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데 100일 (2)

퇴고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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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겨우 충격의 늪에서 벗어난 힐데베르트가 더듬거리며 입을 뗐다. 힐데베르트가 저를 보며 눈을 키웠다가,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가, 시체처럼 굳어 서있다가, 떨리는 동공으로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본 후 힘겹게 입을 여는 것을 최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가지가지하네. 그런 심정이었으나 입 밖으론 내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최아미에게 정신교육을 빡세게 받은 영향이었다.

“정신 들었으면 타라. 식사 하러 가게.”

“예? 아니, 설명은 해주셔야…… 애초에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약속 장소가 바뀐 겁니까? 차는 또 왜…… 윤은 왜…….”

힐데베르트가 횡설수설했다. 윤에게는 그 꼴을 너그럽게 기다려줄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말없이 힐데베르트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 조수석에 태웠다. 힐데베르트는 휘청휘청 차에 타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정말로…… 뭡니까? 오늘 무슨 날입니까?”

하. 윤은 기가 차 헛웃음을 쳤다. 봐라, 최아미.

“무슨 날일 것 같은데.”

“저 오늘 죽나요?”

“백일이다.”

“백…….”

힐데베르트가 입을 떡 벌렸다.

“언제부터 그런 걸 챙기셨다고요!”

“그러니까.”

“게다가 정장은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저 정말 실험대로 끌려가는 줄 알았어요.”

“낸들 아냐. 최아미한테 물어봐.”

“역시 아미는 센스가 좋군요. 잘 어울리십니다.”

“죽고 싶냐?”

최윤은 아미와 예현이 정해준 데이트 코스를 따라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윤에게 식사는 단순히 필요한 열량을 섭취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처참한 미각을 가진 것치곤 나름의 미식을 즐기는 힐데베르트를 위해 리카르도 소르디를 닦달해(아미가 했다.) 근방에서 가장 괜찮다는 식당을 알아냈다.

이미 1년치 예약이 꽉 찼다는 곳에 급히 자리를 얻느라 다소의 권력과 금전 남용이 있기도 했다.

힐데베르트는 자기주장 강한 건물의 외관을 보곤 약간 주눅 든 표정이 되어 차에서 내렸다.

“저도 신경 써서 입을 걸 그랬습니다.”

“됐어. 예상 했으니까.”

“그럼 미리 귀띔 좀 주지 그러셨습니까.”

“이게 자꾸 꿍얼대네.”

“죄송해서 그렇죠…….”

죄송할 것도 많다. 이해는 안 갔지만 그러려니 했다. 예현과 아미의 손을 빌어 이 물러터진 놈에게 마음의 짐을 하나 지웠으니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힐데베르트는 음식에 퍽 깊은 감명을 받은듯 보였다. 윤은, 글쎄. 정신없이 흡입하는 힐데베르트를 지켜보는 쪽이 더 흥미로웠다. 확실히 소르디가 추천할만 했다만. 앞서 말했듯 그는 음식의 맛에 큰 의미를 두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렉시크 누들처럼 끔찍한 수준이 아니라면.

“맛있냐.”

윤의 물음에 힐데베르트가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생기가 도는 눈빛이었다. 이런 걸 보면 또 미각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왜 그 수프인지 면 요리인지 모를 것에 환장을 하는지.

“아.”

윤이 입을 벌렸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힐데베르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포크로 찍어올리던 새우를 툭 떨어트렸다. 윤이 눈썹을 삐딱하게 세웠다.

“왜.”

힐데베르트의 표정이 묘해졌다.

“좀 귀엽……. 아니, 아닙니다.”

이게 지금 나한테 뭐라고?

윤이 황당한 심정에 말을 잇지 못하자 힐데베르트가 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잊으세요.”

“귀여워?”

윤이 되물었다.

“잊, 잊으십쇼. 잊으시라고요.”

“지금 사수를 겁박하는 거냐?”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할 겁니다.”

우습게도 결연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였다. 최윤은 입꼬리를 올렸다.

“귀여운 연하의 애인이 가엾지도 않아?”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힐데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웃음기 담긴 최윤의 시선과 마주친 힐데베르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에 들린 포크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효과 직빵이군.

힐데베르트는 너무 놀라서 그런 거라는 둥,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그렇게 웃지 말라는 둥, 들을 수록 황당한 소리를 주워섬기며 포크를 원상복구 시키려 애썼다. 그럴 수록 더욱 처참한 형태가 되어갔지만.

“윤이 귀엽냐니요?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세계 최악의 소시오패스 최윤을 두고 귀엽다니요?”

귀여워하고 있구만 뭘. 세계 최악의 소시오패스가 된 최윤이 생각했다.

이 괴상한 취향을 100일이 되도록 숨겨온 것도 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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