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下, 魔法.
명운
당신의 능청스런 웃음이 사위를 점해간다. 흐드러진 꽃밭처럼, 그 향으로 온 세상을 덮어낸다. 또한 장난스런 질문에는 픽 웃으며 대답을 뭉개었다.
“자네 꽃잎이-”
제게로 숙여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본의 아니게 당신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그런 당신을 눈치채곤 멋쩍게 웃었다.
“화우동산이로다.”
“화락연불소월명애무면이라.”
“내 자네 탓에 오늘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
중얼거리듯 읊어낸 짧은 한시는 장난스러웠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솔직한 명의 감상이었다. 점차 꽃비가 멎어들고, 고요한 풍경만이 둘을 감싸안았다. 입술을 달싹이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웃는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듯, 편안히 웃으며 당신을 응시한다.
“사랑스러운 달에 잠들지 못하는 것은, 달빛이 닿은 구름인 것을.”
여전히 저를 향해 몸을 숙인 채로, 제 시구에 화답하듯 당신은 말했다. 일만년의 시간 동안 무엇이 그리 두렵고 아파 그리도 많은 이들을 밀어냈던가. 떠나갔던가. 이별이 아픈 것은 만남이 있음이라, 명은 더이상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다. 명은.
당신의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실소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당신의 양 볼이 발그레해지고, 제 콧등을 향해 뻗어지던 손이 볼가를 부드럽게 감싸쥐면 조금 굳는다. 이 다음의 것을, 이어질 행동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경험하지 못 한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도 이만큼의 마음을 건네었던 적이 있던가. 짧은 순간 당신과 보낸 시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달밤이 부린 마법인지, 온 사방에 가득한 꽃향에 취한 것인지. 다가오는 당신을 밀어낼 수 없었다. 밀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내 월태화용에 취하였다, 그리 생각해주겠는가.”
당신의 눈꺼풀이 느른히 닫히며, 더욱 가까워지는 거리에 덜컹, 하고 찻상이 밀려난다. 반사적으로 조금 물러나 뒤를 짚지만, 이내 다가오는 당신을 받아들인다. 다시 반대 손까지 제 볼가를 덮어내면 잔뜩 굳어 눈을 감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당황한 손은 땅 짚은 반대쪽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당신의 머리 뒤쪽을 어색하게 덮어낸다. 채 감지 못한 시야 가느다란 당신의 선으로 가득하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제 목 언저리를 간지럽히고, 자연히 들린 고개에 당신을 똑바로 마주한다.
입술에 말캉한 감촉이 닿고, 그제서야 명의 눈은 꼭 감긴다. 입맞춤은 모란의 향이 났다. 아니 그것은 차향이었을까. 맞닿은 입술 사이로 열기가 짓쳐든다. 잔뜩 긴장해 굳어버린 명은 숨조차 멎어버린 듯이 그저 당신의 몸짓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 다음엔 무엇을 해야 했던가? 눈을 감아야 하나? 떠야 하나? 이 이상은 무례인가? 내가 어찌 감히- 하는 쓰잘 데 없는 생각을 이것저것 넘겨대며 참은 숨에 낯빛이 조금 붉어지기도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떨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못내 아쉬워 조금 당신을 따라 고개를 움직인다. 그것도 잠시, 꼭 감았던 눈 열고 참았던 숨 뱉어내며 아직 가까운 당신을 응시했다. 붉어진 낯은 참은 숨 탓인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은 명의 것 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가까운 둘 사이로 또다시 열기 섞인 숨이 얽혀든다.
아까까진 분명 잔뜩 굳어있었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명이 아니었다.
“... 반칙 아닌가.”
대뜸 부루퉁하게 중얼거리곤, 당신의 머리 뒤쪽에 놓인 손에 약하게 힘을 주어 다시 당신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장난스레 히죽 웃지만 상기된 얼굴 탓에 부끄러워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경험은 없어도, 본 것이 많아 말일세.”
하며 당신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인다. 조금 날카로운 제 이로 아프지 않을 만큼 잘근거렸다. 그에 흠칫 떠는 당신이 꽤 귀엽다고 생각하며 픽 웃음을 흘렸고. 그러다 귀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코 끝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연신 입을 맞춰댄다. 으레 호랑이들이 제 영역을 표시하듯이, 명은 당신의 곳곳에 제 흔적을 남기려는 듯 입을 맞춰대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당신의 코 끝에 제 코를 비볐다. 또한 깊은 숨을 내쉬곤, 다시 히죽 웃는다.
짚었던 손 들어올려 당신의 허리 께를 붙잡고 살짝 밀어낸다. 반대로 기울어지는 두 인영은 넘어지기 전에 단단히 붙잡은 손에 멈춰선다. 머리쪽의 손에 당신의 머리칼이 얽혀 흘러내리고, 앞전과는 반대로 명의 흰 머리칼이 당신의 연홍색과 섞여들었다.
“아름다운 달빛은 꼭 요상한 마법을 부리더군. 이렇게 말이야.”
조금 멀어져 있던 낯을 내려 당신의 목덜미를 또 약하게 잘근거린다. 날카로운 이빨이지만 힘은 들어가지 않은 덕에 조금 까슬한 감촉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니 이는 달빛 때문이라네.”
그리 속삭이곤 낯을 들어올려 다시 당신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부드러운 당신의 입술을 연신 잘근거린다. 단단히 받힌 손은 당신의 머리를 지탱하고, 허리에 닿았던 손은 당신 뒤쪽의 벽을 짚어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했다. 찻상의 차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정 마시고 싶으면 다시 우려내면 그만이었다.
정직하게 닿았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다시 윗 입술에 닿기를 몇 번, 명은 고개를 기울여 당신에게 묻는다.
“... 세간에서는 이리 입술만 맞추지는 않는다던데. 이 다음은 내 할 줄을 몰라서 말이야.”
멋쩍게 웃는다. 보기만 한 것으로는 이리 따라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입술을 교차시키던가. 사이로… 혀가 얽혀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시도하기도 영 내키진 않았고. 못내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당신의 콧등에 입을 맞추곤 천천히 떨어져간다. 당신과 눈을 맞춘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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