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인간의 세계에 온 지 백 일이 넘었어요. 이곳의 사람들은 백 단위의 숫자를 기념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알고 있지요?

그는 정갈한 글씨로 편지의 첫머리를 적어냈다. 이곳 사람들의 언어도, 글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언문은 그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었다. 말과 글을 알아야 적응이 빠르니까.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 있기 마련이라, 그는 이미 수아의 나라가 아닌 타지의 글자에도 관심을 크게 갖고 있었다.

무작정 당신을 따라 들어온 세계에 나는 익숙해져야 했어요. 주위에는 새로운 것들 뿐이고, 저는 그야말로 백지였어요. 생각보다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정보를 몇 초 만에 공유하더라. 무언가 알고 싶으면 책을 찾아보거나 서신을 기다리거나, 또는 떠도는 소문에 기대야 했던 예전과 달랐다. 그만큼 정보의 확산과 변경이 용이하여 굳게 믿었던 사실이 하루이틀 만에 뒤집히기도 하였다. 인간들은 변화가 익숙한 듯 했으나 이방인인 그에게는 숨가빴다. 그 중에서도 그가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은 행성 명왕성이었다. 발견 이후 행성 -그 정의부터 이해하기 꽤 어려웠다-으로 간주되었으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 퇴출되어 왜소행성으로 분류했다더라. 신기했다. 인간들은 기준을 만들고 또 그 기준을 언제든지 뒤집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바뀐 역사가 수천 번.

배우는 건 늘 즐거웠고, 무엇보다 당신이 곁에 있어 주었으니까요. 이제는 글도 잘 쓰죠? 다 수아가 가르쳐준 덕분이죠. 나는 새로운 걸 매일매일 알아갔는데, 가장 놀랐던 건...

인간의 기준 하에 수천 번 재구축된 역사, 변화를 거듭하는 세계의 중심에 수아가 있었다. 그는 제게 사랑이란 마음을 처음으로 일깨웠던 수아를 생각한다. 인간이 감정을 정의내린 후 사랑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가들이 사랑을 설명하려 노력했던 흔적을 그는 살펴보았다. 사랑을 저주하든 찬미하든, 인간은 사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듯 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일찌감치 서로를 파멸에 이르게끔 했으리라. 명왕성이 행성계에서 퇴출되던 날 명왕성을 사랑하는 이들은 슬퍼했다. 인간들은 사랑이 많고 또 그걸 나누어줄 줄 알았다.

인간의 세계가 생각보다 사랑스럽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러나 사랑할 줄 아는 지성체가 모든 존재를 평등히 사랑할 리 만무했다. 명왕성에 관심이 없던 이들은 퇴출에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였고 사람들은 관심 없는 타인을 쉬이 사랑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분노하고, 질투를 느끼고, 증오하면 필시 비극적인 일이 생겨난다. 서로를 헐뜯으며 생긴 상흔은 사랑으로도 쉬이 낫지 않았다. 증오로 인해  생긴 상처는 한 개인에게, 한 공동체에게, 역사의 한 페이지에도 남는다. 상처투성이인 세계를 직면하며 그는 다소 슬픈 기분이 되었다.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세계에서 사랑을 쌓아 올리고 그걸 지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임을, 그래서 수아가 사랑스러운 사람임을 이제는 알아요.

이제는 경찰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하게 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적합한 조치를 내리는 집단이라 했다. 범죄는 필연적으로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증오할 줄 알기에 경찰이라는 조직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그는 확고하게 제 뜻을 전하던 수아를 떠올린다. 그 얼굴을, 그 목소리를, 그 의지를... ....

사랑하기 어려운 세상일지라도 계속 나를 사랑해 줄래요? 그렇다면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게 될 거예요.

인류는 -모두가 동일하지 않다 해도- 자신과 아무런 관계 없는 별까지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다. 인간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줄 알며,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예찬받은 감정이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수천 년간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수아처럼 사랑스러운 이가 존재하기에 그 역시 이곳에 깊은 애착을 느낀다. 그는 편지를 갈무리하며 다시금 이 지상에 발 붙이고 있음을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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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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