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티밀해단, 동료가 되는 길
커미션 7000자 / 논컾 드림
“이 섬에 정착을 하겠다는 거지?”
테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실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루피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불평 가득한 얼굴인데. 나미는 그의 볼을 쭉 잡아 늘리며 말을 해보라고 했지만, 그는 조용할 뿐이었다.
조로와 로빈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우솝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말이야, 여기 너무 위험해 보이지 않아? 나 어쩐지 배에서 내리면 안 되는 병이 생긴 것 같다..”
“난.. 나는.. 새로운 섬에 가보고 싶은데.. 많이 위험할까?”
쵸파의 말에 조용히만 다니면 문제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한 나미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안다. 아무래도 여기는 무서운 곳 같았다. 해적이 판을 치는 시대에 무섭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이곳 자야는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온갖 해적들이 있었고, 아예 여기에 눌러 앉은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놔둬. 하고 싶다는 대로 하게 놔둬야지.”
“조로. 남의 이야기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여기는 해적들이 가득한 섬이라고.”
“뭐, 다른 곳은 안 그랬어? 본인이 하겠다는데 뭔 말이 이렇게들 많아.”
하여간.. 하고 중얼거리면서 혀를 찬 나미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상디는 메리호 난간에 기대서 멍하니 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웅성웅성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렸다. 대부분은 욕설이었고, 싸움을 하느라 주먹을 쓰고, 무기를 쓰는 소리들이 잔뜩이었다.
“난 찬성 못하겠다. 이런 숙녀분을 거친 섬에 홀로 두고 떠나게 할 수는 없어.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렇게 되면 밤에 잠도 안 올 거다.”
“그럼 코고는 소리도 안 들리고 좋지, 뭐.”
“뭐라고 했냐, 이 마리모 녀석아.”
“뭐. 불만 있냐, 뱅글 눈썹.”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 환경에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두려움보다도 이렇게 친근하게 저를 대해주던 동료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더 안타깝고, 가슴이 쓰라렸다. 하지만 처음 다짐 그대로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는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럴 수 없어도 그래야만 한다. 굳은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 표정에서 읽혔는지, 로빈은 가만히 제 얼굴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잔잔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했다.
“그럼 일단 이 섬을 둘러보는 건 어때? 우리 선장도 그 의견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도 서로 의견이 갈라지니까 말이야. 나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데, 그래도 함께 지내온 사람을 처리해버리듯 두고 가고 싶지는 않네.”
테티는 로빈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얼핏 웃는 모습은 비슷했지만, 알 수 있었다. 나미나 쵸파, 다른 동료들에게 짓는 미소와는 다른 미소였다. 아주 미묘하게 달랐으나 제게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그 만큼 정이 들었다는 거겠지. 안타깝지만, 그리고 아쉽지만 그녀는 저를 아직 동료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어차피 이 배에서 내려야 할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식의 태도라고나 할까.
그것은 조로도 마찬가지였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친 그는 펄쩍 뛰어 메리호 아래로 내려갔다. 루피는 그 뒤를 따라갔고, 나미는 잠깐만 하는 말을 세 번 정도 외치다가 한숨을 쉬면서 함께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저는 이 섬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배 아래로 내려왔다. 상디는 시장에 가고, 쵸파는 의학서적을 찾아 나섰으며 우솝은 배에 남아 메리호를 지키기로 했다.
일단은 그렇게 정해졌으니 동료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저는 종종걸음으로 떠났다. 배 위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짐은 줄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줄여 놨다. 얼마 없는 옷가지를 가방에 놓고, 두 개 정도 남은 신발까지 주섬주섬 챙기고 나니 작은 배 위에 제가 머물렀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먼저 마을 입구부터 조사해보자. 여기는 다른 곳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다녔다. 으음. 어깨를 최대한 좁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살벌한 분위기가 풍겼지만, 이 정도는 사흘만 지내고 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거리를 따라 걸어가는데 욕설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 제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끼리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것도 사흘이면 익숙해질 것이다. 아니, 익숙해져야만 한다. 여기서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한숨이 나오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휴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뒤에서 제 어깨를 툭 건드렸다.
“으아..!”
“길 가운데서 그렇게 서 있으면 다른 해적들이랑 시비가 붙을 거야.”
로빈은 팔짱을 낀 채 제게 가까이 다가왔다. 제 어깨 위에 올라온 손이 꽃잎과 함께 파스스 사라졌다. 여전히 동료들에게 보내는 것과 미묘하게 다른 미소를 띄운 채였다. 그래도 테티는 반가움에 눈을 크게 뜨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무서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저는 동료들과 다르게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지금은 일단 아는 사람의 곁에서 머물면서 이 섬을 둘러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차차 적응해 나가야 할지라도 그건 최대한 다음 일로 미뤄두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다.
“뭐하고 있었어?”
“그냥.. 여기저기를 둘러보려고 하던 중..”
제 말은 중간에 뚝 끊어졌다. 갑자기 날아온 물건은 순식간에 제 눈앞까지 다가왔다. 피할 생각도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는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순간 주먹까지 꽉 쥔 상태였다. 눈을 떠보니 제 몸에서 우수수 돋아난 팔들이 날아오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마을 입구에 떨어져 있던 표지판이었다.
오호~ 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해적은 건들건들한 걸음걸이로 가까이 오다가 제 몸에 우수수 돋아난 팔과 로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내 하얗게 얼굴이 질려서 후다닥 저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나무판자가 앞을 막고 있어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은 공포에 질려버린 모습 그 자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몸에서 솟아난 팔이 사라지고 나무판자가 텅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지나가는 사람 중에 만만한 사람을 골라 시비를 걸려고 했던 것 같은데, 상대는 니코 로빈이었다. 현상금 액수로만 따지면 그녀에게 함부로 덤빌 사람은 없었다.
도망가던 해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말없이 제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시선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가자고 말했다. 원래는 혼자서 이 섬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너무 위험하겠지?
문득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던 루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일까. 뜬금없이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평소와 다르게 섬에 도착했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에는 입술을 쭉 내밀고 있는 바람에 나미에게 볼까지 잡히고 말았다는 게 신경이 쓰인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지금은 안전한 게 최고이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 저렇게 다짜고짜 시비 먼저 거는 해적이 있다는 것을, 동료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 잠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을 다 잃은 상태에서 그들에게 구조된 것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테티는 슬그머니 로빈의 옆에 가까이 붙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챈 그녀는 하하하 하고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내칠 생각은 없다는 뜻을 비추기 위해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저를 향해서 음, 동료들에게 지어주는 미소와 조금 더 비슷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속으로 그녀가 귀찮아 할까봐 걱정했던 저는 안심이 되어서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휴우..”
“아까 그런 게 날아오면 잘 피해야지,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 나는 날아오는 줄도 몰랐는걸.. 로빈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맞았을 거야. 고마워.”
“.....”
그녀가 배에서 내려서 섬 안으로 들어온 목적은 저를 보호하러 나온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게 맞기는 한데, 더 큰 목표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다음 섬은 하늘섬이라고 했던가. 그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인지, 있다면 어떻게 거기까지 가야 있는지, 정말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지, 하늘에 있다면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인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혹은 갈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하나 뿐인 것인지.. 등등을 알아보기 위해 나왔는데, 마을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저를 발견하고 도와준 것이었다.
만약 다치게 된다면, 우리 선장이 많이 슬퍼할 테니까 말이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제가 다치는 것과 루피가 화를 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방금 전 루피의 얼굴을 떠올린 것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퉁퉁 불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자꾸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걸 말을 해도 될까?
우리가 걸어가는 사이 많은 해적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닿았다. 저와 눈을 마주치는 이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저를 바라보면서 이를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다가 로빈의 얼굴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 버렸다. 그러는 이들이 절반은 넘었고, 그 중에서는 다가와 괜히 툭툭 건드려보다가 별 거 아니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사라지는 이들이 남은 인원 중 절반이었다.
그럼 남은 절반은 무엇을 했느냐. 정말로 싸움을 걸었다. 네가 진정한 해적이라면 나와 한 판 붙자고 앞길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로빈은 능숙했다. 그들을 눈앞에서 치워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피해서 가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래도 집요하게 따라오는 해적이 있으면 적당히 상대를 해주고 보냈다. 멀리 내던지기도 하고 바닥에 팽개치기도 하면서 하나씩 치워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움찔움찔 몸을 떨면서도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더 붙게 되었다. 저에게 아직 환한 미소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여기서 손을 놓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 약간 들었다. 사람들의 인상은 험악했고, 해적이 아닌 사람들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 한때 거친 바다를 누비던 사람들 같았다. 아니면 거기에 이미 물들어 버렸거나.
로빈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으면서 다니기도 하고, 귀를 돋아나게 해서 사람들의 말을 엿듣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보러 갈 때는 저를 등 뒤에 숨겨두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 발자국 물러나게 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로빈에게 시비를 걸겠다며 제 머리카락을 잡아채려는 걸 피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날 뻔 했다. 다행히 그것도 로빈이 잘 해치워줬지만..
그녀는 간혹 제가 있는 방향을 힐끔거렸지만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웃었다. 그러자 저와 시선이 마주친 이 또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지 않았고, 저는 그 미소가 점점 동료들을 향해 보내는 미소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런데 가방은 왜 가지고 나온 거야?”
“아, 그야 이제는 여기서 살 거니까.. 마땅한 집이 있으면 바로 가보려고 가져왔어. 얼마 되지 않는 짐이지만..”
로빈은 가만히 제 손에 들린 가방을 보다가 돌아섰다. 저는 뒤를 졸졸 따라가며 마침 까먹었던, 머물만한 집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제 행동을 힐끔거렸고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섬을 한 바퀴 돈 다음 메리호로 돌아갔다. 그런데 무언가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깨가 조금 아파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머리 위에서 갑자기 벼락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테티!”
“어어..?”
고개를 위로 들자 피가 범벅이 된 루피가 저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양손으로 입을 막고 두 걸음 물러서자 옆에 서 있던 나미가 너 때문에 애가 놀랐잖아! 하고 소리를 치며 루피의 뒤통수를 따악 때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너, 우리랑 같이 하늘섬에 가자!”
“루, 루피, 피가 왜 이렇게 많이 났어..”
“여기서는 너를 두고 갈 수 없어! 여긴 완전 꽝이야. 꿈도 없고, 사람들은 다 거칠어. 나쁜 해적들뿐이라고. 이런 곳에 널 두고 갈 수는 없어, 테티.”
“어.. 아?”
그는 아주 단호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정도의 단호함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워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을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피를 흘리고 있는 조로가 저를 보고 있다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왜 저렇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나? 입을 가렸던 손을 내리며 생각을 해보려고 했지만, 자꾸만 루피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서 눈동자만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저를 보던 나미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일단 올라와봐. 할 말이 있으니까. 가방은 왜 싸들고 갔어?”
“아.. 그게 여기서 살 집을..”
“너 여기에 두고 못 간다니까!”
“아, 소리 좀 지르지마, 루피. 나도 알겠으니까 목소리 좀 죽여. 귀가 아프니까 머리까지 아프잖아.”
“나미, 어디 아파? 많이 아파?”
“이게 다 너네 때문이잖아! 아, 후..”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로빈이 어느새 옮겨주는 제 가방을 받아들었다. 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단 메리호 위를 향해 올라갔다. 올라가서 난간 앞에 서고 보니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상디와 쵸파의 모습도 보였다. 뭘 사왔는지는 몰라도 바리바리 잔뜩 들고 온 상태였다.
쵸파는 단숨에 루피와 조로의 상태를 알아보고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줄사다리를 로빈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 돼, 쵸파. 기다려. 하고 말하면서 한 손으로 쵸파의 모자를 잡아 고정시킨 상디는 로빈이 사다리를 다 올라가서 배 위에 온전히 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쵸파를 놔주었다.
단숨에 줄사다리를 타고 달려온 그는 다친 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귀찮아하는 조로에게 소리를 지르며(이때 나미는 화를 내는 대신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붕대를 감아주고 치료를 해줬다. 조로의 치료를 빠르게 끝낸 쵸파가 루피에게 달려오자 그는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는 뜻을 표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기에 너네를 이렇게 만들 정도로 강한 해적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럼 빨리 떠나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말하며 배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호들갑을 떨던 우솝도, 붕대를 들고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하던 쵸파도, 아마도 음식이 들었을 상자를 번쩍번쩍 들어서 옮기던 상디도, 붕대가 불편해서 인상을 쓰고 있던 조로도, 머리가 아프다며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던 나미도, 아무렇게 내던져진 것처럼 떨어져 있던 가방을 한쪽 구석에 잘 놓아두던 로빈도 모두 루피를 돌아보았다.
시선은 당연히 그의 앞에 서 있는 제게로 몰렸다. 테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루피는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전에 들은 적 없던 말투로 제게 말했다.
“잘 들어. 여기는 꿈도 희망도 없어. 그래도 넌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해온 동료야. 아무데나 두고 갈 수는 없어. 하늘섬을 지나서 다음 섬이면 몰라도 여기는 안 돼.”
“하지만 나는..”
“하지만이라니!”
“루피, 조급해 하지 말고 말을 좀 들어봐.”
나미는 단번에 그의 입술이 쭈욱 늘어지도록 꽉 쥐어 잡고 저를 바라보았다. 제 말을 듣겠다는 뜻이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쩐지 지금까지 있었던 민폐스러운 일들이 떠오르면서 고개가 저절로 바닥을 향해 숙여졌다.
“하지만 나는..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민폐만 끼쳐왔어.”
“그런 말이 어디 있..”
“상디, 쉿.”
“.....”
“그리고 나는.. 너희처럼 강하지 않아. 정말로 약해서 걸림돌만 될 뿐이야.”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반박하려던 상디의 입술은 나미의 한 마디에 바로 다물렸고, 다른 동료들은, 아니, 이제 이 섬에서 내리면 그런 말을 쓸 수 없겠지. 다른 이들은 다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미가 쥔 주먹에서 입술만 길게 뺀 루피가 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화들짝 놀란 제가 어깨를 흠칫거리자, 본인의 손 밖으로 나온 입술이 징그럽다고 느껴진 나미도 으악! 하고 손을 놓았다.
길게 늘어졌다가 쭈욱 제자리로 돌아온 입술과 합쳐진 루피의 얼굴은 제법 화가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피가 멎은 것 같던 상처에서 삐죽 하고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쵸파가 다가가서 루피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이번에는 그도 막지 않았다. 대신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난 테티가 민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아..”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러자 우솝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게 어깨동무를 하며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당연하지. 넌 우리의 동료잖아? 민폐라니, 무슨 그런 말을 해.”
“우솝 말이 맞아! 나도 그런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루피, 가만히 있어야 피를 닦지!”
“아야야..”
당당하게 큰 소리를 내던 선장의 얼굴은 소독솜이 톡톡 상처를 문지르자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따가웠는지 인상을 쓰며 어깨를 삐죽거리고 있는 그를 보는데 로빈이 제 어깨를 토닥이고 지나갔고, 나미는 웃으며 제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나는 재료를 정리하도록 하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상디의 뒷모습도 바라보고.. 하지만 마음으로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쵸파의 말을 듣지 않고 운동을 하러 사라지는 조로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혀를 차고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착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네가 민폐였다는 말은 직접 하지 않겠지만, 아까 루피가 이 섬에 두고 가지 못한다고 말할 때도 그렇고, 모두가 저를 위로할 때도 늘 그는 빠져 있었다. 제가 불편한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저는 싸움도 못하고 피하기도 못해서, 방금 전 섬에서도 로빈에게 피해를 줬는 걸.
하지만 솔직히 같이 가자는 말을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이 섬은 무서운 것 투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로빈과 같이 다니는 저를 봤으니까, 다른 해적들은 그것을 핑계 삼아서 저를 괴롭히려고 들지도 모른다.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나는 아마도 금방 당하거나 죽고 말겠지. 두려웠다. 솔직하게 말하면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다들 나를..
테티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눈가를 빠르게 문질렀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참아야 했다.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할 정도로 느닷없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 섬이 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남지 않고 저 위로, 이들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떠날 것이다. 벅차면서도 이상하게 찜찜한 마음이, 아직 저를 불편해 하는 것 같은 조로에게 신경이 쓰여서 마음 놓고 그들의 제안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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