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해빈
자꾸 X같은 소리 하지 마, 감염 안 됐어도 사람 죽는 거 잊지 말고.
아니, 이건 전부 네 잘못이야. 이딴 재난 상황이 생긴 것도, 다른 애들이 다친 것도, 부회장이 허무하게 가 버린 것도 전부 네 탓. 이 따위로 행동할 거면 가서 네 친구랑 같이 좀비 밥이나 되어 버리던가.
말 진짜 X같이 하네…. 눈 가지런히 감았다 뜬다. 기저에 깔린 성격은 항우울제약를 복용하며 단 한 순간도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원래 온순하고, 무던한 성격같고, 감정에 고저가 없어 보이는 것은 다 약 덕분이다. 잠깐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밑에 네가 있었는데. 꼴이 보기 좋았다. 원래 약을 챙겨 먹어야 할 시간은 한참 지났다. 이런 마당에 약을 꼬박꼬박 챙길 상황도 안 될 뿐더러, 약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몇 년째였지? 이쪽은 어디로 가든 상관 없었다. 다 뒤지시던가, 아님 내가 먼저 죽던가. 지금 상황은 물론 당혹스럽고, 친구가 죽은 건 지독하게 힘들었고, 슬프다는 감정도 있었다. 다만, 그 순간들엔 약효가 잘 돌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제 성격은 자신을 편하게 만든 적이 없다. 새벽 내내 두들기던 건반이 튕겨나가는 감각이 그냥 너무 좋아서, 강하게 울리는 음이 좋아서, 며칠이고 밤을 꼬박 새도 좋았다. 그러다 실수라도 한 번 하면 다시 또 그 짓을 반복한다. 그런 성격이 그저 장점만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대회에서 지나가는 개가 더 잘 치겠다 싶을 정도로 무대를 망친 날 이후로, 약을 받고 나서는 기존 성격의 장점도 단점도 전부 잊었다. 전부 없어졌다. 그게 너무 오래 전이라서 잠깐 잊었는데, 네가 그걸 굳이 들어올렸다약효가 다 떨어지자 미친 성격이 슬금슬금 발을 드밀었다. 자신의 세상에 한 톨 먼지만큼의 가치도 없는 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이미 주변은 다 망가졌고, 좀비인지 씨X인지도 판치는 마당에, 네가 말한대로 친구들은 좀비 밥이 되거나 좀비가 되어 가는 중이거나 죽었다. XX, 넌 친구 없어서 좋겠네. 같이 따라 갈 친구 없어서. 그치. 전처럼 다 긍정해봐. 무슨 말을 하든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는 모습이 기억난다.
네 몸을 밀친 거, 넘어뜨린 거 하나도 후회 안 된다. 배해빈 꼴이 그냥 우스웠다. 말 하는 꼬라지가 보기 싫어서 밀쳤더니 그대로 넘어지는데, 넘어져서도 뱉는 말이 저거였다. 그냥 XX 짜치네. 네가 하는 말 내내 욕이 있던 거, 다 기억하고 있었다. 예민하게 올라온 성질이 네게 그대로 돌려주라고 하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했다. 자신 말고도 이미 반 안에는 몇 번이고 울거나,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누가 딱히 신경 쓸 것 같지도 않았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넘어진 배해빈의 명치를 발로 지그시 누르고 몸을 깊이 숙여 양 손을 올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네 목을 조일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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