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미로
“탐사 일정 미정이요?”
“응, 이 어둠은 진입에 일정 조건이 있거든. 일명 선택받은 공간에서만 진입할 수 있는 어둠.”
“혹시 [숲의 미로] 입니까?”
“알고 있네?”
떠들기 좋아하는 연구팀 직원에게 언뜻 들어본 적 있던 어둠. 워낙 특이 어둠이라 기억에 남았던 어둠 중 하나였다. 윤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조건에 적합한 사람 먼저 진입하는 거죠?”
“맞아. 누가 선택될지도 몰라서 일단 브리핑 먼저 하는 거야. 매뉴얼대로 하면 대부분 진입 가능하지만, 안 될 수도 있으니까.”
“….”
“제일 큰 문제는 숲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지. A~D등급의 숲이 있고 어디로 갈지 몰라. A등급 숲에 진입한 횟수는 딱 2번. 그렇게 어려운 어둠은 아닌데 까다로워. 매뉴얼 미리 숙지해 둬, 슬아야.”
어둠탐사기록/괴담
[숲의 미로]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48, 재난관리국의 등록번호는 6832PSYA.2008.사71.
‘두억시니의 숲’에 끌려가는 괴담.
당신은 두억시니의 숲에 초대되었습니다. 두억시니의 숲은 미로처럼 길이 복잡합니다.
두억시니의 ■■로 이루어진 미로는 때때로 움직여 당신을 가두거나 내쫓을 수 있습니다.
숲에는 숲지기가 존재합니다. 아, 이런. 숲지기는 당신의 존재를 반기지 않네요.
숲지기의 눈을 피해 미로를 빠져나오세요. 미로에서 빠져나온 순간,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걸 모든 걸 얻을 수 있을 거예요!
※ 쉿! 숲지기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리에 예민하니 조심하세요!
※ 숲지기에게 잡히는 순간 당신은 사망할 것입니다.
두억시니의 쪽지, 일명 ‘짭 소원권’을 얻을 수 있는 두억시니의 숲. 미로의 출구를 찾았다는 기록은 고작 1번. 출구 근처에는 숲지기가 아닌 두억시니가 존재하기 때문에 보통은 중도 포기한다.
일정 조건만 달성하면 민간인 출입도 가능하며, 실제 탐사기록에도 민간인 생존자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D~F 등급 숲으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많다.
윤슬아는 깜빡이는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과장님, 제 방 등이 깜빡이기 시작했습니다.”
- 타이밍 좋네. 슬아 씨, 사택에서 지내지?
통화를 종료한 윤슬아는 여전히 깜빡이는 등을 한번 쳐다보다 <백일몽 주식회사>가 적혀 있는 작은 박스를 열어 세팅하기 시작했다. 탁상 거울과 두억시니 연극본 이라 적혀 있는 파일을 꺼내 책상 위에 탁상 거울을 올려두고 거울 앞에 의자 두 개를 마주보게끔 세팅했다. 곧 이어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윤슬아는 그대로 문을 열어 밖에 있는 누군가를 반겼다.
“과장님, 준비 끝냈습니다.”
“좋아. 얼른 시작하자. 지금 다른 조에서도 반응 와서 진입 시도 중이거든.”
비슷하게 진입해야 같은 곳으로 갈 확률이 높기도 하고. 윤슬아와 과장은 미리 세팅해둔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봤다.
“준비 됐어?”
“네.”
“어색하더라도 참고 해 봐. 우리만 하는 건 아니니까.”
윤슬아는 작게 한숨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억시니를 제대로 부르기 위해서는.
“아이고~ 녹양 댁 이게 얼마만이여?”
“내 방금 왔다. 김 서방 줄라고 돼지고기하고 묵을 한가득 삶아왔제.”
두억시니의 흉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어색한 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려그려, 욕봤구먼! 천천히 먹읍세! 그거 들었는가? 두억이 놈이 또 임가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구먼!”
“고 쓸모 없는 놈은 또 왜 그런댜? 염라는 두억이 놈 안 데려가고 뭐 하는 겨? 으응?”
[숲의 미로 진입 방법]
1. 등이 깜빡이는 공간에서 시도 시 높은 확률도 진입할 수 있다.
1-1. 깜빡임이 멈추지 않는다면, 두억시니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라. 두억시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1-2. 해당 괴담은 꼭 짝수로 진입 시도해라. 홀수는 높은 확률로 실패할 수 있다.
2. 거울을 통해 두억시니가 왔는지 알 수 있다.
3. 두통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극심한 두통에 잠시 기절하게 된다면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이다.
깜빡, 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윤슬아는 탁상에 놓았던 거울을 슬쩍 흘겼다. 두 사람 사이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생겼다. 과장 역시 그걸 보았는지 계속 하라며 윤슬아에게 턱짓을 했다.
“쓸모 없는 놈! 천하에 둘도 없는! 천한 놈이 여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뭣하러 저런 놈을 쳐다봐? 쳐다보지도 마러!”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긴고아에 고통 받는 손오공을 아주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고통에 의해 윤슬아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경험 있는 과장 역시 두통에는 면역이 없는지 이 악물고 버티는 듯했다. 아, 더는…….
탐사기록#08
진입 시 숲의 시작점에서 깨어남.
함께 진입 시도한 직원은 보이지 않음.
미로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사라짐.
숲의 등급을 알고 싶다면 하늘을 올려다 보십시오.
보라색 달이 떠 있으면 E~F등급, 파란색은 C~D등급, 붉은색 달은 B급, 개기일식처럼 보인다면 A등급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전신을 훑는 느낌에 정신을 차린 윤슬아는 가시지 않은 두통에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방에 가득한 나무들과 불길한 분위기가 가득한 미로 입구. 하늘에 떠 있는 붉은색 달.
자리에서 일어난 윤슬아는 겉주머니에 미리 넣어뒀던 손전등과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가면을 꺼내 쓰곤 미로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싸아아. 바람 소리와 함께 고요한 분위기가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등급보다 체감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다른 사람 없이 혼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매일 지나던 길도 혼자 지나려고 하면 으스스하지 않는가. 똑같은 이치이다.
‘과장님도 이쪽으로 왔으려나? 민간인만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다른 어둠이었다면 민간인을 더 반겼을 것이다. 괴담에 익숙한 직원들과 달리 민간인은 괴담에 면역이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윤슬아에게 아주 좋은 관찰 대상이 되어 주는 민간인들이기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윤슬아는 아예 민간인을 찾으러 돌아다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두억시니의 숲. 소리에 예민한 숲지기가 존재한다. 혹시라도 공포에 사로잡힌 민간인이 소리라도 지르게 된다면 윤슬아 역시 생존이 불투명해진다.
‘다른 조에서도 진입 시도 중이랬지. 그렇다면 직원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
손전등에 의존하여 앞으로 나아가던 윤슬아는 첫 갈림길에서 매뉴얼에 적혀 있던 대로 왼쪽을 선택했다. 30분 정도 더 걸었을까? 아주 미약하게 비명 소리가 들렸다. 메아리처럼 들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비명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꽤 될 것이다. 하지만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가 났다는 게 중요하니까. 청각에 예민한 숲지기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평소에는 움직임이 느린 숲지기들도 이때는 인간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지같게도 생존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주변을 살피며 한참을 걷던 윤슬아는 코너길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염소 씨?”
진입을 시도한 다른 조가 F조였나? 한참을 뛴 건지, 쉬지 않고 헤맨 건지 백사헌의 구렛나루 부근이 젖어 있었다. 백사헌이 반가운 윤슬아와 달리 백사헌은 착잡했다. 하필 만나도 윤슬아라니. 홀로 떨어진 윤슬아와 다르게 백사헌은 조원과 비교적 가까운 부근에 떨어져 초반에 함께 움직였다. 미지의 공간에서 누군가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여차하면 미끼로 던지고 도망갈 수도 있고.’
중간에 정체 모를 비명소리가 들린 후에 백사헌 일행은 숲지기와 마주했다. 다른 직원을 미끼로 쓰기도 전에 숲지기의 공격으로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백사헌은 삼색 볼펜까지 사용하며 떨어진 조원이 있는 방향으로 소리를 유도했고, 숲지기는 백사헌이 유도한 대로 조원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미끼가 필요했던 백사헌은 하필 윤슬아를 만난 것이다. 미끼로도 쓸 수 없는 인간을.
“사향 씨도 들어온 지 몰랐네요.”
“운 좋게도요. 염소 씨도 팀원 못 만났나 보네요.”
“응.”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윤슬아를 보며 백사헌은 안심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게 특기인 이 변태 같은 여자는 이런 쪽으로는 촉이 좋으니까. 짧은 침묵 뒤에 둘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염소 씨, 포기할 생각 없어요? 생존이 우선인 사람이잖아요.”
“넌 포기할 생각 없어? 네 장난감 될 사람도 없는데.”
“제일 좋은 장난감이 옆에 있는데요?”
웃으면서 쳐다보는 윤슬아를 본 백사헌은 옆으로 한걸음 이동했다. 지도 따위 없는 이 복잡한 미로에서 둘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갈림길이 나오면 의견 차이로 투닥거리기를 반복했지만 둘이 갈라지는 일은 다행스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
하마터면 그대로 소리를 낼 뻔했다. 폭풍전야 같이 조용한 미로에서 안심은 금물이었다. 안내판 하나 없는 모퉁이를 돌다 일 미터 앞에 있는 숲지기와 그대로 부딪힐 뻔했다. 그르릉거리는 숲지기의 숨소리가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백사헌이 잡지 않았더라면 윤슬아는 그대로 숲지기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백사헌은 윤슬아를 잡고 조용히 뒤로 빼기 시작했다. 안전 거리가 벌어졌을 때 바닥에 뒹굴던 돌 하나를 멀리 던져 숲지기를 유인했다. 소리를 따라 이동한 숲지기를 봤음에도 둘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염소 씨, 이 자세 익숙하지 않아요?”
여전히 자신을 잡고 있는 백사헌의 귀에 윤슬아가 작게 속삭였다. 주변을 살핀 백사헌은 거칠게 윤슬아를 떼어냈다. 이 여자는 꼭 살린 걸 후회하게 만든다니까. 그런 백사헌의 반응이 익숙한 지 윤슬아는 옷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다 둘은 커다란 공터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요.”
“넌 오른쪽으로 가.”
윤슬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백사헌은 왼쪽으로 이동했다. 미로에 존재하는 커다란 공터. 이곳은 미로의 정중앙이 되는 부근이다. 끝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곳. 숲의 중앙이자 중심.
[두억시니의 심장]
왕의 자격이 없는 자여, 스스로를 기억하라.
짊어진 무게를 생각해라.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중심을 지켜야 하니.
좌는 세 개요, 우는 여섯이니라.
처음 이 글을 본다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또한 이 글을 해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왕의 자격이 없는 자여, 스스로를 기억하라. 이 공터는 중앙을 가로질러 가면 안 된다. 중앙은 예로 부터 왕의 길이라 하여 평민들은 절대 밟을 수 없는 땅이었다. 중앙으로 가는 순간, 땅이 꺼지며 그대로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이동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외에 문구는 이 중심의 규칙을 알려 주는 문구이므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반대편 중앙에서 만난 두 사람 앞에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게임으로 말하자면 2라운드에 진입하는 것.
“가죠.”
두 사람이 걸어도 여유로울 정도로 넓은 통로 같은 길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미로에는 나뭇잎이 사그라지는 소리만 가득했다.
“염소 씨는 소원이 뭐예요?"
백사헌은 윤슬아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럼 여기서 쪽지 얻으면 퇴사할 건가?”
“어. 할 거야.”
아, 그건 곤란한데. 웃기게도 윤슬아에게 백일몽 주식회사는 최적의 회사였다. 죽을 뻔할 때도 있지만 그에 따른 스릴도 있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힘들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회사가 어디 있을까. 그 중에, 가장 즐거운 건 백사헌을 관찰하는 일. 그 대상이 사라지는 것을 윤슬아는 보고만 있을까?
‘그냥 놓칠 수는 없지.’
앞으로 나아갈수록 위험도는 올라가지만 그만큼 출구에도 가까워진다. 실적도 실적이지만 쪽지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면,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게 백사헌이라면, 백사헌은 분명 어떤 수를 써서라도 출구에 도달하려고 할 것이다. 윤슬아는 자신의 꿈결 수집기를 슬쩍 봤다. 수집기는 이미 반짝이는 용액으로 가득차 있었다.
“백사헌 씨.”
가면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윤슬아의 목소리에서 백사헌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 윤슬아는 호루라기를 들고 있었다. 저건 대체 왜 챙겨 온 거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글쎄요.”
“아니, 미친… 그건 왜 가지고 온 건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싫은데.”
호루라기를 뺏기 위해 다가오는 백사헌을 윤슬아는 슬쩍 피했다. 백사헌이 다시 달려들기 전에 윤슬아는 재빠르게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삐이이익- 불었다. 두억시니는 출구를 지키기 때문에 숲지기의 영역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숲지기도 위험한 대상이긴 하지만 소리만 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있다. 하지만 두억시니는 생존률이라는 게 없다. 두억시니에게 걸렸다면 쪽지고 나발이고 포기하는 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까.
‘숲지기의 영역에 두억시니를 부르는 한가지 방법. 호루라기.’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억시니는 호루라기 소리에 반응한다는 기록이 있었다. 출구에 가까워지면 호루라기를 이용해 두억시니의 동선을 방해하려고 했는데 이걸 이렇게 쓰네.
“X발! 뒤지려면 너 혼자 뒤지라고!”
한껏 구긴 얼굴로 윤슬아를 바라보던 백사헌은 주머니에 있던 작은 나이프로 미로의 벽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두억시니가 오기 전에 탈출해야 하니까.
두억시니의 숲 규칙
.
.
9. 만일 포기하고 싶다면 미로의 벽을 내리쳐라. 상처 입은 미로의 요정이 당신을 내쫓을 것이다.
백사헌이 탈출하는 것을 본 윤슬아 역시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미로의 벽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선택을 후에 후회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벽에서 나온 줄기들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목, 얼굴.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윤슬아는 두억시니를 본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진입을 시도했던 자신의 방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윤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쯤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을 때 한 인영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윤슬아는 거세게 벽으로 밀쳤다.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네.”
잔뜩 화가 난 모양인지 윤슬아를 쳐다보는 백사헌의 눈빛이 장난 아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오로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분노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윤슬아 정도.
“어차피 백사헌 씨는 출구로 나가지 못했을 거예요.”
나가고 싶었다면 나를 버렸어야지. 다른 동료를 숲지기에게 넘긴 것처럼.
“퇴사든 소원이든 다 물 건너갔네요. 출근이나 할까요? 용액도 제출해야 하니까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윤슬아를 바라보는 백사헌의 눈에 분노 외에 다른 것들이 서리기 시작했다. 한 줌 같은 이 목을 이 자리에서 비틀어 버린다면,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 백사헌은 읽은 건지 윤슬아는 백사헌의 손을 직접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마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X발. X발!’
앞에 있는 사람이 윤슬아가 아니라 다른 직원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했을까? 백사헌은 윤슬아의 목을 쥐고 있던 손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가 풀고는 아무 말 없이 공간을 벗어났다. 잔기침을 하면서도 백사헌이 나간 문을 바라보던 윤슬아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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