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제비 1
연경원
봄바람이 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연경 지휘관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럼요, 설마 나부의 검수가 이것 하나 못 할까."
"안전 절차상 확인하는 것이니 대충 넘기지 마세요."
"네, 네… 제가 지금껏 베어온 풍요의 흉물만 일만 마리가 넘어갑니다. 설마 제 검술 실력을 의심하시는 것은 아니실 거고."
부현의 옷자락에선 언제나 복숭아꽃 향이 났다. 천외의 연산 기관을 삽입한 선인이라 하더니, 요즘은 손짓 하나하나에 복숭아꽃이 피는 것 같다. 연경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허리춤에 매단 검이 봄을 타는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명심하세요, 죽으면 안 됩니다."
"제가 죽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죽어서 돌아온 나부 검수들의 시신은 몇 번 봤죠."
"……."
"검수대인."
"압니다, 알아요. 나부에 있는 검수 중에서 제가 제일 뛰어나니 전력 보존을 해 와라 이 말이시죠?"
"뭐, 그런 건 아닙니다만."
바람이 불지 말아야 할 곳에서 바람이 억세게 불고 있었다. 부현의 짙은 모란 빛 소맷자락이 바람을 머금어 한껏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며 소리를 울렸다.
"성년 축하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못 전해드릴 것 같아서요."
"… 네, 감사합니다, 장군."
연경은 그제야 검을 꺼내 들었다. 선주에서 불어선 안 되는 폭풍우가 그가 펼친 검진을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올린다. 공중에서 황금빛 시선이 서로 얽혔다. 가장 끝에 있던 검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연경이 도약했다. 옥도 자를 만큼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이 진도의 날끝 위로 미끄러져 순식간에 창대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상대는 제 손이 베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굴었다. 검날에 낯이 비친다. 연경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하늘에서 얼음이 쏟아졌다. 연경의 마음도, 상대도, 전부 꿰뚫어 얼려버릴 것처럼…….
… 따르릉-!
"아, 아 깜짝이야, 아, ……."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연경이 날치처럼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아니, 그 전에 그 사람 칼을 맞댔을 때 하늘에서 보검의 비를 내린 적은 없는데. 제 기억이 이상한 건지 개척자에게 선물로 받은 아하의 기물이 그의 정신을 마음대로 꼬아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맡에 있는 아하를 닮은 둥글둥글한 인형의 한가운데에 괜히 정권을 한 번 내지르곤 머리를 묶어 올렸다. 알람 시계가 울린 게 아니라 개인 옥조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거였다.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옥조의 버튼을 누르자 울상인 목소리가 그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검수대인-!!!]
"네, 네… 청작 책사장,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은 무슨, 오늘 사관학교 임관식이에요?! 시작까지 일 각도 안 남았다구요!!]
"… 오늘이에요?"
[검수대인, 정신을 빼놓고 사는 것도 봐주는 것에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당장 튀어오세요!!]
마지막은 부 장군이다. 연경이 눈을 깜박였다. 그래, 사관학교 임명식. 운기군 장교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 … 벌써 그럴 때가 됐나? 벌써 겨울이 다 끝나간다고. 옥조에서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직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눈에 순식간에 이채가 돌았다.
[제 시간 안에 못 오면 검수대인의 소장품 전부 공매로 팔아버릴겁니다.]
"… 10분 안에 가겠습니다."
[5분 안에 오세요.]
그날 기계 두루미 마흔 세 대에 연경의 별뗏목 과속 장면이 찍혔다.
기실, 연경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정말 끔찍하고 통탄스러울 정도로 못 했다. 성년식도 치르기 전에 비검 여섯 자루를 제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에 통달한, 검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찬사까지 들어온 자에게 타인의 눈높이까지 맞춰 설명해주기란 검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서 사관학교에서 연경의 직위는 다음과 같다.
"아, 아슬아슬하게 오셨네요, 명예 교관님."
"전 운기군 수석 교련이 아닌데요."
"뭐, 상위 1퍼센트 애들은 직접 지도해주시잖아요. 장군님 연설 끝나면 검수대인 차례에요. 준비해오셨어요?"
"……."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쩐지 오늘 아침 제원 경옥에서 패가 안 잡히더라."
"예비 연설문 있어요?"
"장군님 연설문 다 외워 오셔서 검수대인이 참고할만한 건 없을걸요."
연경의 흐트러진 옷차림하며 머리칼을 부지런히 정리해주던 청작이 우레같은 박수 소리에 흠칫 몸을 굳혔다. 늦은 것도 모자라 준비도 안 해왔다는 것을 알면 부현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창백해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굴리던 청작이 연경의 품에 이면지 한 다발을 가득 안겨주었다. 당연히 제원 경옥 팁이 인쇄된 종이였다. 그즈음 연경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가진 채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청작이 이면지랍시고 쥐여주는 제원 경옥 규칙 종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는 경옥을 즐기지도 않는데 규칙에 통달해있었다.
"검수대인."
"…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늦은 만큼 봉급에서 제하겠습니다. 그런 줄 아세요."
"네?"
"싫으면 애장품을 공매에 붙이시던지요."
"… 얼마나요?"
"노력이 가상하니 삼 할씩 석 달 깎죠. 마침 공조사의 신작이 나온다던데."
"진짜 너무하십니다……."
연경이 우는 소리를 내든지 말든지 부현은 도도한 걸음걸이로 단상 아래까지 내려갔다. 연경은 긴긴 한숨을 내쉬다가, 마이크를 잡은 운기군 대장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미적거리며 단상에 올랐다. 오와 열을 맞춰 연무대 위에 도열한 장병들의 시선이 한데 꽂히는 것은 언제 당해도 부담스러웠다. 개중 검수대인을 동경하는 듯한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내는 장병들은 더더욱. 연경은 애써 그런 사람들에게 살풋 웃어주고는 침음으로 서두를 떼었다.
"… 장군께서 연설 얼마나 하셨죠?"
"한 식경 채 안 됐습니다!"
"목소리가 좋네요. 그럼 한 식경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끝장나게 훌륭한 연설을 해주신 장군 뒤에 제가 무슨 축하사를 드려야 할까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울린다. 연경은 부현의 꾸지람 레파토리를 생각했다. 체통을 지켜라, 공석에서는 좀 진지해져라, 운기군 일에 시선을 돌리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하지 않겠냐 등등…. 대부분 연경의 행실을 지적하는 잔소리였으나 연경은 나부에서도 제일가는 장.꾸(청작이 알려줬다)였다. 이번에도 부현의 잔소리는 가볍게 흘려 넘길 연경이 마저 말을 이었다. 제가 하는 말은 죄다 진부할 것이니 적당히 듣고 흘리라는 농담을 덧붙이자 연무대 곳곳에서 다시 웃음이 와- 하고 퍼져나갔다. 연경은 그의 말마따나 장병들이 골백번은 더 들었을 말을 했다. 우리 운기는 하늘을 나는 선주를 가리는 구름과 바람이 되어야 한다, 뭐 그런, 사관학교 대청 현판에 걸려있을 그런 말들. 선주를 지키고 나부 시민을 지키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각자의 심도를 찾아 수련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단상에서 내려오려던 연경이 정렬한 사병 끝에 시선을 던졌다.
익숙한 눈이었다.
연경은 아주 짧게 침묵하고는, 앞으로들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올라가던 것과 다르게 단상을 내려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뭘 말입니까, 검수대인."
"장군이 있었잖아요!"
"그럼, 사관학교 임관임명식인데 나부의 장군인 제가 와야지요. 달리 또 누가 오겠습니까?"
부현은 불붙은 얼음처럼 뜨겁고 서린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부의 장군으로 군림한 지가 어언 사백 년이다. 전임 장군이 집권하던 시절 6각료 중 용녀 다음으로 어린 태복이었다 하여 그보다 더 어린 검수대인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 정도야 눈 하나 깜박하는 것으로 흘려넘길 수 있다는 말이다. 연경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사위를 물리고 단 둘이 남았을 때야 이런 걸 보여주는 걸 보니 이래저래 성장을 하긴 한 모양인데. 부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연경이 심호흡하는 것을 보다가, 손가락을 짧게 튕겼다. 세상의 이치를 본다는 법안이 짧게 빛나더니 손 위로 별자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시왕사의 전언입니다, 검수대인."
"… 전언이라 하심은?"
"무엇이겠어요. 전임 장군이 시왕사에 기록해둔 회고록을 가져가라는 전언이지."
"…… 잠시, 잠시만요. 그 아이가 환생이 아닙니까?"
"글쎄요? 장수종이 여우족처럼 윤회를 믿는건 아니니까요."
"장군님!"
"내 말 끝까지 들으세요, 연경. 그 아이가 환생이라고 하여 당신이 일평생 보아온 장군인 건 아닙니다."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연경은 이런 소리를 백 년도 더 전에 숱하게 들었다. 그가 아직 운기군 효위였을 때의 일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지형사에서 지정한 특수 소재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며 웃었던 사람이 있어서, 사관학교 본관에 대한 역사를 모를 즈음의 그부터 운기군 역사는 눈감고도 외울 만큼 자란 그는 백 년 전까지 이 곳을 숱하게 드나들었다. 여기를 가로질러 가는 게 신책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못한 채 굳었다. 부현은 한숨을 내쉬고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말간 감정을 담은 목소리가 연경의 귓가를 스치고 다시 돌아왔다.
"장군님!"
"사석에서는 부현이라 불러도 된다 했을 텐데요."
"명예 교관님이 계셔서요."
"사석이니 편히 부르세요. 아,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던가… 소개해드리죠. 검수대인, 이쪽은."
연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필히 마주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연경은 몰랐지만 그가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는 제법 전임 장군을 닮았다. 그는 소년과 눈을 맞춘 채 애써 웃었다. 어딘가에서 솔향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눈앞의 어린 소년에서 나는 향이 연경이 기억하는 신책부의 향이었다….
"이번 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인 경원입니다."
제비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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