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미 카이토 로그

성실함도 연기의 영역에 들 수 있는가?

고영 by 낭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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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싫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장악한 짧은 문장을 속으로 삼키곤 느릿하게 오른편으로 누운 몸을 돌려 제 휴대폰 집어 든다. 여섯 시 사십칠 분… 알림이 울리기 한참 전에 눈을 떠버렸으나 도로 잠들 수 있으리란 기쁨보단 이 시각에 깨어났단 짜증이 덮쳤다. 아직 졸린 듯 반쯤 열린 눈을 꾹꾹 눌러 문질러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는지 어정쩡하게 열린 눈으로 천장만 응시하던 몸을 꾸역꾸역 일으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일찍 일어났으니 빈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면 되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미나미 카이토니까. 그게 카이토예요.

세수, 양치, 열심히 앞머리를 갈라 틀어 올린 뒤 푸른 채소만 대충 집어넣은 샌드위치를 억지로 입에 욱여넣는다. 그리 가벼운 준비를 끝내면 이제 일곱 시 이십삼 분, 아직 여유가 있어 식탁 앞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잔은 왼손에. 그리고 남은 한 손에는 이런저런 콘텐츠가 흘러가는 휴대폰을…… 제 이런 모습이 월요일 오전 아홉 시의 세 시간 연강 강의를 앞둔 가여운 대학생의 이미지에 차암 어울리지 않나 싶어 혼자 쿡쿡 웃어버리고 말았으나 길게 이어지지 않고 무표정으로 금세 복귀했다. 유감스럽게도 카페인이 만능은 아닌지라 몇 모금 마셨다고 피곤한 상태가 회복될 일은 없었다.

그야 어젯밤도 잔뜩 쌓인 과제 탓에 새벽 3시를 훌쩍 넘겨 잠들고 말았었다. 물론 잔뜩 게으름을 피워버린 제 탓이 없으리란 생각은 않았지만 그러나 이건 너무했다… 그 자식은 내가 자기 강의만 듣는 줄 아는 게 분명해! 무의식적으로 커피가 든 잔을 식탁에 쾅 내려놓은 그는 제 행동에 스스로가 흠칫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 초, 도로 한숨을 내쉬며 한 모금 더 들이켠다. 시간은 꽤 때웠다. 최대한 집에 눌어붙어 있고 싶은 대학생의 버티기 한도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느그적 일어나 잔은 싱크대 안에 넣어두고, 문 앞에 서서 입꼬리를 꾹꾹 누른다… 익숙한 미나미 카이토의 웃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유지로가 보고 싶은 순간이야, 카이토는 그리 생각했다.

나름 일찍 나선 탓인가 금방 다 이르고 만 학교는 영 꼴 보기 싫은 감각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더 사 마실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 타이밍 좋게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확인한 그의 얼굴은… 기쁨에 가득 찼다. 유지로도 아침부터 수업이구나! 하는 못된 동질감 조금, 단지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 잔뜩. 누가 본담 이상한 사람 보듯 하여 무시할 웃음을 잔뜩 머금고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카이토도요! 진짜 싫다.]

[유지로라면 당연히 할 수 있죠. 누구 애인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라인 두 통에 이렇게 세상이 맑아 보일 수 있는 건가? 밝은 웃음 지으며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은 다시 학교 쪽으로 돌려버렸다. 아침부터 카페인 과다복용이라니! 유지로가 싫어할 거예요. 그리 생각한 탓이었다. 이 모범생 미나미 카이토가 카페인 없다고 강의 때 졸 리도 없었고.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앉은 그는 큰 탈 없이 세 시간을 맑은 정신으로 보냈다. 이를 동기들은 기이하게 여기기도 했고, 존경하기도 했으나 이는 단지 성실을 연기할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된담 다들 무슨 반응을 할까. 그럼에도 존경해 줄까, 뭔 그런 것까지 연기하냐며 질타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답은 알 수 없었다… 밝은 성격을 연기한다고 자신의 본질마저 밝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실을 연기한담 그 순간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걸까?

답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원초에 최근에 든 고민이고, 이런 것을 깊게 고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였으며 이런 데에 신경 쓰기엔 최근 자신은 너무 바빴으니까.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밝고 다정한 카이토로 남아있음 그걸로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마저도 끝까지 사랑해 주는 카이토로 남으면 되었다. 괜히 강의실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이래서 유지로가 보고 싶다는 거야. 유지로 옆에 있으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점심시간인가… 시간표를 지지리 망친 탓에 다음 강의까지 텅 비어있는 소위 우주공강을 생각하자 머리가 아찔해진다. 이 긴 시간 동안 뭐하지? 일단 점심을 대충 때우고…

[선배, 선약 없으시면 점심 같이 먹을까요?]

아니, 엄청 든든하고 맛있는 걸로 어쨌든 잔뜩 먹어야겠다. 아침 때마냥 생각을 갈아 끼운 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면 좋은 말만이 주르륵 적힌다.

[있어도 유지로가 그리 말하면 취소해야죠. 선약 없어요.]

[역시, 누구 남친인데 그래야 마땅하죠.]

잠시 든 우울감은 사라진 채였다. 아, 만나자마자 안아줄 거야.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진 지도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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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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