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연성 백업 - 정사의 츠가이

어떤 세계의 이야기

2024. 5. 15. 연성 백업

눈부신 빛이 거리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베이지색으로 빛나는 가지각각의 건물들, 초록빛 자연에 물든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발걸음, 유유자적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더없이 평화로운 이 길거리를 걷는 소녀는 언제나와 같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 손에는 종이봉투를, 한 손에는 꽃을 든 소녀는 느긋한 발걸음을 돌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서와, 츠바메."

 소녀가 도착한 곳엔 또다른 소녀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히나타는 그런 소녀를 보며 반가운듯이 달려갔다. 

 "코마도리!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냐. 나도 방금 왔는걸?"

 츠바메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코마도리를 바라보며 츠바메는 밝게 미소지었다.

 그렇게 그 둘은 공원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본 회색빛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그날 먹은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관한 이야기 등등 잡다하고 사소한 이야기. 하지만 함께하는 그 순간 자체가 행복했기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오후 8시,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 그 둘은 내일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도시는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 

 눈부신 빛이 거리를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푸른 빛으로 가득한 도시를 달리는 수 많은 자동차들과 빠르게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어지럽게 도시를 수놓은 가지각색의 간판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육교에 선 한 소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생명이라곤 느끼기 힘든 건조하고 시끄러운 도시. 움직이고 있으나 마치 죽은것처럼 보이는 이 도시가 지겨웠다. 하지만 소녀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마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 움직이고 있으나 죽어있는건 자신 또한 같다고 느꼈다. 아무리 지겨울지라도 자신도, 도시도 바꿀 수 조차 없으니 그저 순응할뿐. 그렇게 소녀는 도시의 외곽으로 걸어나갔다.

 걸어나갈수록 도시를 비추던 화려한 빛이 차차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가로등 불빛만이 남은 곳에 도착할 무렵이 되어서야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빛도, 소리도 상당수가 사그라들어 가로등 불빛 아래 발걸음 소리와 외투가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소녀는 한 철문 앞에 도착했다. 부분부분 녹이 슬어있는 철문에 열쇠를 꽂고, 끼이익 하는 소음과 함께 방에 도착한 소녀는 불도 키지 않은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모든 것을 놓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도 못한채, 실낱같은 가로등 불빛만이 겨우 들어오는 방 안에서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후 4시, 도시의 외곽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있었다. 

<>

 세계가 어둠에 잠겨있었다. 그 세계에 있는 빛이라곤 한두줄기의 차가운 빛 뿐. 그리고 그 빛 아래에 한 소녀가 지친듯이 앉아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소녀와 가까워질 즈음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소녀를 두고 돌아가기엔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에 말이라도 건내보고자 했다.

 "안녕? 너는 누구야?" "...하?"

 목소리가 전해졌다. 소녀는 다소 어이없어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시선을 향해주었다.

 "내 이름은 츠바메야. 잘부탁해!" "...모즈." "너의 이름은 모즈구나. 정말 멋진 이름이야!"

 모즈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딱봐도 지친 모습으로 가만히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걸정도로 여유가 있나보네?" "특별히 용건이 있다거나 한건 아니야. 그냥.. 말을 걸고 싶었다고 해야할까?" "..정말 단순하네.."

 모즈는 한숨을 쉬면서도 여전히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주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했고, 그렇게 한참을 모즈와 이야기했다. 

 "아, 이제 갈 시간이야. 그럼 내일 또 봐!" "과연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그렇게 모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난 내 앞에 나타난 문을 열었고,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

 빛이 이렇게 따뜻한거였나? 난생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에 고개를 들자 보인건 한 사람. 나와 비슷해보이지만 나와 달리 밝은 미소를 짓고있는 사람. 그 사람은 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언가에 막힌듯이 멈칫했다. 그대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그 사람은 이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너는 누구야?"

 단번에 이상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으면 절대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을텐데, 왜 굳이 이런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걸까?

 하지만 그 눈부신 사람의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를 외면하기엔 난 지나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츠바메 라는 사람.. 아니, 츠바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체로 츠바메가 말을 걸고 내가 대꾸하는 형식이었지만 그래도 츠바메가 들려주는 빛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지루했던 일상속 권태로움이 어느정도 사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츠바메는 사라졌고, 나는 따스한 빛이 사라진 그곳에 홀로 남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빛을 갈망하게 되었다.

 <>

 츠바메와 모즈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 각자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둘의 만남은 꿈을 꿀때마다 이어졌고, 그렇게 그 꿈은 만나면 만날수록 점차 확대대며 서로가 있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벽을 두고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서로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둘의 마음속엔 갈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

 모즈는 어떤 일을 하는걸까? 몇 번 물어보았지만 모즈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즈는 내가 사는 세계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일은 분명 위험하고 괴로울 거라는것을.

 모즈의 세계를 더 알고싶었다. 어느샌가부터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모즈의 망토를,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져가는 모즈의 붉은 망토를 함께 걸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모즈의 저 괴로운 표정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내 앞에서 보여주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아닌, 괴로워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날이 온다면 모즈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모즈가 사는 세계는 언제나 밤. 하지만 난 그 밤 속에서 꺼질듯이 빛나면서도 꺼지지 않는 모즈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간 모즈가 사는 그 세계로 건너가, 모즈와 잠시나마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깨어있을때도 그 아이에 대한 호기심과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 떠올랐다.

 그렇게 내 마음속엔 갈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 

 츠바메는 언제나 따뜻한 빛을 보여주었다. 마치 마음속엔 어둠이라곤 존재하지 않는다는듯이, 언제나 다정한 미소로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꿈에서 깨어나면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난 이 세계에 사는 존재.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이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 평소엔 그저 한숨을 쉬고 도시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시체마냥 돌아다녔을 터인 나의 마음 속엔 나약함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예 몰랐다면 상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을 알게 된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아니, 영원히 그 빛에 손을 내밀고 싶었다. 나의 이 피로 얼룩진 손을 츠바메가 품어줄 수 있는 한, 계속.

 츠바메가 사는 세계는 언제나 낮. 내가 사는 곳에선 볼 수 없는 따스함과 다정함이 있는 그 세계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 따스함도 도시를 수놓는 초록도, 다채로운 색도, 시끄럽지 않은 소리로 가득한 그 세계 자체도.  깨어난 뒤에도 계속해서 그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난 지독한 갈망에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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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부턴가 츠바메의 세계와 모즈의 세계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낮의 세계엔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밤의 세계엔 동틀녘 그 순간의 빛이 찾아드는 상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저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구나 정도를 인지했지만 츠바메와 모즈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 현상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걸, 그리고 어쩌면 각자가 사는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을거라는걸. 하지만 그 둘에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눈을 감으면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는 공간에서 언제나와 같이 만나며 서로의 세계의 이변에 대해 이야기할뿐. 그것이 그 둘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

 낮의 세계에서 첫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명치부근이 크게 꿰뚫려 죽은 시체 앞에서 츠바메는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코마도리를 말하는 이야기, 츠바메를 걱정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츠바메를 짓누르는듯 했기에 츠바메는 코마도리의 시체를 수습한 직후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엔 자는 시간이 아님에도 자고싶었다. 모즈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츠바메는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 빠져든 츠바메는 모즈가 있었을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엔 모즈가 없었지만 대신 붉은 망토는 남아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길어진 망토를 향해 츠바메는 손을 뻗었지만 망토는 손에 닿지 않았다. 대신 딱딱했던 투명한 벽이 조금 많이 물컹해져서 그 세계를 향해 조금은 더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것이 전부.

 기분이 이상했다. 어째선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모즈를 기다리던 순간, 모즈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즈는 아무렇지 않게 그 망토를 걸친채 피곤한듯한 표정으로 츠바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츠바메는 모즈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내 평소와 같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모즈는 평소와는 다르게 냉담한 모습을 보였고, 츠바메는 모즈의 기분이 나아지면 다시 찾아와달라는 말을 남기며 미소지었다.

 모즈는 한숨을 쉬며 더없이 길어진 망토를 질질 끌고 그대로 츠바메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 남은 츠바메는 네온사인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

 각자의 세계의 이변이 점차 심화되고, 결국 세계 어딘가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그 균열에서 마수와 마녀가 등장에 낮의 세계 밤의 세계 가리지 않고 그 세계 자체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츠바메도 모즈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은 여느 사람들과 같이 도망치거나 포기했고, 그 둘의 세계는 그렇게 완전히 금이 가 깨지게 되었다.

 - 

 그 둘이 눈을 뜬 곳은 낮과 밤이 뒤섞인 무중력 공간. 투명한 파편이 이곳저곳에 흩날리며 세계의 흔적을 보여주었고, 그 가운데 그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츠바메는 모즈를 바라보며 언제나와 같이 미소지었다. 모즈는 괴롭다는듯이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츠바메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런 모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긴 망토의 끝을 츠바메가 살포시 들어올려 자신의 몸에도 감았고, 모즈는 이상하다는듯이 바라보았다.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 "내가 너에게 나쁜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츠바메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다. 그저 몸에 걸친 모즈의 망토로 자신의 몸을 더 꼬옥 감쌀뿐. 그런 츠바메를 바라보는 모즈는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츠바메는 망토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모즈가 망토를 당겨도 요지부동인채로 그곳에 있을뿐.

 결국 모즈는 포기했고, 그런 모즈에게 츠바메가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모즈는 고민했다. 과연 저 손을 잡아도 되는것인가.

 이제 빛은 언제나 손에 닿는 곳에 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 빛을 향해도 괜찮을까? 그 손을 마주잡아도 되는걸까? 

 하지만 그 손은 꿋꿋이 모즈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고, 망설이던 모즈는 결국 손을 마주잡았다.

 그렇게 츠바메의 빛은 모즈를 향해 스며들어갔고, 모즈의 붉은 망토는 츠바메의 몸에 스며들어갔다.

 그렇게 서로의 빛이, 서로의 색이 서로를 침범해 물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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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캐한 연기 사이로 악취가 느껴졌다. 그 감각에 나는 눈을 떴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동료들 주변엔 수 많은 마수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일어났냐?"

 그리고 그곳엔 모즈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채 서있었다.

 "..어.. 응."

 너무나도 선명했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잠시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모즈는 내 시야 너머로 이내 사라졌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뒤로한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수송기로 향하는 모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즈의 등엔 여전히 망토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 망토의 한 켠엔 자연스러운 버튼처럼 빛이 멤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모를 안도감을 느낀 나는 그대로 모즈를 향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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