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후기 모음

<Justice(right direction)><Justice(reverse direction)> 후기

선천적으로 인간의 선악이 정해지는 세계관의 복스와 아이크로 현실 AU

Writing Note b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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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본편은 이쪽에서 봐주세요

<나의 악마(hero)>, <UNFORGIVEN> 시리즈에 이은 '히어로' 를 주제로 한 단편입니다. 마블은 잘 모르지만 히어로물은 좋아해요.

-인간 한정으로, 태어나서부터 선악이 정해져 있는 세계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악은 사전적 의미의 선악이라기보다는 선인으로 살지 악인으로 살지 태어난 직후 '판단' 하는 기준입니다. PSYCHO-PASS 시리즈의 시빌라 시스템과 범죄계수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다만 시빌라 시스템과 달리 이 세계관에서는 그 선악을 '판단' 하는 주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신’ 이 판단해준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신’ 이라 불려 마땅한 전지전능한 존재인지, 또 그만큼의 객관성을 갖고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 ‘신’ 의 ‘판단’ 을 따라 인간을 ‘구분’ 하는 사람들(=각 나라의 상층부)도 ‘히어로’ 혹은 ‘빌런’ 으로 발현하는 이능력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단,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지 않고 관리할 수단으로서 선악이라는 기준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따라 왜곡된 선전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그 역사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하고 주변을 판단합니다.

단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다고 해서 정말 그 사람이 선인과 악인으로 딱 잘라 나뉘지는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선의 본성을 타고난 인간도 백 퍼센트 진짜배기 선인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당장 히어로 협회부터가 그렇죠. 히어로 협회의 정식 히어로들, 그들의 관리자들은 모두 이 사회가 선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이지만 ‘히어로’ 라면 하지 않을 거라고 시민들이 여길 만한 일, 예를 들어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말단 히어로를 ‘처리’ 하는 행동 같은 것은 손을 잡은 뒷조직에 맡기며, 뒷조직 사람들도 선한 인간이라고 판정을 받았음에도 아직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은 아이크를 기꺼이 생매장시키려 들 만큼 정말로 선한 이들인가? 하는 의문이 남게 됩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들의 조직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그들이 백 퍼센트 깨끗한 조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류 중 어딘가에는 분명 순수한 선과 악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렇지 않은 이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이 세계 속 선악의 구분이 완벽하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신’ 의 판단 역시 그렇다는 것이죠.

-아이크가 소속되어 있던 히어로 협회의 총 인원수는 대략 1만 명. 이 중 6할이 정식 히어로이고 4할이 말단 히어로입니다. 정식 히어로는 본성이 ‘선하다’ 는 판정을 받은 이들 중 특수한 이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을 일컬으며, 능력은 다양하지만 힘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어 먼치킨이라고 불릴 만큼 ‘특출나게 뛰어난’ 능력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빌런도 마찬가지기에 히어로 측과 빌런 측의 균형은 이 세상에 히어로와 빌런이 생겨난 이래 한 번도 한쪽으로 기운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히어로 협회에서는 복스 같은 ‘인외’ 의 존재가 휘두르는 사기적인 능력을 고려하지 못하고, 대적할 수단도 갖지 못합니다. 즉 인간의 영혼을 먹는 악마인 복스는 (인류의 기준으로)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이나 복스가 모든 인간에게 악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죠. 이 또한 선악의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활용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빌런이 어떤 존재인지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가 악이라 타인을 상처입히는 것밖에는 재주가 없는 인간일 수도 있고, 혹은 아이크처럼 선하게 살고 싶었지만 다짜고짜 자신을 악인이라 정의하는 사회의 시선에 절망해 타락한 인간일 수도 있고, 타의에 의해 죄에 손을 더럽혀버린 인간일 수도 있죠. 애초에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은 만큼 이 이야기 속의 빌런은 정말 사전 의미 그대로의 빌런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크도 마지막에는 ‘악으로 타락하는’ 길을 택했지만 아이크가 정말로 악한 인간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사회의 법칙과 제약을 거부하고 음지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했을 뿐이죠. 아이크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므로 결말 후의 아이크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에서(단, 복스의 적이 나타났을 때는 예외일 것입니다) 복스랑 잘 먹고 잘 살았을 겁니다.

-이 시리즈에서 아이크의 캐릭터 설정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히어로’.

복스가 처음 아이크를 만났을 때 평가했던 것처럼 아이크는 차별을 용인하는 세계에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사회에 뿌리박힌 편향된 인식을 상대로 싸우기에 개인의 힘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제가 대상이 되는 차별을 꿋꿋이 버텨낼 만큼 강하고, 상처 입은 약자를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만큼 다정하며, 이 때문에 30년 가까이 외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작중에서 아이크가 보여준 약한 면모는 오직 이 외로움이 만들어낸 모습이며, 아이크의 본질은 강하고 상냥하며 고난을 앞에 두고도 꿋꿋이 걸어나가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복스가 있어서 ‘외로움에서 오는 약함’ 을 극복해낸 뒤의 아이크는 ‘악의 본성을 타고 태어났음에도 끝까지 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는 히어로’ 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싹이 트기도 전에 과장의 의심과 제거 시도로 인해 그 가능성이 짓밟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세계관에서 아이크가 히어로였다면 그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모두의 영웅이 될 수 있었겠죠.

-이 이야기 속 복스 아쿠마는 인간 사회에서 꽤 오래 인간들과 섞여 살아가고 있는 악마입니다. 즉 낫는 데 오래 걸리는 상처를 입었다고 숨어 지낼 곳을 찾을 필요도, 아이크의 집에 눌러붙어 있을 이유도 사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복스가 아이크의 집에 머물렀던 이유는 정말 단순히 아이크가 그날 자신을 구해줬기 때문에, 상처가 나을 때까지란 구실을 붙여서 우렁각시 노릇 하며 신세를 갚으려 한 것뿐입니다. 만약 아이크가 끝까지 그런 건 필요 없다, 정체 모를 존재랑 같이 사는 건 꺼려지니까 이만 가줄래, 라고 했다면 순순히 물러났겠지만 그랬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겠죠!

실제로 현재 인간 사회에서 살고 있는 복스는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하는 사업가 신분을 갖고 있습니다(물론 능력으로 신분을 위조함). 당장 에피소드 5에서 복스가 아이크를 데려간 영화관은 우연히 찾아낸 장소가 아니라 원래부터 자주 가던 곳입니다. 또 노을을 보여주겠다며 아이크를 데리고 간 건물에서 복스가 옥상 열쇠를 자연스레 갖고 있었던 건 복스가 그 건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위조한 신분에서 복스는 선 판정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경제활동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철저히 아이크 시점으로 진행되는 탓에 복스의 감정선은 잘 묘사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복스의 감정은 아이크보다 더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아이크 이브랜드한테 사랑에 빠지지 않는 존재가 세상에 어딨겠냐만은. (*철저한 퀼드런 시점)

어쨌든 복스의 감정 발전은 아이크보다 느렸습니다. 악의 본성을 타고 태어난 사람은 무조건 배척받는 사회에서 악으로 태어났음에도 끝까지 선으로 있고자 하는 아이크는 원래 복스가 마음에 들어하는 인간의 정석이었는데, 같이 살면서 아이크가 그저 강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역시 알게 됐고, 한때 갈 곳 없는 이들을 품었던 마음으로 아이크를 돌봐주는 상태가 에피소드 5까지 쭉 유지되었습니다. 첫 외출이었던 첫 데이트 이후 떠나려 했다가 아이크가 붙잡아서 머물러 준 것도 절대적인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종의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아이크가 납치당한 사건에서 인류의 적인 자신을 체포하면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거란 말은 진심이었지만 동시에 아이크를 위해 진짜로 죽어 줄 마음도 없었습니다. 아이크가 자신을 제압해 체포하는 것만 협회에 보여줘서 아이크의 입지를 지키고, 그 뒤에 도망치면 ‘복스를 제압할 수 있는 존재’ 로서 아이크의 가치가 더 높아질 거라 생각했겠죠.

그런 점에서 복스가 아이크에게 사랑을 느낀 순간은 복스 자신이 말하듯, 아이크가 자신이 지켜 왔던 신념보다 그의 존재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타락해도 상관없다고 말한 바로 그 순간입니다.

-유고가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을 맡았는데요, 아이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면서 뭘 하든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하고, 사정을 봐 주면서 멀쩡히 10년 동안 히어로 생활 하게 만들어줄 만한 인물이 유고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슈나 루카는 이 세계관 설정 상 당연히 악일 것 같고, 그 외에 녹틱스나 다른 선/후배조는 유고에 비해 아이크랑 그런 감정선을 쌓을 만한 대상이 아닌 것 같고… 그런 이유에서 유고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이었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복스가 아이크를 박대한 인간들을 탓할 때 그걸 듣는 사람이 하필 유고다보니 왠지 유고를 비난하는 내용이 된 것 같은 게 마음에 걸려요. 유고는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상사였는데… 하지만 이미 앞편을 올린지라 갑자기 유고를 빼기가 좀 그랬고요…

이후 유고가 어떤 노선을 걸었을지는 묘사하지 않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히어로 협회를 등지거나(이미 선의 본성을 타고났다고 인증된 상황이라 협회에서 탈퇴해도 유고에게는 아무 불이익도 없습니다) 혹은 인식 개선을 위한 정치적인 활동을 시작하거나 하는 등 최대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극복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또 과장이 아이크를 의심하다 못해 처분하자고 생각한 계기는 복스가 말한 대로 복스와의 만남을 통해 아이크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과장에게 보고한 것이 하필 유고였기 때문에,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었음에도 유고는 아이크의 타락에 한몫을 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는 극복해내리란 피셜을 붙여도 한동안은 꽤나 괴로워했을 거 같네요… 미안해 유고…

어쨌든 유고가 보고했던 아이크의 ‘변화’ 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이었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항상 주변 눈치를 보고 주눅들어 지내는 게 당연한 말단 히어로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다 = 뭔가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 란 식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 과장도 정확히 그 루트를 밟아 아이크를 처분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사실은 괜한 의심이죠. 괜한 공포구요. 하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 자각하지 못하거나, 자각했더라도 결국 안 좋은 선택을 하고 마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거기 더해 수많은 말단 히어로가 이런 억울한 과정을 거쳐 처분당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더 나아가 이 세계관이 얼마나 막장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꼭 넣었어야 할 부분이네요.

-마지막으로, 최종편에 링크한 YOASOBI의 <밤을 달리다(English ver.)>는 이 이야기 전체의 테마곡입니다. 원곡이 아니라 영어 번안 버전을 고른 것은 그 편이 이 이야기의 내용에 잘 맞기 때문입니다. 가사를 곱씹으며 들어보신 뒤에 다시 이야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은 ‘히어로였던 아이크가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악마(=악 측)인 복스를 사랑해 빌런으로 타락하는 이야기’ 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을 뿐인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세봤는데 세 편 합쳐서 공백 빼도 8만자는 되네요…? 이걸 한 편에 다 쓰려고 했던 초의 나 제정신…? 어쨌든 분량조절 못하는 버릇 진짜 좀 고쳐야 하는데… 오늘도 반성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연성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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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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