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사] 멸망에 대한 짧은 글

진짜 짧음 글 수련 정권 찌르기

멸망이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다. 이유가 운석에 의한 것이든 빙하기 때문이든 한 때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에게도 갑작스레 멸망이 찾아왔다. 지구 최후의 매머드는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쓸쓸히 마지막 숨을 내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멸망은 갑자기, 대비할 시간도 주지않고 쏟아져내리는 소나기와 같다. 인간도 언젠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그니스는? 이그니스라고 다를 게 있을까?

이그니스의 멸망은 그 탄생만큼이나 빨랐다. 원인이 그들 내부에 있었다는 것이 비통한 점이었다. 어쨌거나 여섯이었던 이그니스는 이제 하나뿐이다. 이제는 누구도 그의 원래 이름을 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의 호칭은 어둠의 이그니스, 동족 사이에서는 ■■■■■■라 불린 이. 앞으로는 오직 'Ai'라고만 불릴 최후의 이그니스는 동족의 무덤 앞에서 생각한다. 멸망에 대해.

그는 갑작스러운 운석에 의해 멸망했을 공룡을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갔을 공룡을 생각한다. 지구 최후의 매머드가 마지막으로 내쉬었을 숨에 대해 생각한다.

멸亡과 멸望을 생각한다.

멸亡이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다. 그의 멸망은 다른 이보다 한 발짝 늦게 찾아오는 것뿐이다. 머지않아 그 역시 소나기에 젖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발짝. 단지 우연히 늦었을뿐인 작은 보폭 안에 그를 남겨둘 수 있다면. 그의 존재, 그의 욕망, 그의 진심을 남겨둘 수 있다면.

멸望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멸亡이 두렵지 않다.

그는 멸亡하되 멸望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윽고 그는 무덤을 떠난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안식처. 그에게 허락된 작은 보폭을 향해서.



물론 滅望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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