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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찬탈 애프터 로그 - 마리아나 시점

115호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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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그 마지막 메시지 이후 일주일 뒤에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모르는 번호였지만 오빠라는 걸 저는 한눈에 알아보았어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무섭기도 했고, 동시에, 동시에……. 뭐였을까요? 저는 그때 오빠가 절 부르는 걸 듣고 있었어요. 오빠는 일방적 메시지밖에 남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너머의 저를 알고 있었어요. 저는 오빠가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온몸이 점점 뻣뻣한 돌멩이처럼 굳는 느낌이었어요. 마지막에 오빠는 조금, 흐느끼는 것 같은 목소리였어요. 저는 그런 목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손을 뻗었는데 메시지는 끊어졌죠.


저는 제법 오랫동안 그 열일곱 번의 이름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나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고, 페레즈 카르텔을 궤멸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단다.


제가 아는 오빠는 커피 회사 사장이었어요. 처음에는 좋은 커피를 만들다가, 카페도 몇 개 열어서 멕시코와 미국에 운영중이에요. 오빠는 돈이 좋은 일에 쓰여야 한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기업이 먼저 친환경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저에게 여러 번 설명해주었어요.


나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고, 페레즈 카르텔을 궤멸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단다.


저는 그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때 절 껴안으며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하던 오빠를 생각하면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오빠가 미쳤다고 생각해버리고 말까요? 그렇지만 그때의 오빠를 본 누구라도 믿었을 거예요. 진짜라고. 오빠가 살인자이고, 그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쁜 사람이라는 걸요. 동시에 오빠는 미쳤다는 것도요.


나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고, 페레즈 카르텔을 궤멸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단다.


페레즈 카르텔. 검색하니 금방 나왔어요.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부모님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카르텔이기도 해요. 그들이 카르텔 간의 항쟁으로 멸망했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하지만 소수의 전문가들은 N.N.의 소행일 수 있다고도 분석해요. 왜냐하면 카르텔 간의 항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한 보복이 치밀하게 이루어졌고 마약은 전부 불태워 버렸다는 점에 있어서요.


그러니까 오빠가 N.N.이란 말인가요?


오빠가 마약 카르텔 사람일 가능성도 물론 있었지만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돈이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고 믿고 기업이 모두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카르텔 사람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오빠가 ‘그’ N.N.이라고요?


멕시코에서, 특히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이제 N.N.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어린애들 역할놀이에서 카르텔, 경찰밖에 없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 누군가가 N.N.을 맡기도 했어요. 누구나 N.N.을 하고 싶어했죠. 술자리에서 어른들은 대통령으로 N.N.이 나오면 뽑을 거라고도 이야기했어요.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물어보고 말았죠.


하지만 N.N.은 엄청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요?

어! 마리아나로구나. 무슨 일이니.

N.N.이 대통령이 되면 이상하지 않아요? 살인자잖아요.

푸하하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는 큰 손.

그건 어른들끼리의 농담이란다.


저는 생각에 잠겼어요. 어른들끼리는 가끔 이상하고 잔인한 농담이 오가는 걸까요? 아니면 뭘까요. 그러자 저를 쓰다듬은 분이 제 표정을 보고는 말했어요.


별 거 아니란다, 마리아나. 여기서 진짜 힘을 가진 놈들은 전부 살인자들 뿐이야. 그 살인자들 중에선 N.N.이 제일 낫지.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똑똑한 애들은 궁금한 거 풀릴 때까지 질문하잖냐.


그러고는 어른들은 다시 각자의 농담으로 돌아갔어요. 저도 궁금한 게 풀렸으니 방에 들어갔고요.


N.N.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어요. 왜일까요? 저는 N.N.이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그 사람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물론 저는 카르텔들이 더 싫어요. 카르텔은 너무 밉고 전부 다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N.N.이라고 해서 제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는 거죠. 마치 카르텔에 복수하는 것처럼, 모든 카르텔을 없애고자 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하는 누군가.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잔인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뭐, 옛날에는 아무도 안 죽이고 활동했다지만 지금은 너무나 사정이 다르니까요.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할까요? 그렇겠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오래 활동할 수 없었겠죠? 웩, 그 점에서 별로인 거예요. 사람한테 총질하고 처형하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심장을 터뜨려 죽이면서, 카르텔끼리 전쟁해서 사람이 죽도록 부추기면서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신원 미상의 인물. 으, 싫어요!


그냥 이 정도 감상이었어요.


그냥 이 정도 감상이었다고요…….


이제 저에게 그 사람은 더 이상 N.N.(신원 미상)이 아니에요. 후안 페레스도 아니죠. 그는 알레한드로 베가 푸엔테스에요. N.N.은 머리가 이만큼 길고, 항상 묶고 다녀요. 근처에 가면 항상 페퍼민트 냄새가 나요. 옛날엔 아저씨 냄새가 났는데 절 위해 담배를 끊고 나서는 그냥 상쾌한 향이 나요. 저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바쁘게 일하느라 집에는 잘 안들어오지만, 들어와서는 제가 수다나 떨자고 하면 항상 같이 이야기를 했어요. 보통 아빠들이 일하고 돌아오면 우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친구에게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오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항상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줘요. 오빠도 회사에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요. 물론 떼 쓴다고 다 들어주지는 않고 가끔 엄하게 대해서 서운할 때도 있지만, 혼내고 나면 꼭 안아줘요. 그리고 오빠는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요.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는 게 아니래요. 그래서 저도 아끼지 않아요. 저도 오빠한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요.


오빠는 마지막 전화에서도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죠.


저는 N.N.의 행보를 더 자세히 보려고 검색을 열심히 했어요. 잘 요약된 블로그가 나와서 읽었죠. 블로그 같은 건 믿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어차피 세부사항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행적으로 본 N.N.은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대로 복수자의 삶과 비슷해 보였어요. 저를 껴안으며 부모님의 원수를 죽였다, 그리고 원수가 소속된 카르텔을 다 밀어버렸다고 했으니 적어도 지금은 복수자의 삶을 살았던 거겠죠. 영웅심만으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을 저질렀고 최초의 활동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적어도 오빠는 15살 이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오빠는 기숙학교에 갔으니 방학 때 집에 올 때마다 그런 일을 한 거죠. 이전의 활동은 무엇 때문에 했을까요? 오빠가 돌아가셨다고만 하고 언급을 꺼리는 산티아고 삼촌이 혹시 연관이…….


그냥 무심코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삼촌의 이름을 검색했을 뿐인데, 인터넷은 참 무자비하지요. 저는 매달린 시체 사진과 눈이 마주쳤어요. 황급히 창을 닫았죠.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어요. 그리고 적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이전 오빠를 이끌었을 동력이 뭐였을지는 이제 짐작이 갔어요.


그렇게 저는 오빠와 N.N.을 부검했어요. 왜냐면 둘 다 그 사건 이후로 저에게는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부검하면서 오빠와 N.N.은 서서히 합쳐졌어요. 그리고 부활했지요. 부활한 오빠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어요:


일단 오빠는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쟁이에요.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무서운 협박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저에게는 숨겼어요. 처음엔 그런 말을 들은 게 너무 무서워서 얌전히 있었지만, N.N.에 대해 알고 나서는 이들이 진짜로 죽을까봐 안전가옥 안에 얌전히 있었어요.


오빠는 복수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왜 그 결심을 내려놓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오빠는 복수하는 사람이면서 아주 잔인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을 결정을 서슴없이 내릴 사람이에요. 그러니 저에게 그런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겠죠? 메시지에서는 그냥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거짓말로라도 그런 말을,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마지막으로, 오빠는 멈추지 않았어요.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페레스 카르텔의 멸망 이후에도 활동의 흔적이 있어요.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다면 거기서 그만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사실, 제 짐작이지만, 산티아고 삼촌의 복수도 진작 끝내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오래 활동했다면?


그러니까 오빠는 지금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멈추지 않는 거잖아요.


이게 옳다고…….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저는 토했고, 돌봐 주시는 선생님들이 놀라 달려와서 제 상태를 살폈어요. 저는 배탈이 난 것 같다고 했지요. 수액을 맞았어요. 맞고 나서는 순한 음식을 먹었지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모르는 번호를 바라보고 있지요. 이 번호도 무시하면 메시지가 남을까요? 그리고 오빠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을까요? 오빠는 그때 어떻게 나올까요? 12세 어린애를 대하는 것처럼? 아니면 눈높이가 맞는 한 사람처럼?


저는 끊어지기 직전에 받았어요.


잠깐의 침묵이 흐르네요. 오빠는 제가 받았다는 사실에 더 당황한 것 같았어요. 그러나 곧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잘 지냈니?

아니.

미안하다.

오빠는?

잘 지냈어.

그땐 어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했잖아.

…이젠 잘 해결됐어.


뭐가 잘 해결됐을까요? 뻔하죠. 아니면 뻔한 게 아니라 엉뚱한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오빠에게 물었어요.


왜 직접 오지 않아?

사정이 있어. 지금 상태로 널 만나면 네가 다칠 수 있어.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아. 하지만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전화라도. 만나서야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잔뜩 있어서 나도 애가 타. 그렇지만 정말 지금은 만날 수 없어. 그래도 꼭,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널 만나서 이야기를…….

오빠, 설명 필요없어.

…….

오빠 설명은 더 이상 안 중요해.

마리아나.

오빠가 부모님의 원수를 갚은 것도, 그런 김에 페레스 카르텔도 밀어 버린 것도, 살인자인 것도, 그 모든 것을 말하며 웃은 것도, 날 협박한 것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저는 중간부터는 울고 있었어요.


중요한 건 오빠가 아직도 N.N.이라는 거야.


그 말에는 끔찍하게 긴 침묵이 이어졌어요.


알아냈구나.

응. 난 똑똑하니까. 오빠가 항상 말해준 것처럼.

…네 말대로, 나는 N.N.이야. ‘아직도’. 네 말에 따르면, ‘중요한 것’이지.

N.N. 활동을 당장 멈춰.


오빠가 뭐라 설명하기 직전에 저는 말을 잘랐습니다.


설명하지 마! 그 어떤 조건도 붙이지 마! 멈춰, 제발, 이 망할 짓을 그냥 멈추란 말이야.

마리아나…….

제발, 오빠, 내 마지막 소원이야. 그만둬. 당장.


흐느끼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어.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음이 묶여서 사랑할 수밖에 없어.

떨쳐낼 수가 없어.

그렇지만 나를 위한다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시간이 거짓이 아니라면,

내가 잔인한 살인자를 사랑하게 만들지 말아줘.


오빠는 제가 엉엉 울고 한 차례 소강상태가 올 때까지 말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어떻게 말할까요? 그럼에도 자신이 N.N.일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할까요? 그렇겠죠. 그는 너무 오랫동안 N.N.이었어요. 알레한드로라는 사람의 인생 전체가 N.N.으로 범벅되어 있다고요. 오빠는 계속 N.N.이기를 고집하고 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저는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가족이란 건 그런 거니까. 괴물이 되어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게 가족이니까…….


알겠어, 마리아나. 그만할게.


저는 너무 놀라서 우는 것을 뚝 그쳐 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앞으로도 오래 곱씹게 되었어요.


고마워.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감정이 담긴, 심지어 그 감정을 담아낸 표정마저 상상이 되는 말. 수많은 다른 의미를 겹겹에 쌓아올려 그저 ‘고마워’로만 표출된 것.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요.


이후 나눈 이야기들은 평범했어요. 지금 오빠가 겪고 있는 곤란한 문제는 N.N. 활동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해결하고 돌아오는 데 한 주에서 몇 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했어요. 이제는 모든 것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알려주겠다고 했고, 오빠에게는 N.N.말고도 큰 비밀이 하나 있다고 했어요. 제가 어려서 실수로 다른 데다 말할까봐 안 알려준 거지 평생 숨길 생각은 없었대요. 제가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그런 비밀은 아니래요.


오빠는 오빠 말대로 좀 시간이 지나고 여기 왔어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원래 ‘고마워’가 무엇인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를 반기는 오빠의 얼굴을 보며 깨달았거든요.


저는 평생 그것을 물어볼 수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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