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퍼즈

[케니스] 이데아(IDEA)

사이퍼즈 팬픽 / 공미포 4,460

암흑이 내려앉은 메트로폴리스는 어둠 그 자체였다. 희미한 불빛의 네온사인 간판과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간헐적인 빛들이 도심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는 달빛 하나 보이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내리는 듯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케니스는 한참 창가를 바라보다 비가 쏟아져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구분 지어두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철저해야만 했다. 늘 그래왔듯 사색에 잠기며 머릿속의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두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수첩에 자신이 적어둔 계획들을 읽어보며 생각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능력자들의 도시인 메트로폴리스에 정착하게 되었고,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지금의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살아왔다. 저스티스 리그에 들어온 사람들의 사연은 모두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기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지금처럼만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최근에 액자 관련된 일로 시바 포를 만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액자와 관련된 일은 저스티스 리그에 소속된 사람들 모두가 케니스와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논란이 될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그는 계획을 적어둔 수첩과 자료들을 깔끔하게 묶어 정리하고는 책꽂이에 차곡차곡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그마한 상자였는데, 그간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연락하지 못했구나.’

 

집을 나선 이유도 그의 부모님과의 의견 격차를 줄이지 못해서였다. 단순한 의견 격차라고 하기에는 자신을 포함해 동생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 있었기에 케니스는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집안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라이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조금이나마 연락을 자주 해보자고 마음을 먹지만 좀처럼 그럴만한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는 친동생인 라이언에게서 받은 편지였다. 일주일 전에 받았지만, 아직 편지를 뜯어 읽어보진 않았다. 편지를 받은 그 날 집으로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우연히 라이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활기찬 목소리에 대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부모님이 저지른 일들을 잊을 수가 없어 씁쓸한 기억만 스쳐 지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케니스는 소중하게 간직해둔 동생의 편지를 뜯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특별한 이야기가 적힌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근황과 하고 싶은 말을 길게 적어놓은 편지였다.

 

“잘 지내고 있어 줘서 다행이구나.”

 

집을 나오면서도 동생을 두고 온 것을 항상 걱정하면서 살아왔었다. 케니스는 능력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동생과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다. 라이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집을 나온 이후 동생을 마주한 적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그나마 편지로 연락을 대신하는 것이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뉴욕에서 메트로폴리스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떨어져 있었고, 그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바빴기 때문에 동생을 만날 생각은 전혀 하질 못하고 살아왔다. 케니스는 편지를 접어 봉투 안에 넣어두고는 다시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조만간 라이언을 만나볼 계획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케니스는 메트로폴리스를 떠나 라이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뉴욕으로 오게 되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왔기에 다행히도 늦진 않았다.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예정대로 제 동생만이라도 잠깐 보고 가려던 참이었다. 집을 떠나온 마당에 오랜만이라는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원치 않았기에 기차역 근처에서 라이언이 오기를 기다렸다.

 

‘여기도 참 많이 변했구나.’

 

자신이 메트로폴리스로 떠나기 전에도 화려했던 그 도시는 시간이 지나 예전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눈에 띄는 화려한 간판들과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케니스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햇살이 내리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바라보고 있자니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하늘 아래의 세상은 말썽이 많았다. 케니스는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사색에 잠길 때쯤 케니스는 한 남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체격이 다부진 몸에 손을 감싸고 있는 붕대, 후드를 눌러써서 얼굴이 쉽게 보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만 봐도 자신의 동생인 라이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라이언?”

“어, 누구….”

 

라이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낯선 얼굴에 알아보지 못했으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의 얼굴은 누가 봐도 제 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전만 해도 굳은 표정이었던 케니스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형 맞지? 케니스 형.”

“그래. 오랜만이구나, 라이언.”

 

라이언은 케니스를 끌어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니스가 집을 나간 이후로 편지로만 연락을 드문드문 이었을 뿐, 실제로 만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놀라보게 달라진 형의 모습이 그저 신기했었다. 케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몰라보게 성장한 라이언이 대견하다고 느꼈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동생의 상태에만 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래 기다렸어? 미안, 길을 조금 헤맸거든.”

 

라이언은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로 케니스에게 말을 걸었다. 케니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면서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다만 그동안 그에게 신경 써주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걸리는 탓에 케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생을 바라보았다. 라이언은 주위를 둘러보다 형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우리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할까?”

“물론! 나야 좋지.”

 

라이언은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길을 걸어갔다. 케니스는 제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만 가지의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 모든 생각은 뒤로 접어두기로 했다.

 


두 사람은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대화를 이어갔다. 라이언은 더 호라이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와 무용담들을 계속 늘어놓았고, 케니스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곤 했다.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형도 아주 바빴던 것 같았는데, 어때?”

“여러 일이 있었지. 다 이야기하기엔 너무 길지만.”

“그렇구나. 아, 참. 그거 알아? 형의 이야기가 일간지에 오른 거?”

 

라이언은 싱긋 웃으며 그때 자신이 보았던 기사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마 그가 본 것은 ‘휴스턴 석유 도난 사건’을 해결했다는 기사였을 거다. 케니스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경청했다. 그와 동시에 과거에 자신이 라이언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던 이후의 모든 순간이 떠올라 씁쓸하기만 했다.

 

저스티스 리그를 창설하기 전, 계층을 막론하고 나이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쉬운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자신의 동생에게는 모든 것이 막막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마냥 어리다고 느꼈던 동생이지만 수많은 대화를 통해 라이언이 예전과는 다르게 성격부터 행동까지 의젓해지고 제법 어른스러워졌다고 느꼈다. 예전에 자신이 알던 것과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정적으로 케니스는 라이언이 힘들어하던 시절에 옆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미안했고, 가장 큰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다. 케니스는 라이언의 말을 들으며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라이언.”

“어?”

 

라이언은 고개를 돌려 케니스를 바라보았다. 좀 전과는 사뭇 달라진 진지한 분위기에 당황한 듯 한참을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 너무 많은 말을 이어갔던 그였기에 혹여나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그에게 물었지만 케니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이 늘 걸렸거든.”

“….”

“미안해, 라이언.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케니스는 시선을 내려 제 동생의 손을 바라보았다. 붕대가 감긴 손 주변은 석화가 꽤 진행된 상태였고, 돌처럼 굳어버린 피부는 좀처럼 돌아올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시한부와 같은 삶을 사는 동생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이 늘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동생을 이렇게 만든 부모님을 가장 원망하고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지쳤다. 아니, 자신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미안한 마음에 그는 라이언의 시선을 피했다. 제 동생이 무슨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라이언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제 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형을 바라보았다.

 

“뭐야, 난 내가 말실수한 줄 알았잖아.”

“라이언….”

“괜찮아.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형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예상치 못한 동생의 말에 케니스는 무언가에 맞은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원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언은 되려 제 형을 걱정해주었다. 라이언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형을 토닥여주었다. 케니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랬거든.”

“….”

“지금은 아니야. 어제보다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케니스는 해맑게 웃는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던 그때의 모습보다 더 어른스럽고 의젓해진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자신을 덮치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자신이 알던 그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은 동생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더 어른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용서한 건 아니야.”

“음?”

“지금보다 더 많이 연락하겠다고 약속해주면 그걸로 충분해.”

 

케니스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충분히 원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이언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늘 과거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케니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제 동생의 손을 잡았다. 돌처럼 단단해진 동생의 손을 잡는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케니스는 생각을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메트로폴리스로 향해 떠나는 기차 안에서 케니스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 시작했다. 라이언을 만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동생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그는 서둘러 세상을 변화시키고 동생을 다른 이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달라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함께할 수 있을까.’

 

케니스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능력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도 라이언이 없다면 그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문제는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깨고 싶지도 않았고, 라이언이 떠나간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서둘러야겠어.’

 

케니스는 창밖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지평선 너머로 별이 무수히 반짝이며 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 동생과 자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갈 세상을 제 손으로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기에 케니스는 기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내일은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