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SP(왕자님 구하기),

(1)

왕자님은 나쁜 마왕에 의해 탑에 갇혀 있다. 나는 여기사로서 그를 구해야만 한다.

동화 같은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나는 은우가 감금되어 있는 ‘타이탄 헤이븐’ 빌딩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타이탄 그룹의 본진이라, 보안도 그만큼 살벌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뚫으려 했지만 역시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다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우선 진입부터가 난제였다. 경비원들에게 ‘한번 구경하러 왔어요.’하고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은우를 데리고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룹을 표방하는 그들은,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싶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썩어나는 돈으로 보안에 힘썼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곳에서 은우를 구하는 일을 나 혼자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을 모집했다.

(2)

우선은 ‘오퍼레이터’다. 우리가 행동에 나설 때, 뒤에서 백업해 주면서 상황을 브리핑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는 ‘유진’이 제격이었다.

그녀는 평소 히트맨들의 오퍼레이터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런 일에는 아주 도가 텄기 때문이었다. 언뜻 몸값이 아주 비싼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녀가 팀원 중에 영입하기가 제일 쉬웠다.

“샤넬 백 줄게.”

“그럼 OK.”

그녀의 취미가 가방 모으기라서 다행이다. 그녀로서도 일회성 프로젝트에 깐깐히 보수를 요구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 오퍼레이터는 구했고, 다음은 ‘어썰트’다.

빌딩에 진입했을 때, 난전이 발생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혼란을 잠재울만한 실력자가 필요했다.

‘박철’은 PMC 기업인 블랙워터 소속으로, 전투에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그를 빼 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3)

박철은 나를 보고는 무슨 벌레 보듯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필요했기에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의 커리어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타이탄 헤이븐 빌딩을 소수 인원으로 돌파한다고? 커리어고 나발이고,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아요. 일단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아실 거예요.”

나는 그러면서 그의 귀에 대고 프로젝트 SP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원칙적으로는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안 되긴 했다.

하지만 첫째로, 살을 주어야 뼈를 취할 수 있는 법이고 둘째로, 나는 그를 확실히 영입할 자신이 있었다.

예상대로 내 말을 듣자,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는걸?”

“그렇다니까요. 저라고 괜히 목숨 내다 버리고 싶겠어요?”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4)

마지막으로는 ‘해커’가 필요했다. 해커는 헤이븐 빌딩의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실력자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딱 한 명 있었다.

‘어나니머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모든 보안을 뚫고 장난 메시지를 남기는 걸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만, 나는 굳이 그와 직접 대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자신의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딥웹에 접속해서 ‘헤이븐 빌딩을 해킹할 수 있는 사람 구함.’이라는 쓰레드를 올렸다. 다행히도 어나니머스는 내 글에 반응을 해주었다.

“그거 진짜 할 거야? 쉽지 않을 텐데.”

“당연하지. 가능해?”

“물론이지. 나를 뭐로 보고.”

“좋아. 그럼, 팀 메신저에 접속해 줘.”

“헤이븐은 언제 한번 털고 싶었는데… 잘됐네.”

이걸로 모든 팀원은 모였다. 남은 것은 ‘나’밖에 없었다.

(5)

나는 거울을 보았다. 팀원들을 영입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초췌해진 내가 있었다.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혹시나 실패하면 어쩌지’란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이미 그것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예상한 바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은우가 영원히 그곳에 갇히는 것은 끔찍했다.

정신차려!

나는 양손으로 볼을 세게 ‘탁!’하고 쳤다. 이제 팀원들도 모였고,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나는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여어. 이제 시작할 거야?”

박철이 볼에 손자국이 난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오랜 전쟁을 겪은 것치고, 그는 언제나 미소 짓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당연하죠. 그 전에, 어나니머스는 접속해 있나요?”

내가 메신저에 채팅하자, 그는 OK 사인을 보내주었다. 좋아. 그러면 더 지체할 필요는 없지. 나는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브리핑을 부탁해요.”

(6)

“헤이븐 빌딩은 이미 알다시피,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한 곳이야. 입구부터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지. 사원들도 공항검색대 수준의 검사를 받아야만 하거든. 하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않을 거야.”

“그러면?”

박철의 말에, 유진이 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렸다.

“우리는 위에서부터 공략할 거야. 여기는 맹점, 그야말로 감시의 시선이 들 한 곳이거든. 물론, 이곳도 보안은 되어 있지만 다행히 일반 경비원은 없어.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훨씬 낫지. 그리고 우리는 세계 최고의 해커를 가지고 있잖아?”

그러자 어나니머스가 웃는 이모지를 보냈다.

“일단 옥상을 뚫고 밑으로 진입하자.”

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헤이븐 빌딩의 세세한 정보를 읊어주었다. 내가 정보를 구해준 탓도 있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훨씬 자세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역시 실력자는 다르구나. 나는 감탄하면서 그녀의 브리핑을 들었다.

(7)

빌딩에는 대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헬기의 고도를 더 높여야만 했다.

“이 정도면 되었나요? 마스터?”

가문이 몰락했는데도 충실히 곁을 지키고 있는 태진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고공 낙하는 많이 해봤어?”

박철이 내게 말했다.

“취미로 몇 번 정도요.”

“그럼 문제없겠지. 중요한 건 자신감이거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시 후, 아저씨의 신호를 시작으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강한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높은 고도에서 강하하는 것은 그의 말대로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니까.

나는 대공포에 맞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옥상에까지 접근한 다음, 낙하산을 펼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무사히 그곳에 착지할 수 있었고, 잠시 후에 박철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곁에 내려섰다.

(8)

옥상에는 유진이 말한 대로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귀에 꽂은 이어셋을 통해 어나니머스에게 말했다.

“옥상 문을 열어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끄덕인 후, 문을 열고 헤이븐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해킹으로 인해, 그들의 감시 시스템에는 우리의 모습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아니라면 이미 옥상에 도착했을 때부터 난리가 났을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다.

우리는 가방에서 타이탄 그룹의 유니폼을 꺼내고는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들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눈치챈 후에는 이미 늦은 뒤일 테다.

우리는 태연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다행히도 다른 직원들은 바쁜 모양인지 우리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은우가 갇혀 있는 층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기에,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그가 갇혀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9)

“불안한데.”

“뭐가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내 경험상, 그럴 때는 항상 문제가 터졌거든.”

나는 그의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가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는,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경비원들을 보게 되었다.

“무기 버리고 손들어!”

작전이 새 나간 것일까? 아니면 어나니머스가 시스템 장악에 실패한 것일까? 우리의 잠입이 어떻게 들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Plan-B를 준비해 두었다. 박철은 손을 들면서 주머니에 있는 물체를 던졌다. 섬광탄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것이 수류탄으로 보였을 것이다.

“엎드려!”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채 전에, 섬광탄이 폭발하며 빛을 뿜었다.

‘삐이-’

아무리 수류탄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폭발하는 것은 큰 충격을 동반했다. 이명 음이 들리는 것을 보면.

(10)

경비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갔다.

“유진씨, 어디로 가야 하죠?”

“우측으로 꺾어요! 다음에는 좌측으로!”

복도는 미로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말을 나침반처럼 여기며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새 경비원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대응사격을 했다. 그는 프로답게 총을 쏠 때마다 경비원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그는 큰 결심을 한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너는 왕자님을 구하러 가!”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넌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야. 어썰트는 바로 나잖아?” 그러면서 그는 가방에서 무선 로봇을 꺼내, 그것을 조종해 그들 앞에서 폭파시켰다.

“지금이야!”

그의 신호에 따라 나는 은우가 갇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11)

오퍼레이터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나는 무사히 은우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의 문을 열자, 기다리던 은우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뛰어가려다가, 그의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타이탄 그룹의 총수였다.

“환영한다, 가희양. 어릴 때 보고는 참 오랜만이지?”

“닥쳐! 네가 우리 그룹을 망하게 했잖아!”

“오, 그렇게 생각하지 마. 경쟁에 밀린 것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더러운 수법을 썼으면서…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은우를 내놔!”

“그럴 수는 없지. 왜냐하면 이 남자는 우리의 중요한 핵심 축이거든.”

“어째서? 그가 대체 무슨 힘이 있길래…”

그러자 그가 뭐가 웃기는지 껄껄 웃어대었다.

“정말 모르는 거야?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였으면서?”

그는 그러면서 은우를 붙잡았다.

“그는 예지력이 있거든.”

(12)

“예지력…?”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모르는 눈치군. 무리도 아니지. 이 녀석이 너에게만은 철저히 숨기려고 했을 테니까.”

“어째서?”

“그러면 너와 친구가 되지 않을까 봐서? 글쎄, 난 잘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그는 나의 소유물이라는 거야. 그리고 네 녀석이 올 것도 미리 예지를 해주었지.”

“그러면 우리가 준비한 것도 모두?”

“그래. 얼마나 웃기던지. 네 나름대로는 애썼겠지만, 이제 그 놀이도 끝이야. 너는 여기서 죽는다고 그가 예지를 해주었거든.”

그는 그러면서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누었다. 나는 그것에 식은땀을 흘렸다.

나라고 아무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기를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대로 난 죽는 건가?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13)

이상하게도,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죽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살짝 떴다. 그러자 타이탄의 총수와 실갱이를 하는 은우가 보였다.

“죽는 건… 바로… 네 녀석이야…”

아까까지는 인형처럼 죽은 듯 서 있던 그가, 갑자기 희건과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었다.

“어떻게? 분명 약물에 절여 놨을 텐데?”

“이 순간…만을 위해서 견뎌온 거다!”

은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가진 총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그는 희건이 우발적으로 당긴 총에 의해 배에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제길… 앞으로 우리 타이탄 그룹을 책임 질 인재가! 빌어먹을!”

희건은 정말로 화난 듯, 나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 예의 그 권총을 나에게 향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14)

“아아. 시스템 모두 장악 완료. 그러면 왕자님과 공주님을 구해보실까요~?”

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죽는 일은 없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더니, 타이탄 그룹의 총수가 앞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놀라서 총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에는 헬기에 타고 있는 박철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나는 은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복부에 피를 흘리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를 ‘해병대식 부축법’으로 그를 들어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공주님 안기’를 하고 싶지만 이게 힘이 약한 내가 다친 그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 어서 이쪽으로!”

박철이 그렇게 말하며 사다리를 내가 있는 쪽으로 내렸다. 덕분에 나는 헬기에 탈 수 있었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시죠!”

마스터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15)

“괜찮아?”

나는 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씨익 웃었다.

“남자는 이런 걸로 죽지 않아…”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그의 부상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가 애써 참고 있는 것임을, 나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예지력이 있다면서 바보야… 이런 거 하나도 예지 하지 못해?”

“그래야 네가 사니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걸…”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팔을 들어 올려 나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 바람에, 그에게로 쓰러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입맞춤.

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나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그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지막 키스야.”

그 말에 감동한 것도 잠시, 은우가 갑자기 콜록거리더니 피를 토해내었다.

“사랑해... 안녕.”

(16)

“사랑놀이에 껴들어서 죄송한데, 아직 죽었다고 판정 난 건 아니거든요?”

유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은우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유진 씨, 이런 것도 할 줄 아세요?”

“저를 뭘로 보고. 뒤에서 앉아만 있는 여자로 보였나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응급처치는 끝났어요. 당신의 왕자님은 죽지 않아요.”

길다면 긴 치료가 끝나고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나는 왠지 눈물이 나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의 눈가를 훔쳤다.

“여자는 이런 일로 우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거참, 재밌구만.”

박철이 그런 우리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잠시 후, 헬기는 미리 연락해 놓은 병원 옥상에 착륙했다. 곧, 의료진들이 나와서는 은우를 병상에 실어 날랐다.

“수고했다.”

박철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그 말에 한 번 더 눈물이 나왔다.

(17)

은우가 완전히 낫기까지는 한달 정도 걸린 것 같다. 나는 그동안 그의 곁에서 병간호를 해주었고, 그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자초지종은 이랬다.

은우는 어릴 적 나와 만났을 때부터, 자신이 나와 깊은 사이가 된다는 것을 예지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억눌렀다. 왜냐하면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를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혹시나 자신이 일부러 접근했다고 오해할 까 봐, 나에게는 예지 능력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나는 잘나가는 그룹의 영애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문이 몰락하게 되고,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졌기에 그는 나에게 비밀을 말하려고 했다. 자신이 납치되어서 그럴 수는 없었지만.

“바보야, 그러면 그것도 예지해서 피하면 되었잖아.”

“하지만 그 미래로 가야만 너희 가문을 다시 살릴 수 있었거든.”

“무슨…?”

그는 내 말에 아무말 없이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18)

뉴스에서는 타이탄 그룹이 이제 가희 그룹으로 사명을 바뀌어서 다시 시작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러니까 내 이름을 따서 말이다.

“이게 어떻게?”

내가 놀라는 사이, 태진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가희 그룹이라니?”

“아, 소식을 들으셨군요, 아가씨. 마침 그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게 하지 않으려고 미처 말씀 못 드려 죄송하군요.”

태진 아저씨는 내가 은우를 병간호하는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결국 타이탄 그룹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병기라 할 수 있는 은우의 예지력 덕분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바보야… 넌 진짜 바보야…”

그러니까 은우의 모든 행동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그에게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19)

“회장님! 이 건은 어떻게 해야…”

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희 그룹의 회장으로서 말이다.

박철 씨는 그룹의 경비대장으로 고용했다. 전에 있던 곳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약속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유진 씨에게는 샤넬이 아니라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을 쏟아부었다. 입이 완전히 귀에 걸리던데?

어나니머스는 늘 하던 대로 딥웹에 다시 잠수를 탔다. 마지막으로 엄지척 이모지를 보낸 거 보니 우리 일이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은우는 현재 나의 곁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 나는 때때로 그의 예지력을 빌리고 싶었지만, 꾹 참는 중이다. 내 힘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데 우리 결혼은 언제 해? 그것도 정해져 있어?”

“그… 그건…”

그가 망설이자, 나는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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