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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26. 물음표 행성

1차 - 이츠키x세나(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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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키x세나] 물음표 행성

너라면 함께 우주로 갈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런 걸 의심하지는 않아. 너라면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훈련을 쉽게 했을 거야. 세계적인 야구선수잖아? 기초체력도 좋고, 지명도도 있으니까 민간인 선발에 지원했다면 뽑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에 비하면 난 그저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연구인원이 아니었다면 분명 첫 커트라인에서 걸러졌겠지.

너와 내가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건 정말 꿈같은 일이었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을 연구하는 건,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서 중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 그러면 너는 또 길게 침묵하다가, 말하겠지. 그런데 왜 같이 갈 수 없다는 거야? 아니지, 이 질문은 이미 받았구나. 나는 그 때 널 눈앞에 두고 우주와 바람을 피울 수는 없다고 대답했었지. 너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고. 하지만 너는 또, 나를 믿어줬어. 늘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아리스가와 세나를,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처럼. 나는 그 이상의 그럴듯한 설명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었고.

너는 가끔 침묵으로 말해. 그걸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되지만 그렇기에 나는 네가 구사하는 침묵의 언어를 사랑해. 너의 침묵은 망설임이자 깊은 생각이고 그 방향은 언제나 배려와 이해를 향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넌 내 대답에 실망해서 입을 다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제 알지, 그게 너의 배려라는 걸. 그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점까지 사랑스러워.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하지만 나는 꼭 혼자 가야만해.

너는 지금 저 멀리 군중들 속에서 내 출발을 지켜보고 있을까? 아니면 집에서 생중계를 보고 있을까? 일정 탓에 다녀오란 인사도 미리 해야 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가 어떤 표정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그렇지만 난 알지, 네가 어디서든 날 보고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내가 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처음 우주에 물음표가 떴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때까지 최신식이었던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그 사진을 전 세계에 게시했을 때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무언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무언가가 나를 보고 있어. 그리고 그 시선의 마지막에는 물음표가 있었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어미는 물음표였어.

혹시 우주가, 그 운명이 나를 보고 있는 걸까? 한낱 인간인, 작고 작은 태양계의 작고 작은 지구의 작고 작은 한 인간을 운명이 바라본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인간이라는 건 우주가 한 번 들이마시는 호흡에도 절멸할 수 있는 그런 미약한 거라고. 그러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어쩐지, 거대한 운명의 궤도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

물음표로 끝나는 그 문장은 무엇일까? 내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의 무언가에 반박을 하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우주에 비하면 먼지의 먼지보다도 못한 인간 하나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텐데 말이야.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 압도적인 느낌을 흘려보냈고, 그대로 잊어버렸지. 그런 감각을 잊어버리는 게 이상하다고? 그렇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널 만났는걸. 일본도 아닌 미국 땅에서 말이야. 두 은하가 합쳐지는 거라고 추정되는 물음표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너를 만났는데! 그것도 운명처럼, 우연히 말야. 운명이 나를 네게로 이끌었다고, 그건 우주의 흐름이었다고. 그 흐름 안에 속하는 물음표 은하들보다 당연히 더 신경 쓰이지! 그러면 너는 한참 또 대답이 없다가 이렇게 말하려나. 내 앞에서 바람피우기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뭐 그런.

맞아! 순 거짓말이야. 똑같은 논리로 생각해보면 넌 날 두고 야구랑 바람피운 게 된다구.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지? 나도 알아, 말이 안 된다는 걸. 둘러댈 말이 없었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정말로, 혼자 가야한다는 걸 알았어.

물음표 은하 이후로 물음표 모양의 행성과 위성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정말로 난리가 났지. 우리 업계 전체가 들썩였다구. 어떻게 저런 모양의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가, 물리학계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천문학계는 관련된 모든 이론을 쓰레기통에 처넣으려 하고, 일반인들은 그저 즐거워했지. 그리고 나는 물음표 행성이 보았을 때에도,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감각을 느꼈어. 그래, 물음표로 끝나는 그 시선 말이야.

그냥 내 감각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거대한 운명이 정말로 나를 보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무언가 하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너를 미국에서 재회했을 때처럼, 인생에 중요한 변화가 오는 걸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그리고 내게 일어난 무언가가 얼마나 큰 전환점일지 생각하고는 했지.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줄 알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아무것도.

예상치 못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누군가와 재회하지도 않고, 어떤 사고가 일어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지도 않고,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지도 않고, 내 인생에서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우리가 크게 싸우지도 않았어. 아무리, 아무리 기다려도 말이야.

그런데 있지,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자각했을 때, 그 때에 나는 깨달아 버린 거야. 그 압도적인 시선이 뭘 말하고 있었는지 말야! 그리고, 그건 오로지 나 홀로 굳건히 서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것도 알았지.

맞아, 나는 대답을 전하러 가는 거야. 물음표 행성 탐사는 학문적으로서도 놓칠 수 없는 도전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있었어. 나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대답하러 가야 해. 한 마디 대답을 하기 위해서 직접 가야한다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우주는 너무나 거대하고 나는 너무나 작으니까 직접 가서 온 힘을 다해 외쳐야 겨우 들릴까말까 할 거야. 그러니 마치 사건의 지평선 아주 가까이 가는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한 자리까지 온 힘을 다해 외치러 가.

아, 선체가 흔들리고 있어. 이제 출발이야. 카운트다운이 들려, 10, 9, 8, 7…….

위대한 질문에 대답하면 얼른 돌아갈게, 가면 네 특제 그라탕을 만들어 주는 거다? 곧 갈게, 이츠키. 사랑하는 내 우주.

…3, 2, 1, Fire― …….

운명이 그에게 묻는다.

이제, 자신이 부재함을 네 존재로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온 힘을 다해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Obviously.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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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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