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0 목, 마크세르

연성교환 / 웅범 기반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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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이라 그런가. 미술관은 조용했다. 세르주는 앞에 놓인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림이었다. 어떤 부분이 아름다운지, 어떤 부분에서 마음을 빼앗겨야 하는지,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지.. 저는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는 마크는 달랐다. 그는 아까부터 이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감탄했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그림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저 표정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다. 영원히 반짝일 것만 같은 두 눈과 약간 벌어진 입술에서 흘러 나오는 옅은 감탄사. 전에는 들은 적이 없던 소리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그를 이토록 감탄하게 만드는 것일까. 저는 다시 그림을 보았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허리를 약간 숙여서 적혀있는 설명을 보았다. 깨알같이 적힌 작은 글씨를 읽기 위해 눈살까지 찌푸려보지만 이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이제 옆으로 가자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의 눈빛에 저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물어야 했다. 지난 번 일이 떠올랐다. 제가 산 그림이 그의 눈에는 이런 식으로 비춰졌을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으로. 이게 도대체 어디가 좋은 것인지 모르겠는 것으로.

 제가 했던 말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나하나 다 기억을 한다면 미안해서라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이 격해져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런 식이다. 뒤를 돌아볼 수 없게 만든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일단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더 이상 거기에 대해 후회를 하는 건 소용이 없겠지.

 어쨌거나 저는 지금 노력중이었다. 그가 대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이 그림의 장점을 찾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마음은 도저히 일렁거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파란 바탕에 뿌려진 물감일 뿐인데. 이런 것이 도대체 어디가.. 하.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냥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 과거가, 저의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림 앞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멍하게 있는 건 싫었다. 작은 것이라도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었고 그것을 마음 깊은 곳까지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 쉽지 않은 작업이로군. 머리를 벅벅 긁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옆에 서 있는 이는 제가 안절부절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예 저 그림에 푹 빠진 것 같았다. 바로 근처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것처럼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냥 파란 바탕에 물감을 뿌린 것일 뿐인 그림에.

 그는 저걸 사갈 수만 있다면 얼마라도 지불할 거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런 다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건 미술관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아주 유명한 대작가의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왜 저것을 보고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그림을 구매하고 감상하는 사람으로 느낄 때 아주 불쾌한 감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대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폄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림에 감동 받지 못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조용한 미술관이 약간 웅성거린다. 누군가 큰 소리를 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나는 소음 같은 것이 이 공간을 채운다. 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왔을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고, 입 근처에 작은 마이크를 찬 사람은 무심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손가락으로 인원을 세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으로 몇 명의 사람이 있는지 하나씩 가늠하다가 결국 손을 들어 척척 상대를 가리켰다. 곧 고개를 숙여 손에 든 폰에 무언가를 적고. 그 모든 과정이 다 지루하고 귀찮아보였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티라도 내는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와글와글 모인 무리는 움직였다.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이는 그림을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고 찰칵 찰칵 울리는 소리에 조용하게 그림을 감상하던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봤다.

 그리고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저는 그것을 봤다. 세르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게 행동하면 마크가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도 모르게 긁적거리다가 움찔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이크를 통해 차분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다른 그림에는 관심이 있었다. 유독 이 그림에만 이해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예 보는 눈이 없지는 않다. 저도 취향이라는 게 있고 확고하게 이해하는 세계가 있었다. 다만 이 작가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지..


 “크흠.”

 “.....”

 “크흐흠.”


 관심을 주지 않으니 도리어 관심을 받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를 하러 왔는데 이렇게까지 연인에게 관심이 없는 건, 이거 삐져도 되는 일 맞지? 옆구리를 푹 쑤셔줄까 팔을 콱 꼬집어줄까. 이를 드글드글 갈면서 그림을 노려보았다.

 저런 표정은 제게도 보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로지 마음이 반응하는 것에만 보이는 표정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곧 제게 그렇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기분이 이상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용했던 미술관이 시끄러워진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하고 근질거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저는 파란 배경에 물감이 뿌려진 것뿐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살폈다.

 아무리 고개를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여봐도 모르겠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저는 그에게 이만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이 드디어 달싹이고 거기서 나오는 말은 제 입을 다물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 이거야 말로 완벽하다는 말에 어울리는 그림이야!”


 그를 힐끔 바라보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 수가 없었으나 기분이 더욱 착 가라앉는다는 것은 잘 알겠다. 이렇게 보는 눈이 달라서 어떡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떠한 것에 감동을 받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그것은 제가 그와 다른 취향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사랑하는 마음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같이 해야 하고.. 어쩌고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어쩐지 이 부분에서 어긋나면 다시 확인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영영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 둘이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한 일인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기왕이면 같은 종류의 사람이기를 바랐다. 어느 하나 틀리지 않고 꽉 맞물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원히 친구로 남아 있었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겠지.

 그의 옆모습이 미웠다. 이제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저 그림도 미웠다. 그가 짓는 저런 표정을 가져가는 게 미웠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그림이 미웠다. 그가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저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사실이 미웠다.

 저는 곧 이 그림을 그린 작가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제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을 미워하겠구나, 저는 영영 이 화가의 그림을 보지 못하겠구나. 그리고 이 화가의 그림을 보면 반드시 네가 생각나겠구나.

 다시 한 번 파란 배경에 물감이 튀어있을 뿐인 그림을 보았다. 여전히 가슴은 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차분해졌다.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안내를 받는 무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 그림에 대해서도 설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려면 이 앞에 바글바글 서겠지.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그림에 대한 설명도 이어갈 것이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겠지. 그때 저는 여기에 서 있을지 아니면 그를 두고 다른 자리로 떠나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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