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량무현]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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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추억이 되기 전의 마지막 춤 (클래식)
1. 만남
형, 오늘 집 조심.
기상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난 박무현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화면에는 동생 박무진의 연락이 와 있었는데, 웬만한 일로는 연락을 잘 안 하는 애라 문자를 보낸 시간을 확인했다.
4시에 온 연락인 걸 보니 새벽기도를 올리러 간 모양이었다. 박무현은 까치집이 된 머리로 하품을 하며 핸드폰 자판에 손을 얹었다.
무진아~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가볍게 답장을 한 박무현은 일어나서 자신의 방 사면에 붙은 물건들을 확인했다. 달력 뒤, 시계 뒤, 옷 뒤, 그리고 책장 뒤. 뭐 하나 떨어진 것 없이 잘 붙어있었다.
어느 방에나 있는 물건이지만, 그 뒤에는 전부 부적이 숨겨져 있었다.
“음, 문제 없는데.”
액운도 막고, 잡귀도 막아주는데 사람은 못 막아준다던 부적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박무진은 이 부적들을 붙이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부적이 떨어질 테니 확인되면 바로 연락하라’고 당부를 했다.
부적도 멀쩡해~.
박무진한테 연락 한 통을 더 넣은 박무현이 달력을 봤다.
3월 1일. 박무진이 신내림을 받은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신내림도 10주년을 기념해야 하나 싶어 박무현은 선물을 찾았다.
10주년 기념한다고 뭐 보내지 말고 형 홍삼이나 사서 먹어.
“오, 신내림 받으면 이런 것도 보이나?”
안 봐도 뻔함. 쓸데없는 거 고민하기 대마왕ㅡㅡ
“오오. 다 보고 있나 봐. 부적이 아니라 CCTV를 달고 간 거 아냐?”
정확한 타이밍에 온 연락을 보며 박무현이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할 말만 하는 성격인 박무진에게서 그 이상 답장이 오는 일은 없었다.
신내림을 받고 집을 거대한 귀신 청정구역으로 만드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 박무진은, 분가를 한 박무현의 집까지 찾아왔다.
흘러가야 할 일은 순리대로 흐르게 둬야 하지만, 박무현처럼 신기가 오를 만큼 올랐는데 신내림을 거부했던 사람은 누가 걸러주면 좋다고 했다.
박무진이 손에 들고 온 부적 뭉치를 봤을 때, 그는 오늘 집 벽지가 부적으로 도배될 거란 불안감에 휩싸였다. 집이 자신의 명의가 아니라서 못도 함부로 못 친다고 따라다니며 말려댄 후에야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해졌다.
이사한 곳을 둘러본 박무진이 위아래집이 아이를 키우니 웬만한 잡귀는 접근도 못 할 거라고 흡족해하지 않았다면, 벽 하나는 주황색 종이와 빨간 글씨로 메워졌을 것이다.
박무진은 층간소음만 조심하면 되겠다고, 사람이 일으킬 수 있는 분쟁을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아이 키우는 집이 오히려 층간소음에 더 조심스러웠다. 윗집에서 아이가 밤늦게 뛰어다닌 날엔 직접 사과하러 오기도 했고, 아랫집에서는 고성방가를 질렀을 때 그의 집 앞에 사과 인사를 담은 쪽지와 케이크를 두고 가기도 했다.
박무현은 윗집과 아랫집을 불러 회의를 했다. 아이 버릇이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라면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질러도 무방하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커도 된다고, 마음껏 떼를 쓰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커야 한다고.
받은 케이크는 그때 자기 몫만 빼고 윗집과 아랫집에 나누어 보냈다.
부모들은 박무현이 치과의사란 걸 알게 된 뒤로 치과를 그쪽으로 옮겼다. 박무현은 자신의 실력이 마음에 안 들면 바꾸셔도 된다고 말했는데, 주기적으로 예약을 잡는 걸 보니 제 실력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박무현은 당분간 밥 굶는 일은 덜었다 싶어 소소하게 행복해졌다.
오늘도 위아래층에서는 아침 준비를 하는 부모의 바쁜 발소리가 들렸다. 삼일절은 공휴일이니까 유치원도 쉰다.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어디 현장체험이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아이도 없는 박무현은 공휴일에 할 일이 없었다. 오늘은 치과도 닫았다.
일어난 김에 커피나 마시면서 출근하지 않는 아침을 즐겨볼까 하며 문을 열었다.
“어.”
박무현이 문을 열자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는데, 남자가 너무 잘생겨서였다. 기묘한 신뢰지만 이 정도 얼굴이라면 도둑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미모면 모델로 세계 정도는 가볍게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무현은 남자의 전신을 훑었다. 키가 크고, 거대하단 이미지가 강한 체구를 지닌 남자는 물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발목 아래가 흐렸다. 바닥에 남자가 흘린 물이 떨어진 흔적도 없었다.
‘집 조심하라는 게 집안까지 조심하라는 건지 몰랐지.’
박무현은 남자가 귀신이란 사실에 당황했다가 얼굴을 보고 또 감탄했다. 잘생긴 남자는 물에 젖으면 몇 배는 잘생겨 보인다. 처연함이든 흐트러진 모습이든 뭐든 좋은 말은 다 붙여도 좋았다. 두상이 못생기면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못생겨 보이는 일도 있는데 이 남자는 그런 걱정도 없어 보였다.
완벽한 하관까지 가져서 치과 환자로 왔다면 본을 떠서 개인 소장을 하고 싶을 만큼 완벽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걸 안 남자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Å▲◎□”
귀가 아니라 뇌 어딘가를 거슬리게 하는 끼기긱 소리가 들렸다.
너무 산 사람같이 생겨서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귀신이었다.
“잠깐, 잠깐. 말하지 말아 봐요. 그쪽이 내는 소리 저는 못 알아들어요.”
귀신이 내는 소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 사람에게 빙의되거나 영향을 끼칠 만큼 한이 크게 맺혔거나 힘이 강한 녀석이면 소통이 되는데, 그런 놈들은 박무현의 집에 못 들어왔다.
저 귀신한테 박무현이 말하는 게 들리는 지도 미지수였다. 듣는 귀신도 있고 못 듣는 귀신도 있었다. 귀신 눈앞에 대고 손으로 연신 X자를 그리니 말하는 걸 멈췄다.
박무현은 고민하다가 남자에게 말하고 싶은 걸 손으로 적으라고 했다.
‘신해량’
거대한 손을 가진 귀신이 자기 이름을 적었다.
“음, 신해량 씨?”
박무현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던 신해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도 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박무현의 입술을 뚫어질 듯이 바라봤다.
“저는 박무현입니다.”
입 모양을 따라 읽은 신해량이 그를 멀뚱히 쳐다봤다. 계속 쳐다만 봐서 오히려 박무현이 손님이 된 기분이 들었다. 몇 분간의 말 없는 대치가 이어지고, 끝내 박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 살아있는데 왜 여기로 왔습니까?”
2. 생령
심령 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유체이탈 얘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잠을 자다가 자신의 몸이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어서 보니 몸은 아래에 있고, 영혼이 빠져나왔다는 이야기. 또는 사고로 죽어 가는데 고통이 사라지더니 자기 몸이 제 3자의 시선으로 보였다는 이야기 같은 걸.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다시 몸으로 돌아갔다는 게 이야기의 끝인데, 그게 다 사람이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박무현은 이렇게 살아있는데 빠져나온 영혼을 ‘생령’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영혼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영혼이 빠져나온 거라면 빠르게 육체로 돌아간다. 하지만 신해량처럼 자기 의지로 멀리 떠나올 수 있는 상태인 생령도 있다.
본체가 혼수상태일 때.
영혼은 자기가 살아있단 건 알아서 영혼 상태로 돌아다녀도 병원 근처를 돌아다닌다. 보통은 그렇단 소리다.
가끔 신해량처럼 영혼 상태랍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는 영혼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귀신 보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무시한다. 괜히 도와줬다가 떨쳐내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는 것도 골치 아프고, 착한 마음으로 도와줬다가 나쁘게 끝나는 일도 종종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영혼이랑 접촉해서 좋을 게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귀신을 봤던 박무현은 숱하게 귀신들에게 속았고,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에게 더 많이 시달렸다. 좋은 일이 아예 없었다곤 못 하지만, 옛날에 있던 사고를 계기로 더 이상 죽은 사람에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신해량이 집까지 찾아오지 않았으면 평생 그러려고 했다.
“그쪽이 살아있다는 건 이해한 거죠?”
자신의 상태에 아무런 자각이 없는 신해량에게 박무현은 그의 상태를 알려줬다. 신해량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해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본체를 찾으셔야 하거든요? 지금 살아있더라도 영혼이 육신을 멀리 떠나있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시야에 육신이 없으면 기억력 감퇴가 빠르게 찾아옵니다. 아직은 영혼색이 진하고 형태도 뚜렷하신 걸 보니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신 거 맞죠?”
신해량이 눈을 찌푸리다가 한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있던 곳은 기억 안 나시는 거고요?”
[예.]
“음, 역시 빨리 본체를 찾아야겠네요. 더 늦어지면 본인 이름도 기억 안 날 겁니다. 그래도 이 동네가 병원이 적어서 다행이네요.”
박무현은 근처에 있는 큰 병원들 리스트를 뽑아봤다. 그가 지내는 곳이 여름철 성수기에나 사람이 많아지는 지방 한적한 동네라서 큰 병원이라고 꼽을만한 곳도 몇 곳 없었다.
박무현은 기다리는 동안 여기 앉으라고 의자를 빼줬다.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신해량의 몸이 의자를 쑥 통과했다.
“아, 맞다. 통과하지.”
박무현도 귀신한테 신경을 안 쓰고 산 시간이 흘러서 귀신이 물체를 통과한단 걸 까먹고 있었다.
한 사람만 세워두기는 멋쩍어서 결국 박무현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설명만 잠깐 하면 되니까 그 정도는 일어나있어도 됐다.
“일단 첫 번째 병원부터 확인해볼까요?”
박무현이 첫 번째 병원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신해량이 어쩌라는 거냐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여기가 응급실. 여기가 입원실. 이 중에 외관이 익숙한 곳이 있습니까?”
박무현이 핸드폰을 내미니 신해량이 쳐다보는 시늉만 하다가 박무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글씨를 썼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 화면도 안 보여요?”
하긴 귀신들이 핸드폰까지 봤다간 온갖 영상 따라다니면서 보느라 남의 몸에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들 테다.
“이것 참, 인쇄하러 가야겠네요.”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자니 벌써 막막해졌다. 그림 실력에 자신 있다곤 할 수 없고 일일이 그리자니 시간 낭비였다.
“저희 집에는 프린터기 없거든요? 프린터기 빌리자니 윗집 아랫집은 다 나간 거 같고요. 그래서 치과로 가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치과요?]
“아, 제 일터입니다. 제가 원장이니까 횡령한다고 생각하진 마시고요.”
박무현이 지갑을 들고 와 명함을 꺼냈다. 명함 뒤에 있던 부적까지 같이 딸려 나와서 잠깐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신해량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박무현치과의원’이라고 적힌 명함을 본 신해량이 그걸 집으려고 했다. 이번에도 손이 허망하게 명함을 뚫고 지나갔다.
“……하하. 빨리 원래 몸 찾으러 가요.”
박무현치과의원은 그의 집에서 걸어서 7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었다.
가는 동안 아무도 신해량의 얼굴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다. 그가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무현은 내심 신해량이 자신의 옆에 있는 게 꿈일 거라고 믿었던 망상을 날려버렸다.
동물은 영물이라더니 확실히 귀신을 봤다. 평소에 밥 챙겨주는 길거리 고양이가 신해량을 보고 하악질을 했다. 산책가던 강아지도 박무현이 아니라 신해량 쪽을 보고 짖었다. 남들이 보기엔 동물들이 그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라서 박무현은 울적한 기분으로 치과 문을 열었다.
내부는 난방을 켜지 않아 냉기가 돌았다. 박무현은 물에 젖은 신해량을 쳐다 봤다. 난방을 트니 박무현의 손에 신해량이 또 글자를 썼다.
[저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추워서 그래요.”
[따뜻하게 입으셨잖습니까.]
“혹시 남이 호의 베풀면 의심부터 하는 성격이에요?”
박무현의 질문에 신해량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해량 씨도 어지간히 피곤한 삶을 살았나 보네요. 그래도 대접받는 기분 좋지 않아요? 살아있을 때 기분도 나고요.”
박무현은 데워지는 방에 만족하며 컴퓨터를 켰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모닝 커피를 안 마셨네~.”
박무현은 화면이 켜지길 기다리는 동안 탕비실에서 믹스 커피 한잔을 타서 마셨다. 신해량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있었는데 화면이 안 보여서인지 사고 치려는 고양이처럼 모니터를 툭툭 때렸다.
박무현은 화면이 켜지자마자 저장해 둔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내용물을 인쇄했다. 갓 인쇄된 종이를 내밀었더니 그제야 신해량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아는 곳이에요?”
[아니오.]
첫 병원부터 정답을 찾아낸 건가 했던 박무현은 살짝 맥이 풀렸다.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무현은 프린터기에서 종이가 나오는 족족 신해량에게 보여줬다. 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병원 구조도나 공개된 사진, 원무과 사진이나 입원실까지 전부 인쇄해서 보여줬지만 다 꽝이었다. 아니라고 명쾌하게 답해줬으면 좋았겠지만, 잘 모르겠단 모호한 답변을 해주는 바람에 이 중에 신해량의 몸이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럼 병원들을 직접 가 봐야겠네요. 휴일이라 다행이에요. 우리 첼로니 기름칠도 해줄 때 됐으니~.”
[첼로니요?]
“차 이름이에요. 여긴 버스 잘 안 다녀서 차가 필수거든요.”
본가에 살았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됐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는 차 구매가 필수가 됐다. 배차 간격이 30분이 넘어가고, 차를 타면 15분 거리를 버스를 타면 빙 돌아가서 더 걸리는 때도 많았다.
면허를 따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따고 나서도 조수석에 사람 태우지 않으면 도로 주행은 할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제는 조수석에 사람이 없어도 곧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량 씨는 원래 여기 살았어요?”
[아니요.]
“음, 그럼 병원 이전됐을 가능성도 열어는 놔야겠네요.”
사고가 난 뒤에 신상 파악이 되면, 보호자랑 연락 후에 병원 이전이 되는 일도 있다. 신해량이 입은 건 바다에 놀러 온 서퍼들이 입는 스윔슈트였다. 그러니 물가에서 놀다가 무슨 일이 발생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 말인즉슨, 그가 병원에 입원한 지도 꽤 지났단 소리다.
“그럼 차 타고 이동해야 하니까 여기 들어오세요.”
[예?]
박무현이 유니트 체어 올려진 주황색 고래 인형, 노을이를 들어 올렸다.
“들어가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요. 안전벨트 안 한 사람이 제 옆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미치겠거든요? 영혼이든 뭐든! 차에서 부피 차지하는 건 안전벨트를 매야 합니다. 노을이가 커서 벨트 매기도 쉬우니 다행인 줄 아세요.”
[……어떻게 들어가야 합니까?]
“눈을 통해서 들어가세요. 여기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박무현이 노을이의 반짝반짝한 구슬 눈을 가리켰다.
인형 중에 상이 비치는 애들은 귀신 들어가기 쉽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신해량이 인형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내 영혼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료 내내 남한테 안겨서 구겨지느라 고생이 많았던 주황색 고래 인형은 신해량을 흡수한 뒤로 더 동그래진 듯 보였다. 박무현은 노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지느러미가 움직였다. 하찮고, 말랑하고, 폭신한 지느러미가 박무현의 손 위에서 움직였다. 솔직히 글자를 알아보는 건 힘들었지만, 귀여워서 내버려 뒀다.
[귀신 보시는데 인형에 뭐가 빙의될까 봐 무서운 적 없으셨습니까?]
“치과라서 별로 걱정 안 했어요. 그리고 치과에도 부적은 있거든요.”
[부적이요?]
“동생이 박수무당이에요. 원래는 잡귀나 웬만한 악귀는 근처로도 못 오게 하는데 해량 씨는 생령이라서 뚫고 들어온 거 같네요.”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보다 치과에서 내지르는 사람 비명이 더 무서운 법이다. 박무현은 60cm에 달하는 고래 인형을 품에 안고 거리로 나갔다. 클 만큼 큰 성인 남성이 인형을 들고 지나가니 요상한 시선이 따라 붙었다.
“오늘 애들 마주칠 일은 없을 테니 다행이네요. 치과 오면 애들이 진료 끝나고 꼭 한 번씩 노을이 달라고 말하거든요.”
집 근처에 둔 차에 타고 난 뒤로 박무현은 혼자 조잘댔다.
“우리 첼로니, 이번에도 잘 부탁해.”
시동을 건 박무현이 엑셀을 밟았다. 오랜만에 운전해서 시속 40으로 밟고 있는 그의 옆에서 노을이 인형이 답답하단 듯 움찔거렸다.
노을이에 빙의된 신해량은 조수석 안전벨트에 묶인 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화를 시도하려는 듯했지만 지느러미랑 꼬리먼 연신 휘적거리는 모습으로 보였다.
“속도 느리죠? 미안해요. 안전운전 주의라서요.”
박무현은 벨트에 어정쩡하게 끼인 인형한테 사과했다. 속도를 올리라고 하는 건 포기한 건지, 거대한 고래인형의 머리가 창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가 달리는 길을 따라 바다가 보였다. 고래 인형 머리가 그들이 달리는 방향 반대로 돌아갔다.
박무현은 바다를 보는 일이 신해량이 기억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더 천천히 움직였다. 운전하다 보니 박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동생이었다. 박무현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 무진아~.”
[형, 목소리가 왜 울려? 운전 중이야?]
“어. 응급실 가려고.”
[응급실?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어? 아니아니. 집에 생령이 들어왔는데 본체 찾아줘야 할 것 같아서.”
[귀신이 들어왔어?]
“왜 네가 놀라? 아침에 집 조심하라고 했잖아?”
[귀신 들어오는진 몰랐지! 형, 가서 쫓아내 줄게. 어디 병원이야?]
“아냐. 착한 귀신이야. 괜찮아.”
[귀신한테 착하고 말고가 어딨어! 그것들 수틀리면 해코지부터 하는데! 형도 귀신 때문에 한참 고생했으면서 무슨 좋은 귀신 나쁜 귀신을 나누고 앉아있어? 당장 쫓아내!]
“……무진아. 나 옆에 해량 씨 있어서. 나중에 통화할까?”
[해량? 그 생령 이름이야? 그 자식 성까지 말해!]
박무현이 어색하게 미소만 짓기에 신해량이 직접 대답했다.
[신해량입니다.]
박무현은 갑작스레 들린 끼기긱 소리에 귀가 아팠다. 그 기괴한 쇠 긁는 소리를 들은 박무진은 사람이 말한 걸 듣기라도 한 듯이 진노했다.
“신해량이다, 이거지! 너! 형한테 들러붙어서 뭐 하기만 해봐! 생령이고 뭐고 제령하러 갈 거니까!”
“무진아, 형 운전 집중해야 돼서. 끊을게.”
“형!”
전화를 끊은 박무현이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핸들에 머리라도 대고 힘든 티를 내고 싶은데, 신호등 신호도 잘 안 걸리는 날이라 계속 엑셀을 밟아야 했다.
“제 동생이 말은 저렇게 해도 진짜로 쫓아내진 않을 거예요. 아, 해량 씨 지금 말 못 하죠? 거의 다 오긴 했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박무현의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박무현이 주차하자마자 신해량이 인형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많네.”
박무현은 귀신들을 보고 혀를 찼다.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끄고 차에서 이동형 침대를 빼내고 있었다. 이송되는 환자 옆으로 귀신들이 여럿 모였다. 생령도 있었고, 지박령도 있었다. 사람한테 매달려가는 귀신도 있고,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문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영혼도 보였다.
“아, 저기는 보지 맙시다.”
박무현이 신해량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그가 바라본 곳은 장례식장이었다. 온갖 관계에 얽힌 영혼들이 있는 곳이라 생령인 신해량이 근처로 가면 괜히 휘말릴 수 있었다.
장례식장을 바라보는 박무현은 착잡한 미소를 지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귀신도 있었고, 죽어서도 남을 걱정하는 귀신도 있었다. 원한이 있는지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에게 매달려서 해코지를 하려는 귀신도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바로 이승과 단절이 되는 건 아니라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신해량은 얼어붙은 박무현의 앞을 서성였다.
[저보단 박무현 씨를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저야 부적이 있으니까요. 저쪽에서 절 봐도 뭘 어쩌지 못해요.”
당장 박무현을 흘끔 보면서도 다가오지 못하는 귀신이 수십이었다.
“신해량 씨, 생일이 어떻게 되죠?”
신해량의 생년월일까지 알아낸 박무현이 혀를 내둘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신해량의 나이를 들으니 역시 죽기엔 아깝다는 감상이 들었다.
죽음에 아쉽지 않은 나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젊을수록 죽음에 아쉬움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해량을 반드시 원래 몸으로 돌려놓겠단 의지가 커진 박무현이 조급한 발걸음으로 원무과로 갔다. 원무과에서 신해량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한 박무현은 ‘그런 환자는 없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역시 처음은 허탕이네요! 다음 병원으로 바로 가죠! 안 그래도 운전 실력 다시 감 올려야 했는데 잘 됐어요!”
박무현은 다시 신해량을 노을이 몸으로 빙의시켰다. 박무현은 차를 끌고신해량과 함께 차로 이동했다.
그렇게 간 두 번째 병원도 허탕이었다.
병원을 가는 동안 박무현의 핸드폰에는 불이라도 난 듯이 전화가 왔다. 정확히 그가 운전석에 착석하는 순간에만 박무진한테서 연락이 오는데 박무현은 그걸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꼬박꼬박 받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해량도 4번째 연락 때에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우애가 남다른 형제군요.]
“하하. 동생이 유난이다 싶죠? 제가 운전대만 안 잡았어도 애가 이러진 않았을 건데. 이번엔 해량 씨도 있어서 그런가, 더 난리네요.”
[사고가 났다던 게 교통사고였습니까?]
“네.”
박무현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가는 동안 얘기나 들으실래요?”
4번째 병원에서도 허탕을 친 박무현은 약간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을이 상태라서 대답도 못 하는 신해량을 두고 박무현은 혼자서 쇼를 해야 하는 제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멋쩍게 입을 열었다.
3. 귀신 보는 아이
박무현의 친가는 신줄이 내려와 앉은 집이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숨을 거둔 분이 집안에서 신을 모시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람 다음으로 신을 모실 사람으로 꼽혔다.
그의 아버지는 신내림을 거부하기 위해 타 종교를 믿었다. 그리고 집안과 연을 끊으면서 굴레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가정을 꾸리면서 질긴 핏줄이 끊기지 않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박무현을 임신한 뒤,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단다.
“이번에 무 돌림자 써야 하는 거 알지? 지금 네 아내가 품고 있는 그 애 하나면 된다신다. 무(巫)자 넣으면 알아서 찾아가신다니 넣어라.”
전화를 받은 그의 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에 없을 무(無)를 넣었다. 살면서 귀신이든 뭐든 어두운 건 보지도 말라고 검을 현(玄)도 넣었다.
이름을 짓자마자 공연히 신의 화를 사지 말고 어서 이름을 바꾸라고 고모라는 사람한테서 계속 연락이 왔다.
버티면 될 줄 알았다. 살아보니 버티면 이기는 일들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박무현이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아이를 지켜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태어난 아이의 눈이 남들과 다르단 걸 알았다. 귀신을 보는 아이의 오른쪽 눈은 옅은 푸른색을 띠었다.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는 부모와 떨어지는 걸 싫어했다. 부모와 떨어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걸 아는 아이는 부모가 항상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의 부모도 아이를 두고 다니는 걸 불안해했다.
아이를 두고 잠깐 눈을 떼면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정리해둔 물건이 어지럽혀져 있다든지, 아이 손에 위험한 물건이 들려있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부모와 있어도 허공을 보고 울거나 웃는 아이는 꺼림칙한 존재로 여겨질 법도 했으나, 그의 부모는 강한 사람이었다. 일반인인 어머니는 박무현을 잘 보호했고, 성당까지 가서 세례를 받는 일에도 성공했다.
성당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마리아상 앞에 놓인 촛불이 꺼지는 경험은 그녀가 겪은 일 중에 가장 신비한 경험 중 하나로 꼽혔다.
박무현은 무사히 세례를 받았다. 그 이후로 귀신들이 직접적으로 그를 건드리는 일은 줄었다. 그러나 귀신이 건드리지 않게 됐을 뿐, 아이는 여전히 귀신을 봤다.
갓난아이 시절에 당한 괴롭힘을 잊어버린 아이는 오만 것에 다정했다.
그 다정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박무현이 뜬금없는 일을 저지르면 아버지는 무엇이 보이는지를 물어봤다. 하루는 박무현이 자신의 이불을 끌어와 허공에 내밀고 있었다.
“할부지가 춥대요.”
아이의 손에서 이불을 거두어 간 박무현의 아버지는 제자리에 돌려놨다.
“무현아, 잘 들어라. 산 사람은 산 사람이랑만 놀아야 해.”
박무현의 아버지는 그의 어깨를 잡고 당부를 했다. 하지만 그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구분이 안 되는데요.”
유치가 빠질 나이, 도깨비들의 장난으로 문에 머리를 박아 앞니가 빠진 박무현은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다리, 다리를 보면 된단다. 망령들은 땅에 다리가 붙어있지 않아.”
“아니에요. 꼭 붙어있는 애들도 있어요.”
아버지보다 신기가 강했던 박무현은 귀신의 모든 모습을 봤다.
박무현이 아버지에게 혼날 때도 귀신들은 그 곁에서 아버지를 따라 했다.
혼이 나던 어린 박무현도 울다가 귀신들의 모습을 보곤 까르르 웃었다.
“애들이 아빠 행동을 따라하고 있어요. 아빠 보고 바보래요.”
“듣지 마라. 보지도 말고.”
박무현은 아버지가 자신이 귀신과 엮이는 걸 못마땅해한단 걸 알았다.
들리는 걸 들린다고 하면 혼나고, 보이는 걸 본다고 하면 혼이 났으니까. 그래서 박무현은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주말마다 박무현의 신기를 누르겠다고 그의 가족들은 성당, 절, 교회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신기는 그대로였다. 나중에는 먼저 박무현이 괜찮은 척을 했다. 그의 부모님도 어느 순간에는 그가 정말로 괜찮아진 줄 알고 넘어갔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의 핸드폰에는 친가 쪽의 연락이 왔다.
“무현이는 괜찮으니까 괜히 잘 사는 집 들쑤시지 말라고!”
박무현이 초등학교 저학년이 됐을 무렵, 그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박무진. 그 아이의 이름자에도 무(巫)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제법 의젓해진 박무현을 믿고 종종 동생을 맡겼다. 박무현도 제 동생을 돌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은 박무현에게 동생을 잠시 맡기고 밖으로 갔다. 고모와 잠깐 식사를 하고 올 거니 박무현에게는 얌전히 있으라고 했다.
박무현은 그들을 기다리며 동생을 돌봤다. 박무현은 동생 앞에 딸랑이를 흔들어줬다. 박무현의 옆에서 귀신들도 같이 손을 흔들었는데, 박무진은 박무현만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무진아아아, 너는 얘네들 안 보여?”
“어아.”
“으응. 형아만 이거 보이나 봐.”
내심 동생이 자신과 같은 체질로 태어나 외로움을 덜어주길 원했던 어린 박무현은 새삼 홀로된 기분을 느꼈다.
“그래. 무진이는 평범하게 살아. 친구들이랑 떡볶이도 먹고.”
친구들이랑 같이 뭘 먹으러 가거나 놀러 간 적이 적었던 박무현은 차라리 박무진은 아예 이런 삶을 안 살았기를 바랐다.
예전에 친구 생일파티에 간 박무현은 계속 허공을 보고 대화하는 바람에 이상한 애로 낙인이 찍혔다. 그 뒤로는 누구도 그와 놀려고 하지 않았다.
박무현도 일부러 그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반 친구들이 떡볶이를 먹으러 다녔다. 박무현은 자신의 동생이 자라면 같이 떡볶이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박무진이 자라서 자신의 친구들과 노느라 자신과 떡볶이를 먹어준다면 가능한 일이다.
“우, 으에엥!”
“어어, 무진아. 형이 미안해. 아팠어?”
박무현이 딸랑이를 흔들다가 실수로 박무진의 손에 떨어뜨렸다. 얌전했던 아이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이내 울음이 터져서는 집이 떠나가라 목청을 높였다. 손가락에 호오 입바람도 불어주고, 아이를 안고서 달래보기도 했다. 아이는 뭐가 불만인지 계속 울었다. 기저귀도 슬쩍 봤지만 말라 있었다.
“어, 어어! 그래! 젖병! 배고프구나!”
박무현은 부모가 소독해놓은 소독기에서 젖병을 꺼내려다가 키가 닿지 않아 젖병이 든 칸을 모두 엎었다.
“어, 무진이 주려면 소독해서 따뜻한 물에 삶아야 하는데.”
아직 불을 켜는 법을 배운 적이 없던 박무현은 가스레인지 켜는 법을 귀신한테서 배웠다. 냄비에 물을 붓고, 밑에 있는 레버를 돌리니 불이 나왔다.
“와! 진짜 이렇게 하니까 되네!”
박무현은 꽤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집으로 돌아온 부모님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엄마! 무진이 울어요. 배고픈가 봐요.”
“무현아, 누가 너한테 가스레인지 켜는 법 알려줬어?”
박무현은 순진했다. 부모님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이 꼴을 보고도 애가 신기 누르고 잘 지내고 있단 소리가 나오니?”
박무현은 고모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옆에는 박무현이 봐도 신성한 존재들이 그 사람을 지키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애는 잘 키웠구나.”
박무현이 공손히 인사하자 아이라이너를 죽 올려 그린 여인이 눈을 내리깔았다. 박무현이 고모를 빤히 바라봤는데 눈가가 휙 접혔다.
“나 보고 기도 안 죽는구나. 확실히 훌륭한 재목이야. 이런 앤 평범하게 못 키운다. 내가 데려가마.”
“안 됩니다!”
“그럼 계속 이 꼴로 둘까? 얘가 신내림 거부하면 너네까지 다 휘말리는데 이걸 그대로 두고 보라고? 그리고 너희만 다치는 줄 알아? 저 말도 못 하는 갓난쟁이까지 싹 다 화를 입는다고!”
“무진이가 다쳐요?”
“박무현, 조용히 해.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말고.”
어린 박무현은 너무 무서웠다. 처음 본 고모는 화목했던 집안에 풍파를 몰고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본 박무현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말도 못 하는 어린 동생이 우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박무현이 끓인 물은 가스레인지 상판 위에서 바글바글 끓었다.
고성이 계속되고, 죽은 망령들은 싸우는 어른들의 손가락질을 따라 하고, 동생이 계속 울었다. 귀가 아팠다. 마음도 아팠다.
박무현은 자기만 따라가면 다 끝날 거 같았다. 그래서 쉽게 결정했다.
“제가 갈 테니까 누가 가서 무진이 좀 달래주세요.”
박무현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돌본 값을, 남들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걸 외면해온 값을, 그들의 부모는 톡톡히 치렀다.
박무현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고모는 그를 집에서 끌고 나왔다.
“애 짐은 필요 없다. 속세 잊을 때쯤엔 맞는 것도 없을 거야.”
“무현아! 신내림은 안 돼! 그런 거 함부로 받는 거 아니다! 아빠랑 엄마가 꼭 방법 찾아서 데리러 갈 거니까 절대로 받지 마!”
기이한 일이었다. 그의 부모는 분명 박무현을 쫓아오는데 무슨 이상한 힘 같은 게 작용하듯, 계속 넘어지고, 넘어졌다.
귀신들은 아무런 고난 없이 박무현을 따라왔다. 그들은 그에게 이제는 가족을 더이상 볼 수 없을 거라며 계속 그의 마음을 들쑤셨다.
“고모, 저 무진이 못 봐요?”
“……나중엔 볼 수 있다.”
“진짜요? 얼마나 나중에요? 일주일 지나면 볼 수 있어요?”
애가 귀신을 본단 걸 들킬까 봐 수련회도 다니지 않아서 부모랑 하루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박무현에게 일주일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더 나중에 볼 수 있어.”
“저 주말에 교회 가야 해요.”
“이제 안 가도 돼.”
“다음주에는 절도 가요.”
“거기도 안 가도 돼.”
“그 다음주에는 성당도 가는데요?”
“다 안 가도 돼. 너는 고모 집에 있을 거다.”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안녕도 못 했는데요?”
“원래 이별이란 게 제대로 안녕을 못 하고 떠나는 일도 많단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고모란 사람은 더 다정해졌다.
“쯧, 이런 어린 것한테 뭐 그리 바라는 게 많으시다고.”
박무현은 달리는 차 풍경에서 여러 귀신을 봤다. 하나같이 박무현에게 손 인사를 했다. 박무현도 손 인사를 했다.
박무현이 고모의 집에 가고 난 뒤, 그는 모든 걸 전수 받았다.
박무현의 집을 대신해 신을 받았던 고모는 이제 박무현에게 신을 넘겨줄 준비를 해야한다고 했다. 어린 박무현은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숨어서 몰래 울었다.
고모는 그때마다 울고 있는 박무현을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모질기라도 했으면 미워했으련만, 고모는 항상 박무현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힘들진 않을 거다. 점사를 봐야 할 일도 없고, 남들처럼 거하게 굿판을 벌여야 할 일도 없을 거야. 기도만 매일 몇 번씩 하고 가끔 정기 좋은 산에 가서 바람도 쐬고 하면 돼. 너희 아빠가 거부해서 화가 나셨는데, 고모가 잘 달래놨어. 가서도 우리 무현이 잘 봐 주실 거야.”
박무현의 귀에는 고모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와 함께하며 그를 놀리고 괴롭히던 귀신들은 그가 있는 사당에 오지 못했다. 부모님이 부재 중일 때라도 함께 있던 귀신까지 없어지니 박무현은 정말로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본 고모가 매일 같은 말로 달래는 말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엄마 보고 싶어요. 아빠랑 무진이도 보고 싶어요. 고모 싫어요.”
“신내림만 받자, 응? 빨리 받으면 무현이도 빨리 보러 갈 수 있어.”
“하지만 아빠가 방법 찾을 테니까 신내림 받지 말라고 했어요.”
“그럼 고모랑 더 있어야지.”
“일주일 지났잖아요. 저 집에 갈래요. 아니면 보고 다시 올래요.”
“지금 너 여기 떠나면 정말 큰일 난다. 고모도 무현이 밖에 가서 가족들보고 오게 하고픈데 못 보내는 거야.”
그의 고모는 언제나 완강했다. 박무현을 최선을 다해 돌봤지만, 밖으로 나가는 일만큼은 도저히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린 박무현은 신을 받지 않은 채로 신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집에서는 7시 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던 박무현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신방을 닦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했다. 밥을 하고, 몸을 씻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법을 배웠고, 귀신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박무현이 고모의 보살핌을 받은 기간이 퍽 길어졌다.
해가 지나고, 박무현이 성장기가 찾아왔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이랑 어울려야 한단다.”
박무현은 그의 아버지와 고모에게 수없이 들은 말뜻을 이해하게 됐다.
귀신을 다루는 사람과 삶을 살아보니 자신이 얼마나 세상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내는 곳이 신을 모시는 곳이라 흔한 잡귀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의 고모는 어떤 귀신이 오든 죽은 자는 죽은 자로 대했다.
“있잖아요, 고모. 어울리고 싶은 영혼이 있으면 어떡해요? 제가 너무너무 좋아서 꼭 엮이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생령이라면 지금 상태에서도 도와줘도 된단다.”
“생령이요?”
“살아있는데 잠시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야. 길을 잃은 걸 찾아주는 일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기억까지 완전히 잃은 녀석들은 돕지 마. 생령도 이지를 잃은 영혼은 악령이나 지박령이 될 수 있지. 그때부턴 신기가 약한 사람이 엮이면 상당히 곤혹스러워지지.”
“제가 신내림을 받은 뒤에는 괜찮아요?”
“그래. 그때부턴 다 너의 선택이지.”
박무현은 내심 생령이란 게 길을 잃어 그들이 사는 곳에 오길 바랐다. 그 핑계로 밖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결계가 쳐진 곳에 귀신들이 함부로 올 리 없었다.
이따금 고모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며 시내로 내려가곤 했다. 박무현은 친구가 없던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고모는 어떻게 친구가 있어요?”
“왜, 귀신이 보이면 산 사람이랑은 못 놀 줄 알았니?”
“네.”
가족이 유일한 친구였던 박무현에게 고모의 삶은 신비로운 것이었다.
“고모는 처음부터 귀신을 본 건 아니었어. 그래서 고모가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다 어릴 적에 만난 친구들이야.”
집안에 무속인의 피가 흐르다 보니 남들보다 감은 좋았다고, 그의 고모는 자신의 어릴 적을 회고했다. 남들보다 자주 꾸는 예지몽,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더 뚜렷하게 보이는 귀신들, 친구들한테 ‘너 오늘 물 조심해’같은 소리를 하면 그날 친구가 물벼락을 맞는 등의 일이 종종 있는 그런 학생이었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거 좋아하고,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이랑 대학을 어딜 갈 수 있을지 상담하면서 살던 학생이었어. 그런데 대학까지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니까 집에서 신을 모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집에서 두 번째로 감이 좋았던 내가 받기로 했지.”
“집에서 제일 감이 좋았던 사람이 누군데요?”
“으응, 무현이네 아버지지.”
“아빠는 왜 안 받았어요?”
“삶이 아까워서.”
“고모는 왜 받았어요? 고모는 삶이 안 아까웠어요?”
“나도 갓 사회 초년생이 된 때라 안 받으려고 했지. 근데 신이 화를 낼 때마다 일어나는 일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더라.”
아마 박무현의 아버지가 신을 받았으면 자신보다는 더 나은 무당이 됐을 거라며 고모는 박무현의 머리를 쓸어주며 웃었다.
“고모는 처음부터 귀신 봤어요?”
“아니. 신 받고 나니까 보였어. 무현이는 이미 뚜렷하게 보이지?”
“네!”
산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영을 뚜렷이 보는 아이라서 박무현의 아버지조차도 함부로 도울 수 없었다.
박무현이 보는 귀신들이 그처럼 흐릿하게 보였다면 그도 아들에게 확실하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귀신의 목소리를 듣고 뚜렷하게 보는 건 그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탈이 날까 봐 그는 어린 아들에게 결국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면 신 받아도 크게 놀랄 일은 없을 거야.”
“진짜요? 고모, 그러면 제가 신 받으면 고모는 여기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 수 있어요?”
그렇게 어릴 적부터 정이 많았던 박무현은 결국, 자신을 밖에 보내주지 않는 고모에게도 정을 붙였다.
눈을 빛내며 자신이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아이를 보며 그의 고모는 회한을 느꼈다. 필요해서 하는 일이었으나 아이의 삶이 너무 기구한 탓이다.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제가 신 받을래요.”
“……그래.”
고모는 신 받을 준비를 하자며 한동안 시간을 더 가졌다.
언젠간 박무현도 사회로 돌아갈 날이 있을 거라며 밀린 공부도 시켰다. 이리저리 분위기를 읽고 눈치를 보며 자라온 아이는 영특했다. 공부와 신내림 받을 준비를 병행하던 그의 신기가 최고치에 달했다.
신방 밖에 박무현의 몸을 잡아먹으려는 귀신과 영물이 가득해졌다. 어떤 것들이 오든 간에 박무현은 그들을 죽은 자로 대할 뿐, 자신의 몸을 함부로 내어주거나 함부로 쳐내지 않았다. 박무현을 보며 고모는 때가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설득할 테니 내림굿을 받을 때 부모가 참관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어른이 됐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고모는 내키지는 않았으나 박무현을 위해 그의 부모를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는 많이 나이가 들어있었다. 박무현 또한 성장기를 지나고 키와 정신이 훌쩍 자라 초로의 노인과 같은 기세를 풍겼다.
“방해하지 마라. 일 그르치면 큰 화가 닥칠 거야.”
내림굿이 시작되고 장정 여럿이 북을 두들기고 징을 쳤다. 당복을 입은 고모가 춤을 추었다.
고모가 경문을 읊는 걸 박무현을 알아듣지만, 그들의 부모는 그저 귀신 들린 사람 보듯이 보았다.
하얀 옷을 입고 겸허히 신을 기다리던 박무현의 손을 아버지가 잡아챘다.
“안 되겠다. 무현아, 가자.”
“네? 아빠, 이러면 안 돼요.”
“너 저런 꼴로 사는 거 못 본다.”
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박무현의 팔목을 잡아 이끌었다.
박무현이 차에 태워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의 고모가 그러면 큰 화가 닥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집에 화가 끼칠 거야! 집안 핏줄 모두 끊을 거야?”
“화든 뭐든 안 두려워! 멀쩡한 가족 생이별 시켜놓은 게 화지, 뭐야!”
박무현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 집을 나오던 때처럼 고모가 쏘아붙인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가족이 사당을 벗어나자 차에는 온갖 귀신이 달라붙었다. 부적 하나 없는 차에 수백마리의 귀신이 매달렸다. 박무현은 자신이 얘기로만 들었던 신의 존재를 목격했다. 고모의 몸에서 반만 떨어진 신은 흡사 악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신은 박무현의 차가 아니라 앞차에 있었다. 연신 불안전하게 흔들리던 앞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눈앞이 암전됐다가 다시 빛이 돌아왔다. 박무현이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가족들을 차 밖으로 꺼내는 게 보였다.
“무현아! 잠들면 안 된다! 정신 차려야 해!”
“아빠, 아파요.”
다 자란 박무현의 우는 모습은 어릴 적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아빠가 살려줄게. 무현아, 잠들지 마. 잠만 안 자면 돼.”
박무현의 눈에 어머니의 영혼이 보였다.
교통사고로 죽은 원혼들도 보였다. 원혼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서서 그를 구경했다. 그러다가 구급차가 다가오자 흩어졌다.
박무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그의 곁에는 고모가 있었고, 자신이 어릴 적에 고모의 사당에서 입었던 옷과 똑같은 걸 입고 있던 동생이 보였다.
“굿모닝. 이번에 배웠어. 좋은 아침이란 뜻이래.”
유치가 빠져 앞니가 자라고 있는 동생이 눈을 뜬 박무현에게 자랑스레 말했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은 여전히 어렸다.
“……밖에 저녁인데.”
“좋은 저녁은 아직 못 외웠어.”
“무진이 바보네. 굿 이브닝 몰라?”
“나 바보 아니거든? 저녁보다 아침이 좋아서 그것만 외운 거거든?”
“그래그래. 아침이 더 좋지.”
박무진은 자기는 바보가 아니라며 칭얼거렸다.
박무현은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말도 못 하던 게 언제 이렇게 큰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데도 어색함이 하나 없었다. 어제도 만난 사이처럼 정겹게만 느껴졌다.
계속 눈물을 흘릴까 말까 고민하던 동생은 고모가 깎아준 사과를 받더니 울음을 뚝 그쳤다. 곧 아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모, 우리 엄마랑 아빠는요?”
“살아있다. 그래도 오래 입원해야 할 거야.”
박무현은 영혼이 빠져나갔었던 어머니가 살아있단 소식에 그저 안도했다. 하지만 어린 박무진이 이런 곳에 왔단 건 마음이 불편했다.
“무진이는 여기 왜 왔어요?”
“너 대신 신을 받았어.”
“네?”
“네게 옮겨가던 중에 굿이 끊겼으니 화가 단단히 나셨다. 집안 전부 말려 죽이시겠다 해서 이렇게라도 막아야 했어. 치성을 드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으니 내가 너무 못 됐다고 생각하진 말거라. 오히려 무진이가 어린 애라서 딱하다고 화를 빨리 푸셨어. 다행인 일이지.”
“그럼 무진이 이제 귀신 봐요?”
게임기로 게임을 하던 아이가 자기 얘기에 귀를 쫑긋했다. 대체 게임을 얼마나 한 건지 기기에 벌써 도깨비들이 생겼다. 박무진의 손에 작은 도깨비들이 매달려 버튼을 이리저리 같이 눌러댔다. 박무진은 귀찮다는 듯 손을 털며 도깨비들을 떼어냈다.
“보긴 보는데 애라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나 보더구나.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 귀신보다 더한 걸 떠올릴 나이긴 하지.”
“……고모는 그럼 이제 원래 생활로 돌아가요?”
항상 하고 다니던 쪽진 머리를 풀고 온 고모의 모습이 어색했다.
“……네 동생 신 모시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까진 보고 갈란다. 기껏 어린애 데려다가 키우면서 설득해놨더니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허사가 될 줄 알았으면 너 괴롭히지 말고 진즉에 네 동생 데려다 수련시킬 걸 그랬다.”
“죄송해요.”
“죄송하긴. 그보다 너는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남 걱정하기 전에 네 걱정부터 해라.”
“사실 아까부터 너무 아파서 무시하고 있었거든요? 다리 안 움직이는데 나중엔 움직일 수 있겠죠?”
“이제부턴 귀신의 힘이 아니라 사람이 노력할 일이지.”
척추 손상으로 다시 걷고 싶다면 재활이 필요하단 진단을 들은 박무현은 귀신을 신경 쓸 시간이 없어졌다.
“그래도 괜찮을 게다. 살아있지 않느냐.”
“네.”
다행인 점은 박무현이 다시 걷는데 걸린 시간은 그가 살아온 시간보다는 덜 걸렸다는 것이다.
4. 뜨개질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신해량은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신경 쓰여요? 전 이제 괜찮은데.”
[사고를 낸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사람이요? 음주운전이었대요. 운전하는데 차 앞이 갑자기 시꺼멓게 변했다고 말했다는데, 경찰이 듣기에는 술 취해서 하는 헛소리로 들리죠.”
[귀신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 사고 후유증입니까?]
“아뇨. 제 귀는 멀쩡합니다. 동생이 신을 받고 나니까 제 신력도 약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좋아요. 산 사람이랑 죽은 사람이 흐릿한 정도가 달라서 둘을 구분할 수도 있고, 목소리도 안 들려요.”
[동생은 괜찮답니까?]
“네, 괜찮대요. 저 재활 성공한 뒤에 날 잡고 물어봤거든요. 고모란 사람이 와서 신 받아야 한다고 해서 놀라기는 했는데, 귀신 보게 되는 건 가족 잃는 일보다는 안 무서웠대요. 죽음이란 게 참, 무섭잖아요. 평범한 사람들한텐 그 사람과 다시는 못 보게 되는 거니까요. 귀신이 보이는 저도 누군가 죽을 수 있단 걸 생각하면 무서운데 제 동생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형을 데리러 간다고 했던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들은 어린아이의 심경은 박무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가 살아있단 걸 안 채로 떨어져 지내는 거랑 아예 못 만나게 되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신을 받게 한 것도 미안하지만 애가 가족을 잃을 뻔한 경험을 준 게 더 미안해요. 언젠간 좀 더 나은 형이 되어야 할 텐데. 서툴러서 걱정이에요.”
그건 정말 평생 갚아나가도 모자랄 잘못이었다. 박무현은 동생에게 계속 그 미안함을 갚아나가고 있었다.
[충분히 좋은 형처럼 보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아까 걸려온 전화들 다 받아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하. 무진이한테서 전화 그만 받으려면 해량 씨가 빨리 원래 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신해량이 몸을 떠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었다. 오랜 기간 식물인간이 된 자신의 몸을 지켜보다가 여행을 온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살고 싶지 않아서 도망쳐 온 것일 수도 있다.
“해량 씨,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면 제가 기다려 줄 테니까. 몸 찾으면 꼭 돌아가요. 이기적인 건 알지만 전 해량 씨가 어떤 이유로 여기까지 오게 됐든, 꼭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겪었든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죽을만큼 힘든 시간은 죽지 않았기에 흘러간다. 꿈보다 못한 지독한 현실이 그의 앞에 있었다면 그가 헤쳐나갈 수 있게 도울 의향도 있었다.
신을 받지 않은 박무현이 도울 수 있는 건 산 사람이기에 그가 살아줬음 했다. 박무현의 이야기를 들은 신해량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근데 오늘 완전 허탕이네요!”
폐원된 병원 외관을 본 박무현은 기지개를 켰다.
“사람들이 말이야, 닫았으면 닫았다고 공지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벌써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박무현은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가 밥을 먹는 동안 신해량만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박무현은 노을이 인형 안에 들이고 건너편 의자에 앉혀놨다.
박무현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신해량도 입술을 축였다. 박무현은 젖은 고래 인형 입술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배고파요? 배고픈 건 좋은 징조예요. 삶에 의지가 생겼단 거니까.”
박무현은 인형 앞에 뜨거운 국밥을 후후 불어 갖다 댔다.
남이 보면 인형을 앞에 두고 말을 거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행동이었다.
“제가 그쪽 덕에 오랜만에 이상하게 굴어 보네요.”
고래 인형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제사용으로 차리지 않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리 없었다. 신해량이 지느러미로 배를 쓰다듬는 모습이 퍽 굶주린 듯 보였다.
박무현은 그가 본체로 돌아가면 따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주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식사를 끝낸 박무현은 이왕 미친 짓을 시작한 거, 더 해보기로 했다며 고래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대학병원이나 베드가 많은 큰 병원들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 위주였다.
그는 병원에 신해량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친한 동생이 실종되었다고 하니 다들 의심 한 번 안 하고 찾아보겠다고들 했다. 그들 중 누구도 그가 함부로 남의 개인 정보를 남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는 신해량은 사람에게 이런 전적인 신뢰를 얻으려면 평소 얼마나 바르게 살아온 걸까 하며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니 해량 씨는 취미 있어요? 저 내일은 근무해야 하거든요. 일하러 간 동안 해량 씨도 뭐라도 하면서 시간 보내면 좋지 않을 까요?”
귀신이 된 뒤로 모든 행동에 제약이 걸린 신해량은 취미라든가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억도 흐릿해져서 자신이 뭘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까딱이며 고민하던 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뜨개질이 하고 싶습니다.]
박무현은 그를 데리고 호쾌하게 뜨개질 용품을 파는 곳으로 갔다.
그는 실도 바늘도 뭘 쓸지, 어떻게 뜨는 건지 아는 게 없어 그저 신해량이 고르는 대로 집어서 계산했다.
그리고 으슥한 공간에서 뜨개실과 바늘을 태웠다. 신해량은 자신의 손에 잡히는 뜨개실과 바늘을 감격스레 쥐었다.
“해량 씨, 아침이에요.”
“…….”
자고 일어났더니 신해량의 몸이 어제보다 흐릿해졌다.
배가 고프단 감각은 기억하는지 계속 배를 쥐고 있었다. 박무현은 전날 늦은 밤까지 나눈 대화들을 복기하며 신해량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따지자면 몇 시간이 지난 건데 신해량의 기억상실은 전보다 더 진행되어있었다.
괜히 그를 집에 뒀다가 기억 상실이 진행되어 이상한 짓이라도 벌이든지, 혼자 나가버릴 것 같았다. 기껏 살 의지를 불어넣었더니 신해량이 기억을 잃고 떠돌다가 저승으로 끌려가는 걸 볼 순 없었다. 박무현은 결국 신해량과 함께 출근해서 그를 원장실 안에 밀어 넣었다.
기억은 날아갔어도 뜨개질하던 습관을 몸이 기억하는지 신해량은 어제 새벽부터 계속 뭘 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큰 손과 발을 뜨개물품에 대어 보면서 이것저것 열심히 떴다. 덕분에 실이 빠른 속도로 줄었다.
박무현이 중간중간 신해량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점심에 확인했을 땐 양말을 여러 켤레 떠 놨었는데, 오후에 보니 제대로 뜨지 못한 양말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신해량의 상태도 더 안 좋아졌다. 그는 바늘과 뜨다 만 실 뭉텅이를 쥐고 계속 끼긱, 끼긱 소리를 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거였다.
“해량 씨?”
다행히 박무현이 다가오자 신해량의 눈에 잠깐 빛이 돌아왔다. 박무현이 손을 내밀자 그 위에 꼬박꼬박 글자를 적었다.
[장갑을 어떻게 떴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장갑이요?”
[손발이 찼는데. 안 되는데.]
신해량이 계속 같은 걸 적었다. 박무현은 사념이 짙어지는 그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동공이 흐려지는 걸 보며 박무현이 핑거 스냅을 했다.
“안 되겠다. 해량 씨. 저희 어서 가요.”
[예?]
“해량 씨 어딨는지 찾았어요.”
박무현은 자신과 친한 정형외과 동기가 신해량의 몸이 어딨는지 찾아줬다는 부연 설명을 했다.
“저희가 달렸던 곳 반대에 있었더라고요.”
박무현은 해안선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는데, 신해량의 있는 곳은 하류에 있는 병원이었다.
“여기서 가까워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이거네요. 해량 씨 상태 더 나빠지기 전에 갑시다.”
박무현은 신해량에게 노을이를 내밀었다. 그는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박무현이 하류를 향해 달리는 동안 신해량은 계속 옆에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더니 돌연 안전벨트를 풀고 바다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박무현의 차체에서 안전벨트가 풀렸다는 알람이 울렸다.
“해량 씨? 뭐하시는 거예요!”
박무현에게 말을 해도 못 듣는단 걸 잊었는지, 신해량이 계속 못으로 철판 긁는 소리를 냈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신해량이 아예 인형 밖으로 뛰쳐나와 바닷가로 걸어갔다. 박무현은 결국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댔다.
박무현은 멋대로 튀어나와 해안가를 향해 걷는 그를 쫓아갔다. 도로 한가운데를 뚫고 사람도 투과해 지나가는 신해량을 따라가다 보니 사람하고도 부딪치고, 도로를 달리던 차로부터 클락션 소리도 들었다.
“왜 저러는 거야. 물에 귀신이 얼마나 많은데!”
박무현은 신해량이 물귀신에 잡혀가기라도 할까 모래가 들어가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내달렸다.
“형 왔네.”
“무진이? 너 학교는? 고모가 너 여기 와도 된대?”
신해량이 도착한 곳에는 무복을 입은 박무진이 있었다.
“고모가 10년 신 모셨으면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던데? 그래서 왔지.”
“제령하려는 거야? 그러지 마. 해량 씨 몸 저기 있대. 아직 살아있어.”
“그쪽이 아니야.”
박무진이 다른 쪽을 가리켰다.
신해량의 앞에는 어떤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온통 물에 젖어있었다. 신해량과 같은 옷을 입고 모래사장에 서 있는데 발밑에 물이 떨어진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란 뜻이다.
신해량은 여인의 몸을 껴안았다. 여인도 애틋하게 신해량을 껴안았다.
“연인이 죽었구나. 연인을 혼자 두기 싫어서, 자기도 같이 죽으려고 몸을 떠났다가 나한테까지 오게 된 거였어.”
박무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박무진도 혼잣말처럼 말했다.
“지난 겨울에 연인 하나가 바다에 놀러 왔다가 풍랑에 쓸려갔대. 남자는 살았는데 품에 있던 여자는 숨을 거뒀다고 하더라.”
박무진은 그의 앞에서 단문으로 적힌 뉴스를 읽었다. 휴양지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토록 조용히 묻혔다.
“……그러면 해량 씨 몸은 괜히 찾았나?”
“아냐. 내가 형 집에 붙여놓은 부적이 뭐 간단한 건 줄 알아? 오만 것들 다 쫓아내는 걸로 붙여놓은 거란 말이야. 어지간히 형하고 인연이 진하게 닿는 녀석 아니면 그 결계는 건드리지도 못해. 다시 말해, 형하고 저 인간이 진하게 연이 이어져 있단 말이지. 나도 어제 튀어 오려고 했는데 저~기 윗분이 형을 내버려 두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던 거란 말이야.”
“너 네가 모시는 신도 엄청 싫어하는데 용케 참았네.”
“형은 진짜 친구를 원했잖아. 하루만 참으면 형한테 친구가 생긴다는데 어쩌겠어? 내가 참아야지.”
“아하하, 무진아. 형도 이제 친구들 있어. 하나 더 생겨도 좋긴 하겠지. 하지만 내 친구 하나 만들려고 떠나겠단 사람까지 붙들고 싶진 않아.”
신해량은 여인의 발에 자신이 떠온 양말과 장갑을 신겼다. 발에 잘 달라붙는 양말과 엉성하게 뜬 장갑을 낀 여인이 해맑게 웃었다. 보는 사람마저 따뜻하게 만드는 웃음이라서 박무현도 같이 미소지었다.
박무현은 여전히 신해량이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어떤 일에서는 그런 바람조차 욕심일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자신 또한 생사의 기로에 있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살아달라고 하는 건 제 욕심이었다.
그의 욕심을 탓하기라도 하듯 신해량은 여인을 한참을 안고 오열했다. 도통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를 밀어낸 건 여인이었다.
“저쪽은 형이랑 생각이 다른가 본데.”
49재도 지나 지박령이 된 여인에게 천도재를 지내주기 위해 왔다며 박무진이 자신이 오게 된 이야기를 덧붙였다.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 걸 보니 진짜로 사랑했던 모양이야.”
가는 길이 너무 외로울 거라고 죽을 사람을 더 만들어 붙여주기도 하는게 인간이다. 같이 죽을 뻔한 사람보고 너는 살라고 하는 건 보통 용기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신기가 뛰어났던 박무현조차도 허락이 안 되는 게 사후세계를 엿보는 일이었다. 어렴풋이 들은 말로 조합해 가늠만 할 뿐인 세계인지라, 그조차도 선뜻 발 들이기가 두려울 지경인데 민간인이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사랑한 걸 수도 있고.”
아직도 인세에 서툰 박무현은 신기함과 부러움으로 연인들을 바라봤다.
여인과 대화를 마친 신해량은 박무현에게 다가왔다. 박무진은 형에게 다가온 그의 이마에 인을 새겼다.
“이승에 남는 걸로 마음 정한 거 맞죠? 이거 천도할 때 신해량 씨가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거니까 괜히 건들지 말아요.”
평일에 사람 없는 바닷가.
신해량은 박무현의 곁에 앉아 있었다. 박무진이 춤사위를 시작하자 파도조차 숨 죽여 쳤다. 날이 추워 아직 인적이 드문 바닷가라 박무진이 무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단 사실에 아무도 연연하지 않았다.
박무진의 천도재에 여인의 옷이 수의로 바뀌었다. 이미 장례를 치른 증거였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은 새신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인의 손과 발에는 신해량이 직접 뜨개질로 만든 양말과 장갑이 껴 있었다.
5. 백일몽
“이제부턴 형의 영역이야.”
“어?”
“내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갈 거라고.”
천도재를 지내어 여인을 보낸 박무진은 이제부턴 자신이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갈 준비를 했다.
“온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가지. 형이 비싼 거 사줄게. 형 돈 잘 벌어.”
“돈은 내가 더 잘 벌어.”
알음알음 용하다고 소문난 박무진은 박무현한테 생활비고 용돈이고 타서 쓴 적이 없었다. 사고로 생긴 병원비도 동생이 반 이상을 갚았으니 마음이 쓰린 것도 있었다. 너무 어릴 때 세상을 알게 한 기분이랄까.
“그럼 맛있는 거 먹자. 어, 떡볶이 어때?”
“됐어. 친구들이랑 자주 먹어서 지겨워.”
“무진이 친구들 있어? ……다행이다.”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형은 저 사람 인 다 지워지기 전에 몸에 영혼 쑤셔 박으러 가는 게 먼저야.”
신해량의 이마에 적힌 인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저거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지니까 빨리 가. 밥은 다음에 본가 와서 다 같이 먹어. 엄마랑 아빠가 형 잘 지내는지 궁금해해. 고모도 그렇고.”
“매일 연락드리는데.”
“그게 얼굴 보는 거랑 같아? 전화 백 번 해도 얼굴 한 번 보는 거만 못해. 형은 그리고 어릴 때부터 우리랑 떨어져 지냈잖아.”
“으아, 애가 신 받더니 완전 노인처럼 얘기하네.”
“형!”
“알았어, 다음에 갈게. 가족들이 보고 싶다는데 내가 가야지.”
“……자주 와.”
“응. 자주 갈게. 이번 주말에 갈까?”
“이번 주에도 오고 다음 주에도 와.”
매주 주말에는 꼭 집에 놀러 가겠다고 약속한 박무현은 동생을 배웅했다. 애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택시부터 잡는 걸 보고 경제관념이 살짝 걱정됐지만, 옆에 신해량이 있어서 바로 잡을 타이밍을 놓쳤다.
박무진을 보낸 둘은 영혼을 인도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이마에 인을 박은 효과인지, 신해량이 더 기억을 잃는 일은 없었다.
여인이 따뜻한 모습으로 떠난 걸 봐서인지 태도도 고분고분했다.
“있잖아요. 그쪽 몸으로 돌아가면 지금 있었던 일은 다 잊게 될 거예요.”
영혼으로 있을 때 기억은 으레 잊히기 마련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은 채로 겪은 기억이 필요하진 않으니까.
“백일몽이라고 하죠? 깬 채로 꾸는 꿈이요. 신해량 씨도 영혼으로 있는 동안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으니 아마 일어나서도 꿈꾼 기분이 될 거예요.”
[저는 그럼 박무현 씨를 잊게 됩니까?]
“네. 아쉽죠?”
박무현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피식 웃었다.
신해량에게 백일몽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꾼 것 또한 백일몽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해량 같은 친구를 원해왔었단 걸 깨달았다. 인생의 반 이상을 귀신이랑 지냈으니 말이 통하는 귀신이 다시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박무현은 신해량이 그리울 것 같았다.
[예.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리운 느낌은 날 거예요. 우리 인연은 영혼에 새겨진 거니까.”
[보고 싶어지면 어떡합니까?]
“해량 씨가 저를 보고 싶다면~ 찾아가면 되죠. 치과랑 병원 가까우니까 오기 쉽거든요. 그리고 회복하려면 여기 계셔야 하지 않을까요?”
박무현은 어느새 병원에 당도해 신해량이 누워있는 병실까지 도착했다. 신해량이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누워있는 신해량도 정말 잘 생겼다. 영혼에 비해 본체가 살이 좀 빠졌고, 턱에 드문드문 수염이 나 있는데도 그랬다.
“자, 이제 들어가세요.”
[감사했습니다.]
신해량의 영혼이 그의 몸 위에 누웠다. 혼과 육체가 결합하더니 신해량의 영혼이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해량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굿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창가에 비친 하늘은 어두웠다. 그래도 박무현은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다. 아주 오래 전, 동생이 제게 했던 말 그대로.
신해량에게 인사를 건네던 박무현은 어쩌면 이 인사가 자신의 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인사였겠구나 싶어졌다.
“우리 쩨쩨하게 저녁 아니냐고 따지지는 맙시다. 언제 들어도 좋잖아요? ‘좋은 아침’이라는 말.”
“누, 구…….”
아까까지 알던 사이였던 둘은 잠깐 새에 모르는 사이가 됐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음에도 상처를 받았다.
“박무현치과의원의 원장입니다. 단 하루였지만 그쪽이랑 진한 인연으로 엮이게 된 사이죠. 그런데 그쪽이 멋대로 찾아와놓고 잊으셨네요.”
박무현은 장난처럼 질문을 받아쳤다.
신해량의 눈이 계속 누군가를 찾았다. 아마도 연인일 것 같아 박무현은 씁쓸하게 소식을 전했다.
“……지금 모든 게 혼란스러우시죠? 신해량 씨가 잠든 지 꽤 지났어요. 바다에서 빠진 뒤로 이후로 3개월이 흘렀거든요. 안타깝지만 같이 함께 여행을 오신 여자친구 분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장례는 이미 진행이 되었고요. 근처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고 하니 회복하시면 다녀오세요.”
신해량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습니까.”
“……좋은 곳 가셨을 거예요. 엄청난 분이 힘을 써 주셨거든요.”
“그럴, 것, 같습니다. 꿈을 꾸었거든요.”
남한테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성격인 신해량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앞에 있는 생면부지의 박무현에게는 순순히 모든 걸 털어놓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는 자꾸 오랜 인연을 쌓아 온 친구처럼 격의 없이 굴게 댔다.
“무슨 꿈을 꿨어요?”
“등, 불 집.”
“등불이요?”
“꿈, 에서 집이, 등불. 같았…….”
말을 잇던 신해량이 입을 축였다.
영혼일 적에 있었던 일이 꿈이었다고 생각하며 신해량은 아주 느릿하게 고백했다.
형형하게 결계가 빛나는 집이, 어둠 속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보였다고.
“우리 집이 그쪽한테 등불처럼 보였구나.”
죽을 자리 알아보러 온 줄 알았더니 나름 살아보고 싶었던 걸까.
박무현은 그가 사는 걸로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등불한테 오니 좋은 꿈 좀 꿔지던가요?”
“따뜻하고, 따뜻한…….”
신해량은 손가락을 살짝 움찔거렸다.
“고래 털실 같은…… 꿈을 꿨습니다.”
“하하, 고래도 맞고 털실도 맞네요.”
영혼이 결합한 직후라 꿈결에 다 기억하는 거지, 자고 일어나면 진짜로 다 잊힐 내용이었다. 벌써부터 있었던 일을 잊혀지려 하는지 신해량이 다시 멍하니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말 걸고, 피곤하시죠? 의사 불렀으니까 곧 올 거예요. 눈 뜬 것만 보여주고 다시 잡시다.”
“잠들면, 그쪽은 갈 겁니까?”
“네, 가야죠. 왜요? 가면 아쉬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울 것 같습니다.”
졸음을 못 이기겠는지 신해량이 눈을 자꾸 감았다.
“그 말 잊으면 안 돼요. 저 그렇게 말하면 진짜 찾아오거든요.”
초췌한 신해량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준 박무현이 속삭였다.
“영혼이 떨어졌다가 들어간 거라 몸이 피곤할 거예요. 계속 자다 깨다 할 건데 그래도 이젠 좋은 꿈만 꾸고 일어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잠드세요.”
“좋은 꿈을…….”
“예, 좋은 꿈을요. 좋은 꿈 아니거나 또 영혼이 떨어져 나오면 제가 다시 돌려다 놓겠습니다.”
신해량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의사가 눈을 뜬 그를 보고 놀라 박무현의 옆을 지나쳐갔다.
“있잖아요. 다 회복하면 같이 밥 먹으러 가요. 국밥 어때요? 그쪽이 좋아할 거 같은데. 제가 사줄게요.”
“……예.”
신해량은 박무현만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던 신해량이 다시 박무현을 불렀다.
“떡볶이도 같이 먹으러 가시겠습니까.”
“네? ……네!”
박무현은 신해량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꿈 같았던 일이 다 끝나니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무현은 행복하게 웃었다. 신해량도 박무현의 미소를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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