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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약속 클로에 드림

비츠님 커미션

잠깐 by 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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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에는 어떠한 순서가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변함없이 유리한 위치. 무슨 일이 있어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입장. 이러한 순서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다섯 갈래로 나뉜 나라처럼 순서를 나누는 기준도 다섯 갈래로 달라졌다.

자연이 모든 걸 거부하는 북쪽에서는 힘. 자연이 힘차게 요동치는 남쪽 나라에서는 협조성. 사람이 정착해 사회가 만들어진 중앙에서는 정의로움과 성실함. 엄격한 규칙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쪽은 이 사회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는지. 모난 부분이 없는지.

사회도 나라도 있지만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로 매번 눈이 도는, 아찔한 나라 서쪽은-

 


오늘따라 바람이 기분 좋으니까. 햇볕을 따라 걷고 싶은 날씨라서. 구름이 산책길을 안내해줬으니까. 새의 지저귐이 마음에 들어서. 빗자루를 타고 상공 산책하기로 한 이유는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그런 시답지 않고 기분 좋은 이유일 게 틀림없으니, 시트린은 생각나지 않는 이유를 떠올리기보다 들뜬 기분만을 품고 하늘을 날았다.

딱히 갈 곳은 없으니 행선지 없는 짧은 여행을 즐겨도 좋겠고. 아니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요? 그만 찾아와요. 날 선 태도로 시트린을 반길 마녀를 찾아가는 것도 좋겠고. 뭐가 좋을까. 오늘은 무슨 하루로 만들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흐름대로 움직이는 것도 좋은데. 수많은 근사한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트린은, 낯익은 붉은 머리를 보자마자 빗자루를 아래로 향했다.

하늘에서 빗자루를 탄 마녀가 내려오다니! 동쪽 나라면 소란이 일다 못해 패닉이 일겠지만. 자극에 굶주리고 마법과학과 기술 발전으로 그 자극의 역치가 올라간 서쪽 나라 사람들에게 ‘빗자루를 타고 내려온 마녀’는 한 두번 시선 주고 마는 사건에 불과했다. 가게 주인장 마저 ‘마녀와 마법사도 사랑하는 집, 그들도 애용하는 신비한 카페’ 그럴싸한 광고판을 걸기보단. 시선을 한 번 주고 가게 안으로 슥 들어갔다. 마법이 시시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오다니! 시간만큼 무서운 게 없다느니, 마법과학이 이래서 무섭다느니 한탄하는 마법사도 있겠지만. 서쪽 마법사는 으레 그런 한탄을 하기 보다 새 즐거움을 찾는 게 특기인 종족이기에. 시트린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구석 자리로 향했다.

마법사는 마법이란 신기함을 가지고 있으니 뭐든 할 수 있어 보이고. 하늘에서 곧잘 지상으로 내려오니 흔히들 하는 착각인데. 시야도 전방위로 모두 트여 있는 건 아니었다. 땅 길에서 발 아래를 주의하면서 걷거나, 무슨 특별한 게 없는 이상 아래에 뭐가 지나가는지 모르듯이. 빗자루를 타고 상공을 걸으면 지상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웬만한 것들이 땅을 기어가는 개미처럼 보이니까! 그런데도 마법사는 어떻게 하늘을 날다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뚝 내려오는 걸까?

뭐가 어떻게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지, 즐겁게 만들어줄지 모르니 설렘을 품고 꼼꼼하게 아래를 확인해 날다가, 확인해 내려오기도 하고. 우연히 정말 어쩌다가 운명적인 만남과 조우해 번개처럼 내려오기도 하는데. 이 날 시트린은 후자였다. 상공을 만끽한 탓에 휘날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다가 낯익은 빨간 점을 봤으니까. 까마득한 거리인데다가 구석 자리라 작은 점처럼 보이는데. 그 빨간 점이 클로에라는 걸 시트린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재앙이 아무리 강한 빛을 내뿜어도, 학자들이 하늘에 촘촘하게 박힌 별 하나하나를 구분해 명칭을 새길 수 있는 것처럼. 시트린은 클로에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뜨겁고 열정적으로 빛나고 있으니까!

탁자 위를 침범하다 못해 근처 의자까지 침범한 수많은 스케치. 가까이서 마녀가 내려왔는데도 새 선을 긋는데 열중인 클로에를 보고. 시트린은 다른 자리에서 의자를 가져오기보다는 마법으로 의자를 만드는 걸 택하고 적당한 공간에 앉았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내려와도 별 반응 없었으니 가능한 행동이었다. 뭐 반응이 있었어도 이렇게 했을테지만.

코앞에서 마법의 기색을 느낀 클로에는 자연스럽게 기색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 끝에 있는 시트린을 보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에, 에에-?!

안녕 클로에. 우아한 인사말과 함께 시트린은 바람에 날아갈 뻔한 스케치 한 장을 잡아 클로에 앞에 내밀었다. 뭐 만들어? 전체적으로 라인을 살리면서 풍성하고 화려한 디자인은, 클로에가 입어도 귀엽고 사랑스럽겠지만? 남성복이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했고. 이런 걸 입고 다닐만한 특별한 복장은 이미 있으니 클로에가 입을 옷은 아닌듯 했다. 유능한 마법관의 재봉사는 한 디자인으로 여러 벌을 만들지 않으니, 현자의 마법사 임무에 입고 가는 옷도 아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시트린은 한 상대가 떠올라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현자님 옷?”

“아니, 아니야!”

클로에 본인이 입을 옷도 아니고. 현자의 마법사 단체가 입을 옷도 아닌데. 특별하게 제작되는 한 벌이라고 하면, 현자의 마법사 클로에 콜린즈를 상대로는 딱 한 사람 걸맞는 상대가 있었다. 시트린의 당연한 추론을 클로에는 양 손을 다 저어가며 부정 하더니. 그게 아니라 조금 다른데. 그게. 그게.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눈치를 봤다. 부끄러운 짓을 해서, 남한테 들킨 게 창피해서 말을 더듬는 게 아니라. 쑥스럽고 간질간질한 마음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싶지만 그만큼 앞으로도 가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의 발로였다.

현자님이 아니면, 누구지? 그럼 이 디자인은 뭘까? 평범한 습작이라기엔 같은 디자인인데도 세부적인 부분을 다시 그리고 덧대고. 특별한 옷을 만들겠다는 신념과 입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종이에 가득했다. 클로에가 직접 말해주길 바라는데. 간지러운 마음에 당사자가 들썩여 바로 말하지 못할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친구가 된 히스클리프는 차분하지만 조용한 눈길로, 루틸은 두근거림을 숨기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눈길로 클로에를 바라보면서 재촉하고. 라스티카는 클로에, 편하게 말하라는 뜻으로 다정하게 이름과 침묵을 선물하고. 시트린은 클로에, 직접적인 부름은 없지만 사랑과 신뢰로 가득한 몸짓으로 이 침묵을 즐겼다.

네 이야기가 궁금해!

그러면 클로에가 늘 용기를 내주니까.

“에헤헤 의뢰를 받았어.”

마법관으로부터, 거대한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있는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들에게. 그런 게 아니라 클로에 콜린즈에게 온 의뢰였다. 유능한 재봉사인 너에게 부탁이 있어. 내 옷을 만들어줘! 그런 개인 의뢰는 처음이 아니었다. 퍼레이드때 멋진 복장을 만든 마법사가 있대, 뭐 그게 너라고? 대단하다.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나, 좋아하는 상대가 마녀거든. 고백할 수 있게 멋진 옷을 만들어주지 않을래? 첫 의뢰처럼 번개처럼 찾아온 마법사 재봉사니까 부탁할 수 있는 의뢰였다.

마법사와 여기서 친해질 수 있다고 들었어. 찾아온 의뢰인은 평범한 여성으로. 마법사의 집에 찾아온 그녀는 독특한 의뢰를 부탁했다. 결혼식을 올릴 거야. 혼례복 한 쌍을 만들어줘.

……신랑이 없는 결혼식인데도 만들 수 있어?

첫번째 의뢰인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상대는 나와 다르니까. 같은 마법사에게 용기를 얻고 싶어. 마법사는 인간이 나와 다르니까, 해줄 수 있지? 마법사는 이상하고 속을 모르겠는 특이한 족속들 밖에 없어. 편견이 나왔는데 그 편견을 들은 마법사들은 불쾌해 하기보단 진지하게 그 뒤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날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해줄 거, 지? 그 속에 들어간 간절함을 보고 말았으니까!

모든 것의 시작은 거대한 재액이 다가오던 그 날 밤. 작업 마무리를 위해 나간 예비 신랑이 실종됐다. 흔적 하나 없이 증발해 처음에는 여러가지 소문이 돌았지만. 평소 사이가 좋아 깨가 쏟아지는 사랑스러운 예비 부부였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없어진 점. 그가 만지던 작업물이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참혹한 잔해만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그 날이 유례없는 사태를 가져온 그 날 밤이라. 일주일만 지나면 영원한 맹세를 하며 행복을 누렸을 부부의 미래가 하루아침만에 달라졌다.

나는,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잊으라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잊을 수 없어. …적어도 같이 준비하던 걸 끝내야 다른 무언갈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약속된 미래를 잃은 그녀는 끝없는 슬픔에 허우적 거리다가 요근래 간신히 새 중심을 잡았다. 아니 새 중심을 잡기 위해서. 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어떠한 매듭을 지어야, 납득할 수 있는 선을 그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있지만. 그러니까 신랑과 준비한 결혼식을 마저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견은 기괴하게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헤어지기 위해 유령 신랑과 결혼하겠는데,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그녀도 이 기괴함을 알고 있어서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혼식이라고 해도 식을 진짜 올리고 싶은 건 아니야. 그냥……. 결혼을 올리기로 한 장소에 한 쌍으로 맞춘 예식 복을 입고 가서……. 제대로 된 이별을 하고 싶어. 이걸 입고 있어도 상대가 안 온다는 걸 알면, 납득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가짐인데, 어딘가 엇나가고 만 사랑 이야기를 안 좋아할 서쪽 출신이 있을까? 시트린은 어느새 나온 차를 마시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원래는 마법관에 있는 방에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고민하고 있으니. 이럴때는 기분 전환하는 게 좋아! 사람들의 소음과 잡다한 잡음을 받고 자극 하는 게, 아이디어 발산에 좋아! 무르의 제안을 받아 이 카페에 오게 됐다는 경위까지 들었다.

여태까지 한 거 봐도 돼? 물론이지! 클로에의 허락을 받아, 시트린은 시안이 담긴 스케치 북을 넘겼다. 한 쌍처럼 보이게, 결혼식이지만 마음을 갈무리할 포인트가 될 수 있도록. 옷의 여러 디자인과 함께 의뢰인과 그의 유령 신랑을 향한 이미지와 감상. 하나도 빠짐없이 시트린이 정말 좋아하는 클로에의 열정 어린 작업물이었다.

열정과 노력 그리고 상대를 향한 마음이 좋아! 가장 좋아하는 게 굳어 만들어진 마법 주문 같은 스케치북을 슥슥 넘기던 시트린은. 어느 페이지에서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뭐가 어떻다. 저렇다. 이건 이래서 별로고 아쉽다 판단할 입장은 아니고. 그런 걸 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른 페이지에 비해서 월등하게 애정이 담긴 한 장이 있었으니까. 누가 봐도 아 이거다. 이거구나! 바로 알아차릴 만큼 뛰어난 구상이었다. 막 틀만 잡힌 구상인데도 완성이 기대되는 그런…….

다른 스케치와 달리 미완성이 그것에 집중하고 있으니, 쑥스러움 반 긴장 반으로 시트린의 상태를 살피던 클로에가 뭐가 마음에 들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가. 시트린이 든 페이지를 보고 아! 큰 소리를 냈다.

“그건 다른 옷이야!”

다른 옷? 시트린은 무심코 되묻기보다, 손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근사한 한쌍의 예식 복인데. 다른 거라니? 행동에 담긴 물음을 눈치챈 클로에는 그러니까 그게. 우물쭈물 거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보냈다가 왼쪽으로 보냈다가. 부산스러운 행동을 하더니 이윽고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갖다 댔다.

“라스티카와 신부님의, 옷이야.”

유령 신랑과 인간 신부의 옷을 디자인 하고 있으니.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도 자꾸만 라스티카와 신부님이 생각나서. 그래서. 언제 떨어질까 보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곳에서 줄타기하는 아이처럼 위태로우면서. 뿌리 깊어 흔들리지 않는 고목처럼 담담하고 안정감이 있는 클로에의 설명을 들은 시트린은 왜 자기가 이 페이지에 사로잡혔는지를 깨달았다.

신부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지만. 내가 만든 옷을 선물하고 싶어. 그런 마음이 담긴 것도 있지만. 라스티카라면 신부와 작별하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어떤 방향이라도 좋으니 라스티카의 새 시작과 방향을 축복하는 마음이 잔뜩 담겨있는데. 사로잡히지 않을리가 있나? 아직 가제봉도 안 된 옷의 시안이지만. 시트린은 보자마자 바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걸 입고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신부를 기다리고 있을 라스티카를. 가장 가까이에서 그런 라스티카를 축복하고 있을 클로에의 모습을!

그리고 그 상상에 자기를 넣었다. 결혼식인 만큼, 장소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좋겠지. 그러면 내 옷은.

클로에가 만들어주겠지?

자연스럽게 떠오른 욕망을 자각한 순간. 시트린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로 매번 눈이 도는 서쪽은 욕망을 가지는 쪽이 아래였으니까. 한 번도 의식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나? 시트린은 언젠가 반드시 올 라스티카의 결혼식을 다시 상상했다. 차분하지만 행복이 느껴지는 태도로 서있는 라스티카가 중심에 있고. 그걸 내가 어디서 보고 있지? 빗자루를 타고 적당한 하늘 위에서 적당한 축하를 전하며 관찰하듯이 보는 게 원래의 시트린인데. 중심이 제일 잘 보이는 손님 위치에서, 클로에의 옷을 입고 서있는 자기 자신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

원래의 나를 상상할 수 없는 건, 새로운 설렘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 시트린은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클로에로 달라진 나도 분명, 좋아하게 될 테니까. 아 그래. 만약 그 날이 온다면 클로에에게 부탁하자. 클로에 바쁜 건 알겠지만 그런 근사한 날에 너에게 부탁해도 될까? 같이 가고 싶은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와 세트로 옷을 만들어줘. 변덕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북쪽 마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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