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Ep. 3; 원나잇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 (1)

레즈비언의 연애란 참 쉬워 보이다가도 한도 끝도 없게 어려운 것이다. 나는 지역 여성주의 동아리나 오픈채팅방 오프 모임 같은 데에 나가서 어떻게 인연을 만들어보려고 해봤으나...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어플이었다. 연애를 해보려고 열심히 뭔가를 해본 건 아닌데, 솔직히 몸이 고팠다.

그래도 그러면 뭐 해.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레즈 성인물을 찾아보다 현타가 온 것이다.

'오늘은 뭐 보지? 포르노? 웹툰? 아니면 클래식하게 소설?'

연애가 내 일상과 상관 없어진 이후로 내 취미이자 성욕해소 방법은 애석하게도 성인물 감상하며 자위하기였다. 여러 사이트를 오다니며 나도 나름 결제하는 기준이란 게 생겼는데, 그렇게 후원하고 결제한 금액이 쌓여 새로운 내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에잇, 캐시 충전해야 되는데. 돈도 없네.'

시작은 돈이 없어서였다. 차라리 사람을 불러 원나잇을 하지. 전여친이랑 헤어진 이후 나는 사귀진 않았지만 잘 될 뻔 했던 사람들과 몇 번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있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그때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나는 다른 게 아닌 섹스가 고픈 거였다는 것을. 생각이 정리된 나는 바로 고민 없이 어플 게시판에다 구인글을 올렸다. 지역과 나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올리는 게 마치 결혼정보회사 같았다.

띠링.

첫 알림이 온 건 글을 올린 지 30분 이상 흐른 시점이었다. 하긴 좀 더 정보를 자세히 올렸어야 했나.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 변방의 별 정보도 없는 내 글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무슨 성향이세요?

성향? 또 재미없는 팸 부치 나누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랑 안 맞겠네. 그냥 쪽지를 무시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무시하고 답장을 안 하기에는 30분 넘게 다른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내 글이 최신글에 밀려 노출조차 되지 않을 텐데. 아무 소득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 팸 부치 나누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딱딱한 말투로 답장을 보냈다. 아무래도 사실이니깐. 이랬는데 또 펨 부치 얘기를 꺼낸다면 그냥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 그거 말고 섹스할 때 성향이요

- 플레이 같은 건 안 하세요?

섹스할 때 성향이라면 깁텍을 말하는 거 아닌가? 플레이는 BDSM 같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성인물 같은 데에서 본 적 있지만 직접 해보진 않은 그런 것들.

- 저는 깁텍인데 플레이는 안 해봤어요

기껏해야 안대 쓰고 묶고 그러는 거겠지.

- 해보실래요?

빠르게 답장이 왔다. 내게 흥미가 생긴 걸까. 이렇게 쉽게 약속이 잡힌다고?

- 뭐 하는 건데요?

의심을 섞은 질문을 보냈다. 그리고 날아온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오픈채팅방 링크. 누를지 말지는 내 선택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그냥 카톡으로 넘어가자는 별 의미 없는 신호일까? 잠깐의 고민을 마친 나는 전송된 링크 주소를 눌렀다.

- 안녕하세요!

- 괜찮으면 전화로 하실래요?

나를 반기는 상대의 말투는 생각보다 발랄했다. 내가 딱히 거절하지 않자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들리시나요?"

"네."

상대는 높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쪽지의 주인은 오랜만에 어플을 보다가 너무 지역이랑 나이가 가까워서 연락을 해 봤다며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원나잇 하고 싶어서 글 쓰신 거죠?"

"네?"

그러고 보니 내가 섹스하자는 말을 올린 것도 아니었구나. 그런데 상대는 그걸 눈치채고 쪽지를 그렇게 보낸 것이었다.

"뭐. 네. 연애 안 한 지 너무 오래 돼서."

더 숨겨봤자 상대의 손아귀 안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바닐라는 아니시죠? 그거 해보실래요? 테스트?"

그러고 보낸 게 BDSM 성향 테스트 링크였다.

"지금 해보세요. 재밌어요."

"나중에, 할게요."

진짜 원나잇만을 위한 만남을 갖는 건 처음이었다. 상대에 대해서 이렇게 원래 사전 대화를 나누는 건가?

"아, 저 쓰리썸은 해봤어요."

갑자기 생각난 기억에 말을 꺼냈다. 뭔가 쑥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오, 쓰리썸 재밌죠. 누구랑 했어요?"

"전...여친이랑, 전여친 친구랑."

"해보고 싶어서 한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둘이 자는 걸 봐서...."

"아~ 그래도 쓰리썸 좋지 않아요?"

"솔직히 꼴리긴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 앞이라 그런가 나는 내가 느꼈던 쾌락에 솔직해졌다.

"SM이나 그런 건 안 해보셨구나."

"음. 네."

"그럼 처음엔 바닐라로 하고, 그 다음에 소프트하게 해봐요."

"네."

내 딴에는 흔쾌히 답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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