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명운
“만년이나 살아놓고 그런 것도 모르는겐가.”
바보. 하고 덧붙여지는 말에는 다시 멋쩍게 웃는다. 목 뒤를 간질이던 손이 입가로 내려오면 또 어색하게 굳어버린다.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지만, 당신의 손길에 천천히 입가를 벌려내었다. 입 안의 살덩이에 닿는 손끝의 감각이 요상했다. 조금 간지러운가 싶다가도, 꾸욱 눌러지는 감각에 흠칫 몸을 떨기도 했다. 이미 붉어진 볼가에는 열감이 가득했고, 벌려진 잇새로는 달뜬 숨이 새어나왔다. 숨겨내려 노력하여도 한껏 부풀려진 꼬리는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여실히 드러내었다.
“뭐… 모르니 더 좋은 것 같긴 하군.”
한 번도 본 적 없던 당신의 표정이 저를 마주하니 괜스레 더욱 부끄러워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려다가도, 연신 곁눈질로 당신을 살피었다. 어차피 돌려도 여전히 입 안에 자리한 손가락 탓에 조금 돌아가다 말기도 하였고. 점차 다가오는 낯에 질끈 눈을 감는다. 손가락의 조금 딱딱한 감촉이 아닌, 더욱 낯선 말캉한 무언가가 제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살?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게도 당신의 혀라는 것을 직감했다. 처음 맛보는 타자의 혀끝은 어딘가 달큰했다. 조금 꽃향이 나나 싶기도 했고. 이내 입 속을 함께 채우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다시금 제 목 뒤를 감싸낸다.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명은 온 몸으로 느껴지는 당신의 부드러움에 점점 망부석마냥 굳어갔다. 느껴지던 온기가 더더욱 가까워지고, 맞닿은 입술 사이로는 더한 열기를 품은 숨이 새어나왔다. 이 숨결이 제 것인지, 저와 맞닿은 당신의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제 몸에 닿는 것들이 온통 뜨거워 생경하기 그지없어서.
입 속의 살덩이는 천천히 움직여 조금 날카로운 이빨들을 문질러댄다. 맹수의 민감한 감각은 그 움직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뇌리에 전달한다. 혀끝에서 시작해 혓바닥으로. 이내 더욱 달라붙어 벌어졌던 입술 사이에 조금의 틈도 남지 않을 만큼. 얽히는 살덩이가 만들어내는 농밀하게 외설스런 소음마저도.
느껴지는 감각이 간질거릴 때 마다 늘상 살랑이던 등 뒤의 꼬리는 빳빳하게 하늘을 찔러댄다. 제 것임에도 제 것이 아닌 양, 제 멋대로 움직여대는 꼬리가 이리도 원망스러운 날은 오늘이 처음이렸다.
그 작은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타액이 점점 입가를 적셔내면, 느리게 떨어지는 당신에 슬며시 눈을 뜨기도 한다. 이제 끝인가- 싶어 참았던 숨을 내쉬지만, 다시금 제 입술에 닿아오는 당신에 급히 들이마쉰다. 하필이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사위가 당신의 숨소리조차 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명의 귓가에도 전해진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이리도 외설스레 들릴 일이던가? 잠깐의 고민을 하기도 잠시, 들려오는 당신의 말에 괜스레 흠칫- 하고 몸을 떨기도 했다.
“그래, 처음 겪는 다음 단계의 입맞춤은 어떠한가.”
개구진 표정과 함께 느릿한 미소가 저를 응시하면 아직 풀리지 않은 긴장과 함께 조금 어눌한 듯한 목소리가 달뜬 숨과 함께 새어나온다.
“... 그런- 그런 것을 물어도-”
하아- 하고 뱉어지는 숨은 여전히 열기가 가득하다. 기껏 열렸던 입술에 다시금 짧게 입술이 맞춰진다. 그 탓에 나오던 말은 금새 끊기었고. 당신의 손길이 제 목에 닿으면 한껏 민감해진 몸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연신 흠칫거린다. 자연히 흰 꼬리도 그 한계를 모르고 털을 부풀려대었다. 결을 따라 움직이는 손길이 떨어질 때 쯤, 제가 그랬던 것 처럼 목덜미에 제 입술에 닿았던 것이 맞닿으면 조금 억눌린 소리가 잇새에서 새어나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명에게 있어 당분간의 잠시는 그 평생만큼 길게도 느껴졌다. 늘어지는 타액이 당신과 제 목덜미를 잇다가 끊어지면, 시선 아래로 보이는 당신이 더욱 외설적이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잠시, 달뜬 숨을 몰아쉬며 한껏 긴장으로 굳은 몸에 조금씩 힘이 풀려갈 때 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던 꼬리가 다시금 부드럽게 살랑일 때 쯤. 당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달빛이 아니라… 자네에게 홀렸나 봐.”
명이 괜한 달빛의 탓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여실히 솔직하게도 제 마음을 드러내는 당신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자네가 그리 말하면 내 할 말이 없질 않은가.”
조금 곤란하게 웃어보인다. 당신과 같이 온통 붉게 물든 낯은 당연하게도 같은 마음을 품어대었다. 제 허리를 안고 가슴팍에 고개를 묻은 당신을 가만히 내려보다 당신의 연홍색 머리칼에 저도 고개를 묻는다. 줄곧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풀린 탓일까, 천천히 몸을 돌려 마루에 등을 대고 눕는다. 당신을 제 품에 안은 채로.
고요하던 사위에 하나 둘 눈송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흰 꽃잎 사이로 차가운 것이 자리한다. 앞선 꽃잎이 그러했듯이, 눈송이도 명의 콧등에 살포시 내려앉으나 그 열기에 금새 녹아내려 사라지고 만다. 당신이 부린 것임을 앎에도 퍽 낭만적인 풍경이라 여기며 여전히 제 품에 붙박힌 듯 자리한 당신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제 손길을 따라오듯 일으켜지는 몸에 고개를 들어 당신을 마주본다. 일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표정이던가. 가령 사모하는 사내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라거나.
“명.”
조용하게 저를 부르는 당신에 마주 미소짓는다. 그러다 이어지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 반사적으로 동공을 한껏 부풀린다.
“아무래도 내가 자네를 연모하는가 보아.”
연모.
만 년의 시간 동안 처음 들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한사코 밀어내도 다시 끈질기게 다가오던 이들은 있었고, 또한 명은 지독하게도 그들을 멀리 밀어냈던가. 다만 그들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명의 표정도 당신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을까.
“... 내 듣기로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런 말을-”
장난스레, 혹은 짖궂게 웃으며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이 당신의 얼굴에 제 낯을 가까이 붙여댄다.
“여인에게 하게 하는 사내는, 최악이라던데.”
당신의 귓가에 속삭인다. 이리 속살거릴 때 마다 빼놓지 않고 흠칫 떨리는 당신이 썩 깜찍하다는 생각을 속으로 삼켜내었다.
“이리 최악인 사내에게 어찌 그런 말을 내뱉는가.”
귓가에서 달싹이던 입술을 다시 당신의 볼가에 쪽- 소리가 나게 맞춘다. 이번에는 살랑이던 꼬리도 부드럽게 당신의 허리께를 감아댄다. 그리고 조금 내려와 입을 맞추고, 당신이 그랬던 것 처럼 두 입술 사이로 제 혀를 밀어넣는다. 자연스레 벌어지는 당신의 잇새로 천천히 그 속을 채워낸다. 혀 끝으로 그 안을 탐색하듯, 당신 가득히 제 흔적을 남기려는 듯이.
혀 끝에서 혓바닥으로, 다시 혀 끝으로. 입천장을 쓸다 어금니 너머로. 얽히는 살덩이 사이 섞이는 타액은 살짝 열린 틈으로 어느 때보다 외설스런 소음을 자아내었다.
그렇게 한참을 숨 쉬는 것도 잊고 당신을 탐하다, 참던 숨 차는 줄 모르고 켁- 하며 붙였던 입술 떨어뜨린다. 그제서야 몰아쉬는 숨결 사이로 못내 아쉬운 듯 얽히던 타액이 호선을 그리며 늘어지다 조금 뒤에 끊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최악의 사내도-”
빙그레 웃으며 다시 가볍게 입 맞춘다.
“자네를 연모하게 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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