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데 100일 (1)

퇴고X

백업 by 126
170
15
0

“오빠! 내일 힐데랑 100일이라며!”

시작됐군. 최윤이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껐다. 온 집안을 쿵쿵 울리며 요란하게 뛰어온 최아미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보고있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

아미는 윤의 간결한 답에 상처 받은 표정을 했다. 윤이 눈을 모로 굴렸다. 그러니까, 힐데베르트와 자신 사이의 일이 아니냔 말이다. 왜 주변에서 더 난리인 건지. 최윤은 담백하게 사실을 짚어주었다.

“그 놈도 이벤트 같은 건 기대 안 하고 있을 걸.”

사실이었다. 최윤과 힐데베르트 탈레브는 연애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특별한 날’을 정해 요란스럽게 챙기는 행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윤은 애초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고, 힐데베르트는 대충 윤에게 맞춰 행동하는 것 같았다. 뭐, 서로 편하고 좋지 않나. 기념일 같은 것은 번잡스럽다.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지 않게 한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윤이 태연한 표정으로 그같은 말을 하자, 사색이 된 아미가 윤의 팔을 잡아 질질 끌고가며 ‘오빠는 섬세한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니 혈육인 내가 책임지고 사람 노릇을 시켜야한다’며 이상한 각오를 다졌다. 윤은 얌전히 붙잡혀 끌려가며 생각했다. 이럴 줄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귀찮군.

아미는 퇴근 후 쉬려고 방에 들어가던 예현까지 자리에 앉혀놓고 ‘최윤 100일 이벤트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는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끝내주는 데이트 코스를 짜고, 마음이 담긴 선물(“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최윤이 말했다.)을 건네 힐데베르트가 질질 짜도록 감동적인 하루를 만들어주자는 거였다.

최윤은 아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해라.”

아미가 윤의 바짓자락을 붙들었다.

“아! 오빠아!”

“걔도 추리닝 입고 맨 몸으로 나올 거라니까.”

“오빠도 알면서! 힐데는 감정적인 교류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런 귀찮은 기질이 있기는 하지.”

“100일에 아무것도 안 해줬다가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들으면 어떡할 거야? 그 때 가서 후회해도 늦는다!”

윤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놈이?

센터코어 본부의 모두가 알았다. 이제 힐데베르트는 최윤에게 죽고 못 산다는 걸. 윤 본인 조차 의아할 정도였다. 제가 하는 사랑이 ‘보통의 사랑’과는 꽤 동떨어져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연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다. 그런 하자 있는 관계라도 좋다는 것이다. 힐데베르트는.

윤으로서는 이해가 안 됐지만 제게는 좋은 일이니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힐데베르트가 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불필요한 일이어도 가끔은 어울려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긴, 윤이 ‘일반적인 연인 역할 수행’의 일환으로 가끔 꽃이라도 사다주면 부러 과장스럽게 놀라면서도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곤 하던 놈이었다.

윤은 여전히 저를 붙들고 징징대는 최아미의 머리에 턱 손을 올렸다.

“알겠으니까 이제 놔.”

아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서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던 예현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하려고?”

“어. 실연 당할까봐 무서워서 안되겠다.”

예현은 웃으며 “힐데가 좋아하겠네.” 했다. 그리고 언제 지켜만 봤냐는듯 무서운 기세로 아미에게 합류해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 유난이다. 힐데베르트도 이 광경을 봐야하는데.

그날 밤 최윤의 꿈에는 옷 300벌을 들고 쫓아오는 최아미가 등장했다.

*

최윤과 힐데베르트 탈레브가 연애를 시작한지 100일째의 아침. 힐데베르트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윤과는 오후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고, 검을 휘두르고, 티그가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다가 약속시간 30분 전쯤에야 대충 편한 옷을 걸쳤다. 핸드폰과 지갑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 외에는 당연히 빈 손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5분 전에는 도착하겠군.

힐데베르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여 오두막의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보는 고급 세단과 쓰리피스 정장을 입고 한 손에 거대한 꽃다발을 든 최윤이 눈에 들어오자 불가해한 신화생물을 목도한 한낱 인간처럼 공포에 질려버리고 만 것이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윤힐데
  • ..+ 12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