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지나간다.

그리고 사계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행성은 흔치 않다.

| 여름은 지나간다.

#SUMMER

파열음과 폭발 매캐한 연기 비명소리에 섞인 공포가 몰아친다. 기회를 노린 약탈과 탈취. 좁은 곳에 갇힌 이산화탄소와 그안의 사람들이 조용히 잠든다. 끊어져내리는 전선은 고무 피복이 녹아 그 내부의 핏줄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하 유독 가스가 누출된다는 기가 막힌 경보음이 탈출정의 카운트다운과 섞인다. 신년의 폭죽처럼 하늘로 쏘아져 올라가는 우주선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아니, 그 아래에서 축제라도 벌이는 듯이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 질식하는 중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로 몽롱한 정신으로 발광한다. 꺄르르 껄껄 깔깔 하하 호호. 몇 십 년 만의 귀환은 그러한 뜨거움 속에서 이루어졌다.

자신의 고향은 이곳이 아님에도 최대한으로 도왔다. 썸머, 그는 이미 몇 차례 밀려난 곳에서 태어난 아이로, 선대의 고향이라 하는 곳에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일생을 바쳤다. 그것은 꽤 오래된 작전이었다. 썸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왔다. 우리의 땅을 되찾자는 울림은 꽤 듣기 좋았고, 내심 우리의 소유로 할 수 있을 것의 경제적 이득을 따잔 자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멋들어진 말로 고취시킨 거주민들은 결국 다수파 되고, 길어진 기간에 급진파로 전향한 이가 많았으며, 그들은 스스로- 혹은 자신의 아이들을 채굴 현장에 잠입시켰다. 썸머는 그 마지막 기수. 가장 마지막 작전을 진행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이미 곳곳에 숨어들었던 예케다인들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 팀의 반장과 가까운 사람이거나, 테러 행위를 하기 위해 가장 은밀하고 손쉬운 보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보호구를 관리했고, 어떤 이는 소방시설을 관리했다. 많은 이들이 낮은 직급으로, 불침번을 서는 자들이 제일 많았으며 운 좋게 피한 이들도 자진해서 자신이 맡겠다고 한 날이었다. 예케다 채굴 현장 최후의 날!

썸머는 그날 밤, 열심히 자고 있었다.

아주 잠들어버릴 뻔했다. 특정인들의 테러임이 명확해지자 그 특정인들을 향한 분노가 부풀었다.

썸머 등 몇 인원은 수상한 낌새를 없애기 위해 평소처럼 거동하는 역할이었다. 하던 일을 계속하고, 일과를 마치고, 일이 진행되면 약속된 장소로 갈 것. 그렇게 하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차피 계획을 세우는 건 다른 어른들이기에, 그리고 속된 말로 짬이 덜 찬 놈들은 잘 써먹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썸머는 하달된 명령 없이 평소처럼 지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동포의 일을 돕는 방법이었다. 채굴 직후 가스를 빼낸, 1차 정제물은 보관 및 수송의 용이성을 위해 한 번 더 정제 시설로 옮겨진다. 수송 탱크에 담은 것은 우주선을 통해서 우주 상공에 대기 중인 함대로 옮긴다. 바로 이 일이 썸머의 직무였다. 우주 항법 기능사 1종을 딴 사람을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개월 전에 자격증을 취득함과 동시에 채용됐었다. 일과를 마친 후 친해진 동료와 수다를 떨고, 샤워했다. 기숙사에 달린 투박한 간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하나 꺼내 마셨다. 옆침대 메이트에게 같은 것을 꺼내서 건네고, 윗 침대 메이트에게는 간식거리를 건넸다.

4인이 함께 생활하는 방은 조금 열악했어도, 메이트들 간의 친분은 깊었다. 잠결에= 아니, 순간 기절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속닥거리는 대화를 들으며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대화를 많이 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깊이 잤는지. 때에 맞춰 피신하는 것도 잊고, 잠이나 쿨쿨 자다가 봉변당할 뻔했다. 막히는 숨은 연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화끈한 살갗은 불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강한 충격은 정신을 깨울 정도가 되지 못했다. 겨우 그 정도로 깨어날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벗어나려 팔다리를 흔들었다. 켁켁 뱉어지는 숨이 자신의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검은 연기는 모두에게 공평했다. 도망가면 발목을 붙잡는다.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꽂기도 했는데 그건 자신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도 축축한지.

새빨간 등이 깜빡거렸다. 전해 들었던 곳으로 가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왔던 흔적도 없었다. 그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팔딱팔딱 뛰는 사람들과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우주선. 그렇게 하늘을 뒤덮는 자욱한 연기. 몇 어른들이 말하던 첫 상륙의 날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그나마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숨을 돌리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붙은 불을 털어대는 사람들은 그대로 옷과 합쳐져 바닥을 굴렀다. 썸머와 같은 대기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 자신의 방에서 나오기는 했을까. 왜 하필 그날에 그런 늦잠을 잤을까. 밖에서 뛰어다니며 환호하던 이들은 왜 불타는 집으로 기어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를 않던가. 죽다 살아나와서는 그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썸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불길로 남아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계속해서 태우며 존재한다. 무너진 벽 너머 침대에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잠들어있는 부부가 있었다. 환히 웃으며 누워있더니 기체가 되어 불이 되었다. 일렁이는 열기, 후끈한 공기에 폐가 익을 것 같았다. 뜨거웠고, 뜨겁지 않았다. 죽었거나 죽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달렸던가 기었던가 절뚝이며 걸었던가 수리 센터에 있던 포트 하나를 잡아타고 쏘아졌다. 증가하는 가속도에 약해진 육체가 눌리고, 정신을 잃는다. 그 뒤에 깨어났을 때는 병실 침대 위였고, 곧이어 법정, 그리고 풀려났다가 다시 잡히고, 갇혔다가 풀려나고. 증거 불충분. 자격정지. 수면장애. 파트너. 멍청한 새끼. 다시, 법정.

떨어지지 않는 가벼움. 이어지지 않는 만남.

썸머는 자신이 자는 동안 약간의 폭력을 행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악몽이라는 게 항상 머리를 강타하는 것은 아니니, 딱 그 정도의 주기로. 몸이 불편하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도 같은데, 그나마 하나의 원인으로 묶을 수 있는 사례였다. 그래서 괜찮은 바디필로우를 얻은 이후로는 덜했다. 일어나서 다친 몸에 약을 바르는 일이 줄었다. 이따금 상대를 다치게 했을 때, 밀어내보기도 했으나 밤이면 또 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아침에 확인하고서는 조금 포기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리 치워버렸어야 했는데. 몸에서 탄내가 노릇하게 날 때 버리고 떠났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곱아서 말리는 몸에 딱딱한 인간 하나 집어넣으니 천천히 풀리는 감각이 나쁘지 않아서……. 하루를 꼬박 걸어다녔다. 아니, 그래도 밤에는 누구 하나 골라잡아서 언제나의 방식으로 방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잠은 잘 수 없었다. 썸머는 잠이 달아나버렸다. 또 잠들었다가는 이번에야말로 옆에 사람 하나 눕혀 놓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일이었던가.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글쎄. 요즘에는 그러질 않았으니까.

썸머는 결국 해가 뜨기 전에 방에서 나왔다. 낮보다 시린 공기가 뺨을 때렸다. 짐만 챙겨서 나가는 거야. 오늘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테니, 피곤해서 지금은 자고 있겠지. 조용히 들어가서 내 것만 챙겨서 나와야지. 네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정도는 놔두고 와야겠다. 그것까지 챙겨가면 양심이 없지. 이제야 양심 챙기는 것도 웃기지만 말이야. 당장 행성을 뜰 수는 없으니 기차표라도 끊어야 할 거야. 돈이 있을까? 뭐, 그 정도는 미안하지만 윈터. 네 지갑을 좀 빌려야 할지도 모르지.

문을 열자 훅 끼치는 알코올 냄새와 담배 냄새에 몸이 굳었다. 썸머는 작게 불 하나 놓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인영을 확인했다.

도망칠 수가 없어서. 머물 수가 없어서. 결정이 어려워서 미룬다. 어쩌면, 살다보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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