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마 유주 오즈, 연습해보아요
커미션 4000자 / 논컾 / 1차
“자, 오늘은 말 예쁘게 하기를 연습해보기로 해요.”
오즈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에게서 무슨 말이냐는 뜻의 욕설이 날아왔다. 무슨 개소리야?,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제발, 오늘은 귀에서 피가 나도록 험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뭐,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좀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날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그들은 솔직히, 아주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쌍둥이 누나인 오즈마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찔하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저와 함께 지내는 건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랑 지내면 어떻게 생각을 할 지. 특히 유주는 여기서만 지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의 주축이자 이 세계를 지은 이가 입이 험하면, 음, 저는 상관없지만.. 반복되는 생각에 고개를 짧게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보세요. 지금도 욕을 했죠? 우리 한 번 연습을 해봅시다. 예쁘게 말하는 연습. 나쁠 건 없잖아요.”
“그렇게 듣기 싫어?”
“좋다면 거짓말이겠죠?”
오즈마는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내며 턱을 쓸었다. 평소였다면, 그러니까 우리만 있었다면 오즈는 헛소리도 정성이세요 하고 말한 다음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옆에는 그녀가, 우리의 주축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본인도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였고,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제 누나, 오즈마는 정확하게 거기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능청스럽고 여유로우면서 당당한 모습은 분명 유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돌려서 욕을 하는 건 영 아니었다. 제게는 그런 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역시 걱정이 된다면..
“좋아. 하자.”
“네?”
“하자고. 예쁜 말 연습하기.”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던 유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를 볼 옆에 치켜 올리고 대답을 했다.
“단, 내기를 하는 거야. 먼저 나쁜 말을 쓰는 사람이 오늘 내 시중 들어주기. 어때?”
그것은 평소에 하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시중이라기보다는 돌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행동들이었지만.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 보면 본인도 본인의 말버릇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제게 타박을 하려던 오즈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눈을 크게 떴는지 이마에 약간 주름이 진 게 보일 정도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픈 거 아니야? 하고 묻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옆에 앉은 이를 바라보던 오즈마는 주먹을 쥔 손등을 앞으로 내보이고 팔꿈치를 굽혀 팔을 접은 다음, 팔을 아래로 살짝 내렸다가 들어 올리면서 ‘결심했어!’하고 말하는 것 같은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거만하게 턱을 들며 검지로 저를 척 하고 가리켰다.
“물론, 오즈 너도 참가다. 건방지게 착한 말 골라 쓰는 너도 가끔은 욕을 할 때가 있지. 넌 특별히 꼼꼼하게 볼 거니까 특별히 조심하도록 해. 비꼬는 말도 금지야.”
“아, 무섭네요. 지금이라도 관둘까요?”
“그래, 그런 것도 금지라고.”
오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부러 오즈마를 따라한 거였는데, 본인이 평소에 이렇게 말을 하는 지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어쨌거나 우리는 예쁜 말 연습하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입술을 꾸욱 다문 채 고개를 서로의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 분, 이 분, 십 분이 지났을 때쯤 오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경우를 생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정말로 입을 다물고만 있는 걸 보니 웃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이러면 게임 진행이 안 되잖아요. 서로 조용하게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긁적거리던 오즈는 양옆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입을 오래 다물고 있는 건 금지입니다. 그러면 게임이 되지를 않잖아요.”
제 말에 둘 다 뜨끔했는지, 동시에 아니라는 말을 외치고 또 다시 조용해진다. 아마도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즈는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할 지 궁금하기도 하고, 둘의 표정이, 조금 못된 말을 생각해보자면 봐줄만 했다.
오즈마는 여유를 가장하고 팔짱을 끼고 있지만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치면서 생각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유주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다시 멈췄다가를 반복하면서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었다. 귀엽기는 한데 아니라는 말 다음에 또 조용해지면 어떡해.
하는 수 없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거대한 거울을 조절하고 틀었다. 온통 검고 반짝거리는, 녹색만이 유일하게 살아서 흔들리는 우리의 세계와 다르게 거울 속 다른 세계는 형형색색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을 즐겼다. 그리고 이 안을 보면 꼭, 누구든 한 마디씩 욕을 하고는 하지. 저 빼고 말이다.
물론 폭력적이거나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장면을 억지로 보게 됐을 때 울컥하면서 쏟아져 나올 때가 있기는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당황하는데 옆에 있는, 아니, 지금은 제 앞에 있는 이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 정도 말은 귀가 간지럽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식이면 저 또한 욕을 할 때가 있으니 우리 셋에게 모두 공평한 방법이었다. 그렇죠? 안경 너머로 그런 눈빛을 보내자 유주와 오즈마 둘 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오즈는 그런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다가가 유주의 왼쪽에 오른쪽에 앉았다. 우리는 동시에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혹, 정말 간혹이지만 이런 걸 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하필 지금이 그런 세계가 나온 순간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입술을 달싹거리며 욕을 뱉었다.
“아, 씨발!”
“오우, 정말 끝내주네 이런 거까지 보여주고.”
“아, 저건 정말로 하는 짓이 짐승만도 못하네요.”
그리고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이것은 서로를 가늠하는 침묵이었다. 오즈마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고, 오즈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유주는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을 본 다음 인중이 길게 늘어나도록 입술에 힘을 주어 앙 다물었다.
오즈는 잠깐 천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검고 반짝거리는 천장 위에 녹색으로 내려오는 샹들리에가 가느다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둑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셋이 동시에 뱉어낸 나쁜 말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저는 턱에 힘을 주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우리 서로를 봐주기로 하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뱉어낸 말이니까요.”
“그, 그래. 그러자. 저건 너무 심했다, 그렇지, 오즈마? 오즈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다고 하면 따르는 수밖에 답이 없지 않겠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해도 아까 그건 정말 심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 저런 세계가 만들어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정말 인간도 짐승도 못 할, 비교 당한 짐승에게 미안할 정도의 이야기라서. 음. 그래도 나름 나쁜 말 쓰지 않기 내기를 하는 중인데 이건 너무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부터 먼저 조심해야 했다.
오즈가 생각에 잠긴 사이 거울 속 화면은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먼저 밝은 바다가 나왔다. 우리의 바다처럼 어둡지만 반짝이는 곳이 아니라, 파란 물결과 새하얀 해변이 저 멀리 펼쳐진 바다. 파도는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며 부서졌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해변을 걸어 다니거나, 부서지는 파도 속에 발목까지 담근 채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반짝거리는 광채가 없어도 모든 것이 빛이 나고 있었다. 우리는 넋을 놓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방금 전 본 것은 허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것을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처럼, 거울 속 세계는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가고 싶을 만큼 빛이 났다.
그리고 천천히 그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려 나오는 사람들과 바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괴물과 더 이상은 참혹해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장면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뱃속이 뒤틀렸다. 이건 잔인하고 징그러운 방금 전의 그것과 달랐다. 정말 불쾌한 어떤 부분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짜증이 나고 보면 속이 뒤틀리고.. 그걸 뭐라고 한다고 했더라. 유주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 걸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는 거야.”
아, 그건가. 불쾌한 골짜기인가, 뭔가 하는 거.
솔직히 오즈는 이 내기에 자신감이 잔뜩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유주와 오즈마에 비하면 전혀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울컥해서 욕을 하는 것도 이번 것까지 합해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대체, 쳐다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 현실과, 아, 현실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세계의 범죄와 가까운 것이었다. 지금 거울이 보여주는 장면이 그러했다. 흐음.. 하는 소리를 내던 오즈마는 슬그머니 유주의 눈을 손으로 가려주었고 평소였으면 아, 손 치워보라고 하고 말하면서 냅다 손목을 잡아 내렸을 그녀도 오히려 본인의 눈을 가려주고 있는 손을 더 가까이 가져다가 아예 눈가에 붙였다. 그리고 어깨가 귀에 붙도록 목을 움츠린 채 부르르 떨었다. 정말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는 뜻이었다.
유주의 눈을 가려준 오즈마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꼬는 것처럼 하는 말이 튀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제 시선을 의식했는지, 눈을 피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해서 오기를 부리는 건지, 그녀는 계속해서 거울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욕이 나온 것은 제 입술에서였다.
“하, 진짜 좆같네요. 그만 보죠.”
“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들음?”
유주는 갑자기 귀에 붙였던 어깨를 내리면서 오즈마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제게 향했다. 오즈마 또한 꽤나 놀란 표정이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유주의 눈을 가려주던 손과 반대되는 빈 손 끝으로 아랫입술을 살짝 가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고 써있는 얼굴들을 피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거울은 저절로 다른 세계의 모습을 끄고, 우리의 세계를 검고 반짝이게 비추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 있었는데, 져버린 건 둘째 치고, 두 사람은 놀란 반응을 짧게 보인 다음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자자, 이제 끝이지? 오즈.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
“와, 나 존나 말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아까 그거 개역겹더라.”
“맞아. 근데 나 물 마시고 싶으니까 아까 좆같다고 욕한 사람이 물 떠와야지~”
오즈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티를 팍팍 내는 두 사람은 키득거리고 난리가 났는데, 저는 할 말이 없었다. 거울 속의 그 꼴을 계속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유주에게, 이 세계의 중심에게 저런 불쾌한 골짜기.. 라고 하던가. 어쨌든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러니 얌전히 물을 떠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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