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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그 | 리암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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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는 혈향이 가득하였다. 리암 오코너는 잘 나가는 외과의였을 적부터 이 냄새에 아주 익숙하였다. 비록 지금의 그는 사람 셋을 죽인 수배범이었으나 리암의 죄악이 의학적 식견과 수술 집도 실력을 무디게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의사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익숙한 삶과 익숙한 일상은 이어진다. 설령 그가 얼마나 막대한 어둠에 흠뻑 젖어 살아간다 한들. 지금의 인생, 그러니까 뒷세계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그는 판단을 유보하였다. 그저 밥벌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니까. 게다가 도박장에 가서 쓸 돈도 필요했다.

그가 기적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그의 삶은 너덜너덜해졌다.

과거는 뒤돌아보기 싫을 정도로 짓밟혔다. 현재는 가히 곡예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미래? 생각해 봐야 암울하니 더는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다 되셨습니다. 다시는 이런 섬세한 부위에 총탄을 맞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비아냥이 가득한 뒷세계 의사의 건방진 한 마디에도 그의 환자는 너털웃음이나 터트렸다. 그야말로 대수술이었다. 반 년치 도박빚을 다 갚을 두둑한 보수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거절했을 일이었다. 초진이면서도 멕시코까지 사람을 불러제꼈으니 오죽 급하긴 했겠냐만은...리암의 환자, 그러니까 마약왕이라 불리우는 멕시코 제일의 마약 카르텔 보스는 적대 그룹과의 항쟁 중 겨드랑이와 심장 사이에 총탄을 제대로 맞아왔다. 다른 조직원들을 몸 던져 지키려다 그리 된 것이라 했다. 과연 조직원들은 거의 울며 저를 붙들어 사정을 했다. 제발 우리 보스 좀 살려달라고. 인망이란 기이했다. 가끔 그것은...그래. 어떤 종류의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리암 오코너는 집요하다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다급했던 젊은 조직원들의 애원을 생각했다. 개중에는 죽은 동생 또래의 젊은이도 있었다. 물론 그것이 ‘동료들’을 내버려 두고 굳이 멕시코 언저리까지 날아온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그들의 바람을 들어줌으로써 ‘기적’에 속죄하고팠다.

과연 속죄할 수 있는 부류의 일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그러했다.

11월 1일. 리암 오코너에게 이 날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저 6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을 오랜만에 성공리에 해낸 날 정도가 고작일 것이었다. 그러니 보스가 그에게 직접 리무진과 경호원을 붙여 퍼레이드에 보내는 호의 씩이나 베풀어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망자의 날에는 으레 이렇게 규모가 큰 퍼레이드가 벌어지고는 합니다. 보스를 위해 고생해주셨으니 보스께서 관광 한 번 해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남의 호의를 발로 걷어차는 취미는 없다. 반면 남이 베풀어 준 호의에 얼씨구 달려드는 취향도 아니다. 그는 그러니 이 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불빛. 가장. 흩날리는 꽃잎. 그리고 소란. 어째서인지 참가자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개중엔 당당히 맥주 캔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 마리화나 냄새로군. 정말 가지가지 하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들이 모조리 갖춰진 화려하디 화려한 거리가 그를 반겼다. 그는 그저 하릴없이 조직원들이 두둑히 챙겨준 돈가방이나 꼭 쥐었다.

기실은 그에게도 있을 터였다.

이 퍼레이드에 뛰어들어 누군가를 기릴 이유가. 저들과 한 마음이 되어 부를 이름도 있었다.

“피곤하군요. 관광은 괜찮으니 조금 빨리 가줄 수 있나요?”

“아이고, 네. 물론입죠!”

다행히 조직의 운전수는 보스의 은인을 깍듯이 대해주었다. 텅 비어버린 눈망울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리암은 그대로 눈꺼풀을 내리누른 채 자는 척을 했다. 그러고도 저들에게 섞이고 싶은 마음과 섞일 자격이 없으리란 절망은 오랫동안 그의 의식 세계 안에서 교차했다.

조직의 입김이 서린 비즈니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리암은 안도했다. 적어도 이제는 방금 전까지 저를 괴롭히던 번뇌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이는 너무나도 제 멋대로인 공상이었다. 기실 호텔 로비에도 축제로 향하거나 혹은 축제에서 돌아온 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노란 메리골드 꽃다발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간신히 체크인 카운터로 다가서서 간단한 전달 사항-청소는 필요 없고 무조건 노크하지 말아달라-을 전한 그는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옮겼다.

진녹색 빌로드 융단이 깔린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씻을 생각도, 누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그마한 옵션 냉장고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꺼내 호두나무 테이불에 올려두었다. 지갑 뒤를 뒤져 자그마한 폴라로이드 사진도 한 장 준비하였다.

11월 1일. 리암 오코너에게 이 날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저 6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을 오랜만에 성공리에 해낸 날 정도가 고작일 것이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잊어서는 안 될 날. 리암 오코너의 동생, 다니엘 오코너의 생일. 다니엘 오코너의 살인자로서, 그리고 형으로서 평생 내 목줄이 될 날.

그러하다. 오늘은 그가 죽인 다니엘의 생일이다. 노을이 서쪽으로부터 동쪽을 향해 엎질러진 물처럼 흘렀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미적거리는 이 시간에 축복 있으라.

모든 것은 정의와 사랑을 위해서였다. 연명 치료따위 싫다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알량한 명분으로 그는 존속 살인을 저질렀다. 약에 취한 채 운전을 해대다가 동생을 뇌사 상태로 만들고도 법의 심판을 피해간 그 작자가 원망스러웠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는 평생 제 안에서 울어젖혔을 것이다. 이미 더럽힌 경력이고 더럽힌 손이었다. 선의의 피해자? 웃기지 마. 더 가엾은 건 나야. 새하얀 광기는 이윽고 제 손에 죄 없는 민간인의 목숨까지 좌우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케 했다.

세상에 기적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그 무렵엔 그리 믿었다.

그러니 그는 제 손으로 정의를 구현해야 했으며, 이지러진 이치를 곧게 세워야 했고, 모든 것을 올바른 곳으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리암 오코너의 기적에 대한 냉소는 모든 것을 우그러트렸다.

다시 한 번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니엘이 좋아했던 초콜릿 케이크와 그의 사진을 번갈아 응시하였다. 사죄를 한들, 합리화를 한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그의 삶은 기적으로 인해 망가졌고 기적으로 인해 이어졌으며 기적으로 인해 불탈 것이다. 사락이며 무언가가 가슴팍에서 떨궈졌다. 아마도 호텔 로비에서 만난 이들이 장난질을 친 듯 했다.

메리골드.

그는 아주 잠시간 어깨를 떨었다. 직후에는 이를 갈았다. 다음 순간 괴성을 지르려 울부짖었다. 그래. 기적은 내 삶을 불태울 것이다. 내 죄악도 너를 향한 망집도 모든 희생도 태우고 또 살라먹을 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불탈 자격이 내게 있을까? 리암이 한겨울의 살얼음에 닿은 양 손을 떨며 메리골드 한 송이를 동생의 사진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나는 너를 보낸 이후 단 한 번도 울지 못했다. 다니엘. 헌데 어째서 나는 이제야 화살촉에 꿰뚫린 짐승마냥 너의 상실에 아파하는 것일까. 결국 나도, 너도 운명에 사냥당했던 것일까? 아니다. 이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도피이다.

다니엘 오코너를 죽인 것은 분명 리암 오코너이다.

도망칠 수 없는 사실에 짓눌려 그는 끅끅대며 토사물 닮은 오열을 내뱉었다.

리암의 죄악투성이 삶에 단 하나의 빛이 든다면 그것은 기적의 이름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는 그리 확신하며 살아왔고, 그렇기에 매일같이 기적을 확인하기 위해 도박장을 찾았다. 하지만 더는 칩이 일으키는 기적에 기투하지는 않으리라고도 결심하였다.

기적은 삶을 불태웠다. 이윽고 다시 한 번 불빛으로써 나를 이끌고자 했다.

그러니 그는 다 쉬어버린 목으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부디 곁에 와주길. 나를 용서하고 내 곁에 내려앉아주길. 오늘은 네 생일이고 나는 네가 사랑하던 모든 세계를 기억한다.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니까.

저녁노을이 선연하였다. 타오르는 정경 사이로 비추는 햇살마저 붉었다. 흐드러진 노을 속에서 춤추는 메리골드의 꽃망울은 다니엘의 사진을 어루만지듯 눈부신 빛을 드리웠다.

그 빛의 이름이 무엇인지, 리암 오코너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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