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츄린] 殘存海

온기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외로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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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한적한 그 날은 햇빛이 참으로 따듯했던 것 같았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만 들리던 도서관 속에서 따분한 책을 한 장씩 흘려넘기고 있던 어벤츄린이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내뱉는다. 창가 너머에서 비치는 따듯한 햇빛, 그리고 어벤츄린은 창가 걸터 앉는 곳에 앉아있었기에 햇빛을 맞고 있어 따듯해지고 있던 찰나였다. 어차피 어벤츄린은 머릿속에 담기지 않는 책을 볼 생각이 없었기에 책을 보는 척하며 책 너머로 보이는 레이시오를 바라보았다.

레이시오는 흐트러지는 자세 하나 없이 반듯하게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책 제목이… 뭐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로 되어있는 책이 다 있는 건지. 그것을 보고 있는 레이시오는 이해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역시 학교에서 자자한 모범생이 아니랄까봐. 처음에는 호기심, 두 번째는 의도. 그럼 세 번째는? 글쎄,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내였다. 생각보다 얼굴은 반반하게 생겨서 인기는 많던데….

자각하지도 못하고 책을 무릎 위에 두고 빤히 바라보는 어벤츄린의 행동이 레이시오의 눈길에 닿았을 때, 레이시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책을 읽지도 않을 거면 어째서 도서관에 같이 온 것인지 레이시오는 어벤츄린의 행동에 대해 불필요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평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책을 탁 덮고서 어벤츄린을 온전히 바라보자 어벤츄린이 그제야 아차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벤츄린.”

“왜 불러, 레이시오?”

“…나중에 같이 바다나 보러 갈까.”

“바다? 그걸 나랑 같이 가서 뭐하려고?”

“바다를 바라보면 기분전환이 되기도 해. 단지 그 뿐이야. 네가 어딜 가더라도 따라올 거라면 처음부터 동행하는 편이 낫겠지.”

“네에, 네. 결론적으로는 친구 하나 없어서 나랑 같이 가겠다는 거 아니야?”

“내가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마침 보였을 뿐이야.”

어차피 기억도 하지 못하고 스쳐지나갈 말일 텐데. 3개월이나 같이 다니면서 레이시오가 먼저 어디를 간다고 권유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어벤츄린의 일방적인 따라다님일 뿐. 그럴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게나 사람들 속에 있으면 불편해하는 것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데 그런 그가 자신에게 어디론가 가자고 권유할 리가 없었기에 어벤츄린은 그래, 그래~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 뒤로는 어땠었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벤츄린은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번 도서관에 같이 오면 잠드는 것 정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잠들때마다 일어나면 레이시오의 담요가 제 몸 위에 덮어져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준비해오던데, 도서관에 같이 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던가?

그렇게 레이시오가 바다를 가자고 권유한 지 4일이 지났다. 아직 별 다른 말도 없었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다를 바 없는 하루는 시간을 망각하게 만든다.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는데 정확한 일수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렴풋의 짐작일 뿐. …그래, 역시 잊은 거겠지? 하지만 그가 잊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럴만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간 그리 날이 좋진 않았다. 그 말이 있고 이틀 뒤에 비가 오긴 했으니까 그럴만 했다.

어벤츄린은 바다에 가본 적은 없었기에 바다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그저 교과서로 어쩌다 한두 번 봤던 것이 다였을 거다. 비가 온 뒤의 바다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만 알지,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 조차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제법 날이 흐렸다. 햇빛이 뜨긴 하지만 간간히 계속 구름에 가려질 정도로 구름이 제법 있었기에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들다가도 언제 햇빛이 있었냐는 듯 그늘이 지는 것의 반복이었다. 아, 오늘도 정말로 지루하고 낭만도 없고. 똑같은 풍경은 어벤츄린에게 슬슬 질려왔다. 잠시 창문에 기대어 책으로 얼굴을 덮는다.

대체 이런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매일 보고 다니는 건지. 그리고 자신은 어째서 계속 그런 그를 따라다니고 있던 건지.

아마 따라다녔던 것은 처음 전학오고 난 뒤였을 거다. 정당하게 이겼을 뿐이었는데도 강제로 전학이라니. 가해자들이 뇌를 잘 쓰긴 한 모양이었다. 애당초 그런 학교따위 다닐 생각도 없었으니까 잘된 모양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기대되는 감각도 있었고, 생각의 한 편으로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일 거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네가 마침 옆자리니까 도와주도록 해, 레이시오.”

“…네, 선생님.”

레이시오라는 이름의 옆자리에 앉은 애. 그리고 자신을 대놓고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 레이시오를 향한 첫인상은 그러했다. 달가워하지 않는 티를 내면서도 도와주긴 하는 것을 보면 충실히 자신의 위치를 아는 듯했다.

어벤츄린은 그런 그에게 호기심이 생겨 처음에는 그저 뒤를 밟고 있었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어색하게 들키고 난 뒤로는 대놓고 그의 옆에서 거닐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지도 않던 책을 손에 쥐고, 눈으로 활자를 바라보고 책 너머로 그를 바라보는 것도 거진 3개월은 족히 넘었을 거다. 3개월 동안 잠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자신도 모르게 따듯한 햇빛에 잠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고 보니 햇빛의 눈부심과는 사뭇다른 빛이 시야를 감싼다. 눈을 꾹 감았다가 뜨니, 알 수 없는 그늘이 생기고 머리 위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톡 닿았다.

“매번 잠들 거라면 차라리 안 오는 것을 추천하지. 시간 낭비야.”

“하하, 조용한 도서관에서 잠드는 것도 나쁘진 않아.”

“…전에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던 말을 기억하나?”

“응? 그럼. 그 말을 들은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어. 내가 그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진 않아.”

“지금 시간은 충분하나?”

“으음, 음…. 오늘은 딱히 뭔가 없어.”

“그럼 지금 보러 가지.”

어벤츄린은 잠시 두 눈을 끔뻑이며 레이시오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자신과 바다를 보러 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나온 반응이었다. 어차피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어벤츄린은 바다를 가본 적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냉큼 레이시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레이시오가 도서관을 정리하는 동안 기지개를 쭉 펴고서 그런 그를 바라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레이시오의 움직임은 그 어떤 불필요한 행동도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정리를 끝낸 레이시오가 어벤츄린을 바라보자 어벤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발걸음을 뒤따라간다.

바다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지만, 달리 할 말들은 없었기에 손님이라고는 둘 뿐인 버스 안은 정적이었다. 어벤츄린의 눈동자에 담기는 풍경들은 매우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바다로 향하는 풍경들이 이렇게 낭만 하나 없어서야. 다른 점이 있다면 꽤 늦은 저녁이었고, 이 버스는 바다로 향하는 오늘의 마지막 버스였기에 어두운 하늘 아래 건물들이 밝은 불빛을 머금어 조금 볼만 하긴 했다. 그 마저도 그 어떤 감흥도 없었기에 무의미하게 바라볼 뿐이었지만.

창문 너머의 풍경에서 시선을 거둔 어벤츄린이 고개를 돌려 레이시오를 바라보았다. 레이시오는 도서관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누구보다 평온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먼저 가자던 사람 맞아? 보통 이럴 때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이런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냐고! 나름 어벤츄린은 억울하면서도 조금 토라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터라 묘하게 뚱한 눈빛으로 레이시오가 읽는 택을 바라보았다. 끄응… 여기서는 잘 안 보이는데. 더 가까이… 더…

그러다가 어벤츄린의 머리가 레이시오의 어깨에 닿았다. 정말 조심스레 닿는 것이 어벤츄린 답지 않았으나 레이시오는 놀라 머리를 떼려는 어벤츄린의 행동을 그대로 자신의 어깨에 다시 기대라는 듯이 끌어오고서 책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럴 때만 꼭 친절하다니까. 편하게 머리를 기댄 어벤츄린이 책을 봐봤자 이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확실히 기분은 풀렸었다.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버스가 종점에 멈추자 보이는 광경이 두 눈에 담기자 어벤츄린은 완전히 시야를 빼앗겼다. 광활한 바다는 끝이 없는 심해를 머금은 채로 잔잔한 파동을 내뱉어낸다. 하늘이 꽤 어두웠기 때문에 차가운 바람이 몸에 확 스며들었다. 작은 물결이 사근대며 귀를 간지럽히는 것이 정말로 딱 생각했던 바다의 향기와 풍경이었다. 그래도 상상에서만 존재했던 낭만적인 풍경이 막상 두 눈에 담기니, 시선을 모조리 빼앗았다. 저 바다에 발을 담그면 그대로 사라질까. 잔잔한 바다가 너무 외로워 보인다. 아무것도 품지 못하고 차가운 달빛만 품는 것이 마치 자신과 비슷하게 보여서.

사그락 밟히는 모래를 뒤로 하고 물결의 흔적이 남은 그 끝에서 아슬하게 이어지는 흔적을 따라간다. 한 발자국 차이가 날 정도로 어벤츄린이 레이시오의 뒤에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아서 기약없는 정적이 시간을 멈춰버리는 것만 같다. 분명 우리는 걷고 있음에도 어째서 멈춰있는 것일까. 누군가 이 간극을 멈춰줬으면 좋겠어. 이 한 걸음을 멈춘다면…

“레이시오.”

“어벤츄린.”

발걸음이 멈춘다. 뒤늦게 멈춘 발걸음인 탓에 한 걸음 차이였던 간극이 한 걸음 더 벌어졌다. 이름만 부르고 멈추는 침묵은 다시 이어지고, 이런 애매한 상황이 묘한 웃음을 자아낸 탓에 침묵이라는 얇은 유리가 오래가지 않아 웃음으로 깨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고 있던 레이시오가 귓가에 닿는 웃음소리에 완전히 뒤로 몸을 틀어 어벤츄린을 시야에 담았다. 그 전까지 웃음을 조금씩 흘리고 있던 어벤츄린이 붉은 눈동자에 담기자 웃음을 지워내고 고개를 돌려 가만히 바다를 응시했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시선을 피해내고,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바다를 담으니 바다에 당장에라도 몸을 던져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레이시오는 한 걸음 다가가 어벤츄린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벤츄린의 뺨을 어루만지며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저 보랏빛 시선이 언제부터 자신에게 닿았을까. 언제나 웃고 있으며 다양한 표정을 눈동자에 담던 것이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담아두지 못하고 허공을 담는다. 그 허공에 무언가를 담아주고 싶다는 것은 순수 이기심이며 레이시오는 이 감정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이기심을 담아 답지 않게 따듯한 미소를 품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어쩌면 제일 유일한 따듯함일지도 모른다. 분명 어떤 말을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것을 망각할 정도로 미소가 너무 따듯하고, 그것에 녹아내릴 것만 같다. 녹아내리는 것에 흐트러져서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는 뒤로하고 유일하게 닿는 온기에 눈을 감는다.

고요하게 맞닿은 입술, 그리고 얽히는 타액은 마음을 대변하기 충분했고, 말이 이어지지 않아도 족했으나 간극을 완전히 좁힐 수는 없었다. 한 걸음이 남은 이 거리가 관계를 나타내고 있었기에 귓가에 닿는 파도소리가 끊어진다면 아마 이 한 걸음의 간극도 더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붙잡지 않으며 바라보기만 해야한다. 그것이 바다가 품은 외로움이자 우리의 이어지지 않은 마음의 대가이므로.

끊어진 시간을 다시 이어놓을 수 있을까?

한 걸음이 너무 길어서.

손을 뻗었는데도 네가 닿지 않아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

다가가지 못하는 투명한 벽이,

우리를 막고 있잖아.

이제 그만 우리의 간극을

―멈출 때가 되지 않은 거야?

서로 다가가지 않는 간극은 그렇게 좁혀지지 않는다.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돌아봐주긴 할까? 언제나 너는… 언제나 넌, 그대로 흘러가고 우리의 발자국은 한걸음 차이를 두고 남겨졌는데. 난 이 관계에 더 선을 그어내고,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나도…….

얽힌 타액이 혀 끝에서 실타래를 만들었다가 끊어진다. 그렇게 웃던 모습도 사라지고, 다시 옮기는 발걸음은 그 간극이 다시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 뒤로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차가운 바다는, 밤하늘은 끊어졌다.

막차가 끊긴 탓에 걸어서 돌아왔었지, 분명. 어벤츄린의 집은 그 근처였으나 레이시오의 집은 살짝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레이시오는 어벤츄린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반대에 있으면서 대체 왜 이런 배려를 내어주는 건지 어벤츄린의 생각이 복잡해졌었다. 어색하게 인사 하나 없이 헤어졌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다음에 또 바다나 가자고 할까 싶었지만… 그 날 이후로 레이시오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어벤츄린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그가 학교에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레이시오는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하지만 어벤츄린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레이시오의 연락처도 없었고, 레이시오가 사는 곳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날에는 오겠지, 그 다음날에는 오겠지. 초조해지는 불안감이 어째서 한 가지 가설을 확정하려고 드는 건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어벤츄린은 레이시오와 함께했던 도서관에도 늦게까지 머물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깨우는 소리에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차가운 바람, 밤하늘 아래 혼자 있는 자신. 그날의 기억. 모든 것들이 바다를 구성하는 것들이 되었고, 이는 점차 어벤츄린에게 스며들었다.

바다가 외로워해.

바다에 홀로 남겨진 생물은 분명 저 드넓은 바다에 삼켜질 거야.

바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생기 하나 남지 않았다. 파도같은 외로움은 지독하게 그의 빈 공간을 확실히 자각시켰다. 그것이 일상처럼 무감각해질 쯤이 되어서야 어벤츄린은 레이시오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레이시오는 바다를 본, 그날 밤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 원인은 아직 불명. 어째서 그가 죽었는지, 그의 유서는 없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존재했다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처럼. 아니 어벤츄린에게는 그가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것만 같았다. 모두가 시체 하나 없는 이 사건에 대해 자살이라 칭하지만, 레이시오가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없었다는 생각에 더욱 생각이 얽혀들었다. 그래, 적어도 자살할 사람은 아니지. 그럼 타살이라도 되는 건가? 그럼에도 어벤츄린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할 뿐.

어벤츄린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날에 있었던 그 웃음은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은 말은 무엇이었는지.

얽힌 타액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생각이,

속이,

마음이.

얽혀든다.

짙은 밤하늘 아래 잔잔한 파도가 치고 있는, 그가 데려갔던 바닷가 모래에 발자국을 남겼을 때, 물가가 스며들어 다시 모래를 흐트러뜨리고 사라지는 발자국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마치 그가 그렇게 사라진 것만 같아서. 저 물이 그를 깊은 심해에 떨어뜨려놓은 것만 같았다. 물이 들어오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앉아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드넓은 파도는 그를 기꺼이 수용하듯 다시 세차게 밀려들어오며 닿는 일부분을 적셔온다. 이 찬기운이 따듯한 온기와 얽혀들 때, 어벤츄린은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를 품었다. 마치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것처럼.

있지.

내가 만약에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지금 나를 안아줬을 거야?

바다가 너무 차가워.

너무 외로워해.

네가 그리웠던 건지 바다의 소리가 귓가에 잘 닿아.

하하, 안아줬네.

너무 따듯하다, 사랑해.

사랑해,

베리타스 레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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