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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브&하랑] 신의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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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런던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복잡했다. 서서히 따뜻해지는 날씨 속에 코트나 가디건을 걸치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봄이라는 것을 자각시키려는 듯 꽃잎을 활짝 펼치며 봄을 반기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길거리에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서히 구름이 드리워져 하늘에는 곧장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라는 점이다.

 

“하, 오늘도 비가 오려나.”

 

클리브는 하늘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취재 수첩에 적어둔 메모를 바라보았다. 휘갈기며 적어놓은 수첩엔 여러 인터뷰 내용이 담겨있었다. 대부분은 유명인사들과의 공식 석상 인터뷰 내용이었지만 최근엔 특종이라고 불릴 만큼의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만큼 평화로운 날의 연속이었기에 대부분 취재된 내용은 가십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 성과도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을 뒤로하고 그는 서둘러 펜과 수첩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예감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빗줄기가 툭, 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예리한 촉에 감탄사를 뱉었다.

 

집안에 들어와 주머니 속의 펜과 수첩을 꺼내고는 코트는 벽에 달린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수첩을 뒤적거렸다. 인터뷰 내용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이었다. 근래에 일어난 사건들만 기록된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은 넘겨두었다. 오늘 날짜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한숨만 나올 내용 뿐이었다.

 

편집장의 날이 선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기분이 든 그는 탄식을 뱉으며 수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뚫어지라 쳐다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최근 특종이라고 할만한 기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편집장의 탄식과 날이 선 목소리가 끊임없이 본부에 들려왔다.

 

‘난감하네.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지.’

 

그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져 갔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나갔다.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은 유명인사의 스캔들 혹은 불륜과 관련된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중대한 발표도, 사건 현장의 목격담도 없었다. 이런 내용으로 신문의 한 면을 채우기엔 인터뷰 내용은 부실했으며 주제들 역시 터무니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는 수첩을 닫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다음 저가 성과 발표일인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문득 얼마 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했던 편집장의 말이 떠올랐다.

 

“하다못해 사이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보던가! 성과가 이게 뭐야!”

 

단단히 일이 꼬이고 망했다는 낌새를 느낀 클리브는 탄식을 하며 수첩을 바라보았다. 시대가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사이퍼들의 숫자도, 그들의 능력 유형도 꽤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누구를, 어디서 만나 대화를 할 것이며, 그들이 순순히 인터뷰에 협조해줄 것인지는 도박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사이퍼들이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지극히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클리브는 그동안 수집해온 자료들을 바라보며 인터뷰 리스트에 오른 사이퍼들을 정리해보았다.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하랑’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티엔을 통해 조선에서 이곳으로 왔다던 그는 영혼을 볼 줄 알고 그들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능력자라고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티엔의 뒤를 따라 그랑플람 소속이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난번엔 티엔의 거절로 인터뷰는 무마되었지만, 지금은 또 다를지도 모르지.

 

“뭐, 밑져야 본전일 테니….”

 

클리브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첩에 그의 이름을 펜으로 적었다. 생각보다 쉽진 않겠지만 언제부터 신경 썼다는 듯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인터뷰 질문 내용을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그랑플람에 연락을 취하고 다음에 인터뷰 일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첩을 덮어두었다. 창밖에는 빗소리가 점점 거세져 갔다.

 


간만에 런던 날씨가 화창했다. 무엇을 해도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 만큼 날씨가 맑고 청명했다. 클리브는 펜과 수첩을 챙기고는 그랑플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난번 연락을 취해본 결과 그랑플람에서 다행스럽게도 하랑과의 인터뷰를 허락해주었고, 그 날짜가 딱 오늘이었다.

 

‘펜과 수첩, 그리고 컨디션까지 완벽하군.’

 

과거에 티엔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한 적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관찰일지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세간에서 그랑플람을 향한 질문들도 많았으니 이번 기회에 가능하다면 하랑을 통해 물어볼 계획이었다.

 

‘잘되면 특종을 잡을 수 있겠어!’

 

발걸음을 옮겨 그랑플람에 도착한 그는 하랑을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재단 건물에서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클리브는 하는 수 없이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를 기다리며 인터뷰 내용을 다시금 정리해보았다. 준비는 완벽했다. 그로부터 약 10분 정도 흘렀을 때쯤, 하랑이 저 멀리서 손짓을 하며 그를 맞이했다.

 

“여어, 기자님. 많이 기다리셨나 보네.”

 

하랑은 장난기 넘치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클리브는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인사로 답을 보냈다.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그나저나 여기서 인터뷰할 생각은 아니겠지?”

“하하, 하랑 군이 원한다면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클리브가 대답했다. 하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으로 한 골목을 가리켰다. 조용하고 괜찮은 카페가 있다고, 그쪽에서 조용히 인터뷰하기를 원하는 모양인 듯했다. 클리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기다렸다는 듯 하랑은 그를 데리고 카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사람이 적은 조용한 카페였고, 도심의 거리가 잘 보이는 운치 좋은 카페였다. 각자 음료를 하나씩 주문하고는 조용한 자리에 앉았다. 클리브는 코트 안에 넣어둔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고 하랑은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 인터뷰하려고 하니까 좀 긴장되는데?”

“에이, 긴장할 건 없습니다.”

 

클리브는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긴장감을 풀어주며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질문을 던지며 하랑에게 물었고, 하랑은 그의 질문에 대답을 이었다. 여태껏 수많은 사이퍼들과 인터뷰를 한 그였지만 하랑은 가장 수월하게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그의 질문을 수첩에 간략하게 받아 적어가며 답변이 끝나면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를 반복했다.

 

“이야, 빼곡하게도 적었네.”

“이 정도는 기본이죠.”

 

클리브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펜을 끄적였다. 그가 말했던 내용을 적되 핵심 되는 내용을 간추려 자신이 알아보기 편하게 수첩에 적고는 펜을 내려두었다. 준비한 인터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는 하랑에게 질문이라던가 하고 싶은 말이 없냐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근질거렸는데-.”

 

그는 자세를 고쳐잡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눈앞의 기자를 쳐다보았다. 클리브는 그의 눈빛에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같이 눈빛을 마주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던 그때 하랑이 먼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귀신이라던가 영혼이라던가 그런 거 들어봤어?”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클리브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떤 반응을 원한걸까.’, 클리브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의도를 추리해보기로 했다. 그의 표정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하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쳐다보며 말을 계속 이었다.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신의 힘을 빌려서 영혼을 들여다보기도 한단 말이야?”

“흠, 그렇습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가진 능력도 그렇잖아? 뭐, 기자님이 볼 땐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클리브는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여러 의문이 담겨있다는 듯 그의 말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하랑은 이러한 반응에 재미를 느낀 듯 그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 동양에는 살인귀라는 존재가 있거든.”

“살인귀요?”

“어. 살아생전에 살인을 저지른 귀신을 살인귀라 한단 말이지.”

 

뜬금없는 살인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하랑을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괜히 펜을 굴리며 계속 이야기를 듣는 척했지만 좀처럼 묘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하필이면 살인을 하다 죽은 영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클리브는 이 이야기가 지속할수록 점점 묘한 공포감이 느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럼 제가 질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뭔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라도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요.”

 

하랑은 잠깐의 침묵을 가지고는 눈앞의 기자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경계하면서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계속 취했고 클리브는 그의 행동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잘못 이야기하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클리브 역시 숨죽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적막이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하랑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말이야, 묘하게 그 형체가 기자 양반, 당신한테서 그게 보인단 말이지.”

“예? 저요?”

“아니…. 에이씨,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랑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망설였고, 클리브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놀란 눈으로 하랑을 쳐다보았다. 여태껏 살아오며 살해를 당할 뻔한 적은 많았지만, 손에 피를 묻힌 적은 없었다. 결백하다는 눈빛으로 하랑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하랑은 그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기자님 말고 다른 존재가 보인다고. 정확하게 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랑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클리브에게 최근에 이상한 소리라던가 기이한 경험을 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두통이 동반된 이후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았고, 가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대신 대답하는 경험이 간혹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게 그와 말하는 살인귀라는 존재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순간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랑이 한 말과 이상한 경험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릴수록 머리가 점점 조여오듯 두통이 일어나는 기분에 클리브는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애써 침착하게 표정을 유지하며 클리브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는 좀 길어질 것 같은데, 다음에 이야기 하는 건 어때?”

“아, 그러죠.”

 

예상과 다르게 하랑은 더 그 이야기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클리브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향했다. 하랑은 대화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랑플람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하랑이 떠나간 후 클리브는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대체 뭘 발견한 걸까.’

 

그의 말에는 석연찮은 부분들이 많았다. 자신 외에 다른 존재는 무엇이고,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가라앉지 않는 두통은 그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여러 말과 여러 이야기가 자신에게 향하는 경고처럼 들리는 듯했다. 클리브는 피로가 누적된 탓이라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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