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그 여자의 일상 중 하나
백사헌과 윤슬아의 일상 중 하나
“윤슬아 씨는 한가한가 봅니다. 매번 지원 오는 걸 보면요.”
“오늘은 지원이 아니라 여기 대리님이 요청한 건데요?”
윤슬아의 말에 주변에 있던 F조 대리가 대신 답하였다.
“응? 맞아. 내가 요청했어.”
하찮은 시비가 상사에 의해 막히자 백사헌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반응을 보던 윤슬아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히 매뉴얼을 받고 읽기 시작했다.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하는 이 남자를 건드릴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이니 시작부터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윤슬아 씨, 매뉴얼 꼼꼼하게 읽어. C등급이긴 해도 쉬운 난이도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대리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C-52
어릴 적 누구나 했던 놀이에서 유래된 괴담.
괴담이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시작한다.
총 3판 진행되며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놀이.
단, 1라운드 당 술래의 턴이 44번을 넘어가면 안 된다. 넘어가게 된다면 전원 사망하게 된다.
1라운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만 외치는 기본적인 라운드. 해당 판에서는 움직이다 술래에게 걸리더라도 바로 죽지 않는다. 대신 괴담에 손가락을 걸고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떼어 주지 않거나 도망가다 잡히면 사망한다.
2라운드: 다양한 꽃이 등장하는 변형된 버전. 술래는 무궁화 외에도 앉은뱅이꽃, 할미꽃, 장미, 해바라기, 숨멎이꽃이 등장한다. 차례대로 앉기, 허리 숙이기, 꽃받침, 머리 위로 동그라미, 숨 참기 등 꽃에 따라 해야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여기서 문제는 숨멎이꽃인데 술래가 숨을 참았는지 확인을하러 올 때 숨을 뱉는다면 그대로 사망한다.
3라운드: 술래가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을까? 아니야! 할미꽃이 피었어!> 식으로 말을 꼬기 시작한다. 술래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꽃이 되어 술래와 영원히 게임을 하게 된다.
3라운드가 끝나면 술래는 '이제 집에 갈래.' 라며 사라진다.
“백사헌 씨, 이 놀이 해 봤어요?”
“어릴 때 안 해 본 사람도 있습니까?”
“음. 난 안 해 봤는데.”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이 남자의 생각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그럼 대체 뭘 하고 논 건데? 이 음침한 여자야!’ 라고 생각했겠지?
“백사헌 씨는 눈이 하나라서 그런가? 생각 읽기가 쉽네요.”
“뭐, 뭐?”
그게 눈이랑 무슨 상관인데! 미간이 힘껏 구겨진 백사헌을 뒤로 하고 윤슬아는 어둠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를 마무리했다. 매뉴얼도 숙지했고, 장비도 챙겼다.
“어둠에 진입합니다. F조부터 들어가세요.”
어둠은 공터 같은 커다란 공간이 전부였다. 바닥에는 선이 하나 길게 그어져 있었고, 반대편에는 기괴하게 목이 돌아가 방긋 웃고 있는 작은 인형 하나가 존재했다. 모든 인원들이 진입하자 술래가 끽, 끼익, 끽끽. 소리를 내며 등을 보이며 몸을 돌렸다.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 습니다~
출발선의 가장 앞장 선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신입사원들이었다. 백사헌과 윤슬아는 가까운 거리에서 술래의 말에 맞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라운드라 그런지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고, 괴담스럽지도 않았다. 멍청하게 넘어진 사람이 생겨 술래에게 붙잡혀 갔지만 백사헌의 활약으로 큰 문제 없이 1라운드가 끝이 났다.
“염소 씨, 운동 좀 했어요? 잘 뛰네요. 아, 사람 버리고 도망가는 걸 많이 해서 그런가?”
“그쪽이야 말로 잘 뛰던데요. 매번 사람 죽이려고 해서 그런가.”
“제가 정말 그랬다면 염소 씨는 이미 죽었을 텐데요?”
이 회사 사람들 중 정상인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이 인간은 제대로 미친 사람이다. 옆방에 사는 그 자식이랑은 다른 미친 인간. 주변에 존재하는 미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속으로 풀고 있을 때쯤 술래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어 그런 건지 난이도가 올라갔다. 변형 놀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술래의 말속도가 처음에 비해 1.3배 정도 빨라졌다. 전처럼 시작은 순조로웠다.
앉은뱅이~ 꽃이~ 피었습니다~
중심을 잃은 누군가가 억! 소리와 함께 뒤로 자빠지면서 뒤에 있던 직원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순식간에 2명이 잡혔다. X발. 백사헌은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주변을 살폈다. 멍청하게 잡힌 저 두 사람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많은 직원들이 있었고 상사가 있었다. 몸을 숨길 곳도 없어서 무슨 행동을 하든 회사에 보고될 것이다. 그러니 구해야 했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한 백사헌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잡혀간 두 사람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윤슬아와 눈이 마주쳤다. 또 저 소름끼치는 눈빛이다. 차라리 보지 말자.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양손을 턱 아래에 대는 일명 ‘꽃받침’ 포즈로 정면을 응시했다.
“염소 씨. 저 좀 보세요.”
윤슬아의 목소리에 백사헌은 고개를 돌렸다. 윤슬아는 똑같은 포즈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잘 어울려요.”
그러면서 윙크까지 날리는 윤슬아에 백사헌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에서도 저러고 싶나?
쓸모 없는 인간들. 이깟 놀이 하나 못하면서 무슨 탐사를 하겠다고. 백사헌의 주변에는 윤슬아를 제외하고 서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술래에게 잡혀 앞쪽으로 이동 당했다.
“염소 씨! 구해줘요! 응? 우리 저번 탐사 때…….”
시끄러워 죽겠네. 가면에 가려 표정이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사헌은 대답 대신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예의 없는 그의 행동에도 잡힌 사람들은 희망 한 줄기처럼 백사헌을 믿기 시작했다.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사회 생활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백사헌이 쓸모 없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제 차례예요."
윤슬아가 이런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성과주의인 이 회사에 그 누구보다 적응한 사람. 윤슬아는 백사헌을 제치고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술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술래와 직원들이 연결되어 있는 손가락을 끊어내고 출발선으로 달렸다. 구원자가 되는 상황은 이미 그려졌다. 이후 생존은 윤슬아의 것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술래에게 붙잡힌 사람은 없었다. 이대로 탐사가 끝난다면 등급도 낮고, 포인트도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3라운드가 남아 있었다. 지옥의 라운드라 불리는 3라운드. 매뉴얼에 기재되어 있던 주의사항에도 2라운드까지 전원 생존한 횟수가 여럿 있었다. 3라운드에 비하면 1,2라운드는 연습 게임에 불과했다.
끼, 끼이익. 끽끽끽.
술래의 목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술래는 출발선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술래는 정신 없이 움직이다 백사헌과 윤슬아의 앞에서 멈췄다. 1라운드의 히로인 백사헌, 2라운드의 히로인 윤슬아. 주시하겠다는 뜻일까?
미친! 웃고 있는 게 아니라 입꼬리에 못이 박혀 있는 거잖아!
백사헌은 속으로 기겁하며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그에 비해 윤슬아는 술래의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백사헌처럼 욕을 뱉진 않았다. 그저 술래의 눈을 빤히 바라볼 뿐. 이 괴담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괴담에게 두려움을 보려면 뭘 해야 하지? 누군가 알았다면 당장 도망갔을 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술래가 자리로 돌아갔다. 곧 3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해̆̈바라⌝ᥣ꽃ગ 피었습પ다̆̎࿓ ටㅏપ야̆̎.ᐟ 해̆̈가 뜨スΙ 않았ન 숨멎ગ꽃ગ 피었습પ다.ᐟ
욕이 절로 나왔다. 술래의 말소리에 노이즈라도 낀 것처럼 경청 중임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 술래의 장난까지. 놀이의 난이도가 너무 급격하게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 괴담은 누구 하나 살려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이 괴담에 경험 있는 직원들은 차분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뉴얼에서 읽긴 했지만 눈으로 읽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건 천지 차이이기에 백사헌과 윤슬아의 입장은 다른 신입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둘은 술래의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될 때까지 출발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무궁화꽃ગ નવ로 갔スΙ?ˀ નવ로 갔ન?ˀ 안 돼 장미꽃ગ 피었습પ다̆̎࿓
술래의 말이 끝날 때마다 비명 소리가 끝임 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다른 행동에 제약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방금까지 이야기 나누던 동료의 시체에서 꽃이 피어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 발짝씩 움직이는 놀이인데도 조여오는 공포심에 체력에 구멍이라도 뚫린 기분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반도 안 왔는데 벌써 절반이나 죽었다. 백사헌이나 윤슬아 둘 다 유능한 직원이기에 이 정도 놀이는 별거 아니었지만 이 공간에 내려앉은 공포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청각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몰아치는 공포심을 애써 누르기 시작했다.
술래와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두세 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기도 했다. 무사히 회사로 돌아가 정시 퇴근까지 생각 중이던 백사헌을 산산히 부숴 버린 건 이름 조차 모르는 어느 직원이었다. 다리가 꼬여 몸이 기울어졌고 그러면서 백사헌의 옷을 잡은 것이다.
‘X발! 죽으려면 혼자 처죽지!’
급하게 다시 자세를 고친 백사헌이지만 이미 술래의 시야에 들어온 후였다. 술래는 다른 누구보다도 백사헌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백사헌이 빠져 나갈 구멍은 없었다. 술래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백사헌의 장비로는 도망갈 수도, 술래를 막을 수도 없었다.
탐사기록#09
술래에게 도망가는 건 불가.
술래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출구가 생기지 않음.
도망가는 행위는 술래 외에 다른 ■■까지 붙을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음.
탐사기록 #06 토대로 술래의 공격을 막기 시도.
성공하여 직원 V 생존. (장비 파괴)
술래를 파훼할 수 있는 방법이 매뉴얼에 존재했으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에 맞는 장비가 백사헌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술래가 백사헌의 앞까지 다가왔다.
‘X됐다.’
그 순간 귀에서 따끔!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얇은 바늘 같은 게 귀를 뚫는 것 같은 통증.
“꾹 눌러요. 3초.”
백사헌은 대답 대신 귀에 손을 대곤 귀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꾹 눌렀다. 3초. 이윽고 술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쇠가 무언가에 부딪혀 긁는 소리가 가득 들렸다. 술래는 고개를 비정상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죽ㅡ지 않았ㅡ어? 막았 어ㅡ?
굉음과도 같은 술래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졌다. 이 괴담에게 귀속된 술래. 술래는 딱 한 번만 공격할 수 있었다. 같은 상대를 또 공격하려면 그 상대가 다음 턴에 술래에게 걸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술래는 백사헌 앞에서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다가 축 늘어진 형태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술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백사헌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진짜 죽을 뻔했다.
“고마워.”
백사헌은 슬쩍 고개를 돌려 윤슬아를 바라봤다. 누가 뭐래도 방금 백사헌은 윤슬아가 살린 거였으니까.
“고마우면 저녁에 술 마실래요? 퇴근하고.”
마치 이럴 계획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윤슬아가 기막혔지만 백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저녁 한번에 목숨 빚진 걸 퉁칠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었다.
“저녁 한번으로 퉁칠 생각은 하지 말고.”
귀신 같은 여자. 백사헌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건 무언의 대답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슬아가 백사헌을 구한 이후로 공간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둘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G팀 주임이 괴담을 클리어하면서 술래는 집으로 돌아갔다.
피어싱.
윤슬아의 커스텀 장비. 귀에 착용 중인 피어싱 중 하나.
3초 이상 꾹 누르고 있으면 주변에 방어막이 형성된다. 유지 시간과 재사용 시간이 존재한다.
Qterw-E-99(친절한 씨앗 키트)에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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