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있는

쓰레기통 by 波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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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토미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테이블보다 위쪽의 상반신이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기 좁은 다다미방에 한 사람만이 앉아 있는 것 같다. 두 사람분의 부피가 채워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두 종류의 목소리와 두 개의 밥그릇, 양이 줄어드는 음식 정도가 전부였다. 사토미는 익숙한 듯 산처럼 쌓인 쌀밥을 입에 넣었다. 쿄지가 종종 집에서 머물고 가게 된 것은 몇 개월 전부터의 일이다. 성인 남성 둘이 다리를 쭉 뻗기에는 묘하게 비좁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수다를 떨었다. 쿄지와의 관계에 대한 사토미의 대답은 간결했다. 저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제 옆에 있어 주세요. 쿄지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사토미의 말을 따랐다. 꼭 그러기로 결심한 사람 같았다.

사토미는 종종 쿄지의 일에 대해 물었다. 얼마나 나쁜 일을 하는지, 많이 바쁜지, 낮과 밤은 불확실한지. 쿄지는 언제나 두루뭉술하게 이런저런 나쁜 일을 한다거나 바쁠 때는 바쁘고 아닐 때는 한가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답하곤 했다. 납득이 가든 가지 않든 사토미는 그 이상 꼬리를 물며 질문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사토미의 학교생활이나 연예인들의 이슈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고 말았다.

"다 먹으면 그릇 물에 담가놔. 이따가 설거지할게."

"오늘 자정 넘어서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안 쉬어도 괜찮아?"

"얼마나 걸린다고. 사토미야말로 슬슬 알바 가야 하잖아. 재워주는데 밥값은 해야지."

"그럼··· 부탁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올려다본 쿄지는 발바닥부터 허리춤까지가 전부였다. 손에 들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식기는 부자연스럽게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사토미는 이 알 수 없는 현상을 쿄지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가끔, 쿄지는 사라졌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사라졌다. 사토미 앞에서만 그런 것인지, 사토미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쿄지도 자각하고 있는지 같은 것은 알 수 없었다. 묻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단지 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을 다녀왔고, 외출을 했고, 일상을 보냈으니 커다란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쿄지의 일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사토미 집에 처음 머물고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사토미는 그날 쿄지의 이레즈미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 등판을 가득 채운 그림에 놀랄 틈도 없이 머리통이 사라진 쿄지를 보고 비명을 삼켜야 했다. 쿄지는 등에 새겨진 두루미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양손에 가려질 리가 없는데도. 아연실색한 사토미의 표정이 난생처음 보았을 화려한 이레즈미 탓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쿄지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 머리가 사라진 부분은 딱히 절단된 모양을 하지도 않았으며 피가 보이지도 않았고, 징그럽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어야 마땅한 것'이 없었을 뿐이다.

사토미는 쿄지의 이름까지 불러놓고, "응?"하며 돌아오는 대답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며칠 뒤 쿄지의 머리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어깨까지, 날개뼈까지, 흉통까지 사라지다가, 어느 날 눈을 떴을 때는 평범하게 달라붙어 있기를 반복했다. 사라진 쿄지의 신체에 손을 뻗어본 적은 없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고 통과되어버리는 순간, 무심코 비명을 질러버릴 것 같았다.

상반신이 없는—투명한— 쿄지는 부엌에 서서 사토미를 배웅했다. 잘 다녀와. 시간대가 다소 늦은 것을 빼면 지극히 평범한 인사였다. 사토미는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쿄지의 시선이 닿았는지는 모른다. 쿄지의 얼굴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둔탁하게 철문이 닫히고 나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2 쿄지

사토미가 나간 문 너머로 작은 소음이 들렸다. 등을 기대는 소리. 한숨은 오 센티 언저리의 고철 덩어리를 넘어가지 못 했다. 쿄지는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비틀어 뜨거운 물을 흘려보냈다. 식기에 달라붙은 기름기가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렸다. 백엔 샵에서 사 온 듯한 스펀지에 주방세제를 묻힌다. 화학적으로 만든 오렌지 냄새다. 손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분명히 무언가를 쥐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것은 하얀 거품을 머금은 노란 스펀지뿐이었다. 공중에 부유한 식기와 주방세제가 제멋대로 마찰했다. 언뜻 보면 불가능한 마술 같았고, 심령 현상처럼 보였다. 사토미의 길 잃은 시선을 떠올렸다. 쿄지는 자조했다.

텅 빈 남의 집에 홀로 남아 천장을 들여다본다. 빛을 투과시키던 손가락이 무사히 돌아오고 있었다. 유리처럼 모든 파장을 통과시키던 몸이, 어떤 색만을 골라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평범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은 더 이상 기상천외하게 떠다니지 않았다. 쿄지는 화면이 꺼진 핸드폰 액정에 얼굴이 무사히 비치는 것을 보고 숨을 돌렸다. 자정까지 십 분 정도 남은 참이었다.

세상은 잠들 시간이었다. 인파는 줄어들고 갖은 소음은 사라졌다. 노선버스나 열차의 행선지가 '회송'으로 바뀌는 타이밍이다. 편의점과 술집의 불빛이 겨우 야경을 비출 것이었다. 혹은 집에 돌아가지 못 한 채 책상에 앉아, 나오지 않는 잔업 수당을 손가락으로 세며 야근하는 사람들이 붙잡혀 있거나. 세상에는 남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쿄지는 몸을 일으켰다.

도쿄에서의 업무는 복잡하지 않았다. 몇 군데 거점을 둔 가게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웬만해서는 폭력을 휘두를 일이 없었고, 자잘한 마찰이라 해 봤자 얼굴을 내밀고 몇 마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충분히 정리되는 범위였다. 쿄지는 이 정도가 깔끔하고 귀찮지 않아 적당하다 생각했다. 세상이 잠든 것 치고는 제법 화려하게 빛난다고 느꼈다. 새까만 정장은 새까맣게 물든 밤 풍경에 보기 좋게 스며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사람이 지나가는 티도 나지 않았다.

네온사인과 도시의 불빛이 시끄러웠다. 땅 위를 밝히는 일이 쓸데없어, 하늘에 박힌 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사카에서는 조금이나마 세어볼 수 있을 듯했는데. 쿄지는 볼멘소리를 속으로 삭히며, 인사해오는 남자들에게 고개만 끄덕였다. 죄 저승사자 같다. 저 사람도, 이 사람도, 나도, 가릴 것 없이 죽은 얼굴이다. 타인의 삶에 기억되는 사람이었던 날이 언제 즈음이었나 떠올려도 영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스물이 되었을 무렵에는 언제나 잠깐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누군가였다.

고등학교 시절 사귀던 여자가 졸업하면 자기 집으로 오라 했고, 쿄지는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따랐다. 이름도 잊어버린 여자는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적당히 용돈으로 쓸 만큼만 일을 해서 벌면 된다는 말에 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살며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종종 키스를 하고, 몸을 섞는 정도를 더하기만 하면 됐다.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여자는 늘 하고 싶은 것을 말했다. 쿄지가 하고 싶은 것을 묻지는 않았다. 쿄지는 '그곳에 마땅히 존재하는 것' 정도였다. 지금은 완전히 중년이 되었을 여자의 기억 한구석에 쿄지의 존재가 남아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첫 번째 여자친구는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며 이별을 고했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살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직접 집이라는 것을 계약해 살기 시작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여자는 약혼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을 빌리자면 바람을 피운다는 것에 해당되는 관계였다. 여자가 쿄지에게 마음을 준 것은 아니며, 미래를 약속할 생각조차 조금도 없었으니 잠깐의 놀음이었을지도 모르고. 여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며칠 전에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는 '우리 집에서 살래?'하고 마무리하는 이상한 대화를 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기 전에 한 번쯤 즐겨보려고. 그런 것 치고는 바짝 자르고 꾸미지도 않은 손톱이 유독 눈에 띄어 쿄지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스물을 갓 넘은 쿄지의 대답은 밍숭맹숭했다. 저 야쿠자인데. 딴에 배려라는 이름으로 말하면 대개는 거절하거나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 여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되려 좋다고 답했다. 평범한 것보다 그 편이 더 재미있어.

여자의 집은 여덟 평 언저리의 좁은 공간이었지만 가구가 거의 없어 두 사람이 지내기엔 썩 불편하지 않았다. 부엌과 방을 나누는 문이 하나 있었고, 한 사람이 편하게 누울 수 있을 침대와 작은 테이블, 책장을 놓아둔 것이 전부였다. 쿄지는 일주일에 몇 번, 여자가 내킬 때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겹쳤다. 조금씩 이레즈미를 새겨나가고 있던 때에, 여자는 완성되지 않은 두루미를 만지작거리며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대꾸를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었기에 쿄지는 조용히 입술을 포개며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사실은 웃음이 나올 만큼 아파서 이딴 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자신을 주워 온 사람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얼마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귀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쿄지가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여자의 남자친구 겸 약혼자는 종종 머물다 가곤 했다.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콘돔 껍질이나 짙은 향수 냄새 따위가 남아 있었다. 여자와는 말로 정의된 관계인 것도, 질투 같은 감정을 가질 만한 사이인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럴 정도의 애정도 없었으므로 쿄지는 조용히 다녀왔다는 인사만을 남겼다. 불만은 없었다. 여자의 약혼자에게 존재를 보이지 않고, 떠나라고 할 때 나가면 된다. 그동안은 의식주를 보장 받는다. 그만큼 간편하고 쉬운 일이 없다. 여자는 무사히 입적했다. 지금껏 이혼하지 않았다면, 쿄지의 존재도 지워진 채일 것이다. 약지에 낀 약혼반지가 권태로워 야쿠자를 키우던 여자가 평범한 삶을 무사히 살아내고 있을지는 알 턱이 없었다.

일운 순조로웠다. 여자는 결혼과 함께 이사했고, 쿄지는 그 시기에 맞춰 집을 구했다. 일정 기간을 두고 한 번씩 이레즈미를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날개뼈로, 날개뼈에서 허리로 넓혀가는 일도 잊지 않았다. 살구색 피부와 잉크가 땅따먹기를 하듯 영역을 나눌 때, 쿄지는 내뱉지 못 한 신음을 식은땀과 함께 삼키며 스물의 충동을 후회했다.

3 우리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걷는 역 앞은 지난 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언제나 보는 풍경이지만 참 새삼스럽다. 사토미는 입김을 구름처럼 뭉쳐 뱉어냈다. 화려한 네온과 주정뱅이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정갈한 걸음 소리와 규칙적인 철길 소음만이 들렸다. 고작 여덟 시간 언저리의 차이라고는 믿기 힘들다며 하품을 하고선 기지개를 켰다. 몽롱한 정신에 맞이하는 햇빛이 기분 좋다. 사토미는 편의점에서 메론빵을 하나 사 먹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적당히 가방을 내려놓고 잠들고 싶었다.

부재 중일 것이라 생각했던 방 안에는 쿄지가 잠들어 있었다. 정장 재킷을 덮고 웅크려 잠든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와 마음이 놓였다. 사토미는 투명하지 않은 쿄지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커튼을 쳤다. 어두워진 시야가 시침을 잠시 되돌려놓은 것 같았다. 쿄지의 옆에 누워 얼마나 많은 미래를 더 볼 수 있을지 세어봤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메일함에 도착한 취업 관련 안내들을 지우고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눈을 떴을 때에는 정오를 한참 지난 뒤였다. 쿄지가 있던 자리에는 가지런히 개어둔 이불이 놓여 있었다. 음식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사람분의 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온기가 남아 올라오는 김이 영혼처럼 떠다녔다. 사토미는 하얗게 떠오르는 따뜻한 수증기를 손으로 잡았다. 기껏해야 흐트러진 물 분자 정도에 불과할 것들은 손 틈으로 쉽게도 빠져나갔다. 접시에 가지런히 올라온 계란후라이와 소시지 구이가 맛있어 보였다.

쿄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토미는 그 사실이 썩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물컵을 집어 들려 했다. 곁눈질로 훑어본 집안에는 쿄지 비스무리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토막 난 쿄지의 일부조차도.

한참 잠을 자 목이 건조했다. 겨울은 공기가 텁텁하고, 밤을 새운 뒤 청하는 수면은 유독 수분을 빼앗아 가곤 했으니까. 사토미는 차갑게 식은 물이 담긴 '요도가와 마라톤'의 기념 컵에 손을 뻗었다. 무언가 닿았다고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미안."

쿄지는 어느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사과했다. 형식적인 말인 듯하면서도 죄다 진심이 담겨 있어서, 사토미는 그 말들을 삼키기 버겁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목에 가시처럼 걸린 '미안해'가 속을 어지럽혔다. 입 안을 굴러다니던 쿄지의 목소리들이 둥글게 뭉쳐 혓바닥을 꾹 누른 탓에 사토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해요? 한 마디를 하지 못 해 예의 없이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괴고 밥을 뒤적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기 있어요?"

"응."

"안 보여요."

"응."

"밥 먹자."

"응."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만큼의 울림이었다. 사토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유하는 음식이라든지 젓가락 따위가 보이면 한숨을 쉬어버릴 것 같았다. 쿄지의 밥은 착실히 줄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식사의 주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꼭 쿄지를 죽여버린 기분이었다.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어떤 말을 꺼내든 쿄지를 탓해버릴 것 같았고, 변명 없이 미안하다는 대답을 들어버릴 것 같아서. 사토미는 침묵을 골랐다.

사토미가 테이블에 늘어진 접시와 밥그릇, 컵, 수저를 개수대로 가져갔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물티슈가 테이블 위를 깨끗하게 닦았고, 사토미는 그 사이에 설거지를 마쳤다. 쿄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무언가 정리되어 있고 또 고개를 돌리면 어딘가로 옮겨져 있을 뿐이었다. 사토미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테이블 위에 하얀 종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사토미는 의아한 눈으로 백지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이게 뭐예요?"

"내일 회장님이 이걸 제출하고 올 거야."

가운데 정렬된 가장 위 줄에는 '사망 신고서'라고 적혀 있었다. 두어 번 다시 읽었지만 그 사실은 변함 없었다. 서류가 말하기를, 죽은 사람은 건너편에 앉아 있을 나리타 쿄지였다. 여러 정보가 한데 모여 과부하가 오는 느낌이다. 사토미는 이마를 꾹 누르며 종이를 향해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겨우 입을 열었다. 청자가 눈에 담기지 않았다.

"쿄지 씨 죽었어요?"

"그럴 리가."

쿄지는 소리 내어 웃었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공허하게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질적이었고, 쓸데없었다. 사토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왜 안 보여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이건 뭐예요?"

"보이는 그대로. 사토미 옆에 있기 위한 선택?"

옆에 있기 위한 선택. 사토미는 그 말을 중얼거렸다. 죽어달라고 한 적은 없어요. 그 말을 내놓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뱉어낸 건 결국 '그걸로 행복해요?'였다. 쿄지의 행복을 고민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 쏘아붙일 수 없었던 건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붙잡아둘 수 없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있다. 알면서도 흐름을 맞추고 멈춰 서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붙이지 못 했다.

쿄지는 죽어버리기로 했다. 정말로 죽는 건 아니고, 서류상으로는 그랬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존재하는 일이 타인의 미래를 막는 부류의 인간도 있다고. 사람은 사람을 붙잡아둘 수 있다. 각자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 기꺼이 멈춰주면 된다. 쿄지는 그걸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여전히 내가 사토미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 옆에 있었으면 해?"

멈춰 서고 싶은 마음에 붙이는 이름이 뭘까. 사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쿄지의 표정이 보였다. 틀렸다. 멈춰 서고 싶은 마음에 이름 따위 없다. 지나치는 눈가의 모양이나 입꼬리가 말린 정도, 미간의 움직임 같은 것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한 일일 뿐이다.

쿄지는 죽기로 했고 더는 투명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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