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착각 가이드

이세계 착각 가이드 1

2024.05.28

정하성은 그날 일을 계기로 게이트 공략 수를 줄이고 쉬는 날을 만들었다. 실제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계에 다다랐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협회 측에서 충분히 인지하게 되어 더 입을 대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전에 상황 보고를 위해 만났던 관리자가 윗선에 특별한 보고를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협회장에게서 몇 차례 전화 연락을 받았지만, 부재중으로 남기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거절했다.

며칠 전까지, 그러니까, 제대로 ‘안정화’를 받기 전까지 정하성은 자신이 몸이 좋지는 않지만 사고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미련하게 굴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자조하는 말에, 김기려는 마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력이 직접 영향을 주는 건 몸뿐이긴 하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던데, 틀린 말은 아니야. 몸 상태가 나빠지면 당연히 정신에도 문제가 생기니까.”

그는 파장이 흐트러진 상태가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취약해지기 쉽다는 이야기로 말을 맺었는데, 그것이 하성에게는 담백한 위로가 되었다.

“자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라면 충분히 문제를 알아차렸을 걸.”

정하성은 협회장을 떠올렸다.

명료한 정신으로 과거를 되짚자 많은 사건이 새롭게 보였다. 게이트 클리어 횟수가 줄어든다 싶으면 하성을 불러다 그를 위하고 격려하는 척 불안을 부추겼던 것을 생각하면, 정하성은 협회 소속이 아닌 자신이 힘을 가졌다고 해서 압박을 주거나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협회장을 갈아치우고 싶었다. 또 연락을 하면 이번에는 찾아가서 마력으로 눌러버릴 생각이었는데, 협회장은 더 연락하지 않았다. 참 제 살길은 잘 찾는 인간이다.

가이드냐는 물음에는 끝끝내 부정하면서도, 김기려는 정하성을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정하성을 안정화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의심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텐데.

정하성은 김기려에 대한 부채감을 차곡차곡 쌓으면서도 그를 만나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김기려가 거절하거나 곤란해 했다면 그러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 사람은 싫다는 말도 피로한 기색도 없이 “그래.” 무덤덤하게 받아 주어서 더 그랬다.

그날 이후에 직접 안정화를 한 적은 없지만, 김기려는 종종 자신이 아는 것을 정하성에게 알려주곤 했다. 가르침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하성은 인간이 마력을 발견한 지 십 년이 채 되지 않은 세상에서, 어째서 게이트 관련 연구자들도 알지 못하는 지식을 알고 있느냐 묻지 않았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도 알았지만 굳이 물어 이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기 싫었다.

줄곧 사용했던 약물의 위험성을 알려준 것도 그였다.

김기려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두 가지를 꼽았는데, 마력을 섬세하게 다루기 어려워지고, 드물게는 순간적으로 마력을 움직이지 못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거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안정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보고된 바가 없는데요.”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 적은 있었지만, 마력이 고갈된 탓이겠거니 했다. 그의 육체는 몹시 단단했으므로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할 것도 아니어서 그리 신경쓰지 않았는데, 부작용이었다니……. 김기려의 말에 수긍하며 전보다 화력이나 범위를 조절하는 게 쉬워진 것 같다고 했더니,

“음, 넌 그냥 못 하는 거야.”

타고나길 섬세하지 못한 술사인데다 강대한 마력을 품어 마력을 다루는 게 훨씬 어렵게 느껴질 걸. 잘 다루지는 못 해도 화력으로 밀어붙이면 되니까 괜찮아. 그렇지? 조롱하는 기색도 없이 되묻는데, 욕인 듯 칭찬인 듯 알쏭달쏭해서 정하성은 “네에…….” 말끝을 흐리며 미지근해진 차를 홀짝거렸다.

오늘 김기려가 내어준 차가 몇 주 전 정하성이 선물한 것이라는 말은, 자리를 파할 때 들을 수 있었다.


책 나눔을 위한 배송비로 2천 원을 받고 있었는데, 초과해 보내주셨기에… 약소하지만 텍스트로 때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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