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모음

빛전라하/ 할로윈

2022. 10. 31.

TYYYYYYYYYYY by 칙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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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던가. 에테르계와 별바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혼에 불과한 이들이 에테르계로 내려올 수 있고, 에테르계의 존재들도 그 혼을 볼 수 있는 날이라고 했다. 기껏해야 1년에 하루 정도고 시간도 짧아 그런 날이 있다고는 해도 혼을 본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했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그리다니아의 수호천절 시기와 겹치는 때가 잦아 인간 분장을 한 요마와, 그때를 맞아 변장한 인간과 구분하기가 더더욱 어려울 거라고.

 

발데시온 위원회의 어떤 신입이 전해준 이야기였다. 에테르계와 별바다의 경계가 흐려진다니, 거기서부터 다소 신통치 않았다. 야슈톨라가 들었다면 첫 마디부터 '말도 안 돼요'라고 일축했을지도 모른다.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다. 한 순간이라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 그라하 티아는 신입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희망이 발로한 것은 아닐까 했다. 이따금 헛것을 보았다고 치부하면서도 그들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들을 때가 있으니까. 그것이 헛것이 아니라 정말로 떠나간 그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수호천절을 맞이해 화려하게 꾸민 미 케토 야외음악당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영웅은 꽤 흥미로워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에 별별 일이 다 있잖아. 나는 심지어 과거에 다녀왔고, 너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야. 그러면 뭐…… 그것도 있을 법하지 않겠어?' 말을 듣고서 그라하 티아는 씩 웃었다. 하긴. 그 이야기를 이상하다고 치부하기엔, 그라하 티아야말로 누군가는 믿지 못할 몹시도 '이상'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만약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라하, 너는 누굴 다시 보고 싶어?"

 

어어. 그 순간에는 말문이 막혔다. 한없이 많은 사람이 떠올랐다가도 그 누구도 생생하게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며 흘러가기도 했다. 누군가가 떠올랐다가도 곧 여러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곳은 제1세계고 여긴 원초세계인데도 가능할까? 라든가, 시간대가 완전히 다른데 가능할까? 라든가, 애초에 제가 과거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은 아닐까? 라든가, 제가 있었던 미래가 다른 가능성으로 분리된 거라면 그곳의 시간대는 어떻게 되어 누가 살아 있을까? 라든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머리만 복잡해졌다. 모두가 보고 싶기도 했고, 그 누구든 그저 편하게 보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라하 티아는 그저 웃었다.

 

"글쎄."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에 영웅이 먼저 바쁘게 눈을 굴렸다. 호박 과자를 나누어주는 것 같다며 받아 오겠단다. 호박 탈을 쓴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낸 것이 호박 과자라는 것이 썩 재밌었다. 그래, 얼른 다녀와. 그렇게 웃어주자 영웅은 마주 웃어주고는 이리저리 분장한 모험가들 사이로 바삐 뛰어갔다.

 

어찌 보면 꾸밈은 다소 으스스하다지만 이렇게 꾸며놓은 그리다니아는 제법 즐거웠다. 원초세계로 돌아와 맞는 첫 수호천절이다. 모두가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는 새삼, 종말이 물러갔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평화를 되찾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는 웃었다.

 

그때, 그라하 티아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눈을 멈추고 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어……."

 

영웅이었다. 호박 과자 벌써 받아 온 거야? 라고 물으려다 턱, 말이 멈췄다. ………영웅이었으나. 호박 탈을 쓰고 있지도 않았고, 오늘 입고 온 옷차림도 아니었다.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느끼기도 전이었으나 어딘가… 제 예감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지금'의 영웅과 그리 나이 차이는 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한 기록은 제8재해로 인해 소실된 지 오래였으며, 구전에 의해 변질된 이야기도 많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행보는 말하는 사람마다 달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따져본다면 '지금의 영웅'과 별다르지 않은 나이에, 그는 떠났을 테다. 그러니 얼굴만으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는, '지금의 영웅'보다 어리게 보였다. 제1세계의 모험과 세상의 끝에서의 모험을 겪지 않아서였을까. 어떻게 생각한다면 더 심한 일을 겪었는데도 눈앞의 그는 왠지 앳되어 보였다.

 

어쩌면, 수호천절을 노려 이 근처로 섞여 들어온 요마가 변장한 것일 수도 있다. 영웅과 닮은 사람이 빛의 전사처럼 분장한 것일 수도 있다. 제가 생각하는 그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시간을 가진다면 눈앞의 그는 존재할 리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냥, 왠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그는, 어린 시절의 그라하 티아와 함께 모르도나를 뛰어다니며 모험했던 그였다. 그리고… 그라하 티아가 잠든 이후에 허무하게 별바다로 돌아간 그였다. 또한, 그라하 티아가 아주 오래, 하염없이 그리워했던 그였다.

 

그는 그라하 티아를 바라보며 은은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그라하 티아도 씩 웃어주었다. 다, 지켜보고 있었구나. 왠지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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