하게 누웠다. 햇살이 창으로 새어들고 있었으므로 방안의 온도는 딱 맞게 쾌적했다. 이불을 덮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가만히 눈꺼풀을 내린다. 온몸이 침잠하는 기분 속에서.

아.

조용한 집안에서 가만히 눈을 뜬 건 몇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눈을 뜨자마자 으레 몇 시쯤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건마는 N은 정말이지 욕설을 읊조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정도의 근육통이 온 몸을 짓눌렀다. 새벽 내내 끙끙 앓다가 병원에서도 온몸의 긴장 그대로 유지되었으니 장장 일곱 시간이다. 몸살이 안 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할 리가. 짜증이 났다.

“윽, 하아…….”

N은 침대를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눈을 굴려 시계를 확인하면 저녁 다섯 시쯤이 되어간다. 일어나 앉자마자 밀어닥치는 현기증에 이기지 못하고 다시 옆으로 풀썩 쓰러져 누워야 했다. 왜 이렇게 어지럽지. 눈을 뜬 N을 반기는 것은 참 여러 가지였다. 적막함, 어지러움, 두통과 치통.

마취가 풀릴 때가 됐다. M이 약을 제때 먹으랬는데. 무려 다섯 번이나. N은 맥없이 침대에 모로 누워 있으면서도 그녀의 신신당부를 떠올렸다. 시선 끝에 약이 올려진 협탁이 닿는데도 눈만 깜박. 일어나 저기까지 걸어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어렵게 느껴졌다.

“어휴…….”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켜 휘청이며 몇 걸음 걸었다. 그 정도 행동에도 굳은 결단이 필요할 지경으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아프네. … 조금 다른 느낌으로. N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협탁에 손을 짚고 몸을 의지한 채 약을 먹었다. 머리카락이 숙인 머리를 따라 흘러내려 시야를 제법 가린다. 따라둔 물과 함께 넘겼는데도 혀끝에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평소라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수준이었지만 미간이 꽤나 좁혀든다. 심적인 여유는 개나 줘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 이불이 뭉쳐 허리 부근이 배겼지만 이불을 정리하는 그 정도 움직임조차 해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불편한 상태 그대로 누워 있었다. N은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두통은 자꾸 심해지는 이유를.

아까부터 묵직했던 관자놀이는 이제 양옆에서 죄어들듯 쑤시기 시작하였다. 잠들기 전까지는 치통으로 인해 오른쪽 관자놀이가 묵직하게 아팠더라면 지금은 살짝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나 직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신의 체온이 상당히 큰 폭으로 올랐다는 것이지만 무엇 하나 할 힘이 없다. 내뱉는 숨이 하염없이 뜨겁게 느껴졌다.

좀전에 먹은 진통제가 알아서 해 주겠지. 눈을 감아버리는 순간에는 그러다 요절한다는 M의 목소리가 스쳐갔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말 별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큰 철제 냄비로 머리를 가격하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다. 그런 하루였다.

삑삑삑삑.

불편하게 누운 상태로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가 도어락 소리에 깬 것은 밤이 다 되어서였다. 그마저도 도어락 소리에 깨어났으며 그렇지 않았더라면 웬 새벽 즈음에 눈을 떴으리라. 제 집인 양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파란 머리를 멍하게 바라본다.

“…… 벌써 열한 시야?”

“그래. 너 전화는 왜 안 받냐?”

부스스한 꼴에 몽롱한 정신. B가 불을 키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시야가 하얗게 변해 쉽사리 돌아오지 않아 고개를 겨우 들었다가 관둔다. 부재중 몇 개 찍혔는지 봐. B는 무려 다섯 개라고 짚어주며 투덜거렸지만 N은 그다지 집중하고 있지 못했다.

“…… 자느라고. 후드집업 주머니에 핸드폰…….”

“집에 온 이후로 계속 잤다고? 대낮에 들어오지 않았어?”

B는 N이 말하는 대로 후드집업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아 그에게 건네며 반문했다. 핸드폰을 받아들면서도 금세 손이 침대로 툭 떨어지고, 내뱉는 음성도 신음처럼 흐릿하게 웅얼거리니 이상함을 느끼는 건 금방이었다. 침대가에 걸터앉은 B가 N의 이마를 짚더니 대뜸 물었다.

“어쩐지. 너 몸살 났지? 약은 먹었냐?”

끄덕.

“몇 시간 전에?”

“…… 다섯 시간 전에.”

“잘하는 짓이다.”

M이 있었더라면 이 화상아, 하면서 화냈을 법한 상황이다. B는 그녀를 대변하여 목소리 높이려다가도 짤막하게 한숨 내쉬고 관두었다. 손을 뻗어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었다. 이 고생도 곧 스물네 시간일 친구가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

“식은땀 범벅이네. 상의만이라도 좀 갈아입어.”

“힘든데…….”

“쫌.”

B는 N이 움직일 기색조차 없자 한숨을 쉬면서 그를 잡아 일으켰다. 몸에는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축 늘어졌다. 좀, 앉아 있기만 해 봐. 그러나 푹푹 떨어지는 고개가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였다.

“미안. … 나 정신이 안 차려진다…….”

“… 그럴 법도 하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가만있어.”

B는 그를 답답해하는 대신 찬찬히 챙겨주기를 택했다. 민폐라는 생각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나 하면 됐다. 욕만 안 먹는다면야. 옷을 갈아입히고 이마의 식은땀을 시원한 수건으로 닦아내주는 와중 N의 몸이 자꾸만 제 쪽으로 기울어져도 무어라 타박하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잠들어버릴 듯한 얼굴로 미안하다며 정신이 안 차려진다고 중얼거리던 친구가 자꾸 눈에 밟혀서였다. 낯은 어느새 걱정을 가득 머금었다.

“야, 나 오늘 자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이불……. 빨래해서 너 덮을 거 없는데…….”

“지금 그게 문제냐고.”

죽을 끓여와 N의 앞에 내려놓는다. 입맛 없는 거 아는데 좀만 먹으라며. 약까지 제대로 먹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마를 재차 짚는다. 약의 포장을 벗겨 손에 쥐어주기까지 하는 B가 제법 저를 중병이라도 걸린 양 다루고 있는 것 같았지만 생각과는 별개로 몸은 자꾸 침대로 수렴하려고 했으므로 N은 별말 않았다. 그저 최악으로 치닫던 오늘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시계는 열두 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프면 깨우라며 담요 한 장 가지고 카페트 위에 드러눕는 친구가 있다. 오늘을 최악이라고 분류하기엔 그에게 미안할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그리 끝을 맺었다. 간밤은 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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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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