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思花
이룰 수 없는 사랑_비아체 유리의
과거에, 어느 치기 어린 소년이 있었다.
“나는, 꼭… 강하고 멋진 해적이 되어서. …꼭 너한테 고백할 거니까 말이야!”
“정말로?”
“거짓말이겠나? 나는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거짓말 안 해.”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은 당당하게도 말하며 어여쁘게도 곱슬진 벚꽃색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수줍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허락 없이 감히 손을 댈 수도 없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 잡아도 괜찮아?”
노을 진 하늘을 뒤로 한 채 여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년, 아니 청년은 그 연하면서도 거친 손으로 그녀의 손이 보석이라도 되는 마냥 조심스럽게 들어 손등에 입을 맞췄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강해질 거야. 네가… 어느 곳에 있든, 강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올 테니까. 그때는…….”
답을 들려줘, 루즈. 청년의 말이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루즈, 라고 불린 여인은 싫은 기색 없이 웃으며 흩날리는 녹발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말했다.
“네가 돌아온다면. 의 이야기겠지. 유리?”
“난 도망 안 쳐. 아직도 날 모르는 건 아닐 텐데?”
“그건 멋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몸을 가장 소중히 하도록 해. 알았어?”
“누구 말씀이신데. 당연히 들어야지.”
유리는 그제야 꿇은 채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루즈의 시선이 아래에 있었다가, 그 몸짓에 따라 시선을 올렸다.
“다녀올게. 루즈. 이제 찬 계절이 올 테니까……. 건강 조심하고.”
“나보단 네 걱정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 …이런. 뱃사람의 인사는 되도록 짧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 시점에서 유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두고 가는 인연이, …미련이 생겨버리니까. 유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시원하게 웃음을 지었다.
“바람이 차. 난 이제 출발할테니까.”
루즈의 마지막 말을 들을 틈도 없이 유리는 소형선으로 뛰어내렸다. 듣지 않은 이유는 그다지 큰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이러다간 영영 마을에서 벗어나질 못할 것 같아서. 미련에 잡아먹힐 것 같아서, 고작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한 청년의 바다 생활이 시작되었다.
*
청년은 그렇게 쉴 새 없이 항해했다. 혼자 항해를 하면서도 길 한번을 잃지 않았고, 종종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졌으며, 싸움도 하면서 다른 이들보다는 순탄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문도 종종 확인하는 여유를 가지며 자신의 고향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생기고, 가족이라 부르며, 인생의 오르막길만을 걷고 있었다. 앞을 알 수 없는 이 험하고 두려운 바다에서, 두려움 없이. 청년은 그렇게 성장했었다. 그리고, 어느 섬. 전보 벌레를 기르고 꾸미는 것이 업인 아기자기한 섬에 도착했다. 바다 너머까지 단숨에 전보를 연결해줄 수 있다는, 거대한 전보 벌레가 눈 앞에 있었다.
청년은 이 시점에서 젊은 나이에 억대의 현상금을 단 해적이었고, 당연히 그 소식은 고향에 닿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적으로 고향에 편지를 보낸 것은 적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목소리나 그 필기를 마주한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안부에 대한 것이 궁금했던 마음도 있었으니,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먼저 고향 친구에게 전보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떨어지고, 답지 않게 조금 긴장했을 무렵.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아, 마티스? 나야. 나. 유리.”
“…비아체 유리?”
“아~ 그 이름으로 듣는 것도 오랜만이구만. 잘 지내? 그… 루즈도?”
수화기의 너머에선 어쩐지 침묵만이 감돌았다. 무서울 것이 없던 억대의 해적은 순간, 그 정적이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마티스? 말하고 있는 거 맞지? 하하, 너무 멀어서 그런가. 잘 안 들리는 것 같.”
“너, 절대로 마을로 돌아오지 마. 개새끼야.”
“어?”
“돌아오지 말라고. 썩을 해적놈아. 돌아오면 그 즉시 망치로 머리를 부숴버릴 테니까!!”
울분이 터진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흘러나왔다. 동시에 거칠게 탁자 따위를 내리치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유리는 심장이 저 끝까지 떨어지는 감각에 수화기를 애써 들며 말했다.
“무, 무슨 일 있어? 왜? 해적이 마을을 습격하기라도 한 거야? 다들, 많이 다쳤어?”
“…다 죽었어. 다 죽고 다쳤다고, 그 망할… 망할 해적때문에!! 그 녀석만 오지 않았다면… 모두는, 루즈는…….”
유리는 들고 있던 팔을 떨어뜨렸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그 섬은 안전할 텐데. 배로 15분 걸리는 거리에 해군 기지도 있단 말이야. 유리는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었다. 끝맺지 않아도 알아버린 그 차가운 사실이 너무 아파서.
“아…윽, 아아― 아아악…!!!”
억대의 강인한 해적이 다 뭐라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 하나 못 지킨 놈 주제에. 유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오열하고, 제 몸을 쥐어뜯었다. 피가 나는 건 고작 피부일 뿐인데, 온갖 장기가 뜯어져서 바닥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걸어 도망쳤고, 그녀가 살았던 곳과 비슷한 언덕의 절벽에 걸터앉았다. 히비스커스가 잘 어울리던 사랑을, 대체 누가 그 생명을 꺾어버렸는가. 만일 자신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 섬에 오랫동안 살았더라면……. 후회와 미련만이 몸을 가득 채웠다. 온몸의 피가 전부 쏟아지고, 그 혈관을 후회가 채운 것 같았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일어섰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일어났고, 지는 해를 배경으로 광기 어린 채로 걸었다. …아직. 복수하지 못했다. 죽은 녀석이라도, 그 이름 자체를 지워버려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복수가 끝나고 나면. 자신도 죽을 셈이었다.
이 섬은 전보 벌레를 기르고 가꾸는 섬. 전보 벌레가 가장 많이 발달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숨은 정보의 섬. 유리는 미친 사람처럼 걸어 정보상을 찾았다. 주머니에 있던 금화 주머니를 털어 탁자에 내던지며, 그 분노를 오만함으로 포장해 내뱉었다.
“사우스 블루, 바테리라. 근 5년간,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아는 것, 전부 말해.”
“…그런 작은 섬의 일까지는 모릅니다만. 해군이 사우스 블루 전체를 쓸었습니다. …해적왕의 자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바텐더, 정보상은 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말했다. 그 말에는 고저가 없었고, 그저 사실만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유리 자신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유리는 그 말을 듣고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 일에 휩싸이다니, 말도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부정했다. 그야, 자신을 기다려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실은 그 애정이 사랑하는 이가 아닌,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향한 애정이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사실을 부정했다. 다른 해적일 것이라, 확신을, 어찌 보면 사실을 부정했다.
유리는 가게를 나왔다. 문에 달린 종이 맑은 소리를 내고, 그것을 뒤로한 채 정처 없이 걸었다. 손이 닿는 피부가 전부 까졌음에도 아프지도 않은 듯 그렇게 걷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파이로.”
이 녀석이라면, 그 작은 섬의 정보라도 놓치지 않고 있겠지. 하물며 그 해적왕 로저의 행적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유리는 광증에 걸린 사람처럼 웃으며 파이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나만. 하나만 알려주라. 절대……. 절대 그런 일 없겠지만……. 중요한 일이야. 이건… 가족 사이의 부탁도 아니고… 의뢰야, 파이로.”
그러니까, 제발 확신하게 해주라. 내 사랑이, 복수할 수도 없는 상대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고. 그저 어중이떠중이 해적들이었다고, 지금이라도 복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해주라. 유리는 믿지 않던 신이라도 붙잡아가며 그렇게 빌었다.
“내 고향 섬. 바테리라에… 해적왕이, 출입한 적… 있나?”
“그건 유리 네가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의 의뢰가 아닌 것 같은데?”
“…내 목숨을 걸어서도?”
침묵, 그것은 암묵적인 긍정이었고, 그걸 모를 정도로 유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무너지지도 못하고, 제 형제를 놓아주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시간… 뺏었네. …미안.”
그는 모든 힘이 빠진 사람처럼 걸었다. 해변으로, 해변으로, 해변 길을 따라 그 길의 끝이 나올 때까지 걸어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 한 번 떨어지는 기억이, 감정이 터져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그렇지만 그의 슬픔은 가시질 않았으며, 그가 사랑하는 이 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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