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섭] Marry 7
우성태섭 미국 좀아포
1층에서 터진 총성에 놀란 태섭은 방을 뛰쳐나와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왔다. 노인의 방에서 그간 막혀있다 터져 나온 형용할 수 없는 악취를 따라 복도를 걷자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열려있었다. 태섭의 왼손이 파르르 떨렸다. 얼굴이 넝마가 된 시신 두 구와 그 앞을 총을 쥔 채 쳐다보는 우성이 이미 결과였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태섭은 창문에서 커튼을 쥐어뜯었다. 헤진 얼굴 위로 천을 펼치자 펄럭거리며 시체 두 구를 감싸고 축축하게 물들어갔다. 우성에게 등을 돌린 채 태섭은 노인의 청진 가방을 와르르 쏟고 쓸만하겠다 싶으면 손에 잡히는 족족 쓸어 담았다. 떠날 채비를 했다.
“아무것도 안 물어봐?”
“어.”
“그럼 내가 물어봐도 돼?”
하염 없이 멀뚱 서 있다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우성을 그제야 태섭은 돌아보았다. 우성의 눈에 비친 태섭은 표정이 오묘했다. 무언가를 꾹 눌러 참는 것 같이... 우성은 풍선을 터트릴 때도 다들 무서워하며 가위로 겨우 입구를 자르거나 그도 아니면 절로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하지 않았다. 늘 두 손으로 꾹 눌러 터트리는 아이로 쭉 커왔다, 오늘날까지.
“태섭아, 함께 죽으면 같이 떠날 수 있을까?”
우성의 물음에 태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미쳐버렸나 봐, 죽여달라 그러네. 그냥 있어도 굶어 죽을 텐데..”
태섭은 부스스한 머리에 손가락을 넣고 헤집었다.
“부탁할 정도로 외로웠던 걸까?”
태섭의 풍선에서 마지막 남았던 공기가 다 빠져나왔다. 우성의 물음은 아무래도 노인에게 건네는 조문 같았다. 태섭은 떨림이 멎은 왼손으로 가슴을 꾹 내리 누르곤 우성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우성아, 정우성. 뭐가 그렇게 불안해.”
우성과 태섭은 말하며, 들으며 동시에 깨달았다
얘 불안하구나 나 불안하구나
태섭으로선 우성의 불안 요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태섭 역시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단순히 긴장에 가까운 감정이어서. 더 원초적인 불안에 집어삼켜진 우성을 도와주고 싶어도 이유를 모르니 그저 우성이 뭔가 더 말하기만을 기다리며 입술을 뚫어지도록 보았다. 다만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태섭이 잘 알던 잘 웃고 잘 울던 우성의 모습이 지워져 가니 무서워 참을 수 없었다.
“바다에 버려야 할까?”
“아니. 두 분께는 여기가 무덤이야. 이제 방해하지 말고 떠나자.”
“어디로?“
가슴 속이 팽창 되도록 꾹 인내를 갖고 기다리자 우성은 태섭의 눈을 회피하며 질문을 되뇌었다. 모든 질문이 어려웠지만 어디라는 말에 마땅히 할 답이 없어 고민 하다가 태섭은 우성의 창백한 손을 마저 잡아주었다.
“어디든.”
눈을 깜빡이자 초점 그대로이던 동공의 빛이 달라졌다. 이거였나? 어렴풋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면식 없던 사람만 죽이다가 연관 있는 사람을 죽이며 염려가 생겼나? 지금 가장 가까운 태섭도 죽을 수 있는, 아니면 죽여야 할지도 모를 일까지 상상해서? 겁에 질린 우성의 얼굴을 처음 봐 태섭은 어쩔 줄을 모르다 어릴 적 형제가 해주었던 것처럼 우성을 껴안았다. 안았다기엔 우성의 품에 파고 들어간 모양새였으나 우성의 경직된 몸통이 느슨하게 이완되는 것이 맞닿은 가슴에서 느껴졌다.
“차는 버려야 할까?”
“날이 너무 추워서 거리에 사람도 좀비도... 아무도 없어 괜히 이목 끌지 않는 게 좋겠지.”
각자 연장을 등에 메고 짐은 바이크에 밧줄로 꽁꽁 묶었다. 시동을 걸기 전까지 지도를 파헤쳐보던 태섭은 행선지를 정했는지 시동을 켜고 튀어 나가며 우성에게 손짓했다.
거리에는 시체도 보이지 않고 애초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땅 마냥 고요했다. 간간이 희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만이 유일하게 적막이 오지 않도록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바이크 배기음 뒤로 서서히 멀어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태섭은 태어나고 자랐던 바닷가 소리를 그리워했다. 또 언제 바다를 보게 될까. 오기는 할런지.
“여길 다시 올 줄 몰랐어”
“집은 다 목조라 앞으로 더 추워지는 날씨는 감당 못할 거야. 얼어 죽을 위험이라도 없애야 조금이라도 사는데 가망 있겠지.”
백화점 인근에 너저분하게 깔린 허물어진 가게 잔해들로 바이크 몸체를 가리자 파헤쳐보지 않는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졌다. 태섭과 우성은 연장을 고쳐 들고 백화점 안을 물색하기로 했다. 자원이 부족한 것만이 아니라 추워진 날씨를 버틸 수 있는 공간은 이제 튼튼한 고층 건물 말고는 존재 하지 않았다. 아마 이 거리의 살아있는 생존자라면 이 안에서 각자의 공간을 주장하며 살고 있을 거였다.
두 사람이 새로운 터에 정착을 하는데도 거의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하루하루를 열악하게 보내 사는데 온 집중을 다하니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겨울바람도 제법 매서워졌다. 그나마 다행히 태섭이 고뇌한 덕에 전기도 가스도 없었지만 백화점 안에는 외풍이 들지 않아 동사할 걱정은 없었다. 물이라도 나오는 게 어디인가? 감지덕지하며 꽁꽁 언 눈을 녹이며 쓸 정돈 아닌 게 어디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사람들과 마주칠 때도 있었으나 여기까지 살아남으며 봐온 게 있을 테니 대부분은 마찰을 피하고 서로 길을 바꿔 지내와 염려할 상황은 크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어떤 정신 나간 이가 칼 든 채 행패 부리다 덤벼드려 한 적이 있던 정도? 그마저도 우성이 총을 쏜 뒤 삽시간에 총기 소동이 알음알음 퍼져 다들 둘의 앞에선 숨죽여 지내려 노력하는 듯했다.
“뭐 해?”
백화점에 들어온 뒤로 부터 얼어 죽을까 봐 태섭과 우성은 매일 밤 껴안고 서로의 온기로 체온을 지켰다. 눈 뜨자마자 꼬물꼬물 움직이는 태섭의 손가락을 본 우성은 태섭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숫자를 세는 태섭의 손짓을 잡아끌어 막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일주일 전 태섭이 비상구 계단 난간 사이로 핸드폰을 떨어트리고부터 하는 행동이었다. 무얼 세는지 아는 우성은 그 뒤로 태섭이 몇 번인가 셈을 하는 게 보이면 때마다 저지했다. 며칠을 그러니 이윽고 태섭도 그 행동을 멈췄다. 우성은 태섭의 이상 행동을 보며 마음이 텅텅 비는 기분을 받았다. 옆에 함께 있는 것은 우성인데도 태섭은 핸드폰만이 유일하게 지지해주는 것 마냥 소중히 들여다보다 결국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떨어지는 핸드폰을 잡으려 난간 아래로 추락할 기세로 매달리던 태섭은 속상해 죽는 표정을 10초 정도 짓다가 겨우 추스려 괜찮다는 말 한 마디를 꺼내고 그 뒤로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성은 핸드폰 하나를 잃어버리고 속절 없이 망가진 태섭의 정신력을 보고 새삼 다짐했다. 나는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태섭이를.
그렇게 미련 맞은 하루를 나날이 보내던 두 사람에게 무방비한 정신 이상자가 또 거리 유지를 침범해 불쑥 들어왔다. 기묘할 정도로 정신이 또렷해 보이는 맑은 눈으로 우성을 가리키며 자신을 쏘기를 강요했다.
태섭은 우성에게 고개를 내저었고 우성 역시 동의 했다. 이제 겨우 한 발 남은 탄을 낭비하는 건 말도 안 됐다. 둘은 결국 층을 몇 층 옮겨 자리를 새로 잡기로 하고 이상자를 뒤로 두고 일어났다. 무시 당한 이상자는 우성을 붙잡고 늘어졌다. 불쾌한 접촉에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연장을 잡아 상체에 휘둘러쳤다. 고통 없이 한 방에 죽고 싶다며 총을 쏴달라 소리를 지르는데 성량이 어찌나 큰지 한 층에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였다.
“무슨 움직이는 소리 나지 않아?..”
“우성아 이쪽으로!! 시발! 소리 듣고 몰렸나 봐..!”
벌레가 스슥 움직이는 소리로 들리던 것이 점점 둔탁한 발소리로 커지고 있었다. 우당탕, 물건과 가벽이 쓰러져 망가지는 틈으로 부패한 좀비 떼가 언뜻 보였다. 저 무리를 헤치고 이상자를 따돌리기엔 말도 안 됐다. 태섭과 우성은 가방 하나씩 겨우 챙겨 연장을 꼭 쥐고 옆 관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죽고 싶어 하던 이상자는 물려 죽고 싶진 않았는지 둘을 밀치고 옆 관으로 넘어가려 복도 셔터 잠금을 풀고 도망가려 할 때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누군가 복도 셔터 안에 가두고 도망쳤던 것인지 셔터 안에서 튀어나온 좀비가 어깨를 덥석 물어버렸고 정신 이상자는 비명을 지르고 허둥대다 어깨에 좀비를 매단 채 다시 둘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오려 했다.
엉성하게 뛰어오는 걸 지나쳐 셔터 안으로 향하자 황망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던 정신 이상자는 좀비 무리와 맞닥뜨려 그대로 깔려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태섭이 셔터 안으로 들어가 바로 들어올 우성을 확인하고 셔터를 닫으려던 순간 우성이 앞으로 넘어졌다. 의아할 틈도 없이 우성이 고함치며 발버둥을 쳐댔다.
“도망가 태섭아!!“
태섭이 바닥에 납작 붙어 셔터 아래를 들여다보자 어느 틈에 우성의 발을 붙잡고 늘어진 좀비가 있었다. 우성은 태섭에게 계속 도망가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들을 태섭이 아니었다. 우성의 발에 붙은 손을 떼기 위해 발길질을 하다 우성의 발만 노려보던 좀비가 고개를 확 돌려 태섭의 발목을 콰득 물어뜯었다. 발이 가벼워짐을 느끼자마자 우성은 태섭의 뒷덜미를 잡고 쑥 끌어 당겨 뒤로 넘어졌다. 좀비가 다시 둘에게 뛰어들기 직전에 겨우 태섭이 손을 뻗어 셔터를 쾅 닫았다. 두 사람 사이에 정적만이 남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
태섭은 가방을 건넸다.
“송태섭.”
내미는 가방을 무시하고 태섭을 끌어안으려는 우성을 태섭이 피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큿..”
태섭은 우성을 밀치며 안심시키려고 웃어 보이려 했지만 통증은 참을 수 없었다. 악다문 치아 사이로 신음이 질질 흘러나왔고 우성의 눈이 축축해졌다. 살아남으려고 얼마를 발버둥 쳐왔는데 좀비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태섭은 빠르게 좀비가 되어갔다. 정신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지만 속절 없이 성대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반지를 빼내 우성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더는 태섭의 입에서 언어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유언을 용케 마치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더니 입가에 허연 거품이 새어 나왔다.
우성은 그런 태섭을 셔터 사이에 가두고 옆 관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던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좀비는 없었다. 좀비는 기척에 민감하기에 아까 소동에 다 몰려갔던 듯했다. 깨진 창문 틈 곳곳으로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눈가가 더는 눈물을 수용하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젖은 뺨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찢어질 것처럼 아파졌다. 주먹 안에 쥔 애꿎은 반지를 부수고 싶단 듯 꾸욱 눌렀지만 반지는 보란 듯 끄떡 없었다. 우성은 깨진 창문 틈으로 반지를 내다 던졌다. 흩날리는 눈 사이 떨어진 반지를 눈으로 좇아보았지만 깨진 창밖으론 그저 흰 도화지만이 공허하게 펼쳐져 있다.
시간이 얼마 안 흐르고 우성은 태섭에게 돌아왔다. 물림 방지용 장갑과 입마개, 포박 줄을 들고서.
백화점에 기거하는 사람들 모두 어느 날부터 퍼진 흉흉한 소문에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웬 미친 남자가 좀비를 줄에 묶어서 질질 끌고 가더라
숨어서 지나가는걸 본 적이 있는데 좀비 입마개 사이로 입안에 치아가 없는걸 확인했다
손은 또 어떻고 손가락을 다 분질러놔서 남아난 게 없다
고문해서 죽이는 미치광이가 분명하다 남자 눈에 발각되면 우리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카더라 소문은 널리 퍼져 공포가 사람들에게 확산되었다. 덕분에 우성이 돌아다니기 절로 편해졌다. 우성은 사람들이 슬슬 피해 다니며 주변에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남이 작게 꾸려놓았던 공간을 강탈했다. 빼앗긴 자는 억울 했으나 우성이 데리고 다니는 좀비의 몰골을 보고 되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고 5층에 홀로 우성만이 살아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RZOv31n1sY
앉은 채 잠이 들었던 우성은 부스스 일어나 외투를 고쳐 입었다. 날짜 개념을 아예 잊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다니다가 심심찮게 동사한 시체가 보여 한파에는 건물도 별수 없나 생각하는 정도였다. 날이 급격히 추워지며 알게 된 사실은 좀비들도 추울수록 움직임이 둔해지고 추위에 많이 노출되면 신체가 동상 걸린 것처럼 뚝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살벌한 추위로 인해 백화점 내를 활보하는 사람은 우성과 우성이 데리고 다니는 좀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이구”
뒤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줄이 우성을 확 붙잡았다. 돌아보니 요란하게 바닥에 입마개를 처박은 좀비가 멍청하게 허우적거렸다. 그 앞에 마주 앉아 일으켜준 우성은 좀비의 바짓단을 보고 혀를 찼다. 몸통을 잡고 탈탈 털자 바지 양쪽에 꽁꽁 얼어붙은 다리가 떨어져나왔다. 바지 양쪽을 롤업해 말아 넣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우성은 좀비를 침낭에 넣어 업고 다녔다. 어차피 이제 습격 당할 일도 없으니 상관 없지 않나 싶었다.
좀비를 데리고 이동하던 우성은 가전제품 층에 처음으로 도달했다. 가전제품을 쓸 일은 없어서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진열 되어 있는 라디오가 보였다. 근처에서 배터리를 찾아내 갈아 끼우고 작동 시켰다. 라디오에서 잡음이 나오자 우성은 좀비를 앉히고 그 옆에 앉아 좀비의 작은 머리통에 뺨을 대었다. 라디오 채널을 몇 번 돌리며 다른 손으론 침낭 속 좀비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부러져 맥아리 없는 손을 주물러주어도 따듯해지지 않는다.
다만 우성이 손을 문지를 때마다 입마개 사이로 새액 색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노래 소리가 들리며 채널이 맞춰지자 우성은 좀비를 뉘었다.
노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가였다. 어디서 송출하는 노래일까 우연히 다른 지역의 방송이 잡힌 건가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아무 일도 없나.
우성은 좀비에게 말을 걸었다.
"태섭아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태섭이라 불린 좀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허연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우성은 침낭 지퍼를 열어 좀비의 몸을 공기에 노출시켰다. 차가운 공기에 몸서리 칠법도 하건만 좀비는 공기 빠진 인형처럼 우성이 이끄는 대로 딸려왔다. 좀비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앞춤을 내린 우성은 탁탁 소리를 내며 좀비의 어깨에 이마를 박고 자위 했다.
우성의 어깨에 차가운 좀비의 온도가 선명하게 박혔다. 몸을 흔들수록 난도질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좀비의 몸에 백탁이 흩뿌려지고 가방에서 여러 개 찢어놓은 천 조각을 꺼내 그 몸을 닦아주었다. 침낭을 아예 펼쳐 그 위에 좀비를 껴안고 우성은 잠을 청했다.
너무 외로워... 태섭아.
성가를 자장가 삼아 오랜만에 우성은 푹 자다 깼다. 몇 시간을 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성은 라디오가 있던 곳에서 발견한 배터리와 기계를 서투른 손으로 엉성하게 연결해 간이 충전기를 완성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속상한 태섭을 신경 써 그 이후로 우성도 핸드폰을 가방 가장 아래에 넣어두었다. 아래에 손을 쑥 집어넣어 몇 번 헤집자 전원이 죽은 핸드폰이 잡혔다. 충전이 되려나 고민한 것은 괜한 기우였는지 몇 분 기다리자 화면에 한 칸 채워지며 전원이 켜졌다. 상단을 보니 한 해의 끝자락까지 살아있었다. 우성은 버튼을 몇 번 조작해 사진첩으로 들어갔다. 가장 최근에 찍었던 사진이 제일 앞에 있었다. 카트에 폭 들어가 당황한 얼굴을 한 태섭의 얼굴이 이렇게 생생한데. 한참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어 좀비의 얼굴도 들여다보았다. 우성은 모든 짐을 내려놓고 좀비만을 안아 들어 화장실을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거울에 좀비를 고쳐 안고 그 앞에 들이밀며 이게 누구야? 누구야 태섭아? 묻는 우성의 물음에 좀비는 으... 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흘렸다. 얼룩진 거울 속 두 사람 중 누가 좀비인지 구별하기 퍽 어려워 보였다.
냉수로 얼굴을 닦으니 불면증으로 정신 없었던 내면이 정리가 되며 결심이 섰다. 우성은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7층을 좀비를 업고 올라갔다. 옥상은 잠겨있지 않았고 시신도 좀비도 없었다. 여기만이 유일하게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과 다름 없어 보였다.
하얀 입김이 새까만 하늘을 향해 가다 흩어졌다 우성은 좀비를 앞으로 안아 들고 밑을 쳐다보았다. 언제 또 눈이 왔던 건지 온 세상이 하얗고 고요하게 묻혔다. 천국은 이럴까? 지옥이 이럴 거 같은데.
우성은 고교생활 때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떠올리며 눈이 많이 올 때마다 했던 눈 천사를 만들었다. 그 위에 좀비를 눕히고 자신도 그 옆에 누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좀비의 얼굴 반절을 가린 입마개를 풀어 던져버렸다.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성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양손으로 좀비의 고개를 자신으로 돌리고 피가 맺힌 입술로 가까이 다가가자 좀비가 서서히 반응하며 우성의 입을 머금었다. 우성은 기꺼이 그를 반기며.
"메리 크리스마스!"
둘의 위로 눈이 펑펑 내렸다.
눈사람 둘이 생겼다.
세상이 얼어붙었다.
고요하다.
[캘리포니아 주를 강타했던 전염병 사태가 이상기후인 폭설로 인해 종료가 되었는데요. 서부 및 다른 지역도 재해로 인한 피해가 크지만 대응할 수 없었던 서부는 고스란히 피해를 맞닥뜨려 폭설로 매장이 되었습니다. 정찰 헬기로 내려다 본 서부는 지난 사태가 없었던 일인 것처럼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다에는 팬케이크 아이스가 떠다닐 정도니 추위가 얼마나 강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죠. 한 번 현장을 살피러간 기자 연결 해보겠습니다.]
[네, 현장을 살피러온 기자입니다. 지금 저희는 로스앤젤로스의 자연 박물관을 지나쳐 백화점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좀비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정부는 캘리포니아 주를 폐쇄 시키고 국가 재난 1급 긴급령을 발동해 강경 대응했는데요. 하루 아침에 벌어진 사태가 폭설로 인해 갑작스레 끝나 아직 원인을 밝히는 중이라 하였습니다. 해서 저희가 종료된 현장을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헬기로 고층 건물에 혹시 남은 생존자가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프로펠러 소리가 고요한 도시를 울렸다. 프로펠러에 탑승한 조종사가 백화점 옥상에 사람 아니냐며 취재진에게 말했다. 취재진은 건물 틈 사이로 비추는 햇살 사이로 고층 빌딩 옥상 쌓인 눈 틈에 삐죽 튀어나온 옷가지를 발견했다. 카메라를 돌려 확인해보라며 손 사인을 하자 줌인한 화면에 서로를 끌어안은 시신 두 구가 비쳤다.
외전 하나 더 올리면 이번에 진짜 마무리를 해보네요..마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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