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 서사버전 맞음

HEAVEN by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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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좋아해줄 거야?

네브는 원체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종자였다. 이만큼 살아왔으면, 사람을 놀라게 만들 반전도 환희도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싫은 건 아니야. 언젠가부터 숨 쉬듯 곁에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신기하지.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게 괜찮다니.

가끔은 궁금해. 그는 내게 뭘 원할까. 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가. 아니면 혹…내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한 네브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창을 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네브는 갑자기 억수같이 내리는 빗소리에 우산을 챙기고 나왔다. 간이 우산을 들고 다닌다는 걸 알지만, 트라의 성정이라면 그 우산을 제대로 쓰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가끔 비를 맞는 아이들에게 우산을 준 적이 있었고, 트라는 쫄딱 젖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분명 이 근처에 배달을 다녀온다고 했는데. 임시 거처에서 나와 한참을 걸었을까.

“아.”

어디서 들려온 탄식같은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얼마나 비를 맞은 건지, 어디 하나 젖지 않은 곳이 없는 모습으로 네브의 눈에 트라가 담겼다. 속으로 짧게 혀를 찬 네브가 트라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다가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된 거야?”

빗내음이 가득한 이 곳에서 네브가 절대 모를 수 없는 혈향이 나고 있었다. 네브는 트라에게 우산을 씌어주고 트라가 다른 쪽 손으로 감싸고 있는 오른쪽 팔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꽤 많은 피가 묻어있었고, 네브는 끝없이 흐려지는 안색 사이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트라에게 물었다.

트라는 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배달을 간 곳이 그, 유아 납치범의 거처여서 어떻게 하다보니까ㅡ 범인에게 당했다고. 그, 그런데 그 범인 칼만 휘두를 줄 알지. 금방 제압돼서 제가 해결하고 왔다고. 아이도 제 부모를 찾아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당연하겠지만 아직 통증이 있었는지,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거처에 약과 붕대가 있으니 금방 괜찮아질 거라며 식은땀을 흘리며 입매를 끌어올렸다.

거기까지 말을 듣는 네브는 깨달았다. 어쩌면 트라가 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거라고.

*

(내 생각이지만? 아닐 수도 있음) 사실 트라는 삐뽀라는 연락 수단이 있었으므로 그 상황에서 네브를 부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트라는 그러지 않았다. 네브가 필요하지 않았다기 보단, 이 정도 상황은 트라가 충분히 제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 일은 무엇 하나 제 뜻대로만 흘러가는 법이 있었나? 자신의 삶의 연속 중에 당연했던 것이 있었나? 네브는 주저없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네브는 얕은 숨을 내쉬며 지쳐 잠든 트라의 곁에 누워서 트라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내게, 바라는 게 없는 사람. 아니, 아니다. 트라도 보지 못 했을 얼굴을 한 네브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트라는 내게,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ㅡ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얽히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제게 무엇 하나 바라며 제게 얽혀오는 것을 바라며, 뭐 하나 확신도 없는 주제에 그가 자신을 바라길 원했다. 멍청하긴. 네브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기 자신을 비난했다.

*

“와. 몇 일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일이면 다 나을 것 같은데요?”

“응, 다행이야.”

네브는 소리없이 하품을 하며 책을 읽었다. 트라는 다행이 제 치료가 잘 맞았는지, 금새 낯을 밝히며 제 팔을 움직여보고 있었다. 기세를 보아선, 오늘부터 밀린 택배일을 하겠다고 나설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 목록을 체크해보는 기색이었다. 네브는 팔을 뻗어 제 옆에 서 있는 트라의 허리를 잡아 침대로 끌어내렸다. 으악. 소리가 들렸지만 네브는 봐주지 않았다. 트라는 갑자기 구속된 자신의 몸에 (그것도 네브의 몸 위에 엎어져있는 모양새) 깜짝놀라 고개를 들어 네브를 올려다보았다. 네브는 아까 읽던 책은 어디다 던져버렸는지, 자길 올려다보는 얼굴에 부드럽게 웃으며 트라를 팔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끌어안았다.

“나, 어제 못 자서 피곤해. 같이 잘래?”

“…예?”

“아니다. 같이 자줄래? 네가 있어야 잘 수 있을 것 같아.”

새벽까지 트라의 얼굴을 보다가 거의 잠들지 못 한 네브는 졸음기가 영 가시지 않는다며 당황해하는 트라의 품에 고개를 박고 눈을 감았다. 응, 너 내일까지 일 못 나가니까 포기해, 라는 말은 삼킨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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