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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가이드버스 복사이크 편

Writing Note b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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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 인류를 위협하는 괴수들의 등장으로 이능력자 협회가 세워지고 전투요원인 센티넬과 그들의 능력을 안정, 유지시켜주는 가이드들이 소속되어 히어로처럼 활동하는 세계관. 이능력자들은 다 군인 신분이고 훈련도 시켜주지만 위험한 일이 많아서 전선에 서는 센티넬의 수가 가이드에 비해 매년 부족하고 괴수들은 멸종할 기세가 안 보여서 고위층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 그런 상황으로.

어쨌든 인력난에 시달리던 이능력자 협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다 한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됨.

복스 아쿠마. 본질은 괴수 쪽에 가깝지만 인간과의 공존을 택한 악마로, 인간의 편을 대놓고 들지는 않되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것 같으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별종임.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그에게 협회 소속이 되어 인간을 지켜달라 부탁하러 온 것임.

다만 복스는 시큰둥했음. 내가 왜 굳이? 지금도 나름 분란 없이 잘 지내고 있구만. 그러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그가 협회를 찾은 것은 그래도 그가 인간을 사랑하는 악마이기 때문이었음. 괴수들의 학살극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고. 협회에서는 그를 협회 소속 센티넬로 삼으면서 그가 폭주하거나 힘을 감당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그에게 가이드를 붙이기로 했음. 뭐, 너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지.

그 뒤로 가이드 매칭을 위한 선보기가 시작됨. 하루에도 다섯 명 내지 열 명의 가이드를 만나 파장이 맞는지를 확인했지만 복스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음. 아니, 뭐, 너네 도와주러 온 입장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 무슨 품종교배 시키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내가 찾아다니는 게 낫지.

복스는 매칭 담당자를 구슬리기 시작했음. 한 달도 안 되어 담당자는 복스의 짱친인 것처럼 굴기 시작했고 '위험하다' 는 이유로 가이드가 붙기 전에는 제한되었던 복스의 행동범위가 좀 더 넓어졌음. 복스는 협회에 소속된 센티넬과 가이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만약 그들의 처우가 좋지 않으면 뭐라도 해줄 생각을 갖고 있었음. 이 악마가 인간을 아낍니다. 다행히 협회에서는 목숨 걸고 싸워주는 센티넬과 그들의 심신을 보호해주는 가이드 모두에게 받아 마땅한 대접을 해주고 있었고, 괴수들이 절멸할 때까지만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어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을 복스에게 안겨주었음. 그래도 그 품종교배식 매칭소개팅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던 그 때.

복스의 레이더에 뭔가가 잡힘.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누군가의 영혼. 어째서였는지 그것에 복스는 순식간에 매료되었음. 그 영혼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 보니 웬 방이 하나 나왔음. 엄중하게 잠긴 방이었음. 여긴 뭐냐고 물어보니 안내해주던 담당자가 좀 망설이는 기색으로 말함.

파트너 가이드를 잃어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센티넬을 보호하고 있는 곳이라고. 주로 약물을 통해 억지로 안정시키지 않으면 폭주해서 협회를 날려버릴 수 있고, 그렇다고 협회 밖으로 방생하면 일반 시민에게 피해가 가니 어쩔 수 없이 구류해 두고 있다는 설명이었음.

흠, 하고 생각에 잠긴 복스에게 담당자는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센티넬이니 당신이 아무리 전능해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지만 복스는 그 방을 열어달라고 부탁했음. 그가 감지한 영혼은 이 안에 있는 게 분명하니까. 도와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만나보고 싶었음.

망설이면서도 담당자는 문을 열어주었음. 방 안에는 각종 캡슐이나 구속구 딸린 침대가 잔뜩 늘어서 있고 그 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자, 정신을 놓고 헤헤 웃기만 하는 자, 죽은 듯이 잠만 자는 자 등등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이들이 가득했음. 담당자의 설명으로는 범용 가이드들이 가이딩을 해줘서 간신히 숨은 붙어있지만 당장 전력으로 나설 수는 없고, 또 방치해서 죽일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의료적 처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복스가 보기에도 여기저기 구속되어 있을 뿐 꼭 필요한 연명처리는 되어 있는 것 같았음.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겠지, 생각하며 복스는 주변을 둘러보았음.

어디에 있을까. 그 푸른 불꽃같은 영혼의 소유자는.

이윽고 복스는 그 영혼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차렸음. 구류실의 맨 안쪽에 전신을 구속당한 채 침대에 묶여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임.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침대 앞에는 그 센티넬의 이름이 적혀 있었음.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복스의 질문에 담당자는 정말 애통하단 표정을 지으면서 그가 A급 센티넬이고 전용 가이드 없이 범용 가이드 두 명과 함께 다니며 가이딩을 받았지만 한 달 전 전투에서 가이드 둘이 모두 괴수에게 살해당하고 폭주를 일으켰다 간신히 구류된 상태라고 알려주었음.

S급 센티넬들이 나서서 한 번 제압했을 만큼 그렇게 강한 센티넬은 아니지만, 얼음을 사용하는 능력자라 구류실에 두면 주변을 모조리 얼려버릴지도 몰라서 봉인하듯 사지를 구속시켜놓고 있는 거라는 설명도 해주었음.

-싹싹하고 좋은 친구였는데, 안타깝죠. 지금은 자기가 누군지도 못 알아볼 겁니다.

복스는 어깨를 으쓱했음. 글쎄? 그리고는 담당자가 말릴 틈도 없이 손가락을 튕겨 남자가 얼굴에 찬, 숨구멍 외에는 개방된 부분이 어디에도 없는 마스크를 반으로 갈라 벗겨냈음. 드러난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얬고 생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천천히 뜨는 두 눈만은 달랐음.

어쩜 이렇게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있을까. 한 달 전 자신을 통제할 힘을 잃고 폭주를 일으켰으며 그 뒤로 쭉 구속되어 있었는데도 그의 눈에는 아직 생기가 깃들어 있었음. 복스 아쿠마의 관심을 끌었던 푸른 불꽃의 영혼도 아직 활활 타오르고 있었음. 정말 너무나도 아름답게.

말로는 정신을 놓았다지만, 이런 눈을 한 인간이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고 좌절해 버렸을 리 없었음. 이 방에 갇혀서 가이딩을 필요로 하며 괴로워하는 다른 센티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인함을 갖추고 있는 듯 보였고,

복스 아쿠마는,

그러한 인간을 좋아했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몸을 구속하던 것들이 모조리 풀려나갔고 담당자가 뭘 하는 거냐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 힘이 폭주하기 전에 복스가 손을 뻗었음. 한 달 동안 구속당해 있느라 바짝 마른 손을 받쳐 잡고 침대에서 일으켜 품에 안자 상황을 파악 못하는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음.

군주님, 뭘 하시는 겁니까, 그는 센티넬이니까 당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요. 담당자는 그렇게 말하며 복스를 말리려 했지만, 글쎄? 내가 센티넬인지 가이드인지는 너희들이 마음대로 정해버린 거잖나. 인간의 기준으로. 나 같은 인외의 존재는 그런 걸로 구분할 수 없을 거라고?

맞잡은 손을 통해 상대에게 힘을 흘려넣자 흔들리던 눈동자가 점차 안정되었음. 떨리던 동공이 멈추고 그를 감쌌던 시린 냉기도 잦아들면서 천천히 방 안에 온기가 퍼졌음. 말도 안 돼. 중얼거리는 담당자를 무시하고 복스는 그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며 빙그레 웃었음.

-나는 복스 아쿠마. 네 이름은 뭐지?

-...아이크, 이브랜드.

-아이크. 예쁜 이름이네, 너한테 잘 어울려.

빙그레 웃어주고 복스는 아직 당혹을 금치 못하는 담당자에게로 고개를 돌렸음.

-난 그의 전용 가이드가 되고 싶은데. 괜찮겠나?

괜찮을 리가 없었음. 센티넬로 활동하라고 데려왔는데 고작 A급 센티넬의 가이드가 되겠다니! 담당자가 넋을 잃은 사이 복스는 아직 힘이 다 돌아오지 않은 아이크를 번쩍 안아들었음.

-난 그가 마음에 들어. 그의 파트너 자리 외의 일을 맡기겠다면, 협회에 협력하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겠는데. 혼자 결정하기 힘들다면, 상부와 상의해 보게.

선전포고하듯 일방적으로 말하고 복스는 아이크를 안은 채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왔음.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크를 자기 침대에 눕혀 놓고 꼭 안아주며 가이딩을 하길 몇 십분 째, 드디어 안정을 찾았는지 아이크가 복스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냈음.

-당신, 뭐야...?

이런. 자기소개는 이미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 매너란 생각으로 복스는 자신의 정체와 아이크를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설명해주었음. 네 가이드가 되고 싶다는 말도 함께.

-...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크가 던진 질문에는 쓴웃음이 나왔음. 세상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려고 손을 뻗었더니 왜 날 구해주느냐고 묻는단 말이야?

-글쎄. 너한테 첫눈에 반했으니까?

-뭐? 지금 농담이 나와?

-농담 아닌데. 난 강인한 영혼을 지닌 인간을 사랑해.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기색이 네 영혼에서 느껴졌고, 거기에 진심으로 매료됐어. 네가 센티넬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졌어. 그러니까 나는 네 가이드가 될 거야.

여전히 아이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음. 그 표정에는, 왜 하필 이런 남자가 나랑 파장이 맞는 가이드인 거지, 라는 의문도 숨기지 않고 드러나 있었음. 사실 파장이 맞다기보단 파장을 맞춘 거지만, 그건 좀 로맨틱하지 않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할까.

-하지만... 당신, 센티넬로서 여기 들어왔다면서? 그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왜 나 같은 사람의 가이드를...

-오, 그런 말 하지 말아, 아이크. 나 같은 사람이라니, 스스로를 왜 그렇게 낮게 평가하지? 아니면, 구류되기 전에 네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놈이라도 있었던 거야?

있었나 보다. 아이크의 표정이 흐려졌음. 그의 능력이 얼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센티넬답게 전투용이긴 하지만 활용도가 그리 높은 능력도 아니고, 자기가 손가락을 튕긴 것만으로 잘리는 구속대로 충분히 구속할 수 있었던 만큼 능력도 크게 강하지는 않았을 테지. 제 나름대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협회에 들어왔을 텐데 크게 대접을 못 받았다면 이 낮은 자존감도 이해할 수 있었음.

-그런 말을 하는 녀석들이 네 가치를 몰라보는 거야. 앞이 보이지 않는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니까 그러는 거라고. 나는 악마라서 네 영혼이 보여.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이야, 아이크. 그런 이에게는 보답과 그만한 평가가 주어져야 마땅하지.

대체 왜 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크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춰 주었음.

-악마를 이토록 쉽게 홀릴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아.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뭐야, 그게.

말투는 핀잔이었지만, 워낙 당당한 복스의 태도 때문이었는지 아이크는 피식 웃었음.

음, 웃으니까 더 예쁘고 더 귀여운데.

-물론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너도 네 능력을 썩혀 가며 거기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나와 페어를 맺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난 다른 가이드들처럼 본부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 스스로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고, 너와 함께 싸울 수도 있지.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협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넌 센티넬 파트너와 페어 가이드를 동시에 얻은 셈이라고.

-...뭔가, 입장이 반대 같네. 원래는 센티넬이 가이드에게 매달려야 할 텐데. 제발 살려달라고 말야.

-넌 이미 그렇게 했어. 네 영혼의 소리가 내게 닿았잖아.

그랬다. 그것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동앗줄을 향해 간신히 뻗은, 구원을 바라는 손이었다. 단순히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복스에게 아이크의 영혼이 보였던 것은, 조금 유치하지만,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역시 싫은가? 내가 네 페어가 되는 것이.

손을 상냥하게 붙들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아이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섰음. 그전까진 범용 가이드에게만 가이딩을 받았던 탓에 이렇게 노골적인 신체 접촉도 없었고, 만난 지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된 이에게 깊은 애정의 눈빛을 받는 것도 익숙치 않아서였음.

그리고 역시 가이드가 곁에 있으면, 그것이 비록 인간이 아닌 악마일지라도, 숨 쉬기가 편했음.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파괴충동과 그걸 자제하려는 이성의 싸움도 필요없었음. 범용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았을 땐 느끼지 못했던 마음 속 깊은 안도감이 아이크의 경계심을 풀어헤쳐 버렸음.

이 남자가 곁에 있으면, 나는.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확신이 들었음.

-...좋아, 복스. 너와 함께 할게.

-좋아! 여기 오고 나서 가장 기쁜 순간이군.

-그치만 오늘치 가이딩은 여기까지면 됐어.

-오, 그건 좀 안타까운데...

이후 찾아온 협회 사람들과의 교섭 끝에 복스가 아이크와 함께 전선에 나서며 센티넬로서도 활동한다는 결론을 내고 두 사람은 페어가 되었음. 재활훈련을 마치고 처음 투입된 전선에서 제대로 된 가이드를 찾은 아이크의 능력이 처음 진단받았던 것보다 향상되어 S급으로 승급한 건 덤임.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 승급 확인서를 받은 날 아이크가 그렇게 말하자 복스는 웃으면서 받아쳤음. 당연한 거지, 아이크. 네가 받아 마땅했을 평가가 이제서야 돌아오는 거라고. 나의 강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센티넬.

-...그래도 너랑 키스는 안 해.

-와, 그건 좀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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