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였어

이레탈리 탈리이레

숲클 by n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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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스 여기서 뭐해?”

남자치곤 꽤나 부드러운 미성이 나무 사이로 흩어져 간다. 햇살을 머금은 머리칼이 흩날리고 태양을 닮은 따뜻한 눈동자는 자신을 담고 있었다. 자신을 담은 눈동자를 보는 게 좋아서 저 눈이 자신만을 바라만 봤으면 해서 탈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눈동자만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데서 혼자 뭐 하냐니까?”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레이의 미간은 깊어져만 갔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가볍게 무시하고 옆에 자리를 잡는게 느껴졌다.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른 것들로 향하는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며 탈리스는 이레이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

“시원하네. 날도 좋은데 데이트할까?”

여느 때와 같이 실없는 소리에 피식 웃으며 따듯한 바람에 몸을 맡길 때였다. 자신에게 기대온 탈리스에게서 더운 공기가 느껴진 것이. 아마 자신에게 기대 온 탈리스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면 자신도 나른해진 몸을 그에게 맡겼을 것이다.

“뭐야 탈리스, 너 왜 이리 뜨거워?”

이제서야 탈리스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 이레이는 탈리스의 어깨고 이마에 손을 올렸다.

단순히 체온이 조금 올라 느껴지는 미열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탈리스의 몸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나른해서 풀렸다고 생각한 눈은 초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오늘따라 항상 하던 끈적거리는 스퀸쉽도 추근대는 말도 없었다. 그렇기에 탈리스가 그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을 땐 이레이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클로네. 아생도 아닌 발아까지 다 끝마친 성인이 이렇게 아픈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아픈 원인조차 모른 채 탈리스를 들쳐엎고 무작정 마을로 달리는 이레이의 속은 초조해져만 갔다.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탈리스는 자신은 괜찮으니 내려달라고 채근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얌전히 업혀 탈리스. 너 지금 몸이 불덩이라고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거야?”

“으음, 아마 어젯밤…? 아니 오늘 아침인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몸은 돌덩이 같아서 아무리 추스르려 노력해도 고개만 살짝 돌리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마치 첫 발아를 겪었을 때처럼.

“이레이 나 오늘 꿈을 꿨어.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악몽이었던 거 같아.”

“갑자기 무슨 꿈 얘기야? 그런 소리 할 기력 있으면 입다물고 얌전히 있으라고.”

“진짠데. 눈을 떴을 때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 꿈에서 깬 직후에는 기억이 났었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나.”

끔찍한 악몽이었다. 자신을 감싸던 이레이가 모두에게 질시 받는 것이. 그와 그의 아버지까지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끝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것이.

전부 자신이 단풍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풍나무는 저주받았다. 미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신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근거가 없이 단풍나무가 일족들에게서 배척받았을까?

부모를 잡아먹는 아이. 클로네가 아이를 낳으면 약해지는 것은 일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아니 클로네 일족이 아니라도 다른 종족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일족의 특징이란 것은 그런 것이니까. 

그래도 단풍나무가 유독 이 시기를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은 클로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아이가 태어날 때 유독 단풍나무가 약해지는 것. 여기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친만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모친까지 죽었다면 그건 정말 저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단풍나무에게 곁을 내주었던 배우자는 아이를 낳으면서 몸이 약해진다. 임신하면허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고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몸조리를 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풍나무와 아이를 가진 산모들은 대게 높은 확률로 순산하지 못한다. 난산을 하거나 심할 경우엔 생을 마감했다. 

아마 이러한 특성까지 더해져서 단풍나무의 저주라는 것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 윗세대가 죽어가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 않겠지. 클로네 일족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종족에게서 그러한 탄생은 저주라고 칭해질 것이었다. 

칼프가 항상 자신을 감싸주던 것. 이레이가 자신을 변호하며 마을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그 모든 것들이 마냥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되어 죄스러워지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아버지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저 꿈일 뿐이지만 꿈이었기에 그 모든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졌을 때 순수하게 기뻐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남아있다. 

다행히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자신은 안전히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이레이의 모습은 몇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레이와 함께 마을을 떠났을 때는 각성조차 하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그런 그를 부모님과 헤어지게 했다. 자신이 마을에서 배척받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을 혼자 둘 수 없다고 혼자 보낼 수 없다는 그의 강인한 신념 때문에 마을을 떠나게 만들었다.

‘단풍나무? 그게 뭐 어때서?’

‘네가 단풍나무인 건 우리 사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저 녀석들이 하는 말은 전부 무시해. 설마 너, 내 말보다 그 녀석들 말이 더 중요한 거야?’

‘네가 널 좋아할 수 없다면 널 좋아하는 날 좋아하라고. 난 아무나 좋아하지 않으니까.’

‘왜 네가 사랑하지 않는 것에 상처 입는 거야? 그녀석들이 너에게 어떤 존재인데?’

‘너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널 믿는 날 믿으라고’

그 어떤 꾸밈도 없었다. 순수하게 자신만을 바라보는 미소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를 것이다. 그가 해준 말에는 어른들이 괜찮다고 다 지나갈 거라며 자위시킨 그 흔한 가식 하나 없었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서 처음으로 배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세상이 더 밝아질 줄 알았다. 다채로운 색상에 빠져서 그 속에서 자신 또한 빛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 착각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그 모든 순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함께할 때만 세상은 빛났고 그가 없는 모든 순간은 흑백이었다. 

그래서 집착하게 되었다. 이런 자신을 귀찮아하는 게 뻔히 보이면서도 그와 멀어지는 게 싫어서, 자신이 아니라 다른 클로네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전부 길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영역표시를 했다. 자기라고 부르면서 스킨십을 하는 것도 저속한 말을 내뱉으며 다른 이들에게 둘의 관계를 과시한 것도. 이렇게 하면  그들이 이레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양보하기에 애처럼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선을 긋지는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친구관계에 적합한 것이 아니란 것은 잘 알았다. 두 사람이 평범한 친구관계에서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레이가 탈리스에게 유독 관대하게 굴긴 했지만 이건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아마 다른 이들이 그렇게 대했다면 정색하고 거절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싫다고 툴툴대도 자신에게 품을 내어주는 것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었다.

그저 불행한 유년시절을 가진 친구라서 신경 쓰는 것일까. 아니. 자신이 아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다. 책임질 수 없는 동정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었으니까.

‘이레이 너한테 난 대체 어떤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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