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YOU

웬웨 800일 기념 축전

백업용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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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웬과 웨일 두 사람 모두 현대사회 미국거주 AU

- 현실 고증 전혀 없음 죄송합니다... (진짜 대충 씀)


“어때, 심각해?”

“…음, 완전히 퍼진 것 같은데.”

 

조수석에서 내려 타이어 바퀴를 살피던 오웬이 창문으로 몸을 반쯤 꺼낸 웨일의 물음에 차분히 답했다. 오웬이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손가락으로 타이어를 찌를 때마다 바퀴가 생각보다 쉽게 구겨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망했네. 들려오는 비보에 웨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재빨리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트렁크에 예비 타이어가 있던가…….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잠시 새에 창문으로 몸을 뺐다고 웨일의 볼이 붉어지고 있었다. 알래스카 만의 북풍이 확실히 매서웠던 탓이다. 몸을 덜덜 떨던 웨일이 다시금 창문 새로 고개를 쏙 집어넣고서는, 아예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자동차 보험사와 통화를 하는 중인지, 휴대폰을 한 손으로 쥐고 뭐라 말하는 오웬의 입가에서 하얀 숨이 얼어붙고 있었다.

 

“춥지 않아? 굳이 웨일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잠깐이잖아.”

 

잠시 통화를 멈추고 손으로 스피커를 막으며 오웬이 차에서 내리는 웨일에게 물었다. 걱정스러운 듯 어느새 슬쩍 내려가 八자가 된 눈썹이 자신이 꽤나 걱정스러운 듯 했다. 그러는 정작 오웬의 손끝도 빨갛게 변해가고 있음을 웨일은 놓치지 않았다. 괜찮다는 웨일의 끄덕임에 결국 오웬은 일단 통화를 이어나갔다. 이야기도 거의 막바지였는지 통화는 길지 않았다.

“여기가 제일 가까운 도시부터도 꽤 먼 거리라서 조금 기다려야 한다는데, 괜찮겠어?”

“응, 기름도 꽤 남았는데 타이어만 퍼진 거니까, 난방 틀고 차 안에서 기다리면 되겠지.”

“웨일은 또 유독 추위를 많이 타니까 걱정이 돼서 그래.”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게 아니라, 오웬이 너무 추위를 안타는 거라니까…….”

 

어느새 오웬은 웨일의 곁으로 다가와 제 목도리를 다시금 돌돌 감았다. 얼마나 꼼꼼하게 두르던지, 웨일은 겨우 눈만 빼낼 수 있을 정도로 목도리에 파묻혔다. 자신보다 훨씬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도 멀쩡해보이는 오웬을 슬쩍 눈으로 훑은 웨일이 목도리에 입이 막혀 웅얼웅얼, 변명하듯 이야기했다. 확실히, 추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웬은 추위에 강했다. 다만 더위에는 쥐약이었다. 웨일이 살던 동네로 오웬의 가족이 이사를 와 처음으로 여름을 맞았을 때, 오웬은 어디 아픈가 싶을 정도로 창백해진 채로 땀을 뻘뻘 흘렸다.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괜찮다며 애써 고개를 젓던 오웬의 모습이 떠올라 웨일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들어가자.”

 

오웬의 손을 끌고 자동차 안으로 돌아온 웨일은 목도리를 끌어내렸다. 하아, 하고 내뱉으면 하얗게 얼어붙던 숨은 금세 자동차 안의 히터 열로 사라졌다. 나름 아늑하다면 아늑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바깥과 달리 꽤나 따뜻한 자동차 내부나, 누구 하나 없이 길게 뻗은 도로 바로 위에서 하나 둘씩 떠오르고 있는 별들이 그랬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러게.”

 

오웬이 한숨과 함께 뒷좌석에서 출발하기 전 따뜻한 차를 꺼냈다. 원래 계획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함께 오로라가 걸린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셨을 차였다. 캠핑용 컵에 따른 차를 웨일에게 건네자, 웨일이 작게 키득거리며 그 컵을 받았다. 여전히 뜨거운 차 안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정말로, 상상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모처럼 나선 여행길에서, 이렇게 낯선 추운 도로 위에 단 둘이 고립되리라고는.

 


 

이 길고 긴 여행의 시작은 웨일과 오웬이 함께 사는 미국 남부 지역의 한 저택에서 시작되었다. 그보다 더 이른 시작은 아마 아이패드에 고개를 박고 있던 웨일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저녁을 먹고 잠시 한가로운 시간, 웨일은 거실의 쇼파에 늘어져 아이패드로 이것저것을 구경하다가,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다.

 

“오웬, 우리 여행갈까?”

 

마침 오늘 저녁의 설거지 당번이었던 오웬은 갑작스러운 웨일의 제안에 잠시 접시를 달그락 거리던 소리를 멈추더니, 조금의 공백을 두고 부엌에서 답했다.

 

“갑자기?”

“응. 이제 곧 겨울 휴가니까, 우리 둘 다.”

 

이윽고 설거지를 빠르게 끝마쳤는지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오웬이 거실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웨일은 쇼파에 누워 아이패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에 오웬이 자연스럽게 쇼파에 가까이 다가와 웨일이 누운채로 팔을 쭉 뻗어 보고 있던 아이패드를 가져갔다. 웨일도 별 저항 없이 오웬에게 아이패드를 넘겨주며 몸을 바로 세웠다.

 

“미국 횡단 여행?”

“어때?”

 

쇼파에 비스듬하게 서서 아이패드를 읽다가,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오웬을 보며 웨일이 기대에 차 물었다.

 

“……우리 휴가가 그렇게 길까?”

“정 안 되면 몇 군데만 좀 뽑아서 가면 되지.”

 

웨일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쇼파 등받이에 두 팔을 얹었다. 천천히 아이패드의 스크롤을 내리며 곰곰이 생각을 하는 오웬의 얼굴을 훔쳐보는 건 덤이었다. 이윽고 스크롤이 바닥 끝까지 닿은 아이패드를 잠시 내려놓으며 오웬이 작게 끙, 소리를 냈다. 이에 웨일이 장난스럽게 오웬의 미간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뻗었다.

 

“글쎄, 너무 당혹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톡.

 

아, 닿았다. 오웬이 고민하다 고개를 들자, 웨일의 검지손가락이 오웬의 미간을 가볍게 건드렸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오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쓰고 있던 인상 역시 금방 사라졌다. 이윽고 눈이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 시작할 것 없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웬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웨일이 앉아있는 쇼파에 털썩 앉으며 말을 꺼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걸 찾아보고 있었어?”

“음, 그냥. 유튜브에서 봤는데 재밌어 보였거든…….”

 

웨일은 오웬의 마음이 조금 기울었음을 확신하고 재빠르게 아이패드에 설치해놓은 구글 맵 어플을 켰다. 두 사람은 함께 한 쇼파에 좁게 누워 같은 아이패드를 봤다. 다리와 다리가 가끔씩 얽혔고, 어깨가 맞닿았다. 둘은 미국의 여러 주들을 확대하고 축소하면서, 각자에게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물었다. 둘의 의견이 겹치는 지역에는 맵 기능을 활용해 깃발을 세웠다.

 

미국의 남부 지역에서 점점 위로 올라가던 지도는 이윽고 알래스카에까지 다다랐다. 웨일은 한참동안 그 부근을 만지작거리다가, 오웬에게 물었다.

 

“오웬이 살던 곳에도 오로라가 있었어?”

 

웨일의 물음에 오웬이 고개를 잠깐 기울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지.”

“보러 가자. 보고 싶어.”

 

그 말에 오웬은 조용히 왼손으로 웨일의 오른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오른손으로 화면을 터치해 깃발을 세웠다.

 


 

여행 계획은 굉장히 충동스러웠으며, 하물며 자세하지도 않았다. 오웬과 웨일은 깃발을 세웠던 몇몇 주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두 사람이 휴가를 아무리 길게 받는다 하더라도 그 휴가 기간 내에 미국 횡단을 지그재그로 해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둘은 시애틀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러 도시들을 충동적으로 들렀다가, 시애틀에서 앵커리지까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하던 작은 자동차는 길고 험한 미국 종단 여행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기꺼이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마음먹었다. 렌트카 소개인의 말로는 이 자동차가 포장된 도로가 아닌 산길이나 황무지 역시 튼튼히 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오웬은 아주 믿지는 않았다.

 

의식주와 같은 문제는 일단 달리면서 해결해보기로 결정했다. 처음 웨일의 이 제안에 오웬은 조금의 걱정을 표했지만, 웨일은 이 부분이 이번 여행의 묘미라고 주장했다. 결국 오웬은 자금을 좀 더 넉넉히 준비하는 조건으로 웨일의 의견에 동의했다.

 

미국은 넓었고, 한 번 국도로 뻗어나간 도로들은 육안으로 그 끝을 잘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다행히 오웬과 웨일 두 사람 모두 면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운전은 교대로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디서 읽었는데, 여자들이 가장 설레하는 남자들의 모습 중에 하나가 운전하는 모습이래. 그래서 그런가, 오늘 좀 섹시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웨일이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쐐다가 실없이 던진 말에, 운전대를 잡은 오웬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덕분에 차 전체가 덜컹했다. 아마 브레이크나 액셀을 잘못 밟았던가 했을 거다.

 

“…….”

 

잠시 말없이 웨일을 흘겨보던 오웬이 잠시 곰곰이 고민하더니, 조금은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웨일은 평소에는 내가 별로 안 섹시하게 느껴졌다는 거네.”

“아니, 오늘따라 더 섹시하게 느껴진다는 거지!”

 

오웬을 조금 놀려주려던 거였지, 두 번씩이나 이런 낯 부끄러운 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던 웨일이 당황해서 말을 덧붙였다.

 

“정말로?”

“진짜라니까.”

“그럼, 지금 한 번 나한테 번호 따 봐. 섹시하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진심을 가득 담아서.”

“뭐? 너 지금 운전 중인데 어떻게 그…….”

 

오웬의 운전을 핑계로 이 상황을 피하려고 했던 웨일은 잠시 전방을 주시하고는 입을 꾹 닫았다.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 지방 국도를 달리고 있는 차 앞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액셀만 간단하게 밟으면 되는 쉬운 국도가 펼쳐져 있었다는 뜻이다. 힐끔, 오웬의 눈치를 보려 고개를 살짝 돌린 웨일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이상한 농담을 들은 값을 톡톡히 할 작정인지, 오웬의 얼굴은 꽤나 태연하고 결연했다. 괜한 소리를 해서 제 무덤을 판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웨일은 작게 한숨을 쉬고 더듬거리면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맹세컨대, 이런 저급한 작업 멘트는 시니어 학부에서도 해보지 못했었다.

 

“……저기요, 그 쪽이 너무 섹시해서 그런데, ……혹시 나한테 번호 좀 줄 수 있어요?”

“진심으로요?”

“……네에.”

 

웨일은 불타는 것처럼 화끈거리는 제 얼굴이 지금 어떨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웬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그것보다 더했다.

 

“미안합니다. 사실 제가 배우자가 있어서요. 아무래도 번호는 곤란하겠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오웬은 대답과 동시에 핸들에 두었던 제 왼손을 흔들었다. 왼손 약지에는 웨일과 결혼하며 맞췄던 결혼 반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웨일의 왼손 약지에도. 그러니까 웨일은, 자기 자신을 이유로 자신의 배우자에게 차인 셈이었다. 잠시 웨일이 벙찐 동안, 지금까지 줄곧 운전을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지 않던 오웬이 슬쩍 웨일에게 고개를 돌리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엔 완전히 당했다.

 

웨일은 작게 한숨을 쉬며 화끈거리는 제 얼굴을 창문을 열어 바람에 식혔다. 언젠가는 꼭 이 수모를 갚아줄 거라 다짐하면서.

 

여행길은 무척이나 길었고, 운전을 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그러나 그 말은 반대로 이야기해보자면,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충분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 모두 돌아오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운전 중인 자동차 안은 현실과는 다른, 마치 이상과는 같은 먼 곳¹처럼 느껴졌다. 모든 세상이 두 사람 뿐이라는 환상과 착각은 우습기도 했으나 단호히 확언할 수 있을 만큼 달콤했다.

 


 

여행 중 두 사람의 식사는 사실 자랑할 만큼 화려하진 못했다. 대체로 배고플 때에 근처에 식당이 보이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해결했고, 마땅한 식당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는 대형 마트에서 사 차 뒷좌석에 처박아두었던 통조림이나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가끔 운이 좋을 때에는 패스트 푸드점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여행이 시작된 지 4일 정도가 된 점심 즈음이었다.

 

“햄버거 먹고 싶다.”

 

평소 패스트 푸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오웬도 이번만큼은 한탄처럼 새어나온 웨일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에 방문했던 식당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카운터를 보는 식당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는 지방 방송국에서 재방 중인 드라마에 푹 빠져 손님에게는 관심 하나 없어보이더니, 기어코 음식 주문 접수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항의하려는 웨일을 말리고 한 숟 뜬 조개 수프는 비린내가 심해 결국 다 먹지 못했고, 웨일이 주문했던 스파게티 역시 소스의 간이 엉망이었다. 음식의 가격은 또 얼마나 비쌌는지. 웨일은 가게 문을 나서자마자 구글 맵을 켜 최하점의 별점을 남겼고, 오웬 역시 동의했다. 거기에 더해 오늘 아침은 식당과 마트라곤 한 군데도 찾지 못해 질린 토마토 통조림으로 식사를 대충 떼워야 했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하던 오웬의 눈에 띈 빨간 배경에 노란 로고가 무척이나 인상 깊은 패스트 푸드 점의 로고가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차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웨일, 앞에.”

 

드물게 무척이나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오웬의 목소리에 웨일은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고, 웨일 역시 화색을 띄었다.

 

두 사람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마냥 드라이브 스루로 들어가, 차마 두 사람의 배 안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양의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각종 사이드 메뉴를 잔뜩 주문했다. 보조석에 앉은 웨일이 주문한 음식을 감사 인사와 함께 한아름 받자, 오웬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드라이브 스루를 나와 공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오웬, 차안에서 이렇게 잔뜩 감자튀김 먹어본 적 있어?”

 

웨일이 한 번에 감자튀김을 3개씩 집어 케챱에 찍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사실,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오웬은 학창 시절에 엄청 모범생이었으니까.”

“모범생이랑 차 안에서 감자튀김을 잔뜩 먹는 건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데.”

 

자신을 놀리는 듯한 웨일의 말에 아주 약간 토라진 오웬이 말을 덧붙이며 쥐고 있던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신선한 토마토와 양상추, 그리고 패티의 육즙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러면, 그러면 오웬, 밀크쉐이크에 감자튀김 잔뜩 찍어 먹어 본 적은?”

“그것도 없어.”

“지금 해 보는 건 어때.”

 

웨일이 어깨를 으쓱하며 오웬에게 제 밀크 쉐이크를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오웬이 감자튀김 봉투를 넓게 펄쳐 쏟아놓은 감자튀김 더미에서 감자튀김 몇 개를 집어 웨일이 내민 밀크 쉐이크에 찍어 입에 넣었다.

 

“어때?”

“달아.”

“맛있어?”

“맛있다기보다는… 신기해.”

 

오웬의 담백한 시식평에 웨일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으로 본인도 감자튀김을 잔뜩 집어 밀크쉐이크에 찍어 입에 넣었다.

 

“처음 해본 거치고 나쁘지 않았지?”

 

오웬이 제 몫의 콜라를 빨대로 빨아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웨일은 괜스레 오웬이 대견해져서, 재빨리 오웬의 뺨 부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가 뗐다. 갑작스러운 뽀뽀를 받은 오웬이 귀가 빨개진 채로 두 눈을 크게 뜨자, 웨일은 뻔뻔하게 마저 제 손에 든 햄버거를 베어 물으며 능청을 피웠다.

 

“미안, 내가 손이 남는 게 없어서. 두 손이 죄다 감자튀김 때문에 기름 투성이거든.”

 

이윽고, 제법 골이 난 오웬이 달려들어 제게 잔뜩 뽀뽀를 내릴 때까지, 웨일은 찰나의 제 장난을 잔뜩 즐긴 셈이었다.

 


 

여행 6일차, 어느새 시애틀을 코앞에 두고, 웨일과 오웬은 어느 한 작은 여관에 묵기로 했다. 둘 다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체력을 보충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서였다.

 

빨갛게 물든 노을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카운터에서 남은 방을 잡았다. 이곳에서 묵는 이들은 별로 없는지 모든 방은 거의 비어있었다. 여관의 주인인 듯 보이는 노인은 대충 카운터에서 키를 던져주더니, 다시금 카운터 뒤의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장사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카운터를 나와 키에 적힌대로 104호실을 찾아 들어가자 아늑한 방이 하나 나왔다. 신난 발걸음으로 웨일이 침대에 뛰어들었고, 오웬은 먼지가 튀어나올 걸 대비해 서둘러 창부터 열었다. 한참동안 침대에 누워있던 웨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먼지 냄새 나.”

“오래된 여관인가 봐.”

 

오웬이 조용히 창문 틀을 티슈로 닦아 먼지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편하게 씻을 수는 있잖아? 웨일 먼저 씻을래?”

 

오웬의 권유를 딱히 거절하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간 웨일이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면서 나왔을 때쯤, 오웬은 우버 이츠로 가까운 식당에서 적당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뭐 시켰어?”

“피자.”

“피자!”

 

웨일이 반갑게 메뉴를 다시 외치자, 오웬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웨일에게서 수건을 받아갔다. 이후 웨일을 앉힌 후 꼼꼼히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보다 더해.”

“내일이나 내일 모레부터는 추운 지방에 갈 텐데 감기에 걸리면 곤란하거든.”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사실 웨일도 알고 있었다. 오웬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걸 꽤 좋아한다는 걸.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져주게 되는 거다. 또, 오웬이 머리를 만져줄 때면 노곤노곤하게 기분이 좋기도 했고…….

 

얼추 웨일의 머리가 말린 걸 확인한 오웬이 씻으러 들어갔을 때, 오웬이 시켰다는 피자가 도착했다. 웨일은 피자 값을 치르고 오웬이 나오기 전까지 식사 준비를 했다. 한 건 피자 박스를 펼치고 같이 딸려 온 콜라나 따른 게 다지만.

 

식사는 완벽했고, 두 사람은 피곤에 지쳐 일찍 잠에 들기로 결정했다. 불을 끄자 사방이 암흑이었다. 게다가 가끔 바람소리를 제외하고는 아주 고요해서, 서로의 목소리나 침대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아까 책자 봤는데, 바퀴벌레나 쥐가 나오기도 하나 봐.”

“정말로?”

“응.”

“큰일이네, 나 바퀴벌레는 못 잡는데.”

“쥐는 잡을 수 있어?”

“당연하지.”

“거짓말. 저번에 웨일이 쥐 나왔다고 잡아달라고 했던 거 다 기억하는데?”

“그때는 그냥…. 잡기 싫었어.”

“그래, 알았어. 그렇다고 해줄게.”

 

오웬이 작게 키득이는 소리나, 웨일이 억울한지 이불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둘 모두가 고요해졌다. 서로의 존재가 확실히 느껴지는 방 안에서, 두 사람 모두 더 없는 안정감을 느끼며 수마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이런 하루가 매일매일 이어지길 바라면서, 내일 새롭게 만날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게 되면서.

 


 

시애틀에서 앵커리지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앵커리지에서는 새로 자동차를 렌트했다. 오웬이 경고했던 대로 알래스카는 웨일이 각오한 것보다도 더 추웠다. 덜덜 떠는 웨일을 보며 오웬은 웨일을 온갖 옷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생각보다 가벼운 차림인 게 웨일은 조금 불만이었다.

 

어쨌거나 둘의 최종 목적지는 알래스카의 오로라가 잘 보인다는 페어뱅크스였다. 아마 갑작스러운 자동차 타이어의 펑크가 아니었다면 예정대로 잘 도착했을 것이다. 웨일은 괜히 코를 훌쩍이며 바깥을 바라봤다. 어느새 완전히 해가 진 바깥이 어두컴컴했다. 웨일은 남아있는 차의 온기를 느끼려 컵을 손으로 감쌌다. 오웬이 그런 웨일을 알아차리고 자동차 히터의 방향을 약간 웨일에게 돌렸다.

 

“오로라 보고 싶어했는데, 아쉽네.”

 

오웬이 두 손을 비비며 말문을 열었다.

 

“……아냐, 괜찮아. 사실, 꼭 오로라를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

“정말?”

 

오웬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살짝 올리며 되물었다.

 

“응. …그냥, 오웬이 옛날에 살았던 곳이 궁금했던 거야. 그리고…….”

 

웨일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작게 웃으며 오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냥, 오웬과 새로운 것들을 잔뜩 해보고 싶었어. 오웬, 사실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식당이나 가보고, 아무 여관에 가보고, 약속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들, 전부 처음이었지? 나 사실 알고 있었거든. 오웬이 새로운 걸 조금씩 무서워한다는 걸. 그래서, 나랑 같이 해보면서……, 꼭 항상 같지 않은 거라도,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도,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별 거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많이 용기를 내거든.”

 

아무 말 없이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오웬과 눈을 맞추며, 웨일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도 오웬이 해보는 첫 경험에 꼭 같이 있고 싶었거든. 언제 어디서든 오웬이 다시 그 일을 하게 될 때, 꼭 옆에 있었던 내가 생각나도록…….”

“그런 이유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톡. 어느새 웨일과 똑같은 미소로 웃고 있던 오웬이 양손으로 웨일의 고개를 잡고 가볍게 이마를 맞댔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선명히 들리는 가까운 거리에서, 오웬이 천천히 대답했다.

 

“웨일, 이미 내 모든 특별한 일의 시작은 네가 함께였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되든, 웨일, 네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냥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듯, 아주 당연하게.”

“…….”

“그리고…… 치사해. 웨일. 그렇게 날 잘 알면서 이런 응원이라니, 웨일이 여기까지 해줬는데, 내가 용기를 안 내볼 수가 없잖아. 그렇지만 동시에 기뻐. 고마워, 네가 해준 모든 것들. 그리고 여전히 내 옆에 남아 있어주는 것까지도. 사랑해.”

 

시작된 입맞춤은 무척이나 가볍고 부드러웠다. 부끄러운 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울렸으나, 이윽고 시작된 빠른 심장박동에 그마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서로의 숨결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속눈썹이 팔랑이는 촉감까지 느껴질 만큼 모든 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다정하게 쓰다듬는 서로의 손길이 좋았다. 더 이상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따스한 온도였다. 마치 지구에 둘만 남은 것처럼, 혹은 애초에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아주 당연하고 다정한.


¹히미츠 우린 비행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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