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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눈물

찬탈 애프터 로그

115호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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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워닝: 유혈, 잔인한 살해에 대한 간접적 묘사

은퇴를 앞둔 오르테가 경찰서장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류의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에두아르도 베가 몬테로 같은 부패경찰이었다. 카르텔에 굽신거리며 뇌물을 받고는 떵떵거리는 족속들. 피 묻은 검은 돈을 좋다고 받아서, 피와 눈물을 짓밟고 일어서서 부자가 된 부류들. 따라서 오르테가가 그자의 아들 알레한드로 베가 푸엔테스, 혹은 N.N.에게 충성하게 된 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곧 비가 올 겁니다, 후안 페레스.

오르테가는 비 냄새를 잘 맡았다. 늙어가는 그의 몸과 뼈마디가 온몸으로 날씨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의 코는 본능적으로 비가 오기 직전의 냄새를 알아차렸다. 그의 ‘후안 페레스’는 접시에 놓인 만찬을 마저 먹고 있다가, 오르테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또?

오르테가는 N.N.이, 그리고 조직 내에서는 후안 페레스*라고 불리는 이 두목이 에두아르도 베가의 아들 알레한드로 베가 푸엔테스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르테가는 비록 이 점조직의 전체 규모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알레한드로가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것이 얼마나 무거운 신뢰인지 알았다.
(* ‘아무개’와 거의 비슷한, 흔한 익명적 이름)

요즘 비가 자주 오는군요. 하늘의 눈물처럼.

너는 감상적인 구석이 있어, 오르테가.

오늘 같은 날 감상적이지 않기란 불가능하겠지요.

그렇게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오르테가는 그가 서 있는 곳의 풍경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이곳은 만찬이 차려져 있는 화려한 방이었다. 금으로 세공된 장식들 하나하나는 이 공간의 부유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드러내었다. 한 마디로 돈 냄새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알레한드로는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초대된 손님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른 의자에는 여러 카르텔의 대변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알레한드로가 앉은 맞은편의 또 다른 상석에는 가르시아 카르텔의 보스가 앉아 있다. 알레한드로는 그 무거운 자리에서 태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접시를 싹싹 비운 알레한드로가 식기를 내려놓는다.

알레한드로의 뒤편에 집사처럼 조용히 서 있던 오르테가가 묻는다.

식사는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너무 배고팠거든. 이제 와서 시체 앞에서 입맛이 떨어지기에는 너무 멀리 오기도 했지.

그렇게 알레한드로는 참극 앞에서 식사를 끝마쳤다. 맞은편 상석의 가르시아 카르텔의 보스를 비롯하여 다른 카르텔의 대변인들은 전부 호화로운 만찬 앞에 앉아 입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심장을 터뜨리는 일은 섬세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 5명의 심장이 동시에 터진 것은 알레한드로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심장은 동시에 펑 하고 터졌고 피는 역류해서 그들의 입에서 솟구쳤다가 입 밖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알레한드로의 스테이크에도 그 피가 튈 정도였다. 그때 알레한드로는 그 조각을 잘라내어 다른 접시에 버린 뒤 스테이크를 마저 먹었다. 디저트는 없었다. 서빙해줄 사람이 이제 없으니까.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디저트 없이도 만족한 듯했다.

가르시아 카르텔은 이제 끝이네.

그렇게 될 겁니다. 여러 뒷처리가 있겠지만요.

기뻐, 오르테가?

그 말에 오르테가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기쁘냐고? 그래야만 했다. 오르테가는 N.N.이 아직 초창기일 때, 어설플 때, 경찰 특유의 날카로운 추적 능력으로 알레한드로를 포착해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카르텔에 대적하나, 하고 궁금해서였다. 그 미친놈은 놀랍게도 소년이었고, 더 놀랍게도 에두아르도의 아들이었다. 소년은 오르테가에게 제안했다. 같은 편이 되든지, 죽든지. 오르테가는 같은 편이 되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은 소년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오르테가는 카르텔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알레한드로가 나타난 것이다.

가르시아 카르텔은 오르테가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었다. 그래서 오르테가가 가르시아 카르텔을 끝장내려 할수록 그들은 오르테가의 다른 것도 빼앗아갔다. 마침내 빼앗길 게 자신의 목숨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알레한드로가 나타났다. 오르테가는 잃을 게 없었고 마침 계란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오르테가는 함께 바위에 던지기로 했다.

이번 만찬은 알레한드로가 특별히 오르테가를 위해 마련한 복수의 장이었다. 알레한드로가 노리는 것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 중 특별히 가르시아 카르텔만을 섬세하게 죄어온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알레한드로를 보조해온 오르테가에 대한 배려였다.

그래서 이 광경이 만들어졌다. 의자 위에서 쓰러진 다섯 사람, 피범벅이 된 식탁보와 만찬, 그리고 뺨에 한 줄기 피가 튄 채로 식사를 계속한 알레한드로가. 오르테가의 복수를 이루어 준 N.N.이.

기쁘지 않은 거야?

아, 아닙니다. 전…….

오르테가는 자신이 기쁘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넌 이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오르테가는 왜 기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생에 걸친 복수가 이제 마무리되었는데도? 어쩌면 복수의 기쁨은 단순한 환희로 분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알레한드로가 식사를 전부 마치고 일어섰다.

더 하고 싶은 게 있어?

없습니다. 이걸로 충분해요.

그럼 가자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 지나가는 길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것은 알레한드로가 심장을 터뜨린 이후 다른 요원들이 이 저택을 습격해서 살아 있는 사람을 전부 죽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레한드로는 천천히 걸었고 오르테가는 그 뒤를 따랐다. 오르테가가 말한 대로 곧 비가 오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무서운 기세로 내렸다.

오르테가.

네.

넌 비가 하늘의 눈물이라 생각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럼 하늘이 몰살된 가르시아 카르텔을 위해 눈물을 흘려준다고 생각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싫겠네.

네.

대화는 짧게 끝났고 그들은 저택을 나왔다. 오르테가와 알레한드로는 미리 준비된 차량의 뒷좌석에 앉았고 운전기사가 출발하면서 저택에서 요란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르테가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고 알레한드로는 그런 오르테가를 내버려두었다. 복수가 끝난 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알레한드로는 항상 배려심이 깊었다. 그래서 조직원들이 알레한드로를 좋아하는 것이겠지.

후안 페레스.

왜?

가르시아 카르텔은 눈물을 받을 가치조차도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이 눈물은 누굴 위한 건데?

모르죠. 세상에 슬픔과 죽음은 많으니까요.

그렇지.

그렇게 오르테가는 알레한드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는 만약 이 하늘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가야 한다면 알레한드로를 위한 애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르테가는 그를 아주 오랫동안 봐왔다. 잃은 사람이 슬퍼할 걸 알기에 아무도 죽이지 않으려고 어려운 길을 돌아온 소년을, 청년을. 그러나 뼈아픈 실패 이후로 청년은 어딘가가 꺾여 버렸다. 알레한드로가 어느 날 협상 장소에서 인질을 쏴버렸을 때 오르테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었을까? 계란을 던지는 소년에게 오르테가가 정을 준 탓이었을까? 알레한드로는 그날 이후부터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레한드로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다 어느 날 알레한드로는 심복 오르테가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복수할래? 오르테가는 이제 살인자가 된 알레한드로의 복수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럼에도 오르테가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몰살이라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그리고 알레한드로는 그 무서운 말을 실천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심장을 터뜨리면서, 알레한드로는 그 초자연적인 결과가 불러오는 공포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모든 카르텔 간부들이 심장이 터질까봐 두려워했으며 심장이 조금이라도 욱씬거리면 벌벌 떨었다. 오르테가는 알레한드로가 어떤 트릭을 쓰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르테가는 복수를 원했고 복수란 건 적들의 더러운 피가 전부 대지를 적시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그는 복수할래?에 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알레한드로가 그들을 몰살하는 것을, 혹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레한드로가 그에게 주는 선물.

그래서 하늘이 알레한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의 인간성이 종말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르테가는 오랜 시간 동안 알레한드로에게 정이 들었기에, 복수가 끝나고 기쁘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알레한드로의 인간성을 대가로 바치고 얻은 복수였으니까.

*  *  *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알레한드로가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담사는 제임스 데이비스라는 미국인 전문가로, 트라우마 치료의 권위자였다. 알레한드로는 상담사를 아주 신중하게 골랐고, 데이비스는 알레한드로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4년간의 기나긴 치료를 주도해나갔다. 데이비스는 알레한드로의 치료가 10년 단위로 걸릴 것으로 내다보았지만, 최근의 속도를 보면 그것을 8년이나 6년으로 단축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예측을 내보였다.

상담사는 아마 이 세상에서 알레한드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오르테가조차 모르는 걸 데이비스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레한드로는 오르테가가 옆에서 보기에도 눈에 띌 정도로 4년 동안 많이 호전되었고 데이비스를 완전히 신뢰했다. 그래서 약간 거리를 둔 오르테가는 불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여전히 데이비스를 감시했다. 오르테가는 한 번도 그 감시를 늦춘 적이 없었다. 내심 데이비스가 배신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했다.

그래서 어느 날 오르테가는 데이비스가 배신한 정황을 포착했을 때, 그리고 그 사실을 알레한드로에게 말했을 때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의외로 알레한드로는 차분했다. 마비된 것처럼 차분했다. 절망은 오르테가의 몫이었고 오르테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제임스는 잡아뒀어?

알레한드로는 아직도 그를 제임스라고, 친근한 어조로 불렀다.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가 조금이라도 접촉하거나 정보를 털어놓았을 것 같은 사람들은?

전부 확보했습니다.

전원 지금 당장 죽여.

제임스 데이비스도요?

그분은 빼고.

그분. 알레한드로의 그분이었던 사람.

알레한드로는 제임스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오르테가가 동행하도록 허락했다. 알레한드로는 단둘이 있고 싶어한 것 같았지만 오르테가가 고집을 부렸다. 알레한드로가 수갑이 채워진 데이비스에게 말했다.

왜 그랬어요?

데이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돈이 모자랐어요? 급하게 필요했어요? 그럼 저한테 말하지. 당장 내어줬을 텐데.

데이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르텔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던가요? 저한테 말하지. 해결해줬을 텐데.

데이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절 배신하는 것에서 아무 생각이 안 드나요?

데이비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알레한드로는 데이비스의 뺨을 후려갈겼다. 데비이스가 입에 고인 피를 뱉어야 할 정도로 세게.

대답해. 변명하라고. 난 당신을 믿었어. 그러니 당신을 용서할 변명이라도 하란 말야! 살려달라고 빌면서 용서를 구해!

데이비스의 얼굴을 뭐라고 묘사해야 좋을까? 그는 어쨌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고 변명할 수조차 없는 동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데이비스는 오르테가가 모르는 무엇을 알았기에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 적어도 데이비스가 한 짓은, 그리고 그 동기는 알레한드로를 더 화나게 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말할 리가 없으니까.

제발 죽여주세요…….

살려주세요,도 아니었다. 죽여주세요. 그 말에 알레한드로가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나를 그렇게 잘 알면서!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알면서 배신하고 싶었어? 죽여주지, 그래. 넌 4년 동안 나에게 정말 잘해줬으니. 하지만 언제 죽을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 오르테가, 나가.

오르테가는 나가지 않았다.

오르테가는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참 뒤 오르테가는 토했고, 그곳을 나갔다.

입을 헹구고 토사물의 맛을 떠내려 보낸 뒤에야 오르테가는 곧 비가 올 것을 알았다. 또 늙은 온몸이 비를 예고하고 있었다. 알레한드로가 드디어 데이비스를 죽인 뒤에는 이미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알레한드로의 얼굴은 시체처럼 핏기가 없었다. 알레한드로에게선 지독한 악취가 났다. 인간의 몸을 열어버리면 나는 피비린내와 악취들이 알레한드로에게 엉겨붙어 있었다. 알레한드로는 뇌우가 치는 창밖을 본다.

오르테가.

네.

하늘이 제임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죠.

오르테가는 거짓말을 했다. 알레한드로는 그 거짓말을 받아 대꾸했다.

그렇게 죽었으니 애도할만 하지.

제임스를 ‘그렇게 죽인’ 알레한드로가,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알레한드로는 시체처럼 창백했다.

두 번 다시 상담사 같은 건 믿지 않을 거다.

상처가 크셨군요.

오르테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줄래? 내가 후회할 말 뱉기 전에.

오르테가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창밖의 비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눈물을 흘린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흘리고 있는 것일까? 오르테가는 이번에도 알레한드로를 위한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알레한드로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배신당한 순간부터 눈물이라는 가능성은 메마른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 대신 흘리고 있는 것이겠지.

비는 어찌나 세찼던지, 한참 동안이나 그치지 않았다.

비는 영원히 올 것 같았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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