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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카지 드림
배틀 코트의 분위기는 유례없을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불변의 정상을 지켜오던 제빈을 꺾고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챌린저가 나타났다. 정상급의 치열한 대결을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블루베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변함없는 일상이 반복되던 여느 때와 다르게, 비로소 ‘새’ 학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빅매치가 망망대해 위의 인공 구조물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에델 학생의 폴리곤2가 기절합니다! 많은 활약을 보여준 폴리곤2이지만 역시 격투 타입의 테라버스트는 못 당해내는군요. 남은 포켓몬은 필드에 나와 있는 아머까오를 제외하고 한 마리. 과연 마지막 포켓몬은……? 이럴 수가! 카지 학생의 마지막 포켓몬과 동일한 과미드라입니다! 게다가 무려 색이 다른 포켓몬이군요!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요?”
잘 짜 연극처럼 극적인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는 승부에, 스피커 너머로 침이 튀기는 듯한 기세의 방송부원의 해설은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해설을 듣는 관객들에게 흥분을 전염시켰다. 시합을 지켜보는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시합에 임하는 두 사람만이 고조된 분위기와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에델은 여유가 넘쳤고, 카지는 반대로 당황스러움에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카지에게 지금 이 상황은 명백한 예상 외의 이변이었다.
카지는 강해지기 위해 온 노력을 쏟았다. 카지에게 챔피언의 칭호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카지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환한 태양빛을 받아 눈이 따갑도록 빛나는 그 아이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스크린으로 만들어진 가짜 하늘 아래의 작디작은 세계 안에서 최강이 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린애 장난 같은 챔피언의 자리따위 그저 그 아이에게로 향하는 길에 거쳐 가는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을 터,
“곧바로 테라스탈하는 에델의 과미드라! 과연 타입은…… 세상에! 격투 타입에 유리한 비행 타입입니다!”
카지는 입술을 짓씹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자리라는 생각에 방심이라도 했던 걸까. 이제는 도무지 눈앞의 상대를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이 시큰해졌다. 무언가가 심장을 조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을 떼어내려 가슴께에 손을 올리려다가, 곧 자신의 손이 옷깃을 잡아 뜯을 기세로 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카지는 쥐고 있던 손을 펴고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밤새 전략을 필기하고, 끼니를 거르며 포켓몬을 단련시키던 노력을 증명하듯 손바닥에는 상처와 굳은살이 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작은 손이었다.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지난여름에 뼈저리게 느꼈으면서. 고작 노력한 것 정도로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안일함이 혐오스럽다 못해 숨이 막혔다. 카지는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시합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카지는 거치적거리는 몸을 붙들고 두 발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익숙한 비참함이었다. 참패를 당했던 그날 이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무력한 패배였다. 마지막 기술을 선고하는 에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합을 즐기는 미소는 그 아이를 닮은 듯 했지만───카지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달라.’
천진하던 그 아이의 미소와는 달리 에델의 미소는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 아이와 닮은 것이라곤 그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 감히 눈을 돌리지도 못할 만큼 압도하는 눈빛만이 우연처럼 잠시 겹쳤을 뿐이었다.
“카지의 과미드라, 테라버스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카지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닮든 닮지 않았든 그 아이와 겹쳐보는건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감상에 젖는다 한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카지는 여전히 약했고, 그 아이에게 자신을 증명할 길은 여전히 멀었다. 그러니까 이 시합은 기고만장해있던 카지에게 하늘이 내리는 훈계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카지는 가까스로 굴욕을 쓴 약 삼키듯 속으로 삼켜낼 수 있었다.
카지는 기절한 과미드라를 몬스터볼로 되돌렸다. 에델 또한 수고한 과미드라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다시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시합은 끝이 났다. 카지는 어서 돌아가서 이번 경기의 반성점을 짚어보고 엔트리를 개선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에델은 좀 더 이곳에 남아 승리를 음미하고 싶은 듯이 보였다. 에델은 카지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카지는 노골적으로 째려보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카지의 의사는 에델의 미소 아래 묵살되었다. 에델의 위압적인 미소는 악수를 받아줄 때까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카지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손을 잡고 있는 에델이 카지에게 무언가를 말했지만 함성 소리에 묻혀 카지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입모양으로 판단하건대 ‘앞으로 잘 부탁해.’ 같은 상투적인 인사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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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블루베리그 챔피언전의 우승자는 에델,
신인 챔피언의 방어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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