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후회수 아카아시
썰백업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하고만 자는 아카아시가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이 이끌려서 자는 사람이 보쿠토였으면
세상이 무너지는건 순식간이였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아버지는 30년지기 친구에게 크게 사기를 당했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하셨다. 잘 산다고 생각했던 집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내렸다. 평생을 귀하게 자라온 어머니는 집과 함께 무너진 자존심과 자존감에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를 뒤따라 가셨다. 줄초상 이라 했던가. 몇 년새 상주를 두 번이나 하게되자 눈물조차 말랐다.
"케이지. 그래도 네가 성인이라서 다행이야. 이모가 아는 사람한테 얘기해서..."
"괜찮아요. 이제 성인인걸요."
아카아시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모는 한 명뿐인 어머니의 언니였다. 자매가 나란히 팔자가 사나웠을까 이모 또한 귀하게 자란 것이 무색하게 남편의 사업 뒷바라지를 하느라 형편이 변변치 않았다. 아카아시는 차분하게 장례를 정리했다. 대학교엔 자퇴서를 냈다. 핸드폰 번호도 바꾸었다. 어머니를 닮은 점일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못견디게 싫었다. 그렇게 아카아시는 혼자가 되었다.
대학간판도 졸업장이 없으면 소용이없었다. 아카아시는 면접을 보는 족족 고졸이라는 이유로 고배를 마셨다. 젠장. 현실의 쓴맛을 맛본 혀는 주위에서 들리는 달콤한 말에 이끌렸다.
"어려운일은 아니야. 그냥 같이 술좀 마셔주고, 뭐 말동무좀 해주고. 돈 많이 벌고싶으면...알지?"
불법적인 일은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빛 독촉장은 제 반지하 우편함에 꽂히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은 엣저녁에 바닥을 드러냈다. 통장에 바닥이 보이자 제 존엄도 바닥을 찍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내는 일을 했다. 밤이되면 어느날은 호스트바로 어느날은 클럽의 가드로 정처없이 홍등가 여기저기에서 돈을 벌었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일이없으면 앉아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서류를 들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 저렴한 구내식당에서 밥도 먹을 수 있었다. 돈은 적었지만 몸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사원증을 목에 걸고 깔끔한 정장을 입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그 모습들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제 미래라서 가끔은 박탈감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아카아시 군이지? 앞에 앉아도돼?"
고개를 든 아카아시의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사원증엔 흑발의 머리를 단정히 내린 금안의 남자 사진이 붙어있었다. 보쿠토 코타로. 조금 더 시선을 올리자 사진이 무색하게 뿌리가 자라난 은발을 왁스로 세운 같은 눈동자의 남자가 서있었다.
"네....그러세요"
아카아시는 잠깐 동안 그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했다. 저렇게 눈에 띄는 행색을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을텐데. 하지만 낯선 얼굴에 고개는 다시 식판으로 떨어졌다.
"현장지원팀 보쿠토 코타로야. 몇 년간 해외에 있었어. 나 잘 모르지?"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이 회사에서 일한지도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신입사원들 조차 대충 얼굴이 익었다. 아카아시는 제 앞에서 쫑알쫑알 입을 움직이는 보쿠토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꿋꿋히 밥먹는데 집중했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벙찐표정의 보쿠토를 지나쳐 식판을 반납한 아카아시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보쿠토는 눈을 꿈뻑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눈 밑으로 내려온 다크서클이 눈매를 더욱 날카롭게 보이게 하는 듯 했다. 길었던 파견 근무를 끝내고 복귀한 본사에는 못보던 아르바이트 생이 생겼고 그냥 친해지고싶었다. 기분나빴을까. 한 숟갈도 뜨지못한 흰 밥을 뜨며 떠올렸다.
와이셔츠를 입은 아카아시. 목에는 어젯밤의 흔적이 여실히 들어나있고 아카아시는 황급히 목을 손으로 감싸고 보쿠토를 지나쳐가겠지. 혹시나 제가 몸을 판다는걸 눈치챘을까. 전전긍긍하며 평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 소문이 났을까 걱정하며 들어선 회사는 아무일 없다는 듯 저에게 밝게 인사해준다.
현장지원팀이 보낼 우편이 있다고 해서 꾸역꾸역 사무실 문을 여는 아카아시. 목에 붙인 파스를 보고 어디 아프냐며 걱정해주지만 아카아시는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음. 다행이 보쿠토가 없는가 싶더니 뒤이어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나타난 보쿠토. 아무일 없는 듯이 안녕 아카아시군! 하면서 인사한다
아카아시는 떨떠름하게 고개만 숙이고 나가는데 보쿠토가 같이 따라나옴. 발걸음을 빨리해서 쫒아내려 하지만 따라붙어서 계속 말거는 보쿠토.
"저는 보쿠토상이 불편합니다"
"에..? 그래..?"
하지만 난 아카아시군과 친해지고싶은데! 순수한 미소로 대답하는 보쿠토에게 짜증이 치미는 아카아시.
"저는 밑바닥인생이예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믿고싶은 사람도 없어요. 혼자가 편하니까 신경꺼주세요"
날이 선 대답이 효과가있었는지 보쿠토는 더이상 따라오지 않음. 그리고 한 클럽의 가드로 출근한날 술에취해 진상을 부리는 남자를 끌어내기 위해 그를 잡아챈 아카아시.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은 유전이라 어디가서 저를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 진상도 운동좀 했는지 저 만한 덩치에 욕을하며 위협을 가함. 아카아시 어찌어찌 입구 밖으로 끌어내긴 했는데 금방이라도 취객과 싸움이 날 것같은 분위기. 여기서 때리면 깽값을 물어줘야 하나. 그냥 몇 대 맞고 깽값을 받을까 머릿속이 굴러가는데 갑자기 제 시야를 가로막는 은발의 머리카락.
"술취했으면 곱게 기어들어가지 어디서 행패야. 경찰부를까?"
보쿠토의 등장에 쪽수가 밀린다고 생각했을까 취객은 침을 뱉으며 돌아가 버림.
"여긴 어떻게..."
"기분전환 삼아서 놀러왔지! 괜찮아? 안 맞았어?"
"덕분에요"
"이런 일도 하는거야?"
"사무실 알바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돌아갈보게요. 재밌게 놀고가세요.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클럽중 여기라니. 제 구역으로 돌아온 아카아시는 곧 일행과 함께 입장한 보쿠토를 발견했다. 테이블을 잡은건지 위층으로 올라가는 무리를 보며 고개를 돌린다.
유리창 넘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카아시를 눈으로 좆던 보쿠토는 꾸벅 인사를 하며 뒷문 쪽으로 향하는 아카아시를 보고 일행에게 집에가겠다거 말하고 쫒아나간다. 락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카아시는 저를 기다리고 있는 보쿠토를 보고 눈썹을 구겼다.
"아카아시는 집이 많이 어려워?"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생각안하세요?"
"그렇긴한데..미안! 하지만 늘 피곤해보이고 그래서..."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저런 걱정의 얼굴일까. 아카아시는 가소로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큰 빚을 떠 안았어요. 사무실에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이런일로 번 돈으로 빚을 값고있어요.
"그렇구나..열심히사네!"
열심히 산다라. 글쎄 조금 이라도 빨리 많은 돈을 벌기위해 불법적인 일을 하는게 열심히사는건가.
"머릿속이 꽃밭이시군요"
잔뜩 비꼰 말에도 보쿠토는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왜 저한테 자꾸 친한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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