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지애 우리 음악의 온도는 여름의 밤보다도 높다

여름의 우리 합작본

백업용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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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진다. 심지를 다 태운 초가 꺼지듯이, 이글이글하게 아스팔트를 달구던 여름의 해가 지듯이,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운 함성소리와 조명들이 암전하듯이. 마치 빌린 물건을 때가 되어 반납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잠시 빌려다 썼다가 다시 내려놓아야할 때가 있다.

 

올해 봄부터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데뷔 오디션 프로그램은 올 초 여름, 여러 사건사고 끝에도 무사히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차에서는 최종 결승에 오른 일곱 명 정도의 참가자들을 모아 콘서트 형식으로 촬영을 했는데, 이는 촬영 전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참관권은 응모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최대 수용 인원을 넘어섰으며, 최종 데뷔라인을 확정짓기 위한 팬덤들 역시 바빠졌다. 모든 우여곡절 끝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무대의 온도는 여름의 낮보다도 높다. 단순히 수많은 조명과 셀 수도 없이 많은 시선 뿐만은 아니다. ‘무대에 선다’는 것 개념 자체가 지니는 고유한 온도가 있는 것 마냥,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뜨겁고 잔잔한 온도가 존재한다. 그 온도에 미묘히 고양되어, 더위 때문인지 혹은 그것이 주는 울컥하는 설렘 때문인지, 심박수와 호흡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마지막 회차의 무대에서 역시 그러했다. 귀가 먹먹한 가운데 인이어에서 타고 흐르는, 몇 번을 들어왔을 마지막 단체 곡의 반주와 스스로가 부르는 멜로디가 관중들의 환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번쩍이는 조명의 빛이 제게 꽂히고, 결국 모든 소리가 어그러져 제 심장 소리 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단지 이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싶고, 또 죽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짧은 시간, 나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같이 인이어를 귀에 꽂은 채, 어쩐지 젖은 눈으로 관중석을 응시하고 있던 당신을.

 

이제 와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그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 음악의 온도는 여름의 밤보다도 높다

w. 오동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손에서 놓았다가 다시 마이크와 기타를 잡았던 그 경험은 결코 다시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까지 잠시 잊고 살았나 싶었다. 꼴에 무대를 경험해 본 적 있다고,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웃음이 그대로 카메라와 마이크에 빨려 들어가 지상파 방송을 탔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뜨거웠다.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을 테고, 내가 무단으로 탈퇴한 아이돌 그룹의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었겠지. 나에게는……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는 좋았고, 정신 건강 관리의 면에서는 좋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잘 하지 않던 SNS는 바로 삭제했고, 인터넷 뉴스조차도 찾아보지 말자 결심했을 정도이니. 예상했던 일이었으므로, 각오는 했던 일들이었다.

 

지애 누나를 처음 만난,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길 하자면, 처음 인사를 주고받게 된 건 본선 진출 이후의 일이었다. 수많은 참가자들이 몇 번이고 걸러지고 나서의 일. 애매한 실력의 이들은 거의 모두 그 모습을 감추고, 이제는 프로의 구색을 조금이라도 갖출 수 있는 이들만이 남은 시점. 지금까지의 모든 미션이 개인의 재량을 보는 것이었다면, 제작진들은 슬슬 방송거리를 만들기 쉬운 팀 미션들을 원했다. 그들은 7인 미션부터, 듀엣 미션까지 다양하게도 참가자들을 엮으며 그 과정을 카메라 슛에 담았는데, 낯을 가리고 제법 무뚝뚝하며, 굳은 표정과 낯짝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쉽지 않은 나는 스스로 보아도 꽤 물어뜯길 구석이 많았다. 아이돌을 그만 두게 된 폭력 사건과도 연결되어 왜곡된 편집의 방송을, 나는 그러려니 했다. 다만 방송을 모니터링한 몇몇 참가자들이 나와 작업하는 것을 조금 꺼려하게 된 것은 꽤나 직접적으로 작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런 상황에서의 듀엣 미션을 함께 진행하게 된 사람이 지애 누나였던 것이다.

 

여지애. 노래 실력으로는 전혀 흠잡을 곳이 없는 참가자였다.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낯은 가린다면 가리기는 했지만, 필요할 때에는 싹싹하게 먼저 나서는 면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헐뜯기는 부분이 있었다면, 연예인치고는 조금 통통한 체형과 식탐 정도였다. 그녀 역시 나처럼 꽤 과장되고 왜곡되어 편집된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검색을 전부 끊었으니 대중의 평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촬영장에서의 이야기와 매주 결정되는 순위들을 보며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순 있었다.

 

여지애에요. 잘 부탁해요. 걱정이 무색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여지애라며 밝게 소개한 누나는 내 눈을 마주치고 환하게 웃었다. 손을 내밀어주는 모습에 얼떨떨하게 악수를 하고, 그제서야 뒤늦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지애 누나는 긴장을 풀라며 다시금 순하고 밝은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걸 고려해서 베푼 친절이라고 할지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요령도 없고, 초면인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다가가는 성격도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편향된 편집에 대한 항의조차 않는 입장에서 나는 카메라 앞에서 제 모습을 관리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지애 누나의 음색은 내가 만드는 음악과 잘 어울렸으며, 어려운 기교를 요구해도 금방 그 요점을 잡아내었다. 내고 싶은 의견 역시 똑부러지게 잘 이야기했고, 카메라가 꺼져있어도 크게 성격이 돌변하는 일은 없었다.

 

 

 

 

* * * * *

 

 

 

경연 하루 전, 마지막 리허설까지 마친 후 아쉽게도 탄산음료 캔으로 가볍게 건배한 우리 둘은 연습실 벽에 기대앉았다. 들고 있는 음료에 알코올은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 동안 보낸 긴 시간과 새벽의 고요함이 보다 서로의 가면을 벗어내는 데 일조했다.

 

“우영아.”

 

어느 순간부터 지애 누나는 날 그렇게 친근하게 불렀고, 너도 편하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종용했다. 연상의 여성에게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법은 오히려 내게 편했다. 어렵지 않게 정착한 ‘우영아’와 ‘지애 누나’는 그때도, 또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었다.

 

“네, 누나.”

“수고했어. 드디어 내일이네. 좋은 얘기 많이 들으면 좋을 텐데.”

“……그럴 거에요. 누나가 잘 맞춰주기도 했고요. 고마워요.”

“너야말로 내 요구 많이 들어줬잖아. 거의 후반부에 곡 수정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해왔던 거에 비해선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그래?”

 

작게 웃음을 터뜨린 지애가 작게 웃고는 하아, 하는 숨을 내뱉었다.

 

“……내일 경연이 기대되겠네.”

“네, 이번엔 더요. 곡이 잘 나온 것도 있고, 임자를 잘 만난 것도 있고요.”

“떨리지는 않고?”

“좋아하는 일이잖아요. 지금까지 한 걸 자랑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덜 긴장되기도 하고, 남한테 자신의 곡으로 인정받는 건 언제나 좋으니까.”

“……그렇구나.”

 

대화는 잠시 끊기고, 조용히 탄산음료를 목에 넘기는 소리, 캔 안에서 거의 김이 다 빠진 탄산이 지글지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독한 탄산음료의 포도향이 혀끝에서 지독히 남았다.

 

“노래가 즐거워 보여 다행이네.”

“네,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서 이곳에 나온 거거든요.”

 

지애 누나는 내 대답을 듣고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윽고 빤히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툭, 말을 내뱉었다.

 

“개인적인 감상이긴 한데, ……너 같은 애들을 보다보면 난 여기 서 있을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

 

노래가 노래 자체로 즐겁지 않지만, 그냥 나온 나 같은 사람들 말이야. ……나는 그냥, 사랑만 받을 수 있다면 뭐든 좋았는데.

 

마지막 말은 거의 혼잣말과 다름없을 정도로 작고 발음이 부정확했다. 어느새 짓고 있던 미소조차 지운 채, 지애 누나는 모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조금 더 냈다. 이후는 적막이었다.

 

“……내가 괜한 이야길 했지? 초여름 접어든다고 이 시간에도 날씨가 덥네. 너무 늦게 깨있어도 내일 경연에 방해될 텐데, 이만 들어갈까?”

 

그러나 그것도 금새 안색을 바꾼 지애 누나가 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그대로, 기숙사 입실 시간이 훌쩍 넘은 새벽이었으므로 연습실 안은 에어컨도 켜지지 않아 초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지애 누나가 제 몫의 캔을 연습실 안의 쓰레기통에 던져놓을 즈음에, 나는 그제서야 지애 누나가 방금 꺼내 던진 것이 누나의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송으로, 혹은 카메라로 왜곡되지 않은, 심지어는 계산되지 않은 채 튀어나온 진정한 사람의 본심임을.

 

그날 밤은 어쩐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 컨디션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걸 알아도 그랬다. 노래가 노래 자체로 즐겁지 않다니. 그럼 지애 누나는 노래를 만들고,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은 걸까. 누나와 별 말 없이 헤어지고 나서 침대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자니, 그제서야 그 순간 누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뒤늦게 정리가 되어 형태를 이뤘다.

 

사실 제 짧은 아이돌 경력으로도, 가수를 본업으로 삼으면서 노래를 즐거워하지 않은 이들도 수두룩했어요.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꿋꿋이 마이크를 잡으려고 하던 건, 사람이 사랑 받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이니까. 관객들의 환호가 있는 그 무대의 온도를 잊을 수 없으니까. 살면서 그만큼이나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확실한 증거를 경험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최종 결승전의 멤버가 되어서, 그 무대에 섰을 때, 그 때 누나한테도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도 과연 노래가 즐겁지 않으냐고. 이런 온도에, 이런 맛에, 이런 경험에 정녕 중독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우리 그때까지, 같이 올라가요. 포기하지 말고.

 

그러나 때를 놓친 대답은 탄산음료의 빠지는 탄산만큼이나 무의미하고 허무했다.

 

 

 

* * * * *

 

 

 

그 날의 듀엣 경연은 다행스럽게도 높은 호평을 받았고, 대중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으며, 그 기회를 계기 삼아 지애 누나와 나는 안정권으로 최종결승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이후를 기점으로 지애 누나와 나는 자주 시간을 보냈으며, 서로 가장 친한 참가자로 서로를 뽑았고, 어쩌다 서로가 기뻐할 만한 정보를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서로를 떠올렸다. 길게 눈썹을 늘어뜨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지애 누나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셀카가 공식 SNS에 올라가기도 했고, 각자의 팬덤이 지하철역에 걸어준 응원 광고를 보러 마스크를 끼고 몰래 외출해보기도 했다. 지애 누나와 나는 서로 비슷한 면이 많았다. 자신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점이 그랬고, 이 프로그램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점이 그러했다. 심지어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조차도.

 

……그럼에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와 지애 누나는 모두 데뷔라인에 들지 못했다. 아주 못난 생각이라 그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보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내가 그 순위에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있어 간절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간절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지막 무대가 끝이 나고, 전국민 투표가 마감되고, 데뷔 확정자들이 발표되고, 관객들이 모두 퇴장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었다. 가슴 한 구석에 예열된 여름의 온기가, 무대의 온기가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 같았다. 미처 다 보답할 수 없는 양의 사랑을 받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초여름에 마무리된 데뷔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빨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데뷔가 확정된 참가자들이 소속사들간의 협의를 거치는 동안, 그리고 아쉽게 데뷔라인에 들지 못했던 다른 참가자들이 다른 길들을 모색하는 동안, 그들의 소식을 대신해 줄 다른 이야깃거리들은 세상에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여름의 중반이 지나가자, 연예뉴스를 툭하면 도배했던 관련 기사들이 확연히 줄었다. 늦은 장마가 끝나가자, 반 대중들은 최종 결승전에 누가 올라갔었는지, 그 이름들을 잊었다. 매미 소리가 조금 줄어들게 되자, 간간히 올라오던 최종 결승전 공연에 오른 참가자들의 근황을 전하던 소식들이 뚝 끊겼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흔히 있는 투표조작 찌라시마저 잠잠해질 쯤에는, ‘그러고보니 데뷔 못했던 걔네들은 뭐하지?’와 같은 궁금증만 간혹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돌게 되었다.

 

 

 

* * * * *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진다. 심지를 다 태운 초가 꺼지듯이, 이글이글하게 아스팔트를 달구던 여름의 해가 지듯이,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운 함성소리와 조명들이 암전하듯이. 마치 빌린 물건을 때가 되어 반납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잠시 빌려다 썼다가 다시 내려놓아야할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재단하는 대중들 눈앞에서, 진심을 왜곡하는 편집에서, 그리고 꺼지지 않던 카메라 앞에서 지게 되어서, 꺼지게 되어서, 암전하게 되어서 ‘우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때가 늦은 방황을 했다. 여름의 뜨거운 낮에 보이는 아지랑이 같은 프로그램 방영이 끝난 후, 손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갚아야 하는 소속사의 위약금이 조금 남은 상태에서, 함부로 다른 소속사와 컨택을 하기에도 막막했다. 그러나 마지막 공연 때에 남은 열기만이 여전했다. 쥐었다 편 손에 있는 온기가 미지근했다. 그래서 그랬다.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의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충동적인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마지막 무대의 열기가 머리를 고장내었는지도. 부동산에서 계약 도장을 찍으면서도, 구질구질했던 반지하 생활을 청산하면서도, 혼자서 별 없는 짐을 종이 박스에 정리하면서도, 여전히 프로그램이 자기 자신을 끌어들인 한여름밤의 꿈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 와중에도 심장이 둥둥, 하고 뛰는 것 하나만이 이 일이 현실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켜 주었다.

 

 

 

* * * * *

 

 

 

새로 구한 작업실은 옥탑방이었다. 묶여있는 돈이 아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매물이었다.

 

쿵, 하고 마지막 종이 박스를 내려놓았다. 무겁지는 않았으나, 계절도 계절이거니와, 오르내렸던 계단의 수에 숨이 찼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뺨에 흘러내리는 뺨을 닦았다.

 

허리를 펴 창문 밖을 바라보자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여름의 밤은 낮처럼 덥게 느껴진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다. 해가 떨어졌는데도, 도로의 아스팔트에 스며든 열기가 밤까지 그 열기를 내뿜는다고.

 

목장갑을 벗으며 대충 정리된 옥탑방 밖으로 나오자, 지애 누나는 이미 옥상의 평상에서 편히 앉아 맥주 두 캔을 가져다놓은 채였다. 탁 트인 전경 밖으로 빽빽한 건물들과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왔다. 빨갛게 지는 여름 해의 배경이 아름다웠다.

 

기다리고 있는 지애 누나 옆 평상에 앉자, 누나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맥주캔을 내 목덜미에 갖다 대었다. 그렇지 않아도 덥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리게 느껴지는 맥주캔의 온도에 화들짝 놀라 몸을 떨곤 동그랗게 큰 눈으로 누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꼴이 우스웠는지 누나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맥주캔을 깠다. 치익,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피어오르는 탄산 소리에 문득 정신 차린 나 역시 눈을 흘기며 받아 든 맥주의 풀탭을 가볍게 따자, 지애 누나는 눈을 마주치며 내게 캔을 들어보였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부딪힌 맥주캔들은 흔들릴 때마다 거품소리가 났다.

 

한 때 모든 것 같았던 데뷔 오디션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목표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실패가 남은 삶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때도 있었으나, 그것으로 이곳에 멈추어 있기엔 마지막 무대의 온도가 너무 진득하게 우리의 가슴에 스몄다.

 

“처음에 놀랐어, 네가 갑자기 연락해왔을 때엔.”

 

지애 누나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막연히 말문을 열자, 나 역시 입에 머금고 있었던 맥주를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당혹스러웠죠. 오랜만이기도 했고요.”

“여보세요, 라고 하자마자 갑작스럽게 물었잖아. 정말로 노래가 재미없었냐고.”

 

그랬다. 이 옥탑방의 계약서를 작성한 날, 나는 충동적으로 지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한 것과 다르게 지애 누나는 금방 전화를 받았는데,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그만 통성명도 전에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그 때를 회상해보자면, 그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오랜만에 듣는 지애 누나의 목소리이면서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어딘가 평소보다 톤이 낮은, 그리하여 감정을 잘 읽을 수 없는. 누나는 왜 그런 목소리를 하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불쑥 치솟았다.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대화하고 싶었다. 서로의 마음이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간절하고 간단하게. 당연했다. 이젠 그런 건 지긋지긋 했으므로.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했었죠?”

“응. 진짜로 잊어버리고 있었거든. 나도 까먹은 걸 왜 그렇게 오래 기억하고 있었어?”

“…오랫동안 생각해왔으니까요.”

“그걸?”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바라보며, 지애 누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음이었어?”

“네. 저한테는.”

“왜?”

“그렇게도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잠시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지애 누나를 바라보며 나는 살짝 웃음을 섞인 대답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재미있었죠, 마지막 무대?”

 

빵, 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막간의 정적을 채웠다. 느릿느릿 저물던 해가 이젠 거의 지평선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는데도, 늦여름의 더위는 쉽게 가지지 않았다. 마주보이는 건물에서 하나 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낮과 밤의 경계선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넌 그렇게 날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해? 안 그랬으면 어쩌려고?”

“그치만 누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와줬잖아요.”

 

뻔뻔하게 내뱉는 내 대답에 누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없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눈을 깜빡이며 무언가를 정리하는 듯 하길래, 나도 조용히 평상 위에 발을 올리고 누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누군가에게 많이 사랑받고 싶었어. 나 스스로는 너무나도 텅 빈 사람 같았거든. 어느 날은 가수들을 보는데, …걔네들은 별 노력 없이는 어쩐지 너무나도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 같더라. 노래는 그럭저럭 했으니까, 충동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했어. 그 날은 진짜 기분이 별로였거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았어.

 

……그리고 너희들을 만났는데, 그게 기분이 참 묘했어. 너희들은 정말 진심으로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이 무대를 즐기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낱낱이 평가 당하는 게 사실 괴로웠어.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악의를 가지는 익명의 존재를 보는 것도. 그런데도 도중에 사퇴할 수가 없더라. 내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애정이 너무나도 좋았어. 그게 있으면 텅 빈 나도 뭐라도 되는 것 같은, 그래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자꾸만 드는 거야.

 

본선에 진출하고, 좀 익숙한 얼굴들이 기숙사를 싸서 밖으로 나가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동안, 종종 네 얼굴이 떠오르는 날도 있었어. 노래가 즐겁다고 하던 때 네 얼굴. 행복해보였거든. 정말 겨우 노랠 부를 수 있는 일 하나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무대에서는…… 네가 말한 느낌이 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어. 가슴이 아무 이유 없이 두근두근거리고, 인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보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도 같고.

 

……사실, 마지막 결승전 무대에서 단체곡 끝마치고 나서, 슬쩍 네 얼굴을 봤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 ……아, 네가 말하던 게 이거였구나.”

 

네가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거든.

 

느리게, 그리고 또 길게 늘어진 이야기는 거기서 잠시 또 멈췄다. 그럼에도 그 공백이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많이 닮은 점이 꽤 많은 둘이었으니까. 서로를 이해했고, 같은 처지의 사람이 둘 있다면, 훨씬 덜 외롭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나랑 같이 시작해주기로 해서, 그렇게 결정해줘서. 고마워요, 누나. 말주변이 없어서 이 정도 말 밖에 못하지만, 정말, 진심으로요.”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네. 이제 시작이면서.”

“그렇죠, 이제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인거죠.”

 

누나가 내미는 맥주캔에, 나는 작게 웃으며 다시금 맥주캔을 부딪혔다. 건배,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마치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이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한 우리의 음악에 대해 그려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도 받아봤으며, 미움도 받아보았고, 남들이 보기엔 배 아플 성공도 겪어보았으며, 또 누구나 동정을 보낼 실패도 겪어보았다.

 

그런 우리들의 가슴에 진득하게 녹아 붙어있는 무엇인가는 필시 우리의 음악 속에 녹아들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그 무대의 온도가 스며든 우리의 음악은, 열이 스며든 여름 밤의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처럼 꾸준히 그 열기를 내뿜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음악의 온도는 여름의 낮보다 비루하고 초라하겠지만, 여름의 밤보다도 높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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