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불안

조각글 TYPE / 오마카세 / 뮤지컬 더 픽션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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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흥하는 건 분명히 잘된 일이었다. 전에 없던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준 건 물론이고 베스트셀러라는 사실 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를 둘러싼, 심지어 나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좋은 일이라고 한다. 사회는 주목이 또 다른 주목을 부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아닌 이상, 이름 없는 것을 입에 담으려 하지도 않는다. 유명이란 척도는 한겨울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고 부수 달성, 연재 기간 연장, 새로운 작업실. 지금껏 흥행과는 퍽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라 –부끄럽게도– 얼떨떨했다. 구설수, 특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반기지 않기에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글을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 이상 뒤따르는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는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애써 감내했다.

무엇보다, 와이트가 이 일을 가장 기뻐했다. 그는 내가 포기한 작품을 알아보고 끌어안고 새로운 시작을 제안했으니 당연했다. 지금의 내가 ‘그’만큼 기쁘지 않은 건 성공의 주인 따위를 가리는 편협한 사고 때문이 아니라 나를 좀먹는 실패의 관성이 끈적하게 달라붙기 때문이라고 위로했다.

여전히 적응이 어려운 건 역시 내 글 같지 않은 내 글인데, 헤어진 연인을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피 끓는 증오를 남긴 채 영영 떠나버린 줄 알았던 그의 흔적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는 소감이란 글쎄. 퍽 유쾌하지도, 마냥 끔찍하지도 않다. 그저 나만큼 변했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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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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