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

放浪 by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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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생각을 했어. "

 노을 진 하늘의 채도가 낮아진다. 빈 교실엔 늦은 오후의 적막이 감돌았다. 의도된 것처럼 의문스럽게 오태은은 지칭 없는 모호한 대명사를 읊조렸다. 창가에 걸터앉아 땅거미 지듯 기어 다니는 빛을 등지고 선 오태은의 몸에 그림자가 더욱 드리워졌다.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흘러내려 제 얼굴을 가리는 검은 머리칼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그 침묵 속에서 오태은은 제 눈에 차가운 바닥만을 담았다. 발굴하기 쉬운 회피를 온몸으로 드러내며 제 앞에 있는 마해솔의 물음표를 기다리는 것보단 애매한 그 문장 다음에 올 말을 마저 고르는 듯했다. 교실의 시계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 되어 단둘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듯 둘 사이를 관통했다. 흐르는 시간이 초침 소리를 통해 증명된다. 오태은은 그 증명에 대한 표현처럼 조용한 숨을 뱉더니 늘상 눈에 담았던 마해솔의 모든 것을 토해내려는 듯 더욱 고개를 내렸다.

 " … 내가, 두 발로 설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져서 널 힘들게 만들더라도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줄 거냐는 말을 네게 하면, "

 너는 여전히 곁에 있겠다 대답할 것 같다고. 하기 싫었던 말을 억지로 뱉어내듯 어긋난 호흡이 가라앉았다. 스스로 내포한 특별함과 유일함을 경계하는 것처럼 오태은은 자세를 고치며 떨구던 고개를 들고 마해솔을 바라보았다. 줄곧 제 이해자로 대해왔던 오태은의 시선 속 마해솔에게 주어진 빛은 없었다. 오태은의 눈꺼풀이 두어 번 닫혔다 열리길 반복하며 더욱 짙어지는 자안이 공허하게 마해솔을 비추었다.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공기의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체감되는 먼 거리가 익숙한 듯 오태은은 옆을 가리고 있던 제 머리를 귀 뒤로 천천히 넘겼다.

 " 어때? … 솔아, 넌 정말로 그렇게 대답할 거야? "

 차라리 제 생각이 오답이었으면, 첨예하게 곤두선 자신을 떨치여 오태은은 쓴 독백을 삼켰다. 무수한 그림자를 뒤로 밀어 두고 마해솔에게 미소 지어 보이는 오태은의 입매가 경직된 움직임을 가졌다. 오차범위 없이 제 판단에 따라 대답하여 고난을 자처하는 이에 대해 배려할 기색 따윈 없었다. 모호함에 답을 내리 박듯 두려움이 묻어 나오는 오태은의 동공이 미미하게 떨렸다. 위태로이 마해솔을 바라보다가 공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내려가는 오태은의 시선이 마해솔의 목에 닿았다. 마른침을 삼키는 목구멍을 따라 오태은은 제 허벅지 위에 올린 손가락을 까딱였다. 불온한 속삭임이 주변에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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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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